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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머리말 | 초판 머리말
1장 1983년 Ⅰ 연행 | 서빙고 호텔 | 한국 국군 보안사령부 | 회유 공작 | 기상천외한 세계로 연행되다 | 재일 한국인 한 사람의 과거 | 제1차 조사가 시작되다 | 잠들지 못한 시간 | 한심하다 | 우리가 간첩이라면 | 아내와 아이 생각 | 나무 몽둥이로 맞는 감각 | VIP실 | 조국은 무엇이 죄인지 말해준 적 있는가 | 일본에 절대로 연락하지 마라 | 고병천의 판단과 결단 | 아내의 흐느낌 | 빼앗긴 여권 | 크라운 호텔 | 음모 | 공소 보류 | 간첩죄 성립의 풀코스 | 군사 독재의 법적 표상 | 포섭 | 음산한 소리 |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줘라 | 재일 간첩 K의 이야기| 소형 전기 고문기 | 물건에 지나지 않는 재일 한국인 | 죽음은 무엇인가 | 간첩 보도 | 조서작성이라는 이름의 거래 | 재일 한국인의 갈등을 누가 풀 수 있는가 | 전두환과 김일성에 관한 몽상 | 기묘한 주문 | 특별 채용 | 눈물 작전 | 3개망 일망타진 | 파출소장의 방문 | 광기의 음모를 펼치는 사람들 2장 1983년 Ⅱ 서빙고에서 한 호출 | 졸작 | 간첩 C씨의 전력 | 인간 백정 | C씨가 당한 폭력 | ‘예스’라고만 쓰면 되는 작업 | 이상하게 명랑한 광경 | 의미 없는 탄원서 | 풀려나다 | 새로운 수사 분실 | L씨의 진술서 | 염원의 희생자 | 조작 과정| 2계의 송년회 | 기분 나쁜 사람 | 기묘한 회의 | 두고 보겠다! 3장 1984년 국군 제7599부대 3처 2과 | 신사협정 | 연수 | 테니스 공작 | 원폭 공작 | 정보 분석 작업 | 첩보는 거짓말이라는 상식 | 서 형을 다시 만나다 | 봄이 찾아왔다 | 위하여! | 유학생 사냥 | 평화 공작 | L의 경우 | 상사병 | 농락당하는 마음 | 풋내기가 펼친 보자기 | 3계와 5계 | 드디어 올 것이 왔다 | 황당무계한 스토리 | 시작된 간첩 사냥 | 박용호의 기세 | 야수 | 좋아! 만들었다! | 조일지 씨의 경우 | 조작의 구조 | 일구이언의 약속 | 국빈을 중대가리라고 부른 센스 | 개새끼 | 심리전 | 서대문 구치소로 | 조일지 씨 가족을 만나다 | L과 고영자의 훈방 | 해방가 | 신동기의 실수 4장 1985년 어떤 첩보 보고 | 세 시간에 그친 일본 방문 | 코일이 성기에…… | 유 씨의 자서전 | 인간 바비큐 | 솟아오른 용기 | 법정의 증인으로 | 유 씨의 눈물 | 모험 | 충성 공작 | 유지길의 결의 | 구치소 안에서 | 뒤엎은 자백 | 너구리와 여우의 관계 | ○도 ×도 아닌 △ | 돌아와요 부산항에 | 나락 공작 | 보안사의 추태 | 언론 탄압 | 공소 보류가 끝나다 | 처장 사인은 받다 | 보안사를 조국 땅에서 매장해버리겠다! | 지는 것이 이기는 것 | 나는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후기 |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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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의 진실까지 밝히지 않으면 진정한 과거사 청산이 아니다. …… 그렇지만 제5공화국 시절 천인공노할 짓을 서슴지 않던 자가 훈장을 받고, 포상금을 나누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진급하고, 지금은 정년퇴직해 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는데, 피해자와 그 가족은 인생이 파괴되고, 고문 후유증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괴로워하고, 주위의 눈총까지 받으며 살아야 하는 비참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결코 과거사 청산을 말할 수 없다. ---「개정판 머리말」 중에서
“설사 일본에 있어도 김일성과 김일성을 지지하는 자를 철두철미하게 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애국심이다.” 고병천이 말했다. 몇 십 년 동안 본국 국민과 재외 한국인을 벌벌 떨게 한 논리였다. 그 논리는 마치 어린아이가 출입 금지된 잔디밭에 들어갔다고 해서 사형을 선고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반공법, 오늘날 국가보안법은 고병천의 저 말을 근거로 삼아 존재한다. 그러나 본국 정부는 우리 재일 한국인 2세와 3세에게 왜 김일성을 적으로 삼고 반공을 국시로 해야 하는지 말해준 적 있는가? 무엇이 죄인지 말해준 적 있는가? 자유로운 사고에 익숙한 우리는 분단에 따른 반목을 민족 전체의 비극으로 파악하고 민족 화해의 이정표가 마련되기를 갈망했다. 반김일성주의자라고 했지만, 남북이라는 말로 분단을 추상화하고 추상화한 북을 적으로 믿는 태도를 나는 더욱 반대한다.--- pp. 60~61 어떤 재일 한국인의 주변 인물 중에 조총련 말단 조직의 간부가 있고, 그 인물이 사업 고객이라고 하자. 고객이니까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공화국(북한)은 세금이 없어 좋은 나라예요”라는 ‘북괴 찬양’(반국가 단체에 동조)에 해당하는 말에 “그것 참 좋으시겠군요”라고 맞장구치는 행동은 본의가 무엇이든 아주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것을 ‘고무, 찬양, 회합’이라고 한다. “이번에 한국에 있는 친척한테 갔다 오는데 결제를 며칠 늦춰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더니, “그거 다행이네요. 남조선에 다녀오시는 겁니까? 나는 조총련에서 활동하는 바람에 남조선에 있는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습니다. 그곳에 가시면 제 고향이 지금 어떻게 돼가는지 보고 이야기해주십시오”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지령 사항’, 그 사람이 한국에 방문하면 ‘잠입’, 돌아다니며 조총련 말단 간부의 고향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면 ‘탐문 수집’, 방한 일정을 잘 소화하고 일본행 비행기에 타면 ‘탈출’, 나중에 거래상의 결제 때문에 그 조총련 말단 간부에게 전화를 걸면 ‘통신 연락’, 결산을 마치면서 “당신 고향도 도로가 깨끗하게 포장돼 좋아졌습니다”라고 알려주면 ‘보고’가 되고 만다. --- p. 80 수사관들은 음식을 받아먹으면서 자꾸 여자를 칭찬했다. 이렇게 정성껏 뒷바라지하는 사람을 좀더 소중히 대하라고 C씨를 향해 설교하면서 닭튀김을 마구 먹어댔다. …… 석방되고 난 뒤에 수사관들은 아내의 친정에 한란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음흉하게도 한란을 달라고 요구했다. 한란은 천연기념물로 제주에서 외부로 반출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수사관들은 제주국제공항에 파견한 자기 직원을 이용해 한란을 제주에서 서울로 보내는 불법 행위를 하게 했다. 2계 학원반 이덕룡, 고병철, 최홍상, 김국련 네 명은 불법으로 입수한 제주 한란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공적인 자리에 있으면서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 나를 감옥에 보내지 않는 대신 마치 당연한 권리라는 듯 제주 한란을 탈취했다. 수사관들은 사람을 죄인으로 조작하면서 한편으로는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p. 141 “두고 보겠어. 이 나라에서 이 나라의 권력이 무슨 짓을 하는지. 역사를 어떻게 만드는지. 여보, 도망칠 구멍은 없어. 그렇다면 현실을 똑똑히 봐주는 것으로 내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어!” 아내는 입을 다문 채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좋든 싫든 빨리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활용이라는 명목으로 내 의사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특별 채용을 당할 지경이 됐지만, 나름대로 이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이 너무도 비참했다. 골똘히 생각한 끝에 얻은 이유는 ‘살아 있는 증인’이 돼 이 나라가 뒤에서 꾸미는 터무니없는 음모를 목격하자는 것이었다. …… 이렇게 마음먹으니 나를 위로할 수 있고 또 나 자신에게 사명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사면초가인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패배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느냐. 굴욕을 인내하고 재일 한국인과 민족 전체의 적인 보안사 그리고 그 원흉인 군사 독재에 통한의 일격을 가하느냐. 두 가지 선택만 남았다.--- p. 153 엘리베이터실로 들어갔다. 나는 심사실에 남으려고 했지만 김상인이 따라오라고 했다. 유지길 씨는 알몸뚱이가 돼서 의자에 양손과 양발이 끈으로 묶였다. 물을 뒤집어쓴 유지길 씨의 시선에는 적의가 가득 차 있었다. 지금까지 봐온 학생들하고 어딘지 달랐다. 방 양 모퉁이에 있는 야전용 수동 발전기에서 이중의 코일을 풀어 유지길 씨의 손가락에 감았다. 김석진이 발전기 레버를 돌렸다. 물에 젖은 유지길 씨의 몸은 그때마다 신음 소리를 내며 펄쩍펄쩍 뛰었다. 김석진이 겁을 주려고 레버에 손을 뻗기만 해도 유지길 씨는 소리를 지르는 지경이 됐다. 그래도 마음먹은 대로 불지 않자 이번에는 코일 한 가닥을 성기에 얽어 놓았다. 나도 모르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p. 290 보안사는 매년 80명에서 100명 가까운 사람을 연행했다. 연행자는 대부분 대공처의 수사과와 공작과 소관이었다. 이른바 ‘특명 사건’이라고 불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간첩 용의자였다. 꼭 밝혀두지 않으면 안 될 일은 어느 해(1984년)의 통계를 보고 대충 헤아린 결과 연행자의 8할이 재일 한국이라는 사실이다. 간첩으로 기소된 경우는 물론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기소 유예나 공소 보류로 결정된 사람들을 포함하면 간첩 전과가 붙은 사람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또한 다행히 훈방됐다고 해도 유린당한 인권은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 한국 군부 독재의 역사는 공작, 불법 연행, 고문의 역사였다. 그 사실을 나는 계속 봐왔다. 침묵은 죄악이다. 내 기분이 어떠했든 내가 ‘수사관’의 한 사람으로서 관여한 조작의 희생자들은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다. 그 사람들의 양심과 진실은 아무도 모른 채 시간만 계속 흐르고 있다. --- pp. 343~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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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 대로 하면 살려줍니까?”
VIP실과 엘리베이터실을 갖춘 서빙고 호텔, 메뉴는 폭행, 감금, 인간 바비큐, 물고문, 전기 고문……. 퇴근길에 끌려가 간첩이 됐고, 살기 위해 보안사의 노예가 됐다 ― 간첩 날조, 고문, 조작의 무간지옥 보안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내부 고발! ‘김근태’이자 ‘이근안’ ―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가혹한 어둠의 시대 2012년 8월 7일, 보안사의 후신인 국군 기무사령부의 불법 사찰 피해자가 자살했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는 비선을 동원해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고, 국가정보원은 선거 개입 의혹에 휩싸여 논란이 되고 있다. 군사 독재 시절에 견줘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더 일상화된 국가 폭력이 우리 삶을 옥죄고 있다. 가공할 폭력을 동반한 국가 폭력의 시대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탓이다. 《보안사》는 1983년 간첩으로 조작되고 역이용 간첩이 돼 3년 동안 국군 보안사령부 수사관으로 일한 재일 한국인 김병진이 자신이 겪은 국가 폭력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르포다. 또 한 사람의 ‘김근태’이자 ‘이근안’이라는 비극적인 운명을 경험한 저자가 간첩 조작 사건에 관련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일상을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재일 한국인으로 태어나 조국을 배반한 간첩이 된 저자 김병진처럼 이 책은 남다른 운명을 타고났다. 《보안사》는 1988년 출판되자마자 군사 정권의 탄압을 받아 전량 회수되지만, 2012년 법정 증거물로 채택돼 추재엽 전 양천구청장이 재일 한국인 유지길 씨를 물고문한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채택되는 등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가해의 역사를 밝히고 가해자를 고발하는 소중한 도구 구실을 하고 있다. 말할 수도 기록할 수도 없던 3년을 오롯이 담은 《보안사》는 지난날의 국가 폭력에 둔감하고 가해자에게 관대한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서빙고 1983 ― 조작 간첩에서 보안사 수사관으로 보낸 3년 1983년 7월 9일 토요일 오후, 김병진은 퇴근길에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불법 연행됐다. 베테랑 수사관만 모인 수사2계 학원반은 김병진을 두 달 넘게 감금하고서 협박과 회유를 반복했고, VIP실과 엘리베이터실이라고 불리는 고문실로 끌고 가 폭행, 물고문, 전기 고문을 했다. 죽음이 곁에 있다고 느낄 정도로 피폐해진 김병진은 자신이 북한에서 교육받고 이적 지하 조직을 구축하려고 위장 유학을 온 간첩이라는 보안사의 각본을 받아들였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아내와 아이까지 집에 감금됐고, 사법부와 언론은 권력의 편이었으며, 동네 통장부터 회사 동료까지 모두 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달려들었다. 승진과 포상에 눈이 먼 수사관들은 김병진을 이용해 또 다른 재일 한국인들을 간첩으로 조작했고, 1984년 1월 4일 저자를 아예 보안사 6급 군무원으로 강제 채용했다. 연세대 대학원에 다니면서 국어학자의 꿈을 키우며 삼성종합연수원 일본어 강사로 돈을 벌어 아내와 태어난 지 두 달 밖에 안 된 아들을 부양하던 평범한 가장이 간첩 조작의 당사자라는 얄궂은 운명의 수레바퀴에 걸려든 것이다. 보안사 수사관이 된 김병진은 일본어 번역과 통역 업무를 하며 내부자의 시선으로 간첩 조작의 산실을 지켜봤다. 보안사는 말단 수사관부터 고위 간부까지 실적을 올려 훈장과 포상금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출세했다고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 위세를 부리며 뇌물을 받고 호시탐탐 횡령을 꾀하는 사람,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 직접 고문한 피해자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렇게 《보안사》는 이때까지 쉽게 볼 수 없던 가해자의 다양한 모습에 더해 가해자 개인이 야만스러운 국가 권력과 상부상조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애국과 안보를 위한다는 말은 술자리 흥을 돋우는 구호일 뿐이었고, 보안사는 해마다 100여 명을 불법 연행해서 고문한 뒤 ‘물건’이 될 만한 피해자를 간첩으로 ‘요리’했다. ‘수사’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간첩 조작은 따로 정해진 매뉴얼이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일상적인 보안사의 업무였다. 야만스러운 고문과 조작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 결과 수사관은 실적을, 군부 독재 세력은 권력을 손에 쥐었다. 아무것도 뜻대로 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 저자는 무고한 사람을 간첩이라고 증언해야 했고,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끝내 외면해야 했으며, 고문당하는 다른 피해자 바로 옆에 서서 통역을 해야 했다. 가까운 이웃도 믿을 수 없었고, 감시와 도청에 시달리느라 마음 편히 숨조차 내쉴 수 없었다. 간첩 조작에 일조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중 모함을 당해 보안사로 끌려온 재일 한국인 유지길 씨를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단장과 힘을 합쳐 구출하면서 처참하게 짓밟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기도 했다. 공소 보류 기한이 끝나자 곧바로 사표를 쓰지만 한참 뒤에야 겨우 보안사에서 빠져 나온 김병진은 1986년 2월 1일 일본으로 탈출했다. 그리고 보안사와 군부 독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때까지 아무 곳에도 기록할 수 없던 3년의 기억을 자세하고 분명하게 적어내려갔다. 전부 지켜보고 끝까지 기억한다 ― 국가 폭력에 맞선 처절하고 철저한 저항 간첩 조작이라는 국가 폭력에 관해 국가 차원의 사죄를 하기는커녕 여전히 가해자 중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 현실에서,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를 모두 담은 《보안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저자는 수사관들의 실명은 물론이고 말씨와 외양까지 되도록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주고받은 대화, 전해들은 일화, 진행한 공작의 전말 등 간첩 조작의 진상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황을 모두 종합해 꼼꼼히 되살렸다. 야만의 역사를 전부 지켜보고 끝까지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폭력과 강압에 짓눌려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던 재일 한국인 김병진의 가장 처절하고 철저한 저항이었다. 이런 저항의 기록인 《보안사》는 결국 법정에서 고문과 조작의 과거를 증언해 가해자의 실형 판결을 이끌어내는 기억의 힘을 보여줬다. 만연한 국가 폭력에 무디어진 우리가 또 한 번 오늘을 내일의 과거사로 만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1988년 출간되자마자 전량 회수돼 세상에 나오지 못한 《보안사》를 다시 내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