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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Part 1 행복 01 1952년, 부산 02 음악에 눈뜨다 03 클리프 리차드의 추억 04 청개구리홀에 나타난 ‘4월과 5월’ 05 욕심 없는 마음 06 이종환을 만나다 07 음악으로 만난 수줍은 여인 08 샌드 페블즈와 함께 09 바다가 보이는 젊은 날의 풍경 10 아이디어 뱅크 전유성 11 맑고 고운 노래 〈맷돌〉 12 록커 이수만 13 방송국 DJ가 되다 14 《대학가요제》를 진행하다 15 MTV에 빠진 유학생 16 카페 헤밍웨이 Part 2 슬픈 마네킹 17 홍종화를 영입하다 18 뉴에이지 음악의 기수 19 댄스 음악의 진용을 갖추다 20 최초의 기획 아이돌 현진영 21 발라드로 돌아오다 22 신혼은 아름다워 23 흐린 기억 속의 그대 24 시장의 쓴맛을 보다 25 또다시 찾아온 낭떠러지 26 SM의 두뇌 유영진을 얻다 27 날개를 펴지 못한 유망주들 28 마흔셋에 낳은 첫 아이 29 H.O.T 캐스팅의 비사 30 캔디가 된 전사의 후예 31 본격적인 스타 마케팅 32 S.E.S와 누나부대의 출현 33 팬덤 문화의 빛과 그림자 34 해외시장에 도전하다 35 ‘신화’ 창조의 시작 36 초등학생 권보아 37 대륙을 향한 발걸음 38 SM 코스닥에 입성하다 39 SBS와의 갈등 40 Fly to the sky의 비상飛上 41 ID; Peace B 42 H.O.T의 해체 43 보아, 일본 열도를 삼키다 44 공금횡령 사건의 진실 45 신인가수 잔혹사 46 No.1의 대활약 47 동방신기 이야기 48 록 음악에서 길을 잃다 49 에이스의 그늘에 가려진 걸그룹 천상지희 Part 3 더 보이즈 50 멀티 유닛 슈퍼주니어 51 슈퍼주니어, 공연예술의 슈퍼맨이 되다 52 빛나는 컨템포러리 밴드 샤이니 53 함수 소녀들 f(x) 54 소녀시대, 소녀들의 시대를 열다 55 SM과 SNS 56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57 K-POP 대부의 리더십의 비밀 58 이수만의 CT론 59 젊은 경쟁자들 양현석과 박진영 60 버추얼 네이션과 SM의 미래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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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책의 편집자입니다.
2013-03-28
이수만 평전 독후감 대회 이벤트 후 저희 블로그를 모르셔서
수상자들께서 아무런 연락을 주시지 않아 여기 글을 올립니다. 수상자들께서는 http://blog.yes24.com/book724(정보와사람)에 방문하셔서 상금을 수령하시기 위해 필요한 관련 정보를 쪽지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도서출판 정보와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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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은 1989년 내내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새로 차린 SM기획의 업무는 물론 방송과 카페 사업까지 차질 없이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음반까지 취입하려 시도했으니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오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병원에서 내린 처방대로 휴식을 취하면서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 내리기 힘든 결단을 내렸다. 음반에 들어갈 곡의 수를 여덟 개로 줄인 것이다. 이수만은 이전까지 보통 10곡이나 12곡 정도를 앨범에 수록했었다. 종래의 곡수를 고집했다가는 건강을 크게 해칠 것이 명백했다. 이제 그의 나이 서른여덟이었다. 앞으로도 할 일은 많았고, 더군다나 지금은 홀몸도 아니었다. 이수만은 자신에게 생긴 건강상의 문제가 혹시 암과 같은 불치병이 아닐까 해서 몹시 두려웠다. 그는 가까운 친구였던 포크 가수 김정호를 4년 전 초겨울에 이미 저 세상으로 허망하게 떠나보낸 적이 있었다. 절친한 친구의 요절에 솟구치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내며 이수만은 굳게 다짐했었다.
“길지 않은 인생이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자!”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오랫동안 소망해온 일을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무력하게 손을 놓아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수만은 방송사 관계자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며 우선 방송일에서 손을 뗐다. 그런데 방송국 사람들 어느 누구도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만큼 성실하게 일해 온 이수만이 갑작스럽게 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주변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가 죽었다는 괴담이 그것이었다. 출처 불명의 근거 없는 헛소문은 급기야 이수만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소문을 접한 이수만은 쓴웃음을 지었다. 또다시 건강의 적신호가 켜진 그로서는 건강을 회복하여 음악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급선무였다. --- pp. 206-207 이수만이 ‘물건’을 하나 내놓을 것이라는 소문이 1990년 초여름부터 방송가에 파다하게 퍼졌다. 이 소문은 곧 사실로 밝혀졌다. 후두염의 고통 때문에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어 1989년 하반기 이후 방송활동을 중단한 채 송파구 석촌동의 SM 스튜디오에서 현진영과 와와의 데뷔 음반 작업에만 몰두해온 이수만이 KBS의《연예가중계》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1990년 6월 30일 방송된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다소 야위기는 했지만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TV 카메라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댄스 음악이 소리가 약하지 않은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댄스 음악을 잘 만드는 녹음실이라면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년부터 외국에서 토끼춤이 크게 유행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에도 이 토끼춤이 상륙할 것으로 보고 춤 잘 추고 노래 잘 하는 현진영이라는 젊은 친구를 선발하여 준비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엔 토끼춤과 노래를 같이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음악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방송은 좀 쉬면서 올해는 음악작업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좋은 후배들을 양성해서 좋은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음악에서 사운드가 굉장히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정말 좋은 소리를 내는 좋은 음악을 여기서 꼭 만들어내고 말겠습니다.” 몇 분간의 짧은 방송시간이었지만 이수만이 야심차게 내놓으려는 현진영과 와와의 댄스 실력과 음악적 내공은 대중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시청자들에게 연예가의 동정을 소개해주는 공중파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얼마 없었던 시절인지라 이수만은 현진영과 와와의 휘몰아치는 것 같은 강렬한 댄스 뮤직을 맛보기로 방송에 선보임으로써 천금과도 같은 광고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가 있었다. --- pp. 214-215 보아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리시에 새로 생긴 백화점에서 댄스 경연대회가 열렸는데 이 대회에 작은 오빠가 출전했다. 보아는 오빠를 응원하기 위해 백화점으로 따라 나섰다. 오빠의 춤 실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보아에게 그가 등장하는 무대를 구경하는 것은 즐거운 일상사였다. 참가자들의 경연이 모두 끝나고 입상자를 발표하기 위한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간이무대가 열렸다. 여동생이 춤을 잘 춘다고 권순욱이 주최 측에 알려준 덕분에 열린 번외 행사였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마자 득달같이 뛰어올라간 보아는 평소에 오빠와 함께 갈고 닦은 춤 실력을 맘껏 뽐냈다. 보아의 춤에 관람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보아의 특별무대가 끝나자 그녀의 춤에 반한 백화점 관계자가 다가와 몇 주 후에 열리는 결승전 무대에 찬조출연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승전이 열리던 날, 보아는 백화점 측에서 제공한 무대의상을 입고 다시 무대에 등장했다. 오누이 모두가 화려한 춤 솜씨를 신나게 과시한 이 날, 권순욱은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했다. 백화점 댄스 경연대회의 결승전이 열리던 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아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침 그 자리에 SM 엔터테인먼트의 캐스팅 디렉터가 와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춤 솜씨가 예사롭지 않음을 목격한 그는 즉석에서 보아에게 오디션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녀의 나이 겨우 열두 살 때였다. 가수가 될 꿈에 부푼 보아는 며칠에 걸쳐 열심히 오디션을 준비했다. 그녀가 부를 노래는 S.E.S의「완전한 이유」였다. ---pp. 359-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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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수만과 그가 일궈온 SM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그와 힘을 합쳐 대한민국의 문화산업을 개척해온 사람들에 관한 역사적 보고서이다.
이수만은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EXO, 등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중문화 스타들을 보유한 SM 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이다. 그는 1981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MTV가 몰고 온 문화적 현상에 크게 감명받아 1985년 귀국해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가 유학을 마쳤을 때 미국인 평균소득의 두 배가 넘는 초임 연봉의 편안한 일자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마다하고 험난한 가시밭길로 나섰다. 이수만이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교시절 교내행사에서 보았던 임성훈과 최병걸에 대한 동경과 선망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SM을 차리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 약 20년이 흐른 1989년의 일이었다. 당시 그는 검증되지 않은 새내기 음반제작자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창업 직후 그는 원조 아이돌 스타 현진영을 키워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는 현진영을 유혹의 마수로부터 지켜내지 못했고, 이후로 잇단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그가 실패의 늪에서 탈출한 것은 1996년 H.O.T를 데뷔시키면서였다. 이수만은 국내시장에서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H.O.T, S.E.S, 신화와 같은 내로라하는 인기 보증수표들이 벌어들인 수익을 일본 시장 개척에 쏟아 붓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가 일본 시장 개척의 첨병으로 내세운 사람은 15세 소녀 보아였다. 그는 3년간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보아를 일본 활동에 적합한 가수로 조련하였다. 그러나 한국 출신 가수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사례가 극히 드물었던 시절인 터라 10대 소녀 보아를 일본에 진출시킨다는 그의 발상은 대단히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일본 활동 초창기의 보아는 일본 대중음악시장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좌절과 시련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일본 시장의 밑바닥을 훑고 다니는 근성 있는 자세로 성장의 발판을 차근차근 만들어나갔다. 보아는 배용준이 욘사마로 불리기 이전부터 이미 SM발 한류를 도쿄 거리에 퍼뜨리는 문화 외교관 역할을 해내며, 감동적인 무대로 일본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보아는 일본 진출 2년 만에 일본 음악시장을 삼켰다. 보아의 뒤는 동방신기가 이었다. 동방신기는 보아가 걸었던 고난의 길을 따라서 일본시장을 개척해갔다. 동방신기는 탁월한 재능에 힘입어 일본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시장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동방신기와의 계약문제가 돌출하면서 이수만은 멤버들 가운데 세 명을 잃고 한동안 실의에 빠지고 만다.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EXO가 차례로 성공하면서 이수만은 다시 영광을 되찾게 된다. 이 팀들은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와 소통과 대화의 중심채널이 된 SNS를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면서 SM 엔터테인먼트가 전 세계로 급속히 그 영향력을 확장해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사실에 고무된 이수만은 2012년 여름 SM이 전 세계 70억 명의 인구를 거느린 가상 국가(Virtual Nation)를 향후의 목표로 전진할 것임을 선언한다. 이수만은 SM이 문화산업에서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CT, 즉 Culture Technology(문화 기술)를 꼽았다. 그는 CT를 전문적인 문화예술인을 키워내 시장에서 평가받는 시스템으로 정의했다. 그가 이끄는 SM 엔터테인먼트는 캐스팅, 트레이닝, 프로듀싱,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체계화된 프로세스의 구축을 통해서 이러한 CT를 성공적으로 구현해왔다. 이수만은 전근대적이고 주먹구구식으로 꾸려져온 한국의 문화산업을 첨단화하고 세계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SM 엔터테인먼트를 연예계 최초로 코스닥시장에 입성시키는 개가를 이룸으로써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 기획자로서의 입지를 한층 더 공고하게 다졌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는 SM 엔터테인먼트를 코스닥에 등록시키기 전에 있었던 내부 거래로 인해 공금 횡령 혐의를 받고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되고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에게는 지울 수 없는 오점이었다. 그는 그 오점을 만회하기 위해 미래를 향해 대담하게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는 그의 긍정적인 의지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수만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함께 열정적으로 일하도록 만드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왔다. 남다른 소통능력이야말로 문화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의 종사자들이 탐낼 만한 그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고비를 헤쳐 나온 그의 인생항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기죽어 지내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미래로 나아갈 도전의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이수만은 1990년대 후반 S.E.S를 일본에 진출시킨 이래로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무대로 도약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맡아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 까닭에 그는 ‘한류전도사’로 불려왔다. 한류는 한국과 외국 여러 나라들과의 교류에서 효과적인 윤활유 역할을 해왔고, 그는 이러한 현상을 ‘Culture First Economy Next’라는 표어로 요악한 바 있다. 이수만은 인적자원이 부존자원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성과물인 한류를 선두에서 개척해왔다. 그런 이수만의 옆에는 양현석과 박진영 같은 걸출한 도전자들이 있었고, 이수만이 이들과 만들어온 치열한 경쟁구도는 한국 문화산업의 희망적이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예감시키고 있다. 이수만과 그의 다양한 라이벌들이 써내려온 이야기 그 자체야말로 한국 문화산업의 성장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이수만을 중심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한국 문화산업의 역사를 동시대의 전체적인 시대상과 쉽게 비교해가면서 생생하게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게는 한류와, 크게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미래에 대한 독자 나름의 판단과 전망을 충분히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문화산업 개척자에 관한 보고서 이 책의 저자들은 대중음악에 관한한 문외한들이다. 그런 그들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K-Pop의 대부’ 혹은 ‘한류의 전도사’로 불리는 이수만에 관한 문헌이 책자 형태로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기이하게 여기면서 시작되었다. 처음 이 책이 아이디어 단계에서 최종적인 인쇄물로 간행되기까지는 꼬박 3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 책에는 이수만이 출생한 1952년부터 그의 삶을 좇아서 2012년 현재까지 그가 펼쳐온 다양한 대중문화 활동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그의 소년기로부터 청년기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현대사 격동의 편린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가 음악의 세계에 몸담기 시작한 1970년대 그의 음악 인생의 멘토라 할 수 있는 4월과 5월의 리더 백순진과의 활동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다. 그가 어떻게 포크 가수에서 유명사회자가 되었는지 또 연예계와 인연을 정리하고 유학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문화산업에 투신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이 책으로 만날 수 있다. 현재 이수만은 SM 엔터테인먼트의 수장으로서 문화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수많은 성공 이전에 그는 오랜 세월 실패의 어두운 그림자와 사투를 벌여야했던 고독한 음반기획자였다. 그가 실패의 꼬리표를 떼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데는 그 자신의 치밀한 기획력으로 H.O.T, S.E.S, 신화 등을 청소년 문화 아이콘으로 키워내면서부터였다. 그런데 그가 성공의 흐름을 만들어 가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SM 엔터테인먼트 밖의 한 인물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잡지발행인 신성철이다. 신성철이 발행한 [뮤직라이프], [포토뮤직], [토마토], [I Love Star] 등은 1990년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이 책은 어떻게 이수만이 이들 잡지의 영향력을 자신의 품에 안게 되었는지와 잡지의 영향력이 급격히 몰락한 2000대 초반 인터넷으로 그의 영향력을 이동시켰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이수만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수만은 2000년 4월 연예계 최초로 SM 엔터테인먼트를 코스닥에 입성시켰다. 이로써 그는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연예기획사의 대주주가 되었다. 이 무렵 전후로 그는 해외시장 공략에 맹렬하게 매진하였다.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해외에 쏟아 붓는 그의 모험적 도전은 SM을 전형적인 내수기업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수출기업으로 발돋음시켰다. 개별 가수가 수행하던 해외 활동을 뛰어넘어 조직적으로 해외활동을 확장하고 거기에 지속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이수만의 업적은 한국 대중문화의 해외시장개척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H.O.T, S.E.S, 신화, Fly to the sky,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등을 이수만이 CT(Culture Technology:문화기술)라고 부른 SM의 캐스팅, 트레이닝, 프로듀싱, 마케팅으로 연결되는 체계화된 프로세스로 아시아 정상급 가수들로 성장시킨 그의 활약상은 한국 대중문화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내 준다. 이 책은 이들 그룹들이 아직 연습생이었던 시절부터 전 세계를 누비는 스타가 되기까지의 성장의 면면을 세밀하게 추적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런 기록을 통해서 독자들은 스타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수만의 성공신화를 만들어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다양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이수만을 애태우게 하며 실패의 상실감을 안겨주었던 SM 안팎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상세하게 담고 있다. 독자들은 동시에 이전에는 어떤 기록으로도 쉽게 만나볼 수 없었던 이수만과 경쟁관계에 서 있거나 적대적인 갈등관계에 있었던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이수만을 중심으로 한 K-Pop의 태동기로부터 발전의 주요한 역사적 흐름을 정밀하게 접근함으로써 한류의 성장과정을 평가하고 한국산 문화 콘텐츠의 발전 가능성을 심도 있게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수만이 SM의 새로운 사업 목표로 설정한 버추얼 네이션(Virtual Nation)의 발전 전망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