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미혼모의 탄생
추방된 어머니들의 역사
권희정
안토니아스 2019.12.05.
가격
18,000
10 16,200
YES포인트?
9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감사의 글
글을 시작하며

1부 / 배제, 모성의 추방

1장 침묵의 역사
2장 역사적 장으로서의 미혼 모성
3장 세 개의 퍼즐 맞추기: ‘미혼모’, ‘가족’, ‘입양’

2부 / 기록, 모성의 소환

1장 근대의 전환기: 요보호 아동의 재배치와 ‘양육할 수 없는 어머니’ 경계 만들기
2장 근대 국가로의 성장기: ‘어머니’에서 ‘불우 여성’으로
3장 후기 근대 ‘가족’과 ‘입양’, 경합하는 담론 속의 ‘미혼 모성’

글을 마치며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대학에서 일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꾼 후 가족과 젠더에 관심을 갖고 이혼에 대해 연구하던 중 한국의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그들의 양육권을 보호할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와 활동을 시작한 리차드 보아스 박사를 만난다. 2008년부터 그가 설립한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사무국장으로 약 5년간 활동했다. 이후 전혀 알지 못했던 미혼모 문제와 마주하며 문제는 미혼모가 아닌 사회에 있음을 깨닫고 미혼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제도와 담론, 그리고 미혼모 당사자의 행위성을 분석하여 2014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2019년 『미혼모의 탄생: 추방된 어머니들의
대학에서 일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꾼 후 가족과 젠더에 관심을 갖고 이혼에 대해 연구하던 중 한국의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그들의 양육권을 보호할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와 활동을 시작한 리차드 보아스 박사를 만난다. 2008년부터 그가 설립한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사무국장으로 약 5년간 활동했다. 이후 전혀 알지 못했던 미혼모 문제와 마주하며 문제는 미혼모가 아닌 사회에 있음을 깨닫고 미혼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제도와 담론, 그리고 미혼모 당사자의 행위성을 분석하여 2014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2019년 『미혼모의 탄생: 추방된 어머니들의 역사』로 출간되었다. 현재 일반인 대상 구술채록 교육을 하고 있으며, 1인 출판사 안토니아스를 설립하고 미혼모 이야기 수집, 관련 서적 번역 및 출판을 통해 미혼 모성 억압의 역사성을 밝히고, 미혼모에 대한 이분법적 관점 즉 낙인 또는 구원을 벗어날 수 있는 지식과 담론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권희정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447g | 140*210*30mm
ISBN13
9791196860400

책 속으로

비혈연관계에서 일어나는 근대의 입양은 종종 휴머니즘 차원에서 칭송되곤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전쟁이나 빈곤으로 인해 태어난 가정에서 아동이 키워질 수 없을 때 아동복지의 차원에서 시작’되었다는 근대의 입양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더 이상 전쟁고아가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는 70년대부터 오히려 입양 아동 수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동의 입양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 아동은 모두 국내외 결혼한 중산층 가정 안으로 배치되었다. 그렇다면 전쟁고아의 구제 차원에서 시작된 근대 입양은 결국 근대 자본주의에 기초한 결혼 제도 확립을 공고화하기 위한 미혼 모성의 억압 또는 모계 혈연 가족의 비정상화라는 근대 가족 이데올로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더욱 활성화된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 p.27-28

한편 쿤젤은 20세기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사회복지사 등장과 함께 ‘미혼모’ 담론이 19세기 복음주의 개혁 여성들 evangelical reform women 시대와 어떻게 차별화되는지 추적한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 자선가들의 오랜 전통을 잇는 복음주의 개혁 여성들은 19세기 여성 개혁 노력의 일환으로 자매애에 기초해 미혼모에 대해 동적적 태도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고 기술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미혼모 시설을 갱생과 개종의 장소로 만들었다. 1920년대까지 이들은 미국 전역에 걸쳐 200개의 미혼모 시설을 세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미혼 모성에 대한 정의와 그들이 설립한 시설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직업군으로 등장한 사회복지사 집단과 힘겨운 경쟁을 해야 했다. 한편 사회복지사들은 복음적 개혁가들로부터 자신들을 차별화하기 위해 … ‘혼외 출생’illegitimacy이라는 개념을 부각시키며 미혼모 시설은 적법하지 않는 출산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곳이어야 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이성적’, ‘과학적’인 언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미혼모 및 미혼모 시설을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했다. 이로서 한때 ‘타락한 여성들’을 구제하고 회복시키기 위한 쉼터였던 ‘미혼모’ 시설은 과학적 치료를 하는 장소로 재정의되었고, ‘미혼모’는 ‘구원되어야 할 불행한 자매들’에서 ‘치료되어야 할 문제 있는 소녀들’이 되었다.
--- p.43-44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 근대 핵가족 가치에 대한 긍정적 언설은 더욱 강화되고 일부일처에 입각한 부부간의 배타적 사랑, 게다가 혼전 순결이 행복한 결혼에 대한 전제조건이라는, 즉 ‘사랑=성=결혼’이라는 근대의 가족 만들기 공식이 일상 수준으로까지 더욱 확산된다. 이러한 가운데 혼전 임신은 ‘행복한 가정’으로 가기 위한 전제 조건인 혼전 순결을 위반한 것이 되고, 근대의 가부장성은 남성이 아닌 혼전 임신을 한 여성에게 낙인을 찍었다. 이와 동시에 서구 ‘베이비 스쿱 시대’의 사회복지학으로 훈련받는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국내 각처에서 지식인으로, 행정가로, 현장 복지 전문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혼전 임신 여성들은 ‘미혼모’라는 병리적 집단으로 범주화되고, 어머니로서 자격이 문제시되며 전 시대 입양 아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혼혈 아동의 자리는 미혼모 자녀로 대체된다.
--- p.150

“… 인자 그래서 복지부에 ‘미혼모 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어가지고 복지부에 사업계획서를 냈더니 그때담당인 아동과장이라든가 아동계장인가 나한테 전화가 왔어.‘미혼모란 말이 뭐시냐? 미혼모란 말이.’ ‘아니 혼전에 관계를 가져가지고 애기를 나서, 기를 수 없는 것을 미혼모라고 한 거시라’고 그렇게 설명을 했더니, 우리 사회에 국어사전에도 없었고 사실은 그랬지, 그땐 미혼모란 말이 없었으니까. ‘사회복지에서 그런 말을 쓰면 안 된다’고 그러면서 그 사업계획서를 반려해 부렸어. …”
--- p.178

이상과 같이 ‘성공한 입양인’과 입양을 통해 더욱 ‘완전’하고 ‘행복’한 ‘이상적 가정’이 되었다는 기사의 풍요 속에 그 누구도 ‘미혼모’가 어머니란 사실과 그들 자녀는 ‘어머니’가 있는 고아가 아니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특히 1980년대에 들어서면 ‘미혼모’의 ‘불우 여성’ 만들기는 더욱 자극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1970년대 “미혼엄마가 기르기를 포기한 아기를 입양 보내는 일을 하는…”(『경향신문』 1973.3.30.)과 같은 언설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 “기를 수 없는 아이”라든가 “입양의 근본목적은 미혼모가 낳아 버리거나 … ”(『동아일보』 1982.3.8.)와 같은 언설로 변했다. 즉 1970년대의 ‘아이를 기르기를 포기한 미혼모’는 1980년대에는 ‘아이를 낳아버린 미혼모’가 되었다.
--- p.187

“저는 자기 전 책을 읽어 주거나 중요한 말을 하면 애가 완전히 집중 잘하고 듣잖아요. 그때 이렇게 말해요. 미소야, 세상에는 가족들이 참 많아. 이러, 이러, 이러 쫙 말하고 물어요. 미소하고 엄마는 무슨 가족? 그러면 그래요. 엄마와 딸 가족.”
나? ?과 전? ?이 어머니로서의 정체성과 싱글맘 가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적극 수용하고 있지만 이것이 홀로 양육하는데 있어서 고단함과 외로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근대의 ‘정상모성’과 ‘정상가족’에 대한 정의에 균열을 내며 스스로를 어머니의 범주에 당당히 위치시키고 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자녀와 함께 만들어 가는 삶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라 하겠다.
--- p.312

향후 미혼모 가족이 우리 사회에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며 다양한 가족의 한 형태로 수용될지 여부는 정부와 입양 기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미혼의 모성에 얼마나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들이 모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양육 및 상담 지원을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또한 결혼 제도 밖에서 임신하고 출산한 여성들 스스로가 얼마나 비혼 임신에 따르는 낙인을 극복하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가족에 대한 새로운 언설을 만들어 내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이와 아울러 미혼 모성의 실현은 필연적으로 입양 산업의축소를 가져오고 미혼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대한 사회적지원의 확대를 요하게 되므로 이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자원 마련이 필요하다 하겠다.

--- p.320

출판사 리뷰

‘탈모성화’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미혼모의 모성을 역사적 관점으로 통찰한 최초의 저작
근대 젠더 정치의 완전체: 모성화(motherization) VS 탈모성화(demotherization)


서구 여성운동사에 있어서 제2의 물결이라 기록되는 1970년대를 전후해 서구의 많은 여성학자들은 섹슈얼리티/가족/재생산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적으로 수동적인 여성/희생하는 모성은 여성과 어머니가 갖는 본질이 아니라 가부장적 담론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젠더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의해 구성된 것임을 밝히는 주요한 업적들을 남겼다. 또한 결혼을 독신보다 나은 일로 여기게 된 것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들의 친밀하고 다정한 관계의 발전을 요구하는 핵가족이 출현한 16세기경 무렵이었으며, 자애롭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성은 남성중심의 근대 국가 형성과 관련된 이데올로기적 구조물이었음을 밝힌다. 나아가 성역할에 기초한 ‘핵가족’을 정상가족으로 전형화하고 조건 없이 희생하는 어머니 상 만들기는 단지 ‘모성신화’이며 여성을 ‘모성화(motherization)’하는 근대 가부장성에 기초한 젠더정치의 결과임을 이론화하였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 희생하는/무성적 어머니 상에 균열은 내는 이론적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다양한 욕구를 가진 어머니들의 모습이 근대가 만들어낸 전형적 어머니 상에 균열을 내며 대중 문화텍스트를 통해 빈번히 재현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병상에서 자신의 미적 욕구를 위해 머리에 마요네즈를 바르는 어머니, 사회가 기대하는 어머니 상으로 살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자신을 파괴하는 삶을 살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우리가 전혀 그러리라 생각하지 않은 어머니들의 이미지와 그간 말해지지 않던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 ‘다양’함 속에 여전히 소외된 어머니들이 있다. 바로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였으나 ‘어머니’가 될 자격이 없는 비윤리적 ‘여성’으로 범주화되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결혼제도 안에 ‘가족’을 이룬 중산층/이성애 가족으로 입양 보내고 재활과 훈육을 통해 결혼하기 적합한 ‘정상 여성’으로 돌아가기를 종용받았던 어머니들의 이야기이다. 근대의 모성사는 바로 이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으로서 완성될 것이다. 또한 결혼제도 안으로 여성을 포획하고 그 안에서 한없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어머니로 ‘모성화(motherization)’하는 동시에 결혼제도 밖에서 어머니가 된 여성의 모성을 부정하고 그들의 어머니됨의 자격을 박탈하고 자녀를 입양으로 분리해내는 ‘탈모성화(demotherization)’의 역사가 말해질 때 바로 근대 젠더정치의 양가성이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재생산/가족을 둘러싸고 벌어진 근대 젠더정치의 완전체이다.

서구의 ‘베이비 스쿱 시대’, ‘미혼모’로부터 모성을 거세한 차별의 기원

최근 미혼모의 양육권이 과거에 비해 활발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미혼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기를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가끔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서구는 미혼모에 대한 차별이 없는데 한국 사회는 아직 후진적’이라는 식의 이야기이다. 이 말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리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과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미혼모라는 낙인을 찍어 이들을 집단적으로 시설에 수용하고 아이를 입양 보내고 결혼하기 적합한 ‘여성’으로 교화시켜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회로 복귀시키는 일은 바로 서구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기를 서구의 역사는 “베이비 스쿱 시대”로 기록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에서 단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임신했다는 이유에서 수많은 ‘미혼모’들이 “체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에 의해 아이를 입양 보내야 했던 시기”를 경험했다. 나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이다. 이 기간 동안 미국에서는 6백만에서 1천만 명에 이르는 미혼모가, 캐나다에서는 약 35만 명의 미혼모가 친권을 포기하고 아이를 떠나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혹은 나라에 따라 1980년대 초까지 이러한 일이 지속되었다. 근대 법률혼주의에 입각한 핵가족 만들기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는 제도 밖에서 임신하고 출산한 여성들의 모성을 거세했으며, 근대 학문으로 등장한 정신분석학과 사회복지학이 과학의 언어로 이들 어머니의 모성을 거세해 내는 정교한 이론적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근대 새로운 직업군으로 등장한 사회사업가들(social worker)이 입양이란 제도를 통해 미혼모로부터 그들 자녀를 분리해 냈다. 이때부터 미혼모의 자녀는 어머니가 있으나 ‘고아’로 명명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입양으로 아이를 포기해야 했던 어머니들 스스로가 자신의 잃어버린 모성권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며 서구의 몇 몇 국가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만행에 대해 정부로부터 사죄를 받기까지 하였다.

‘미혼모’는 없었다!: 만들어지는 모성의 범주, ‘미혼모’ 용어의 등장은 1970년대 전후의 일

‘미혼모’를 일탈적 개인 또는 불우한 여성들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집단으로 보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 그리고 성/출산/결혼 그리고 입양을 둘러싼 담론과 제도가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를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당대 정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지 않은 개인들이을 어떻게 하나의 사회적 범주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들 집단에 어떠한 정치적 개입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언제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라는 사회적 범주가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역사의 조각들을 맞추며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1970년대 이전 우리 사회에 ‘미혼모’라는 개념은 물론 용어 자체도 없었음을 발견한다.

역사적으로 언제나 ‘모성’은 규정되어 왔다. ‘어머니’의 양육 역시 언제나 당연시 되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어머니들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아이를 기르는 것이, 어떤 어머니들은 아이를 부계혈연 가족에 입적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기대되었다. 또한 어떤 어머니들은 아이를 입양 보낸 뒤 다시 ‘여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모두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 믿도록 훈육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성’의 범주는 항상 문제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1970년대 이전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모성’은 혼혈아동을 출산한 어머니였다. 당시 서구에서 들어온 근대적 학문인 사회복지학에서는 근대의 가족질서에 맞지 않는 혼외 출산 여성들을 ‘unwed mothers’라 개념화했고 이 용어가 그대로 국내에 유입되어 혼혈아동을 출산한 어머니를 규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후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고 근대 국가로서의 면모를 더욱 갖추어 나가는 1970년대 어머니가 될 수 없는 모성의 범주에 변화가 일어난다. 드디어 ‘미혼모’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핵가족이 이상화되는 가운데 결혼제도 밖에서 출산을 한 모든 여성들이 이 ‘미혼모’의 범주 안에 포섭되었다. 해외입양을 전담하던 입양기관들은 이때부터 ‘미혼모 상담’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해외로부터 친권포기 상담 전문가를 초빙하여 국내 사회복지사들을 대상으로 미혼모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아이를 포기할 수 있는 방법을 훈련시키는 한편 ‘미혼모’에 대한 이해가 없던 정부를 설득하고 미혼모의 ‘갱생’과 아동의 입양을 위한 정부의 지원과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 낸다.

근대 모성사의 복원, 그 위험 속에서 미혼모성의 미래를 전망하다

모성은 천부적인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는 한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기쁨과 희열만이 아니라 죄책감, 우울, 슬픔까지 매우 다양하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한 여성에게는 기쁨과 희열만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언설화되며 양육의 모든 책임을 떠안기는 한편, 미/비혼 상태에서 임신한 여성에게서는 죄책감과 우울, 슬픔만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본질화하며 양육권을 박탈하고 그들 자녀의 입양을 정당화했다는 측면에서 모성은 관념적이며 사회구성적이며 정치적이다. 즉 에이드리언 리치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경험적 모성과 제도적 모성 사이의 커다란 괴리가 있다.

이제 어머니로서 그들의 삶과 이야기는 새롭게 조망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경험은 모성사의 한 축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 그들이 다시 희생하는 ‘어머니’로서 전형화되는 오류는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미혼모성을 역사화하는 작업은 조심스럽고 위험하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되거나 어머니가 되지 않는다는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내몰린 여성들이 그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어려움을 개인의 문제로 온전히 떠안고 감내하는 것을 강요받았던 근대 젠더 체제가 그 뿌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미혼의 모성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

이 책은 1부 “배제, 모성의 추방”과 2부 “기록, 모성의 소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저자는 우선 ‘미혼모’를 사회적이고 역사적 사건으로 접근해야 함을 깨닫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서구의 ‘베이비 스쿱 시대’와 그 시대를 관통한 서구 미혼모들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어 국내 혼외 출생아 통계 및 입양에 있어서 미혼모 자녀가 차지하는 비율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무엇인지 서술한다. 그리고 이 통계들과 서구의 ‘베이비 스쿱 시대’가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며, ‘아이를 버린 미혼모’라는 언설은 당대의 가족과 젠더 정치의 긴밀한 연관 속에 구성된 것임을 논한다. 2부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부터 2010년대 중후반까지 성, 사랑, 결혼, 가족에 대한 담론과 제도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그리고 이와 맞물려 미혼모에 대한 인식과 담론은 어떻게 변화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추적하고 있다. 다소 방대한 시기를 다루고 있어 자칫 개괄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저자는 결혼/가족, 입양, 그리고 미혼모 당사자의 인식과 행위성을 세 개의 층위로 나누어 분석한다. 근대 이후 정비된 가족 제도와 입양 제도 그리고 가정에 관한 담론들과 입양 실천이 시대에 따라 미혼 모성을 어떻게 위치 짓고 의미화했는지, 또한 행위자로서의 미혼모는 자신의 모성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재해석하며 제도와 담론에 도전해 왔는지의 분석을 통해 ‘어머니’라는 경계에서 경합하고 있는 미혼 모성의 역사성을 탐구하고 있다. 저자는 당대의 인식과 제도가 미혼모라는 사회적 집단을 만들고 그들의 행위성을 구성했던 것처럼 향후 우리 사회 미혼모를 한 명의 어머니로, 미혼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담론과 제도가 변화하여야 함을 주장한다.

리뷰/한줄평1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8.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16,200
1 16,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