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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
인간의 감각 안내자 1,210원 전태일 동상 불온한 응시 지휘 월드 피플 어느 날 해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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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내러티브와 르포르타주를 넘나드는 묵직한 소설
“우리는 자본주의로부터 배제된 무통적 인간이다!” “그의 소설에는 사소한 문장이 없다, 언제나 정면으로 승부한다, 그는 무모하다, 그러나 이 무모함 앞에서 우리는 결국 가슴을 적시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가 온몸으로 밀고 가는 사실(寫實)의 힘, 바로 문학의 힘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민규가 2001년 계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이재웅의 첫 출연을 두고 한 말이다. ‘비인간적 현상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현실의 한 부분으로 용인하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문제적 현실을 꼬집은 첫 장편소설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에서, 그는 허구의 소설이 어떻게 ‘사실(寫實)의 힘’으로 진정성을 확보하는 문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제시하였다. 이번 두 번째 소설집 『불온한 응시』는 첫 소설집 이후 5년 만이다. 그의 ‘무모함’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자본과 계급 이데올로기에 파묻힌 현대인들의 허위의식과 그것에 비껴 있는 또 다른 인간 군상의 내면을 향해 저돌적이다. 투박하고 거친 인간의 외부에 접근해서는 세밀하고 끈덕진 사실적 문장으로 그 내부 깊숙이 감춰진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달콤한 스토리텔링 거부, 육화된 작가정신으로 현실을 탐색하다!” 작가의 ‘응시’는 작품 속에서 일관된 지점을 향해 있다. 한결같이 ‘사람’을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이 사회의 마이너리티, 서발턴, 주변인…… 자본주의가 통각하지 못하는 투명 인간들인 동시에, 그들 자신도 ‘인간의 감각’을 잃고 중심부에서 배제된 “무통적 인간”들이다. 그런 인간들의 삶이란 과연 어떠할까. 작품 속 그들의 공간은 무언가로부터 구획되고, 구분 지어져 있다. 이 사회의 99%의 서발턴(하위주체)들이 되려 1%의 시각으로 차별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인력시장과 피시방을 전전긍긍하는 도시 빈민(「인간의 감각」)이거나 지역 재개발로 인해 중심부와 주변부가 갈리며 경제 난민(「월드 피플」)들인가 하면,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구획은 아니어도 인종적?계급적 차별에 따른 정서적 층위 차원으로 구별된 이주 노동자들(「안내자」)의 삶으로 그려진다. 이는 모름지기 우리의 인식 속에 구획되어 있는 편견 의식과 결부되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자본에 의해 구획되는 사회체제의 상?하부 구조의 경계와 더불어 대비되는 그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현재 우리를 옥죄고 있는 자본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이는 결국 그의 작품에서 한국식 ‘월가 점령 시위’(「어느 날」)로 표출되기도 한다. 한편, 폐지 값으로 전락한 『공산당 선언』(「1,210원」)과 세월이 흘러 흉물스럽고 조악한 조형물로 짜 맞춰지는 ‘전태일 동상’((「전태일 동상자」)을 통해 ‘시간’ 역풍 속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인간의 존엄과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실비집의 풍경을 육화된 사실적 언어로 풀어낸 표제작 「불온한 응시」는 나이와 처지, 국적이 각양각색인 인부들을 식당 안에 뒤섞인 음식 냄새와 함께 정경화하고 있다. 그 안에서 오가는 인부들 간의 대화와 그곳 TV에서 흘러나오는 정치인들 구호가 뒤섞여,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인간 내면 깊은 곳에서의 항명으로 발화되는, 작가의 자의식이 가장 잘 표출된 작품이다. 이처럼 이재웅의 소설은 너무나 인간적인 장면과 일들을 그려냈지만 그것이 되레 비인간적으로 비춰진다면, 우리로 하여금 흔히 ‘인간적이다’라는 말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꼭 한 번 자문하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해설을 쓴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그의 이번 작품집에 대해 “잭 런던이나 조지 오웰 같은 소설과 르포르타주 양면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인 선배 작가와 같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다고 평했다. 이 책에 실린 9편의 작품들은 “우리 시대의 남루한 비극성을 응시하기를 회피하는 집단적 경향에 대한 이재웅식의 작가적 저항”(「해설」), 즉 자본주의 말단에서 소설가로서 펼칠 수 있는 극단의 소설적 전술인 셈이다. 감히 르포르타주 형식 소설의 가능성을 열어준 문학사적으로 유의미한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바야흐로 활자를 읽어내기 힘든 시절, 영화 같은 소설들이 각광을 받고, 그마저도 독자들에게 소구되기 힘든 문학 시장에서 팔랑거리는 문장과 소재로 마치 코믹북이나 시트콤 같은 소설들이 얼마나 많이 범람하고 있는가. 그런 차랑차랑 쾌검 소리만이 한데 섞여 아우성인 무림에서, 대숲을 가르는 묵직한 중검 같은 붓놀림 기운이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