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을미년(1595년) 십년을 ㄱㆍ온 칼이 갑리(匣裏)에서 우노매라
2. 병신년(1596년) 敎旨戰鬪催 임금님 교지는 전투를 재촉하는데 3. 정유년(1597년) 胸中無策濟生民 가슴 속엔 백성 구할 방책이 없네 4. 무술년(1598년) 刀匣凶斬劍 칼집엔 흉악한 도둑 벨 검 들어 있네 5. 무술년(11월 19일) 戰方急愼勿言我死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
崔仁鎬
최인의 다른 상품
|
해가 떨어질 때 거제현령 안위, 마량첨사 강응표, 영등포만호 조계종, 사도첨사 김완, 여도만호 김인영이 왔다. 이들과 함께 떡국을 먹고 겸해 술도 마셨다. 거제현령과 사도첨사, 여도만호는 늦게까지 마시다 돌아갔다. 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시름이 겨웠다. 상산자석연에 물을 붓고 먹을 갈았다. 잠시 앉아 있다가 시 한 수를 지었다.
“십 년을 갈아 온 칼이 칼집 속에서 우는구나. 관산(고향)을 바라보며 때때로 만져 보니, 대장부의 위국공훈을 어느 때에 드릴 것인가.” --- p.7 닭이 세 번 울 때 일어나 의관을 갖춰 입었다. 경상 앞에 좌정했는데, 예화가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오늘이 장군 생신입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오늘이 정녕 내 생일이란 말이냐?” 예화가 미소를 지으며 삽주차를 내려놓았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나는 찻잔을 집어 들며 말했다. “생일을 챙길 정도로 한가롭지는 않다.” 예화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래서 미역국만 끓였습니다.” 나는 경서에 눈길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굶어 죽는 백성들을 보면 그것도 호화스러운 것이다.” --- p.16 잠시 후 기러기 떼가 밤하늘을 끼룩끼룩 울며 날아갔다. 공격을 재촉하는 임금의 교지는 추상같은데 날씨는 겨울로 치달았다. 한동안 앉아 있다가 자리를 펴고 누웠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니 온갖 생각이 일었다. 늦은 밤까지 시름에 잠겨 있다가 시를 한 수 지었다. 水國秋光暮 한 바다에 가을 빛 저물었는데 驚寒雁陣高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憂心輾轉夜 가슴에는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殘月照弓刀 새벽 달 창에 들어 활과 칼을 비추네. --- p.61 이곤변이 내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일찍이 명나라는 관리를 뽑는 데 학문을 우선시했고, 왜국은 무사를 뽑는 데 그 재능을 높이 꼽았습니다. 다만 조선만이 신분과 가문을 보고 관리를 뽑습니다. 이는 곧 망국의 길입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듣고 보니 그렇다.” 삼천진권관 이곤변. 고성현령 조응도와 밤이 깊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충신 중에 충신이다. 어디서 이들과 같은 장수를 또 얻을 수 있겠는가? 밤에 먹을 갈아 능(能)자를 썼다. --- p.123 점심을 먹고 앉았는데, 선전관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어명이라고 외쳤다. 나는 객사 안을 한 차례 둘러보고 밖으로 나갔다. 선전관 두 명이 금부도사 없이 마당 가운데에 서 있었다. 내가 마당으로 내려서자, 선전관이 삼도수군통제사 직에서 파한다는 교서를 읽었다. 어디서 듣고 왔는지 백성들이 객사 마당으로 몰려들었다. 진중의 군관들과 아병, 군사, 격군들도 모여들었다. 교지를 본 시위장 도지와 지도만호 송희립이 무릎을 꿇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소비포만호 이영남, 귀선 좌돌격장 이기남, 우돌격장 이언량도 눈물을 뿌렸다. 그와 동시에 시병, 아병과 군사, 백성들이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교서를 읽은 선전관이 재촉했다. “영감, 도성으로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 p.163 내가 형좌에 앉자 머리에 씌운 봉두(얼굴 가리개)를 벗겼다. 국문관 윤근수가 상좌에 앉아 평문(말로 하는 심문)을 시작했다. 윤근수가 포박되어 있는 내게 큰소리로 물었다. “죄인은 그동안 임금의 은혜를 한껏 입었는데, 어찌해 적들을 치라는 어명을 받고도 나가 치지 않았는가? 듣자하니 죄인은 왜군 장수인 가등청정의 뇌물을 받았다는데, 그 죄를 인정하는가?” 나는 고개를 곧추세우고 대답했다. “소인은 왜적들을 칠 시기와 장소가 합당치 않아 나가지 못한 것뿐이지, 결코 뇌물을 받고 나가지 않은 일은 없소이다.” 윤근수가 재차 다그쳤다. “어명을 받고 시행하지 않으면 대역죄로 다스려지는 건 알고 있는가?” 나는 윤근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명을 받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쟁의 승패가 달린 싸움을 함부로 할 수 없었소. --- p.168 추포되어 갇힌 지 한 달 만에 의금부 옥사를 나왔다. 날씨는 쾌청하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만신창이 된 몸을 이끌고 숭례문 밖에 이르렀다. 생원 윤간의 종 집에 조카 분, 아들 울, 도지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루에 앉아서 집안사람 윤사행, 원경과 함께 회포를 풀었다. 곧 이어 지의금부사 윤자신이 와서 위로하고 비변랑(종6품) 이순지도 왔다. 이들의 위로를 들으니 슬픈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지사 윤자신이 돌아갔다가 술을 가지고 왔다. 정으로 술을 권하므로 사양할 수 없어 마셨다. --- p.176 곧 말을 타고 아산 해암리로 달려갔다. 어머니가 탄 배는 벌써 해암리 포구에 와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종복들도 눈물을 뿌렸다. 나는 슬픔을 가눌 수 없어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다. “충성을 다 하렸더니 죄가 이미 이르렀고, 효성을 바치렸건만 어버이마저 가버렸네! 인제야 어서 죽기만 기다려야 하련가? 마음을 돌아보니 가슴은 찢어지고, 비조차 내리는데 금부도사는 길 재촉하네! 천하에 나 같은 사람 또 어드매 있을꼬.” --- p.183 해가 질 때 영암에 사는 사삿집 종 세남이 알몸으로 뛰어들어왔다. 알몸으로 온 까닭을 물으니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종 세남에 의하면, 이달 5일 좌수영 격군으로 선발되어 거제에 이르렀다. 6일날 거제 옥포에 들어갔다가 말곶을 거쳐 부산 다대포로 진출했다. 다대포에서 왜선 8척을 발견하고 조선수군이 포를 쏘았다. 잠시 후 왜놈들이 몽땅 뭍으로 올라가고 빈 배만 남았다. 조선수군이 그것들을 모조리 끌어내어 불질렀다. 그 길로 기세 좋게 부산 절영도 바깥 바다로 들어갔다. 이때 대마도 쪽에서 온 1000여 척의 왜선을 만났다. 적선 1000여 척과 싸우다가 패해 모두 동해로 떠내려갔다. 판옥선이 동해로 밀려 죽기 살기로 노를 저었다. 간신히 칠천량으로 돌아와 상륙하다가 복병에 걸려 도륙당했다. 이때 거북선 3척, 판옥선 100척, 협선 70척이 불탔다. 요행히 세남만은 간신히 목숨을 보존해 도망쳐 왔다는 것이다. --- p.216 저녁에 밝은 달이 수루 위를 비추니 심회가 편치 않았다. 이제 진영에 남은 함선은 겨우 12척이었다. 왜적은 점점 더 전력을 보충하고 세력을 확장하는데, 대처할 방법은 막막했다. 근심에 쌓여 수루에 앉았는데,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밝은 달을 올려다보며 시 한 수를 읊었다. 閑山島 月明夜 上戊樓 한산섬 달 밝은 밤 수루에 홀로 앉아 撫大刀 深愁時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何處 一聲羌笛 更添愁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끓나니. --- p.234 “신 이순신 삼가 장계를 올립니다. 임진년부터 지금까지 적이 감히 전라도를 지나 충청도로 올라가지 못한 것은 수군이 길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수군을 버린다면 적은 충청도를 거쳐 곧바로 한강에 이를 것입니다. 그것이 신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바입니다. 엎드려 빌건대,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이들을 이끌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전선의 숫자는 적지만, 신이 살아 있는 이상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p.236 |
|
저자 최인은 상, 하권으로 나누어진 이 소설 속에 임진왜란, 정유재란, 난중일기 전 과정을 짜임새 있고 스피디하게 써 넣었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는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지만, 작가는 딱딱하고 지루한 역사적 기록을 재미있으면서 흥미롭게 소설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소설은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며, 그 과정은 난중일기를 쫓아가는 형식이다. 그러나 난중일기에 없는 부분을 대폭 가미해 소설적 재미를 배가시킨 것이 돋보인다. 또한 소설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순신이 되어 가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즉 저자 특유의 간결하고 몰입도 높은 문장과 묘사, 갈등, 전개가 독자의 마음을 절묘하게 감정이입시킨다, 정사(正史)나 야사(野史)에는 이순신 장군이 한 여인을 사랑하고, 사랑 때문에 갈등하고,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인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픔 속에, 이순신이 장수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고,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한 남자라는 사실을 한시를 통해 녹여 낸다. 春雨東軒降 세찬 봄비 동헌 뜰에 뿌리고 寒風大廳? 차디찬 바람 대청에 스며든다. 感興廳柱依 감흥에 젖어 대청 기둥에 기대니 石榴墻下? 석류꽃은 담장 아래 외롭다. 이순신을 사랑한 여자는 답시를 읊어 연정을 표현한다. 暢日出花園 화창한 날 꽃밭 정원에 나가 絹裳感春蘭 비단치마 입고 봄 난초 구경한다. 胡蝶紅衣飛 나비는 붉은 저고리에 날아들고 蘭香春色? 난초 향기는 봄빛에 스며든다. 위와 같이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는 전쟁 소설이기 이전에 사람을 사랑한 사랑 소설이다. 즉 이순신에게 사랑의 감정과 사랑의 갈등,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슾픔을 절절히 느끼게 만든다. 특히 이 소설에는 난중일기에서 빠진 부분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즉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 지위를 박탈당한 채 도성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풀려나는 정유년(1597) 2월 26일부터 동년 4월 1일까지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록은 대동야승, 난중잡록 등 야사를 통해 써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가 쓴 이 공백기간의 기록은 너무나 섬세하고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정사처럼 보인다. 또 한 가지 특별한 것은, 작가가 직접 지어서 요소요소에 삽입한 36편의 한시(漢詩)이다. 이 한시들은 글 속에 녹아 흐르면서 소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작품의 격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이 한시들은 이순신의 고독한 마음을 표현한 것도 있고, 冬去未風? 겨울은 갔지만 바람은 아직 서늘하고 海晴高風浪 바다는 맑게 개었는데 파도는 높게 인다. 深夜蜀魄嗚 깊은 밤 두견새 소리 슬프게 들리니 愁中花酒飮 시름 중에 꽃으로 담근 술 한 잔 마신다. 이순신이 사랑한 여인이 애정시로 쓴 것도 있으며, 素月照蒼浪 흰 달은 푸른 물결에 비치고 雙雁飛天高 한쌍의 기러기 하늘 높이 난다. 燭下展鴦寢 촛불 아래 원앙금침 펼쳐 있는데 郞步鼓窓門 님의 발걸음소리 창문을 두드린다. 장수들이 자신의 울적한 심회를 읊은 것도 있다. 帥甲秋色夜漸漸 장수의 갑옷에 비치는 가을빛에 밤은 깊어만 가고 孤雁幕上哀鳴飛 고독한 기러기 막사 위를 슬피 울면서 난다. ?月?沙北風銳 보름달은 백사장에 가득한데 북쪽 바람 날카롭고 天如靑海星遠曜 하늘은 푸른 바다 같은데 별무리는 멀리서 반짝인다. 저자는 소설 속에 재미와 흥미를 불어 넣어 중고생, 대학생, 일반인 등 모든 계층의 독자들이 역사를 배우고 되돌아보면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어떤 부분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따르면서 대화, 기록, 전투장면을 자세히 기술했고, 어떤 부분은 역사학자도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도록 교지, 통문, 공문, 서장, 통첩, 상소문 등을 상세히 썼다. 즉 이 책은 역사적 교훈과 소설적 재미와 전투적 흥미가 충만한 작품임이 분명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성품, 치밀함, 과단성은 물론이고, 장군을 도와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끈 휘하 장수들의 성장과정, 그들의 전투와 전공과 벼슬, 등과과정과 성정, 장렬한 죽음 등을 알 수 있다. 또한 원균과의 끊임없는 갈등, 선조와의 간헐적 충돌, 정적 윤두수, 윤근수와의 암투, 장군을 도운 유성룡, 정탁, 이원익의 등과의 신의적 교류 등을 볼 수 있다. 그 외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뛰어난 활약상과,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백성들의 참상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이순신은 전쟁터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과감하지만, 하급관리와 병졸, 노비 같은 약자들에게는 어버이 같은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도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관청 노비와 집안 노비 등의 모습과 행동을 정겹게 그려, 그들에 대한 애정과 따듯한 마음을 적극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본주의에 몰입된 채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인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