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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소장 황문환)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학문육성사업의 하나로 〈조선시대 한글편지의 수집·정리와 어휘·서체사전의 편찬(연구)〉 사업으로 지난 5년 여 간 서체학, 문자학, 국어국문학, 서예계 등 전문가 31명이 참여하여 조선시대 왕·왕비·공주·궁녀·사대부 및 일반인 남녀가 쓴 한글편지(언간, 諺簡) 1,500여건을 검토, 대표적인 필사자 87명의 한글편지 400여 건을 모은 2,1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조선시대 한글편지 서체 자전’을 펴냈다.*자전의 규모 : 행별[문장의 줄] 3,700여 행, 어절[연결문자] 4,200여개, 음절[낱글자] 32,200여 글자, 자모음[자음과 모음] 8,300여 글자 수록 그동안 단편적으로 소개되거나 개별 편지첩에 묶여 소개 되었던 한글 편지들을 종합적으로 검토, 분석하여 조선시대 한글 서체를 대표할 수 있는 글씨로 집대성하고, 편지의 행 전체의 모습 뿐 아니라, 어절, 음절, 자보를 서로 비교하여 서체 간의 관련성과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편집하였으며, 이는 한글 서예의 전통 계승과 발전적 재창조, 다양한 한글 서체의 개발에 필수적인 자료이다.
왕의 한글 편지 서체 현재까지 발굴된 왕의 친필 편지는 선조, 효종, 현종, 숙종, 정조의 편지가 있다. 이중 선조는 중국 사신들이 그 필적을 얻고자 애를 썼을 정도로 왕 중에서 최고의 명필이었다. 정자로 쓴 선조의 한글편지는 한자를 섞어 써서 한문 글씨와 한글 글씨를 함께 볼 수 있는 자료로 이 자전에 실렸다. 〈사진1. 선조의 편지〉 해서체로 또박또박 쓴 것이 한문 필체로 한글을 썼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선조 임금의 한글편지는 모두 딸(옹주)들에게 보낸 것인데, 내용을 보면 자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배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궁 밖에서 굶주린 백성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살펴주도록 했던 선조의 자상하고 인자한 인간성이 글씨에도 반영된 듯 어질다.효종, 현종, 숙종, 정조의 한글 편지 역시 한문 어필의 필체가 한글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효종의 글씨에서는 거침없고 시원한 필체를 통해 활달하고 진취적인 기품 〈사진2 효종의 편지〉을 느낄 수 있으며, 현종의 글씨에서는 아기자기하고 다정다감함〈사진3. 현종의 편지〉을, 숙종의 편지는 획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써서 단정하고 올 곧음〈사진4. 숙종의 편지〉을, 정조의 글씨에서는 힘차고 굳은 세로획의 필체에서 문체 반정을 추진했던 굳건한 의지〈사진5. 정조의 편지〉를 엿볼 수 있다. 왕비의 글씨 장렬왕후(인조의 계비), 인선왕후(효종 비), 명성왕후(현종 비)는 모두 뛰어난 달필로 사대부가 남성의 필체와 닮아 한문 서체가 한글 서체로 구현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인현왕후(숙종 비)의 글씨가 주목할 만하다. 한문 서체가 한글 서체로 구현된 한글글씨에서는 글자의 중심축이 행의 중앙에 있는데 비해, 인현왕후의 글씨는 중심축이 ‘ㅣ, ㅏ, ㅓ’ 등의 세로획을 기준으로 글자의 오른쪽에 맞춰져 있다. 이것은 오늘날 ‘궁체’로 일컬어지는 서체의 주요한 특징이다.〈사진6. 인현왕후의 편지〉 그리고 세로획의 기필 부분 또한 궁체와 같은 형태를 보여 주고 있어서, ‘궁체’의 완성으로 평가된다. 정순왕후의 글씨는 흘림체의 달필인데, 궁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한문 서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혜경궁 홍씨의 편지는 추사 집안의 편지에 포함되어 전하는데, 추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생전, 정조가 세손에 책봉되기 전인 원손 시절에 혜경궁 홍씨가 화순옹주에게 보낸 문안편지이다. 흘림체로서 ··한중록··의 서체와 흡사하며, 사연 끝에 ‘빙궁(‘嬪宮’을 뜻함)’이라고 쓴 서명이 발신자가 혜경궁임을 알려준다. 순원왕후의 한글편지는 글씨는 한문 서체적 요소가 약간 가미되기는 하였으나, 궁체의 특징을 거의 다 갖추고 있다.〈사진7. 순원왕후의 편지〉 명성황후의 한글편지는 친필 편지만 140여 편이 전해진다. 명성황후의 글씨는 궁체도 아니고, 한문 서체가 반영된 것도 아닌, 개성적인 서체를 보여 준다. 줄이 인쇄된 시전지에 쓴 편지조차 세로줄이 똑바르지 않은 것이 많다. 줄을 맞추는 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흘림체로 거침없이 이어 쓴 필체에, 자기만의 굳은 신념과 정신으로 일국을 좌지우지하던 명성황후의 강인한 기질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사진 8. 명성황후의 편지〉 공주의 글씨 공주의 한글편지가 온전하게 전하는 것은 효종의 둘째딸인 숙명공주의 편지 1편뿐이다. 그것도 효종이 숙명공주에게 편지를 보낼 때, 숙명공주가 먼저 보낸 문안 편지의 편지지 여백에 사연을 써서 보낸 까닭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단아하고 깔끔한 자형, 가녀린 획의 모습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공주의 고운 모습과 예쁜 성품을 보여 주는 듯하다. 초성 ‘ㅇ’ 자와 ‘ㄴ, ㄹ, ㅂ’ 등의 받침 형태가 숙종의 글씨와 닮아 있다. 〈사진 9. 숙명공주의 편지〉 그 밖에 왕실의 편지 대필을 했던 궁녀의 글씨나 송시열, 이동표, 정경세 등 역사 속 인물의 서체, 추사 김정희와 그의 부친 김노경의 한글편지, 여기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한글편지를 추사의 한글편지와 함께 살펴보면 추사에게서 배운 대원군의 필체가 한글에서도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한중연 어문생활사연구소 황문환 소장은 “한글 편지 서체 자전의 내용은 난해한 문자 판독은 물론, 서체적 조형미가 뛰어나 한글 서예의 작품 창작 서체로의 응용, 컴퓨터 폰트 개발, 패션 산업, 서체 디자인 등 예술과 산업에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품격까지 구비하고 있어 그 가치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