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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액'과 '액땜'은 구별하며 살자
# Thailand, Bangkok 챔피언을 만났는데 자랑스럽지가 않아 '통로'로 검색해봤자 방콕은 안 나온다 2009년은 서울도 방콕도 원더걸스 네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그치? # Thailand, Pai 인생이 컴퓨터냐 사양 따지게 빠이 고갯길의 미하일 슈마허 일요일 아침엔 늦잠이 제격 하늘과 별과 정전과 단수 Are you Ting Tong? 빠이의 개집 짓는 아저씨 행복, 아직 내 것은 아닌 것 같은 # Laos, Vang Vieng & Si Phan Don 침묵과 푸름과 소의 나라로 가다 방비엥, 여긴 어딘가 짝짝이 군에 대한 짧은 관찰 보고서 부탁이야 말 좀 해줘, 응? 동물의 왕국을 본의 아니게 침략하다 전기가 없는 마을 전기가 없는 마을의 아이들 # Cambodia, Ratanakiri 인도차이나에서 제일 가난한 여행자 도둑놈의 마을 스툰 트랭 나에게도 스카우터가 있으면 좋겠다 난데없는 행복은 그 나름대로 고민거리 라따나끼리 식 땡땡이 썸말로이 버스와 각목과 아이와 새가 있는 풍경 # Vietnam, Ho Chi Minh & Da Lat 나의 달콤쌉싸름한 호치민 나는 좋은 사장이야 특정 업체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만 미스터 달랏 한 바퀴 워킹 홀리데이 글로벌 스탠더드 사람이 변하면 죽을 징조라던데 # Cambodia, Siem Reap 나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었나 나는야 자연 재해의 여왕 서 바라이의 아이들 # Thailand, Krabi 우리나라에 한번 와 보세요 내 행복의 최소 공약수 |
정숙영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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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시간'과 '돈'이었다. 내 형편에 몇 달씩 돈을 안 벌고 비워 둘 수가 없다는 것. 그럼 답은 하나다. 안 비워두면 된다. 돈을 벌면 되는 거다. 어떻게? 일 싸 짊어지고 나가면 되는 거다. 소설이나 에세이에 보면 종종 나오지 않던가. 지중해가 보이는 근사한 별장 또는 저기 로키산맥이 보이는 산장에서 집필 작업에 몰두하시다 풍광 좋은 곳으로 산책을 가거나 창고에 쟁여두었던 비장의 와인을 꺼내 마시는 작가선생님 말이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지? 취재를 위한 여행은 여러 차례 떠났지만, 작업을 위한 여행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해볼 만한 것 같았다. 일을 벗어날 수 없다면, 공간만이라도 벗어나는 것. 나야 근사한 별장이나 비장의 와인 따위랑은 인연 없겠지만, 소박한 게스트하우스에 낯선 맛의 맥주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그러고 보니 꼭 해보고 싶은 게 생겼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사잔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의 음악을 들으며 원고 작업을 하는 것. 이건 글쟁이의 여름 낭만 그 자체 아닌가. --- p.19 나흘 정도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M양의 첫날 짐작은 100퍼센트 들어맞았다. 빠이는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 모레가 더 좋아지는 곳이었다. 하루 두어 번 빠이의 골목골목을 느릿느릿 거닐며, 왜 사진 속의 빠이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이곳의 진짜 매력은 인공적인 표현수단으로는 제대로 담아낼 수 없으니까. 이 마을 구석구석에 골고루 잘도 배어 있는 특별한 에너지, 그것이 빠이의 매력이었다. 사람 팔다리에서 기운을 쪽 빼는 듯한, 그 느긋하고 나른하면서도 기분 좋은 에너지. 첫날 방문했던 그 레게 바 같은 한적한 흥겨움. 그런 에너지가 주는 매력을 가장 잘 느끼는 방법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한가로움, 이런 느긋함, 이런 게으른 평화를 도대체 뭐라고 하면 좋을까. --- p.91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 버스는 탈탈거리며 시동을 걸었다. 모두들 자리로 돌아가자 버스는 이내 출발했다. 실내등이 꺼지고, 또 다시 헤드라이트 하나만을 의지한 어둠이 찾아왔다. 병아리는 이따금 삐약 삐약 존재를 증명했고, 앞자리 아저씨는 더 이상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어 들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다들 휴대폰이 꽤나 좋다. 카메라는 사치품이라면서 휴대폰은 또 안 그런가 보다. 내 앞앞 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캄보디아 태진아, 캄보디아 박현빈, 캄보디아 송대관의 노래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트로트는 캄보디아나 한국이나 크게 다른 게 없는 것 같았다. 캄보디아 송대관 노래가 나올 때는 버스 안에 낮은 합창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냐, 이 난데없는 유쾌함은. --- p.258 가이드북에서 본 바로는 베트남 말로 '스페셜 요리'를 뜻하는 단어가 '닥 비엣Dac Biet'이라고 했고, 이 쌀국수 집 앞에는 분명 '닥 비엣 2만 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들어가서 닥 비엣 달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국수를 한 그릇 준다. 평범한 소고기 쌀국수다. 다 먹고 2만동을 내밀었더니 7000동을 거슬러준다. 아니, 닥 비엣 달라니까?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닥 비엣 달라니까 또 그냥 국수를 준다. 이번엔 여러 가지 고기가 섞여 있다. 아, 오늘이야말로 닥 비엣인가 보다 싶었다. 다 먹고 2만 동을 내밀었다.5000동 거슬러준다. 아니 닥 비엣. 2만 동짜리 닥 비엣 달란 말이야… 그리고 숙소 옮기기 직전. 또 그 가게로 갔다. 한 마디 또박또박 닥 비엣이라고 하면서 가게 앞에 쓰인 문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자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쌀국수를 한 그릇 말아왔다. 고기랑 어묵이 섞여 있고, 국물이 전날 먹은 것보다 조금 탁했다. 아, 이게 진짜 닥 비엣인가 보다. 그제야 만족하고 돈을 냈다. …5000동 거슬러 줬다. 난 언젠가 그 집의 그노무 '닥 비엣'을 먹어보고 말 테다.나 다음에 달랏 갈 때까지 망하지 마라. 절대로. --- p.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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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행을 뭐라고 해야 하지? 그래, 생계형 배낭여행!
정숙영은 여행 작가다. 여행 작가는 낯선 곳에 발을 디딜 때 살아 있다고 실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2009년 여름까지 그는 무려 일 년 반이나 집에만 머물렀다. 결정적인 이유는, 말하기 민망하게도 2차 술자리로 발랄하게 뛰어가다가 넘어져서 팔이 부러진 것이다. 몇 달의 공백. 경제적 압박이 찾아왔다. 그래서 부업 삼아 하던 번역에 '올인'했다. 그렇게 피폐해가던 중 자신의 새 여행서도 나오고 병원비 카드값도 해결되었다. 자, 이제 다시 배낭을 짊어질 때. 그런데 이번엔 어머니께서 이사를 앞두고 전세값 보태라며 성화다. 책상을 쳐다보면 신물이 날 지경에 이른 그에게 문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번역 일감을 들고 나가는 거다. 집 앞 커피숍이 아니라 해외로. 오, 유명 작가나 할 법한 집필 여행을 감히? 인터넷을 뒤지고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가능한 곳이 있다! 이른바 동남아시아. 다시 말해 인도차이나 반도의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네 나라다. 서울에서의 생활비면 그곳에서 여유롭게 일하며 지낼 수 있다. 게다가 세상이 좋아져서 컴퓨터를 여는 곳이 내 방이다. 그리하여 콘크리트 사무실에 갇혀 사는 직장인들의 염장을 지를 만한 이 야심찬 계획이 시작되었다. 머릿속에는 벌써 이국의 해변 카페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에 원고를 쓰는 그림이 떠오른다. 하지만 … 전작 『노플랜 사차원 유럽 여행』 등에서 보여준 무대책, 무규칙 여행의 코믹 캐릭터 주인공께서는 여전히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고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몸소 만들어간다. 서른다섯, 이국땅에서 일과 행복을 묻다 서른다섯. 2009년 정숙영 씨가 이 여행을 했을 때의 나이다. 그는 여행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아 부러움을 사지만, 삼십 대에 접어든 뭇 미혼 여성들과 다름없이 먹고사니즘에 발목 잡힌 엄연한 생활인이다. 번역 일감을 갖고 떠난 여행이여서일까. 이 책에는 일에 대한 에피소드와 고민이 적지 않다. 배낭여행은 결국 이국의 해변에서도 돌아가야 하는 곳에서의 일을 한걸음 떨어져 생각하는 것이며 자신이 선 자리를 확인시켜주는 과정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직업과 삶의 방식에 후회는 없다. 만일 나보다 열 살은 아래인 듯한 옆자리 청년이 혹시 프리랜서 지망이라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없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다음 말은 나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것이었다. '번역을 할 정도로 어학실력이 되는데 왜 대기업 안 가셨어요? 롯데 같은 데는 일본어 잘하는 거 우대하는데. 스펙도 되시는데 대기업 가시지 그랬어요.'"(64쪽) "C양은 증권회사에 다녔다고 한다. 회사생활과 인간관계에 지쳐 회사를 그만뒀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동남아 배낭여행을 한 달 정도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 들어가도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비단 C양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이십대 중반부터 삼십대 초반까지, 그러니까 이제 막 경력을 쌓기 시작한 나이의 한국 사람들이 장기 배낭여행이라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직업과 단절해야 한다는 것."(10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