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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구멍가게 형제 일수 군고구마 도시락 부모 단골손님 십구공탄 꽁치 아주머니 수학여행 춘실이 검정고무신 식이아재 배달 첫사랑 우산 마지막 날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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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는 목욕탕에 자주 가지 못했다. 집에 목욕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여름에는 보통 등목으로 목욕을 대신하고 가을에서 봄에 걸쳐 서너 번 목욕탕을 찾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두꺼운 내복을 입는 한겨울의 설날 어귀에 목욕을 가면 무릎과 팔꿈치, 그리고 뱃살이 튀어나온 부분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때가 딱지처럼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우리는 탈의실에서 탕으로 들어갈 때마다 행여 누가 볼세라 때가 낀 부분을 수건으로 가리고 주위 눈치를 보곤 했다. --- 『부모』 중에서
상기의 도시락이 양은이 아니라 사발 공기라는 것을 알만한 친구들은 다 알고 있는데도 상기는 끝내 돌아앉지 않았다. 나는 시작이 어렵지 한번 같이 먹으면 상기도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상기 밥공기를 친구들이 둥그렇게 앉아있는 쪽으로 옮겨 놓기 위해 잡았다. 그 순간 상기와 나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상기는 싫다고 하고 나는 괜찮다고 하며 서로 밀고 당기다가 손에서 미끄러진 밥공기가 교실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나며 깨어졌다. 시커먼 보리밥 덩이가 반찬종지에서 쏟아져 나온 멸치젓갈과 한데 뒤엉켜 나뒹굴었다. 상기는 초라하게 널브러진 도시락이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밖으로 나가 버렸다. --- 『도시락』 중에서 밀양댁이 외상값을 갚겠다고 장부를 들고 왔었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결산을 했는데 주판을 놓던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한 번 계산을 했다. 그러다가 외상값이 적힌 수첩 한 장이 찢겨나간 것을 알았다. 그걸 알면서도 어머니는 행여 상대방이 난처해질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알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밀양댁이 지레 겁을 먹고 단골을 옮긴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그걸 예사로 넘기지 못하고 밤잠을 못 이루며 끙끙 앓았다. “그 아줌마 안 온다고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장사 안 될까 봐 이러는 줄 아니? 장사 때문에 친구 잃은 게 원망스러워서 이러지.” --- 『단골손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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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구멍가게’를 기억하세요?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을 파는 곳
저 옛날 동네에 하나뿐인 구멍가게엔 행복이 그득했다. 어쩐지 미지근한 사이다를 팔고, 종이가 바닥에 들러붙은 카스텔라와 10원짜리 크림빵을 팔 것 같다. 연탄불 위에서 달고나 과자를 녹여 먹던 시절…, 구멍가게에 남아 있는 그때 그 시절의 추억. 이 땅의 모든 유년 시절에게, '구멍가게'가 당신의 추억에 환한 불을 지펴드립니다. 대형 마트에 밀려 구멍가게들이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추어가는 요즘, 구멍가게는 머지않아 사람들의 추억 속에서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간혹 오래된 동네의 골목 어귀를 지날 때 구멍가게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딱히 살 물건이 없더라도 그 모습 자체가 반가운 것은 그래서일까. 찬찬히 구멍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안을 살피면, 조금은 침침하고 옹색한 구색 면면에서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발견할 수 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양초 상자와 두루마리 휴지, 싸구려 과자와 낱개로 파는 라면들, 이제는 어느 집에서 쓸까 싶은 연기를 피우는 초록색 모기향……. 생활이 바뀌고 삶이 변하였어도 여전히 우리들의 어린 시절은 그 시절의 살림 살이와 더불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사라져가는 우리들 삶의 소중한 구석들을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복기해낸 『구멍가게』와 더불어 다시금 그 시절의 추억 속에서 마음이 따뜻해져 올 것이다. 구멍가게 둘째 아들의 17가지 가슴 따뜻한 이야기 이 책 『구멍가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왠지 낯설지 않다. 빠듯한 살림에도 시어머니에게 매일 꽁치 한 토막을 올리는 『꽁치 아줌마』의 모습은 우리 옆집 아주머니를 닮았다. 『식이 아재』처럼 몸이 불편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사람은 어느 동네에나 한 명씩 있기 마련이다. 또 헌 팬티가 입기 싫어 불평하는 아들에게 새것을 주고, 자신은 아들의 팬티를 기워 입고 다니는 아버지와 이른 아침부터 아들을 위해 아쉬운 소리를 마다 않은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그걸 보고 마음과는 다르게 오히려 화를 내고 마는 아들의 이야기인 『부모』에선 바로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나 가슴이 아릿하다. 이외에도 스러지는 연탄불을 함께 쬐던 옆집 여자 아이 이야기 『첫사랑』, 담요를 덮어 아랫목에 놓아두었던 따스한 밥공기 이야기가 담긴 『일수』 등 비록 가난했지만 함께 나누어 더 행복할 수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003년 출간된 『구멍가게』 개정증보판, …‘구멍가게 시리즈’이미경 작품 이 책은 2003년 출간된 『구멍가게』의 개정증보판이다. 정근표 작가는 이 책을 펴내며 『첫사랑』, 『춘실이』, 『도시락』 등 5편의 이야기를 새롭게 추가했고, ‘구멍가게 시리즈’ 작품으로 잘 알려진 이미경 작가가 손발을 맞추었다. 이미경 작가는 2008년 5월 개인전(기억의 소풍展)을 열어 지난 십여년 동안 그리기 시작한 ‘구멍가게 시리즈’를 선보이기도 했다.(그는 결혼 후 독한 물감이 혹 태아에게 해로울까 걱정되어 유화 대신 펜화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숨어 있는 듯하지만 고고하게 따뜻함을 전하는 소통의 장”으로써 펼쳐낸 그의 작품의 정근표 작가의 글과 어울려 또 다른 에너지를 발산한다. 작가의 말 책이 출간되자마자 제일 먼저 부모님께 드렸다. 내심 제일 좋아해 주실 줄 알았는데 아버지께서는 단 한 장도 펼쳐보지 않으시고 책을 내려 놓으셨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버지 반응에 노안으로 글씨가 잘 안보여서 그러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 눈에 들어오는 그림을 펼쳐 보여드리자 이번에는 아예 책을 집에 두지도 말고 도로 가져가라고 하셨다. 우리 가족 모두가 힘차게 일구어낸 구멍가게의 기억을 되살려 최선을 다해 만든 책인데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구멍가게를 하는 동안 우리 가족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 보듬으며 오손 도손 살았던 이야기를 공들여 엮은 책이니 읽어 봐 주십사 책을 다시 밀어놓자 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쉬시며 어렵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내가 그 시절에는 먹고 살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가게를 했다마는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가게 했던 지난날들이 후회가 되는구나. 긴 세월 동안 네 엄마를 너무 고생시킨 것 같아…. 그 시절을 다시 돌이켜 보자니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남편 때문에 오랜 세월 고생한 네 엄마 보기가 미안하구나.” 아버지께서 방문을 닫고 들어가신 뒤로도 나는 책 꺼풀만 만지작거리며 오랫동안 속눈물을 흘렸다. 구멍가게 집 자식이었던 우리들은 그 시절 고생했던 일들을 회상하며 마치 남의 말 하듯 쉽게 이야기했지만 곰곰이 돌이켜보니 아버지께서는 단 한 차례도 그 때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우리들에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세월이 아버지께는 고단한 상처로 남아있다는 것을 나는 그 시절의 아버지 나이를 훌쩍 넘기도록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저마다의 구멍가게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그 따뜻한 불을 손수 지피시고 이제는 훌쩍 늙으신 팔순의 부모님께 이 책을 바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