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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제1장 외신 기자의 삶을 살다 제2장 4.19혁명과 5.16쿠데타의 기억 제3장 박정희 시대의 기자들 제4장 DJ 납치 사건의 진실 제5장 박정희 정권 막을 내리다 제6장 신군부의 탄생 제7장 5.18과 민정당 그리고 이병철 VS 정주영 제8장 전두환 시대 몇 가지 기억들 제9장 NKK PD와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제10장 조국과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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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1962년쯤 민간 지도자의 등장을 막기 위해 윤보선, 장택상 등 4~5명을 최고회의 회의실로 초청했다. 카메라기자는 전부 들어가고 기자는 2명만 들어갔다. 대화가 시작됐는데 나는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대화 내용을 모두 들었다. 문공위원장이었던 홍종철은 몸이 건장했다. 그가 “혁명은 민주주의를 성공시키기 위해 한 것”이라고 민주주의론을 운운하며 쿠데타를 정당화했다. 그러자 장택상이 일어나서 손가락질을 하며 호통을 쳤다. 장택상은 해방 후 수도경찰청장을 지낸 인물이었다. “당신들이 쿠데타 해놓고 민주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그게 말이 되느냐.” 그러자 박정희가 양쪽의 싸움을 말렸다. 내가 그것을 단독으로 보도했더니 최고회의 출입기자들이 부당 취재를 이유로 나를 추방해야 한다는 결의를 한 모양이다. ---p.39
그런 가운데 겪은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정주영이 정치를 하기 위한 야심을 품고 있었는데, 그는 전두환이 실권을 장악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최규하와 정주영은 모두 강원도 출신이다. 정주영은 쌀가마니에 현금을 담아 최규하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그 얘기를 전해주면서 나에게 “내가 정치 활동을 하려고 하니 좀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1980년 1월부터 3월까지 정주영에게 정세를 분석해주었다. 당시 현대 본사는 광화문 인근에 있었다. 그곳 7층에 정주영 사무실이 있었는데, 당시 비서가 현 문화일보 사장 이병규였다. 나는 1주일에 두 번씩 정주영을 독대해 그에게 20분간 정세를 분석해주었다. 나는 전두환이 실권을 장악한 과정을 메모해 얘기해주었다. 그런데 정주영은 그게 믿기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더 알아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다가 정주영도 전두환이 실권을 장악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나도 정세 분석 브리핑을 그만두었다. 정주영이 나에게 “혹시 원하는 게 있느냐”고 물어서 내가 “포니자동차 1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포니는 받지 못하고 돈만 좀 받았다. ---p.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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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NHK 기자 천학범의 한국 현대사 증언
한 조각의 진실 어쩔 땐 한 개인의 증언이 역사의 진실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직업이 기자라면 신뢰의 무게가 좀더 실린다. 한국 현대사는 어찌 보면 독재와의 싸움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려야 했고, 지금도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역사 기술을 놓고도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상 박정희 시대의 역사 문제는 현재가 아닌 미래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 책은 한 외신 기자의 눈에 비친 한국 현대사의 한 조각이다. 어쩌면 그가 외신 기자의 신분이었기에 그나마 일부분의 진실을 기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30년 세월의 무게에 한 조각 한 조각 엮어진 그의 증언을 보자면 무언가 빠져 있었던 고리가 채워지는 그런 느낌이다. 일찍이 천학범 선생은 해방 후 미군정 시기에 미공보부에 취직해 리버티뉴스 제작에 관여하고 이때의 인연으로 한국시청각교육협회를 설립해 오랫동안 국민계몽운동에도 관여했다. 이후 동화통신, NHK를 거치면서 굵직한 우리 현대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는 천학범 선생의 숙소를 드나들며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과의 인연, 그 시절 동료 기자들, 막후의 정치 공작들, 5.16과 12.12쿠데타,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지근거리에서 취재한 진실들을 충실히 담아냈다. 특히 김대중 납치 사건의 전말에 관해서는 인맥들을 동원, 당시 그가 직접 취재한 것은 물론 시간이 지났음에도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이후락이 기획하고 박정희가 승인”한 독재권력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규정한다. 책에서는 그의 육성을 충실히 기록하고자 인터뷰 형식으로 그 전말을 실었다. 또 김영삼이 한보철강 정태수로부터 600억 원의 정치자금을 수수한 소문을 확인코자 김영삼 집으로 가 확인하며 “돌려 줄 것”을 조언했다가 결국 사이가 서먹서먹해져 대통령 당선 이후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한 사연을 전한다. 선생은 김영삼이 정치 9단인지는 모르겠으나 국가의 IMF 사태를 불러온 경제 문외한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밖에 올림픽 중계료를 둘러싼 한일 줄다리기에서 조정자로 나서서 무난히 처리했던 기억, 정주영이 정치에 야망을 품고 쌀가마니에 현금을 담아 최규하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가 날려버려, 선생에게 정세 브리핑을 받았던 흥미로운 일화, 일본 NHK의 PD 호타 긴고가 김대중의 노벨평화상을 받도록 하기 위해 40분짜리 다큐멘터리 2부작을 만들어 일본에서 방영한 일화, 평민당 시절 김대중의 대통령 출마 채비를 만류한 사연 등 막후의 정치 무대가 실감나게 펼쳐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선생은 한국 기자들의 취재 실력이 과거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며 심층취재와 특종취재는 하지 않고 정부의 발표문에 의존해 뉴스가 모두 똑같다고 비판한다. 더불어 언론인과 대학교수들이 정치에 관여하면서 한국 정치를 망치고 있다며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4.19혁명과 87년 민주화운동, 최근 촛불시위를 목도한 선생은 정부가 국민을 무시하는 정책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국민들이 폭발한다고 엄중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