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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프롤로그: 과학자가 글을 내는 이유 003
생명과학은 억울하다 010 / 신약을 만들고 싶은 식물학자 012 / GMO도 문제다 015 / 그래서 나는 017 II. 식물학자의 이상한 고민 019 병을 고쳐보자 021 / 오래된 고민 023 / 키가 작으면 낟알이 많을까? 025 쌀보다 난치병 029 / 사고 덕분에 얻은 기회 032 / 비싸고 오래 걸린다 037 / 즐거운 상상 040 III. 동물세포는 훌륭했다 049 이미 잘 하고 있다 051 / 규제과학은 규제만하는 것이 아니다 054 / 식물에는 없는 규제과학 057 / 잘하고 있지만 완성은 아니다 060 IV. 식물로 해보기 067 첫 번째 오해는 저평가 069 / 두 번째 오해도 저평가 071 / 면역 시스템 074 식물이 만드는 항암 치료제 079 / 식물공장 081 / 아이디어 1 084 / 아이디어 2 087 / 실험 089 / 상상 090 / 적용과 한계 093 / 당 사슬을 뺀 허셉틴 099 / 옵션으로 붙을 수 있는 꿈들 106 V. 에필로그 109 선입견과 SF소설 111 / 손 내밀 준비가 필요한 과학 113 사족: 꿈의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115 참고문헌 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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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과학, 특히 내가 하는 생명과학을 받아들일 마음과 능력이 충분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는 교육 탓이 있다. 생명과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배우게끔 과정이 짜여 있다. 그런데 생명과학은 암기 과목으로 받아들여진다. 외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싫어한다. 그러니 생명과학은 외울 것이 많은, 싫은 과목이 된다.
생명과학은 암기 과목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과목이다. 영어로 쓰인 수학 교과서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수식에 익숙하다면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영어로 쓰인 생명과학 교과서는 다르다. 앞과 뒤를 설명해주고, 그림을 그려주고,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는 하나의 덩어리로 생명과학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생명과학은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하고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게 가르쳐야 하는데, 이런 것들은 빠뜨리고 단순 지식만 외우게 하면 왜곡이 생긴다. 생명과학을 전공하겠다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조차,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부분적인 것들만 외우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어떤 카이네이스(kinase)가 어떤 단백질을 너무 많이 인산화(phosphorylation)하면 전달 신호 스위치가 켜져서 질병의 원인이 되고……’와 같은 지식들은 제법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전체 그림을 그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고, 생명과학이 암기 과목이 되는 바람에 생기는 일이다. --- p.10~11 헌터 증후군은 IDS가 없어서 생기니, CHO 세포에서 IDS를 만들어 환자에게 주기적으로 투여한다. 그런데 말이 쉬워 주기적으로 넣어주는 것이지, 치료 현장의 상황은 말 그대로 난리다. 한국에서 헌터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는 70여 명 정도 된다고 한다. 환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병원을 방문해 몸속에 쌓인 뮤코다당체의 일종인 글로코사미노글리칸(GAG)을 없애는 치료를 받는다. 약 4시간 정도 정맥주사로 인공 IDS를 몸속에 넣어주면, IDS 효소가 천천히 피 안으로 퍼지면서 GAG를 분해한다. 문제는 치료 과정에서 면역반응이 생기는 환자들의 경우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을 적으로 여기고, 없애려 노력한다. 이를 면역이라고 부른다. 면역은 우직한(?) 면이 있어, 우리 몸에 좋건 나쁘건 공평하게 없애려 노력한다. IDS가 결핍되어 한 번도 정상적인 IDS를 만나보지 못했던 환자의 면역 시스템은, 기껏 주사로 환자에게 투여한 IDS를 외부 침입 병원체라 여기고 없애기 시작한다. 한 번 작동된 환자의 면역 시스템은 마치 급성 자가면역질환처럼 환자 자신을 공격한다. 공격이 심하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인공 IDS를 곧바로 맞을 수 없어, 우선 면역 능력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주사를 맞는다. 이렇게 일부러 면역을 떨어뜨리는 약을 맞고 인공 IDS를 2차로 투여받는데, 중증인 환자는 가족이나 보호자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다.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려면 치료제 비용만 약 수억 원에 이른다. 국가에서 90%를 지원해주지만 내야 하는 약값만 아직 수천만 원 남는다. 헌터 증후군 환자는 발달장애를 동반하며 환자의 기대수명은 10~20세 정도다. 의사 선생님은 다른 것은 되었고, 약이라도 먹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연락해오신 것이었다. 고셔 병 치료제 엘리라이소도 효소대체치료 방식이고, 당근세포에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국에서 비슷한 일에 도전하고 있는 곳을 찾다가,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 현장은 언제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절박하다. 절박한 상황 앞에 앉은 의사와 식물학자가 온갖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한다. --- p.42~45 아그로박테리움은 식물에 기생하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다. 어떤 이유로 식물 뿌리가 상처를 입으면, 식물은 상처 부위에 화학물질(아세토시린곤, acetosyringone)을 뿜어낸다. 아세토시린곤은 상처 부위에서 세포벽을 강화시키는 신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아세토시린곤이 나타나면 아그로박테리움이 이 신호를 가로채 반응하기 시작한다. 화학물질과 반응한 아그로박테리움은 식물이 상처를 입은 부위로 자신의 DNA 일부를 주입한다. 식물로 침투한 아그로박테리움의 DNA는 식물이 종양을 만들도록 유전자를 조작한다. 식물 입장에서 보면 이건 뿌리에 생긴 암(근두암筋頭癌)이다. 암은 원래 자신이 만들지 않던 것을 많이 만드는 특징이 있다. 근두암에 걸린 식물은 오파인(opine)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생산하며, 아그로박테리움은 그것을 영양분으로 이용한다. 아그로박테리움의 전략은 식물의 DNA를 바꾸는 강력한 것으로, 식물학자들은 식물 품종개량에 아그로박테리움을 이용해왔다. 아그로박테리움을 이용해 식물에서 항체 단백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그로박테리움에 의약품으로 사용할 항체 단백질 DNA를 주입하고, 이 아그로박테리움을 다시 식물에 침투시키면, 식물은 항체 단백질을 생산해낼 것이다. 트라스투주맙 항체 정보가 담긴 DNA를 아그로박테리움에 넣고, 다시 아그로박테리움이 식물세포를 형질전환할 수 있게 했다. 예상했던 대로 트라스투주맙 항체 단백질이 식물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생산되는 양이 너무 적었다. 대량으로 재배한다고 해도 약으로 사용하기에 너무 적은 양이었다. 그래서 바이러스에서 다시 해보기로 했다. 식물에 침투하는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는 강력하다.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에 담배 식물이 감염되면 순식간에 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죽는다. 속도가 빠르고, 확산이 광범위하다. --- p.85~86 기술의 발달로 개인의 유전자 지도를 그려내는 데 50만 원 정도의 비용과 열흘 남짓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역시 과학의 발전으로 항원을 분석하고 항체를 찾고 만드는 것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즉 개인의 유전자를 분석해 ‘개인에게 특화된 질병 치료제와 항체 의약품’이라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바이오 의약품 분야에서 동물세포를 이용한 생산은, 셀트리온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처럼 대기업들이 펼치는 규모의 경제 게임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병을 고칠 수 있는 항체를 계속 찾아내고 있지만, 임상시험에 적용할 중소 규모의 동물세포 기반 항체 단백질 생산 설비는 줄어든다. 규모의 경제 게임에 참여할 수 없는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식물에서부터 항체 의약품을 시작하면 어떨까? 과학자와 의사가 발달된 인간 유전체 검색 기술과 항체 단백질 개발 기술을 가지고 개인의 질병을 잡을 수 있는 항체를 찾는다. 둘은 식물로 항체 단백질을 만드는 식물공장에 찾아온다. 임상시험에 활용할 수 있을 만큼의 양을 만드는 데는 두 달의 시간과 컨테이너 식물공장 한두 개면 충분하다. 빠르게 임상시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생산도 마찬가지다. 컨테이너 한두 개면 환자 개인별로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을 계속 만들 수 있다. 나에게만 특화된 항체 신약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SF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불과 10년 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꼭 SF소설 같은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 p.95~97 과학은 다들 A라고 알고 있던 것을, 사실은 B였다고 밝히는 일이다. 그래서 과학에는 선입견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과학계만큼 선입견이 강한 곳도 드물다. 한 번 아니라고 결론이 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바이오 의약품은 CHO 세포에서 만드는 거야!’라고 누가 내렸는지 알 수 없는 결론이 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과학은 그렇게 하면 너무 재미가 없다. 아닐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식물에서 바이오 의약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만들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마약 같은 이런 생각 때문에 과학을 한다. 과학은 대체로 누가 알아줄 것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돈이 될 것 같아서 하는 것만도 아니다. 국제 식물 분자 농업 학회가 있다. 전 세계에서 효소, 항체, 백신을 연구하는 과학자 300~500명 정도가 모인다. 이 사람들은 모여서 아프리카에 사는 가난한 사람, 병에 걸렸고 병을 치료할 약이 있지만 돈이 없어 약을 못 먹어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어떻게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지금 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대책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논의한다. 세상에 없는 것을 그렸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과학자다보니 국제 식물 분자 농업 학회에 가보면 거기에서도 SF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예를 들어 최빈국에서는 환자에게 싼 약을 주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병에 걸리기 전에 막는 것이 중요한데, 최빈국 보건의료 시스템은 예방에도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비누나 세정제에 예방약을 넣어, 일상생활에서 비누나 세정제를 쓰면 자연스럽게 AIDS와 같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연구를 한다. 학회에 가면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데, 누군가 와서 본다면 한심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약효가 좋은 AIDS 치료제를 만들어 비싸게 팔 생각은 안 하고, 비누에 넣어 나눠줄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럴 수 있는 게 과학이다. --- p.11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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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벼를 만들고 싶었던 식물학자
최성화는 식물학자다. 식물학자라고 하면 온실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지낼 것 같지만, 이들은 ‘먹는 문제’를 풀기 위한 고군분투에서 언제나 앞장서왔다. 인구의 증가를 식량 생산량 증가가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던 맬서스의 이론을 깬 것은, 다른 경제학자의 경제학 이론이 아니라 식물학자들의 연구였다. 노먼 어니스트 볼로그(Norman Ernest Borlaug, 1914~2009)라는 식물학자는 밀의 품종을 개량했다. 개량된 밀의 이름은 소노라 64호. 볼로그가 개량한 품종의 밀은 수확량이 좋았는데, 덕분에 적어도 수억에서 수십억 명의 인구를 굶주림에서 구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볼로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노벨 생리의학상에는 식물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볼로그가 수확량이 많은 밀을 개량했듯이, 소출의 좋은 품종의 쌀을 만들려고 했던 최성화는 바이오 의약품 신약개발로 연구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볼로그의 소노라 64호는 다른 밀에 비해 키가 작았다. ‘그렇다면 벼의 키도 작게 만들면 수확량이 늘어날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운 최성화는 애기장대라는 식물의 돌연변이 연구로 키와 관계된 유전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유전자는 DWARF5(DWF5). 이 유전자는 30cm 정도인 애기장대의 키를 5cm까지 줄였다. 연구를 더 해보니 DWF5 유전자는 키를 키우는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 돌연변이가 생긴 것이었다. 연구는 더 진행되었고 애기장대의 키를 작게 만드는 DWF12를 찾아냈다. 기대를 안고 DWF12를 벼에 넣었다. 역시나 벼의 키는 작아졌다. 그러나 소출은 늘지 않았다. 과학자가 매일 맞는 상황이며, 반전의 시작이기도 하다. 희귀병의 원인을 찾아낸 식물학자 DWF5와 DWF12는 식물의 콜레스테롤 합성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DWF5가 사람에게 나타나는 희귀 유전병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스미스 렘리 오피츠 증후군(Smith Lemli Opitz syndrome, SLOS)은 콜레스테롤 생합성에 문제가 있어 생기는 병이다.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콜레스테롤 합성에 문제가 있어 SLOS를 앓는 환자는, 뇌가 작은 소두증이나 손가락이 보통보다 많은 다지증, 정신지체와 발달장애 등을 겪는다. 최성화가 DWF5와 DWF12를 찾았을 때가 1998년이었는데, 아직 사람의 유전자 지도가 다 그려지기 전이었고 SLOS가 유전자 문제로 발생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 때였다. 진화의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기로 했을 뿐 식물과 동물의 뿌리는 같다. 사람에게 있는 질병 관련 유전자 289개를 조사했더니, 139개가 애기장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애기장대의 키를 작아지게 만드는 돌연변이 유전자는 사람에게서는 SLOS 질병을 일으킨 것이었다. 원인을 찾았으니 SLOS를 고칠 수 있게 되었을까? 식물학자는 여기서 잠깐 멈추었다. 과학이 세상에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려면, 연구실을 문을 열고 기업이 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시작할 수 없었고, 다음 이야기를 준비한다. 식물공장에서 항체 의약품 만들기 요즘 그는 회사를 차려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컨테이너로 된 식물공장에서 항체 의약품을 만들기 위한 연구다. 허셉틴, 키트루다처럼 유명한 면역항암제들이 바로 항체 의약품이다. 항체 의약품은 사람의 면역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항체를 의약품으로 개발한 것이다. 암이나 희귀 난치성 질환에 효능을 보여주지만, 기본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놀라운 치료 효과를 보여주는 허셉틴(Herceptin, 성분명: trastuzumab)으로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려면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나, 많게는 수천만 원 가까이 들어간다.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도 있으나, 누군가 약값을 내야 한다는 점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값이라고는 하지만 부담스러운 액수인 것이 사실이다.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 항체 의약품은 높은 수준의 생명과학과 생명공학, 의학과 약학 연구의 결정체다. 연구개발과 임상시험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비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항체 의약품은 유전자를 조작한 동물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해, 이 동물세포가 만들어내는 항체 물질을 정제해서 만든다. 원하는 약을 만들어내는 동물세포를 배양하고, 약물을 정제하는 데 첨단 장비와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 개발과 생산에 모두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소출이 많은 품종의 벼를 만들려다 희귀 난치병 원인 유전자를 찾아낸 식물학자는, 이제 항체 의약품을 ‘비싼 약’에서 ‘기적의 약’으로 바꾸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동물세포가 아닌 식물에서 항체 의약품을 만들기로 것이다. 환자 개인에게 최적화된 항체 의약품을, 컨테이너 한두 동 규모의 식물공장에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 생명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환자 맞춤형 항체 의약품 물질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기에 상상해볼 수 있는 일이다. 한편 원래부터 환자의 수가 적었던 희귀 난치병의 경우도 마찬가지. 규모의 경제 때문에 많은 환자에게 처방하는 항체 의약품 생산을 중심으로 공장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조건에서, 거대한 규모의 공장이 소수의 환자를 위한 약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그런데 항체 의약품을 환자 맞춤형으로 소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도 컨테이너 한두 동에서 식물을 길러내고 정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정도만으로 가능한다면, 항체 의약품은 비로소 ‘기적의 약’이 될 것이다. 과학자의 글쓰기 항체는 동물 면역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나, 식물에는 아예 없는 물질이다. 그런데 식물에서 항체를, 그것도 의약품으로 쓸 항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드는 것이 과학이라면, 그는 충분히 과학을 하고 있다. 이미 식물에서 항체 의약품 허셉틴의 성분인 트라스투주맙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작은 책은 미완성 연구 프리젠테이션이다. 아이디어를 설계해 실험으로 만들고, 설계한 실험을 입증하고, 그것을 다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상업화하는 데 필요한 공학적인 문제 해결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하고 있는 것들을, 논문이 아닌 책이라는 그릇에 담아 대중과 소통하려 하려 한다. 과학과 사이비를 구분하는 기준이 반증 가능성이고, 완성된 과학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미완성임에도 공개하고 전문가가 아닌 대중에게도 보여주며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걸러낸 장밋빛 결과를 전문가의 언어로 포장해 내놓는, 과학 아닌 사이비에 우리 사회가 뒷통수를 맞은 경험은 여러 번이다. 그리고 한두 건의 일탈이라고 하기에는 손해가 너무 크다. 해당 분야 연구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선입견에 덧싸여 사라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연구에 대한 애정, 그 연구가 결국 풀어내고 싶은 문제에 대한 간절함은, 미완성의 연구 노트를 대중에서 프리젠테이션하게끔 이끌었다. 과학자가 글을 쓰려는 이유다. 한편 끊임없이 도전하는 식물학자의 연구 프리젠테이션을 듣다보면, 독자는 과학자가 왜 연구실을 나와 회사를 차리게 되었는지, 약의 성분물질을 만들어내는 것과 실제 환자에게 처방하는 의약품이 되는 것 사이에 있는 규제과학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전 세계가 고도화된 도시들을 매개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는 상황에서 사스나 메르스 같은 유행병에 대응하는 차원의 식물 기반 백신 생산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 등도 함께 들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