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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제1부 제2부 제3부 참고문헌 |
崔仁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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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디-내러티브픽션, 안티-펄프픽션, 위버-섹스얼픽션, 넌-헤비너시즘을 바탕에 깔고 쓴 작품으로, 현대문명의 왜곡되고 일그러진 양상, 괴물로 변해 가는 미국식 자본주의, 전범 일본국왕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인 소설가가 처음 출판하는 장편소설이다. 데뷔한 지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출간하지 않았는데, 소설을 발표하는 것보다 글을 쓰고 고치는 데 더 심취해 있었던 것 같다. 작가는 이와 같은 심경을 출간의 변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은 22년간 총 400여 회 고쳤으며, 국제신문에 응모할 당시 70번 수정했고, 그 후 330회를 더 고치게 되었다. 이 작품을 400회 이상 수정한 것은, 글을 끊임없이 고치는 과정의 ‘행복’과 필자의 마음에 들 때까지 깎고 다듬는 ‘기쁨’으로 인한 것임을 밝힌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문명, 그 화려한 역설』은 2002년 1억 원 고료 국제문학상을 받은 작품이지만 성적 표현이 파격적이고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당했다. 문학상을 공모한 국제신문사도 연재를 마치고도 출판을 포기했다. 작가는 이에 대한 언급도 출간의 변을 통해 밝힌다. 원고를 검토한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소설이 포르노 같다’는 평에 대해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판단, 최초의 성적 묘사와 표현을 수정하지 않았다. 필자는 원고가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출판을 포기하고 신작소설 집필에 들어갔다. 즉 당선작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라는 ‘하늘의 뜻’이라 결론짓고, 7편의 장편소설을 추가로 쓰기에 이르렀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의 주제는 제목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대문명의 왜곡되고 변형되고 일그러진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외설적인 장면들이 다수 나온다. 이 부분은 김원일 소설가와 김병익 평론가의 평에 드러나 있다. 달콤하고 세련된 문장을 선물상자 속에 포장한, 한마디로 경쾌한 신세대형 소설이다. 후기자본주의 사회가 꽃피운 성의 범람을 중심축으로, 예술 전 분야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속도감 있게 전개한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경박한 듯하면서도 저변에는 문명 비판의 예리한 비수를 숨기고 있다. ― 김원일(소설가) 경쾌하게 읽히는 이 소설은, 요즘의 젊은 세대들의 삶의 조건인 문화적 분위기를 십분 발휘하면서, 현대문명의 파괴적인 양상에 대한 강한 비판이 숨어 있다. 특히 이 소설은 가벼운 문체로 무거운 주제를 풀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 김병익(문학평론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장점, 문제의식, 세계관은 김주영, 이복구 소설가와 황국명 평론가의 평을 보아 알 수 있다. 이 소설을 당선작으로 뽑은 것은, 이 작가가 소설을 끝까지 이끌어 나가는 기량과 솜씨가 탁월했다. 그리고 작가가 가진 해박한 지식과, 소설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한 가지인 재미가 있다는 점이다. ― 김주영(소설가) 상당히 공을 들인 스피디한 문장. 거침없는 상상력과 지적 탐구심. 세계를 바라보는 문제의식 등이 소설적 재미와 맞물려 현 소설작단에 새로운 충격을 보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 이 작품과 이 작가는 우리 문단에 새로운 활력으로 편입되었다. ― 이복구(소설가) 희망 없는 시대를 종말론적 알레고리로 담아낸 이 소설은, 장편을 감당할 만한 단련이 엿보이고, 현실의 결을 예각적으로 살폈다고 판단되는 작품이다. ― 황국명(문학평론가) 이 소설은 주인공 지누(27세, 형사)가 자기와 마지막 섹스를 하고 떠난 유리(24세)를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유리가 떠난 것은 지누가 싫어서가 아니다. 유리는 쾌락과 탐욕으로 얼룩진 문명의 도시로부터 탈출한 것이다. 지누는 해맑고 순수한 유리를 찾기 위해 온 도시를 헤매고 다닌다. 본문 2파트에 유리를 잊지 못하는 지누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나는 섹시한 모습의 파라를 보며 유리를 생각한다. 청순한 아름다움과 도발적인 섹시함을 모두 갖춘 여자애. 파라가 셔츠를 벗기고 바지와 팬티를 끌어내린다. 나는 양탄자에 누워 파라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긴다. ‘커레스부터 할까?’ 파라의 숨결이 약간 거칠어져 있다. ‘좋을 대로 해.’ 내 말에 파라가 머리를 숙여 커레스를 시작한다. 목에서 가슴을 거쳐 허리와 허벅지, 페니스까지. 파라의 강력한 흡인으로 페니스 끝으로 정액이 몰려든다. 나는 이를 악물고 터져 나오는 사정을 참는다. 지금 페니스를 빨고 있는 게 유리라면. 유리… 내가 사랑한 여자애. 그래서 나를 떠나간 계집애. 유리는 청순하다 못해 바보처럼 순수한 여자다. 그런 여자애가 마지막 섹스를 나누고 사라졌다. 유리가 사라진 것과 때를 같이해 미국에서 450년 형을 받은 이카로스(27세, 교포 2세)가 교도소를 탈출해 국내로 잠입한다. 주인공 지누와 파트너 기오(27세, 형사)는 이카로스를 잡기 위해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이 모습은 본문 12파트에 등장한다. 우리는 5시간째 승용차 안에서 대기 중이다. 어차피 이카로스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루한 시간을 보내려면 음악이라도 들어야 한다. 음악소리 중간중간 무전기가 칙칙거리면서 누군가를 찾는다. ‘몸이 근질거려 미치겠군.’ 기오가 입을 가리고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우리가 기다리는 이카로스는 미국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범죄단체를 조직해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죽였다는 이유로. 그는 미국에서 받은 형량이 인종차별적 조치라며 조국으로 도망쳐 왔다. 지누는 잠복근무를 하다가 비몽사몽간에 클럽 헤라이온 안으로 들어간다. 지하클럽으로 내려간 지누는 예수와 흡사한 집주(80대 노인, 지배인)를 만난다. 집주는 잘 왔다고 반기며 지하클럽과 지하세계를 안내한다. 이는 본문 16파트에 자세히 나온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이곳까지 와서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여기가 무엇을 하는 곳이고 어떤 장소냐고요. 어떤 사람은 네크로폴리스나 지옥이 아니냐고 합니다. 카타콤이거나 데린쿠유가 분명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요. 악마가 만들다가 폐기처분한 지하세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변질되고 타락한 에덴동산이라고 떠드는 이들도 있지요. 나보고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예수 같다나 뭐라나.” - 중략 - “우리 지하클럽에는 방이 40개가 있습니다. 선생 오른쪽 방은 헤라의 방이고, 그 건너편은 에로스 방이라고 부릅니다. 그다음은 셰익스피어, 다빈치, 모차르트, 갈릴레이, 소크라테스, 노스트라다무스, 사타나스, 이블리스 방입니다. 다음은 로마의 다섯 폭군, 즉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네로, 콤모두스, 카라칼라 황제의 방이지요. 또 이스라엘의 왕 헤롯, 유다의 왕 므낫세, 이집트의 왕 세트, 영국여왕 메리1세, 러시아 황제 이반4세, 독일 황제 빌헬름2세, 히틀러, 무솔리니, 히로히토, 레닌의 방도 있습니다.” - 중략 - “야훼는 극도로 타락한 인간들을… 인간은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을 화려하다고 말합니다만, 창조주 입장에서 보면 죄악투성이고 타락의 극치로밖에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인간들이 만들고 창조한 이 찬란한 현대문명을 싹 쓸어버리려는 것입니다. 고대 신들은 물론이고 왕들과 성인, 장수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이 아무리 위대하고, 지혜롭고, 명망이 높아도 예외일 순 없으니까요. 그 시간이 눈앞에 다가온 겁니다.” 위처럼 집주는 ‘현대문명은 그 화려함으로 인해 오히려 멸망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첨단시설과 과학장비가 갖춰진 지하세계가 물속에 잠겨 가는 것을 보여 준다. 본문 56파트 인용문에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를 통해 문명의 성장과정을 설명한다. 발전도상의 문명에 있어서는 한 도전이 성공적인 응전에 의하여 극복되면, 그 응전은 또 다른 새 도전을 낳게 되고, 그 새 도전도 또 하나의 성공적인 응전에 의하여 극복된다. 성장하는 문명이 능히 이겨 낼 수 없는 도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혹은 그러한 도전이 일어날 때까지 이 문명의 성장과정은 한없이 계속된다. 토인비의 말처럼 제1대 문명은 자연적 도전에 대한 응전의 소산이라는 공통성을 가진다. 이와 같은 문명은 이집트, 수메르, 미노스, 인도, 중국, 안데스, 마야 문명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작가가 주장하는 것은 문명의 성장과정, 즉 도전과 응전이 자연에서 인간이 창조한 물질과 문화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현대문명이 멸망으로 치달아 가는 것은, 인간이 성취한 과학, 수학, 철학, 이념, 종교, 질서, 도덕, 윤리로부터의 도전에 현대인이 응전할 수 없는 것에서 비롯한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그 근거가 서구유럽에서 태동하고 미국에서 배양된, 왜곡되고 기형화된 소비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문 55파트 인용문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를 통해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거대한 서구문명이 물질적, 정신적 기적을 이룩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로 인한 부작용을 막는 것에는 실패했다. 일찍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으며, 서구문명 최대 걸작인 원자로의 경우처럼, 서구유럽의 질서와 조화는 이 지구를 오염시키는 막대한 양의 해로운 부산물의 제거를 필요로 한다. 여행이여, 그대가 우리 서구인들에게 보여 줄 것은 인류 면전에 버려진 채 심한 악취를 풍기는 우리의 오물일 것이다. 본문 60파트에서 태서(35세, 지누의 선배)는 노골적으로 기형적으로 발전한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상업 제일주의나 고도 산업사회, 첨단 정보화사회는 미국이 의도했던 모습이 아니었는지도 몰라. 자본주의가 서양에서 생겨났고, 미국에서 배양되고 성장했으니 미국이 모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 부적절한 토양 속에서 기형적인 물질만능주의가 생겨난 거라고 보면 돼. 고도성장이나 물질만능주의는 미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기형아라는 거야. 물질 만능주의를 최선으로 치는 자본주의는, 누구도 제어하지 못하는 에이리언 같은 괴물로 둔갑했다는 거지.” - 중략 - “미국도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까. 그래서 뒤늦게 정책에 변화를 줬지만 때가 늦었던 거지. 화려함만 보고 달려가던 서구자본주의가 멸망 직전에 놓여 있다는 거야. 즉 화려함을 최선으로 여기던 현대문명이, 그 화려함으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멸망으로 치달아 간다는 사실이지. 미국 자신은 물론이고, 어느 나라도 돌연변이가 된 채 가공할 힘을 축적해 가는 괴물을 막을 수가 없어. 그 흉측한 괴물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자기 새끼조차도 잡아먹는 실정이니까.” 본문 53파트에서 파라(27세, 여자)는 2차 대전의 전범이면서,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한 일왕(日王) 미치노미야 히로히토(みちのみや ひろひと)를 노골적으로 비난한다. “폭탄이 떨어지는데 일본천황 히로히토는 황궁 지하대피소에 쥐새끼(ラットの子)처럼 숨어 있었으니. 일본 국민들은 폭탄에 맞아 죽든 살든 숨어 있는 꼴을 상상해 봐. 그 인간한테는 쥐새끼보다 두더지(モグラ)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거야. 히로히토는 두더지라고 불리는 것도 사치스런 존재야. 솔직히 말해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망코(まんこ)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 중략 - “2차 대전 피해자들은 126대 국왕인 나루히토(ナルヒト)가 대신 자결하길 바랄 거야. 모든 사람 앞에서 할복하고, 사죄한 다음 피해에 걸맞은 배상을 하라고. 내 생각엔 나루히토하고 아키히토(あきひと)가 칼로 배를 찌르면, 아베(安倍) 수상이 일본도로 목을 내리치는 게 가장 깔끔할 것 같아. 일본도는 그들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검 중 명검이잖아. 명검에 목이 잘리면 나루히토나 아키히토도 자랑스러울 거야.” - 중략 - “아베 신조는 국제 우지무시(ウジムシ) 중에서도 더러운 국제 우지무시야. 히틀러처럼 군사강국 운운하면서 야쿠자처럼 노는 걸 봐선 이누치쿠쇼(いぬちくしょう)라고도 불러도 돼. 그 인간 생긴 것도 꼭 개하고 돼지를 교미시킨 것 같잖아. 그런 추잡한 인간은 수십 명이 할복해 봐야 소용이 없어. 아무리 로쿠데나시(ろくでなし)라고 해도 일본국왕이 할복해야 우리 국민들이 수긍하지. 일본군한테 끌려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지금도 통한의 피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강제로 징용되어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굶어 죽은 징용자들도 부지기수고. 일본왕이 직접 배를 갈라야 미우라(みうら)한테 살해당한 고종황제나 명성황후에게 사죄가 되는 거고.” 분문 5파트에 화려한 문명세계에 물든 신세대 청년 기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기오는 여자라는 건 섹스를 위해 존재하는 상대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여자는 게임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아주 흥미롭고 즐거운 게임. 만나자마자 모텔로 가고 모텔에서 나와 헤어지는 게임. 사는 것10도 게임이고 죽는 것도 게임이다. 그게 기오의 가치관이고 27살 먹은 청년의 삶이다. 본문 53파트에는 그 모습이 더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즉 형사인 기오는 어린 여자애들과 섹스를 하고, 그들의 성기 사진을 스크랩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 취미이다. “여길 잘 봐. 클리토리스가 엄지손처럼 크잖아. 밖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고. 신기해서 혀로 슬쩍 터치하니까 부르르 떨더라고. 잘됐다 싶어서 다리를 들어 양쪽 어깨에 올리고 빨고 물고 핥았지. 예상대로 자지러지면서 끄륵끄륵 하더라고. 한바탕 컬리닝구스를 한 뒤 인서트 자세를 취했어. 내 태도를 보더니 자기도 똑같이 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침대에 누운 채 페니스를 맡겼지. 10분간 빨고 핥고 목구멍 깊이 넣고 그러더라고. 펠라티오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사정했는데 꿀꺽꿀꺽 삼켰어. 1차 섹스가 끝났는데, 페니스를 입에 넣고 빼지 않는 거야. 페니스를 물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나.” 본문 66파트에서 지누는 탈주범 이카로스와 마주친다. 그때 이미 이카로스는 기오를 쏘아 죽인 다음이다. 지누와 이카로스는 망설이다가 동시에 방아쇠를 당긴다. 큰 키에 오뚝한 콧날, 하얀 피부, 이국적 인상. 외모로 볼 때 그가 살인자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었다. 나는 긴장감을 떨치며 차창 밖으로 눈길을 던졌다. 길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기오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때 이카로스가 들고 있는 쇠붙이가 내 쪽을 향해 움직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38구경 권총을 움켜잡았다. 45구경 권총을 겨눈 이카로스는 망설였다.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그냥 돌아설 것인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 짧은 순간 이카로스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제발 권총은 빼지 말자고. 현대문명의 이기를 더 이상 사용하지 말자고. 나는 천천히 38구경 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지누는 탈주자 이카로스를 사살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문명화된 자신을 돌아보고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즉 이카로스처럼 문명의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마음먹는다. 본문 69파트에 지누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다음은 떠나기 직전 다미(16세, 여고생)에게 남긴 편지이다. 나는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열흘 동안 잠만 잤어. 긴 시간 동안 잠을 자면서 줄곧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는 고민 끝에 결심했다. 팝송을 흥얼거리고, 콜라를 마시고, 섹스를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집주의 말처럼 문명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지금 내가 할 일은 이기와 탐욕과 욕망으로 얼룩진 문명의 도시를 벗어나는 것이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이카로스처럼 어딘가로 가야 한다. 그것만이 나 자신을 구하고, 타인을 구원하는 방법이야. 소설가 최인은 독특한 기법과 방법으로 2,300매나 되는 『문명, 그 화려한 역설』을 썼다. 즉 화단에서 사용하는 ‘점묘법’과 영화에서 쓰는 빠른 ‘장면전환’과 만화에서 사용하는 ‘가벼운 전개’와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키는 ‘로 판타지’와 희곡의 모든 것인 ‘대화체’로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 갔다. 작가는 이런 것들을 뒤섞은 장편소설을 400회 이상 다듬어서 완성시켰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의 장편을 20년 이상 고친다는 것은 진정한 예술가 정신이 아니고는 상상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글쟁이 최인은 작가나 소설가이기 이전에 예술가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