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백광현
조선 최고 어의가 된 마의
장웅진
황금책방 2012.10.05.
가격
13,000
10 11,700
YES포인트?
6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책소개

목차

서장

말 의원 노릇하는 백 병신
지옥에서 길을 보여준 사람들
세상은 그를 ‘신의’라 부른다
사람의 도리

저자의 말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128*188*30mm
ISBN13
9788997471232

책 속으로

연전이 덧붙인 말에 광현이 아쉽다는 듯 추임새를 넣었다. 본처의 몸에서 나오지 않은 이상 왕자로 태어난 자라도 서자에게는 꿈을 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조선 땅이다. 진내만은 중인이란 대개 서자이거나 서자의 자손이고, 그래서 본처 소생 양반들이 천시하는 의술이나 돈 불리는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고 늘 광현에게 말했다. 세상이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광현이 물으니 하늘을 향해 한숨을 “파!” 하고 쉬더니만, 높으신 분들이 말하길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원래 그렇다고만 했다 한다. 그런데 어떤 가난뱅이 선비가 광현에게 직접 말해준 바로는, 태종대왕 시절에 왕의 서자 동생이 감히 왕권을 노리다 맞아 죽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자타가 알아주는 장수감인 무 도령도 이런 조선 땅에서는 진짜 장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연전도 광현의 생각을 알아서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해주었다. --- p.92

‘비록 의술이 잡기에 속하나, 최고의 의원은 나라를 다스린다고 했소.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박시제중지공, 즉 불쌍한 백성들을 널리 구제하는 공이 있어서라고 하지요. 그래서 오늘날처럼 조정이 어지럽고 세상이 소란스러울 때 현자는 출사를 포기하고 의원이 된다고도 합니다. 그런 분을 가리켜 의유라고 하고요. 백 어의 당신이 진서를 모른다고들 하나, 내가 보기엔 어지간한 의유 못지않은 기개가 있소.’ --- p.235

“이보게, 아우. 내가 서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야소가 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네만, 아마 야소도 자네처럼 의술에 재능 있는 자가 아니었을까 싶네. 그의 제자들도 그런 자들이 아니었을까 싶어. 의술이라도 배울 수 있으니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야소를 따라다닌 게 아니겠나. 뭐,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 했으니, 이문이 나지 않으면 가지도 하지도 않는 내가 그들을 평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일 수 있네만, 아무튼 자네나 야소나 내가 보기엔 비슷한 자들이야.” --- p.278

“그러고 보면 저나 희빈이나 각자의 뒤에 계신 분들께 농락을 당한 셈입니다. 그런 분들에 의해 희빈은 품지 않았어야 했을 야망을 품어서 5년짜리 영광과 그보다 몇 배 더 길고 길 치욕을 얻었고, 전 저대로 몸쓸 병을 얻고 말았지요.”
광현도 중전과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장씨가 희빈이었을 때도 중전이었을 때도 장씨의 종기를 성심성의껏 돌본 것이다.

--- p.314

줄거리

왕명을 받고 고관을 치료하러 집을 나서는 어의 백광현 앞에는 오늘도 많은 환자가 줄을 섰다. 하나같이 엄동설한에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해 병이 든 사람들이다. 갈 길이 바쁘지만 백광현은 이들을 모질게 뿌리치지 못하고 위중한 어린 환자를 치료한다.
백광현은 뒤늦게 영돈영부사 윤지완을 찾아가 부종으로 고생하는 그에게 탕약 대신 음식 처방을 내린다. 백광현과 반주(飯酒€)를 나누던 윤지완은 소싯적 광현의 행적을 묻는다. 목장에서 일하던 백광현이 어떻게 어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일까? 제자이자 양자인 백흥령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백광현은 자신의 옛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출판사 리뷰

격변의 시기 조선 후기, 중인의 삶을 엿보다

백광현이 활약했던 17세기 중후반에는 세계사적으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중국은 여진족에게 정복당했으며, 대항해 시대의 유럽이 중국을, 도쿠가와 막부의 일본이 조선을 향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전까지 경직된 유교사상에 얽매여 있던 조선에서도 임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피폐해진 국가 재정과 백성들의 삶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실학이 일어나고, ‘서학’ 혹은 ‘야소교’라 불리게 될 천주교 이념과 자명종, 홍이포 등 신문물이 들어왔다.

이때에 빛을 발한 것이 양반과 천민 사이에 위치해 있던 중인(中人)이었다. 이들은 의술, 통역, 무역, 언론 등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시대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백광현도 이런 시대상황 속에서 현재 자신의 위치와 미래를 고민했고, 어의가 되기까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렇기에 기존 한의학계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간주되었을 바소, 대침 등을 이용한 외과수술적 종기 치료가 가능했을 것이다.

등장인물

인의(仁醫)의 삶을 살다간 어의, 백광현
조선왕조실록은 백광현이라는 실존 의원의 의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었음을 증언해준다. 더군다나 유학을 공부한 양반가 본부인의 자식이 아니면 출세를 꿈꿀 수도 없던 시절에 무려 종1품 숭록대부(왕의 종친이나 부마가 받던 벼슬)까지 올랐었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즉, 백광현은 뛰어난 능력으로 출세한, 전형적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러나 세상이 백광현을 신의라고 일컬었던 까닭은 단지 그가 의술만 뛰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백광현이 활동했던 시기는 조선조 최악의 재해인 경신대기근(1670~1671), 뒤이어 희빈 장씨가 오라버니인 장희재와 함께 철권을 휘두르던 시절과도 겹친다. 조선의 모든 백성이 백광현을 신의라 불렀고 왕도 그것을 인정했던 이유는, 그가 모든 환자를 평등하게 대했으며 환자가 가진 재물이나 권력보다 병의 경중을 보고서 진료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의학 신동이라거나 법 없이도 살 만큼 선(善)으로 무장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단지, 의료 사고 후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버리고 사라진 아버지 백의원을 실력과 명성으로 능가하려는 야심 때문에 의원이 되기를 꿈꾸었고, 다만 이를 위해 행했던 좋은 일들이 우연찮게 널리 알려졌을 뿐이다. 실수하거나 잘못한 것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는 비겁하거나 비굴한 모습도 보이고, 겁도 잘 내며, 남이 안 보이는 곳에서 투덜거리는 경우도 많다. 그는 수퍼 히어로가 아니라, 우리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안티 히어로(Anti-Hero)다.

백광현의 멘토, 연전 선생
백광현에게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양반과 왕실에 줄을 이어주는 멘토, 연전 선생은 일본 무사 출신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이 만든 동남아시아의 식민지에서 용병으로 활약했던 거부다. 전쟁 중 상관의 명을 받들어 죽마지우의 목을 벤 그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방황하던 중 서양 수도사의 권유로 죄를 고백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일에 일조할 것을 다짐한다. 자신의 애마를 고쳐준 백광현의 비범한 능력과 바른 심성을 알아보고 그에게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한편, 백광현이 조선을 위해 의술을 펼칠 수 있도록 큰 꿈을 불어넣어 준다.
그의 이름 ‘연전’은 일본인 해군이었던 후치다 미츠오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는 진주만 기습을 지휘했지만 전쟁 후 미국인 전도사 제이콥 데샤델을 만나 회개하고 개종하여 기독교 성직자가 되었다. 우리나라를 방문해 일제의 만행을 사죄하기도 했다.

조선의 알파우먼, 진홍단
몰락해가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원하지 않는 혼인을 한 진홍단은, 시아버지가 사망한 뒤 무능한 남편을 대신하여 상단을 장악해 북벌 정책에 따라 기병을 양성하던 조선군에 말을 팔아 막대한 재물을 모은다. 백광현도 진홍단의 말들을 돌봐주는 목장 소속 마의로 활동하면서 의술의 기초를 익혔고, 마침내 사람을 치료하기에 이른다. 진홍단은 이런 백광현에게 ‘아버지도 우러러 볼 명망 높은 의원이 되도록’ 동기를 심어주고, 상당한 액수의 활동 자금도 제공한다. 그녀는 출중한 상업 능력과 시대를 읽는 통찰력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을 가엾게 여겨 그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도 갖추고 있다.

마음을 치료하는 악사, 굴저
명나라 최후의 황제인 숭정제의 생모 효순 유태후를 모시는 궁녀였던 굴저는, 이자성의 난과 청나라 군대의 베이징 점령 과정에서 민간으로 피신했다가 청나라 군대에 체포되었다. 청나라의 실력자이자 황족인 도르곤이 수청을 들라고 요구하자 부랑배라고 욕을 했을 정도로 기백이 있던 그녀는, 결국 청나라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소현세자에게 시녀로 보내졌다. 그리하여 소현세자가 귀국할 때 조선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장악원에 근무하면서 왜란과 호란으로 붕괴된 조선의 음악계를 복구한 그녀는, ‘조선군이 북벌을 하러 가는 걸 죽은 뒤에라도 보고 싶으니 묘를 서쪽 길가(현 고양시 덕양구 대자 2동)에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조국 명나라의 부활을 열망했다. 망명지이자 제2의 고향이 된 조선에서 임진왜란,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병자호란 등 잇따른 내우외한으로 심신이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치료하지만, 비극적인 삶으로 마음의 병이 깊어 백광현에게 치료를 받고 결국 그와 가정을 이룬다.
사료에 의하면 백광현과 굴저는 비슷한 나이대였고, 사망일도 정확히 40일이 차이난다고 한다.

리뷰/한줄평7

리뷰

8.6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