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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과거를 추억하는 방법 새들처럼 앵그리버드처럼 미행의 계기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훔쳐보기 초보 미행자 무교동 스타벅스 로맨스는 이제 시작이다 가랑잎 할아버지 숭고한 기다림 ㅇㅆㅂㄲ 관찰일기 못생긴 누나도 때로는 아프다 남편 홍학 개 나는 네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알고 있다 온리유 나에게 너는 그 풋내기 스토커 수제비를 먹고 체한 건 그것이 밀가루인 것과 기분이 아히흥했기 때문이야 양화대교 중심에 서서 소리를 지르다 가슴 달린 남자 나의 결혼식 진아의 일기 결혼 플라시보 인사동 고물상 할머니 썅년 비둘기 추석의 응급실 홍제분식 실버타운 굿바이 스타벅스 점쟁이 할아버지 나의 취향에 반!한 남자들 장미꽃 여승의 초이스 예술가 너무 홍대 우체국 여자들이 카페로 들어온다 6시 3분 인연 은아의 일기 남자들이란! 처음처럼 소설1. - 여인숙 청춘의 문장들 내일은 맑음 너를 찾으려는 시도 여명과 황혼 노장선수의 투혼 백수의 저녁 주인이 정해져 있는 수저 교보문고 봄 파는 여자 동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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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온갖 재앙이 쏟아졌다. 단축번호 0번이 나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내 이름 옆에 빨간 하트가 붙어 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이주윤’이라고만 저장해놨어도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간호 이주윤’이었다. 내 이름 밑으로 끝도 없는 전공의 향연이 펼쳐졌다. ‘무용 김민정’, ‘미술 김소현’, ‘문창 한재경’…. 사진첩에는 예쁜 여자들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넘쳐났다. (슬프게도 내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그가 강남 호스트바 선수라는 사실을 알아냈을 때 비로소 이별을 결심했다. ---p.30
그녀는 면접이 아닌 관상을 봤다. 하마터면 복채를 주고 나올 뻔했다. 관상을 볼 거면 제대로 봐야지. 아주 선무당 같은 년이다. 그런데 그녀는 모르는 것이 하나있다. 내가 그녀를 면접 봤다는 사실. 면접 초짜일 때야 마냥 떨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나니 면접처럼 쉬운 것도 없었다. 내가 너희 병원에서 일을 해줄까 말까 고민하는 자리이다. 너희 됨됨이가 얼마나 됐는지, 나한테 돈을 얼마나 줄 것인지. 내가 가늠하는 자리지 너희가 나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그 간호부장을 면접에서 탈락시켰다. ---p.65 생각만 해도 슬프지만 나는 미리 유서를 쓰겠다. 내 장례식은 병원 장례식장이 아닌 타샤의 정원 같은 곳에서 치러주시오. 이왕이면 따뜻한 봄에 죽어서 꽃밭에 꽃이 가득하게 하겠소. 이미 꽃은 많으니 근조 화환은 보내지 않아도 된다오. 근조 화환이 아니라 그대가 왔으면 좋겠소. 부의금 대신에 직접 쓴 편지를 가지고 말이오. 내게 수의 대신 섹시한 랄프로렌 원피스를 입혀주시오. 염습할 때 내 빈약한 가슴을 75C컵으로 부풀려주면 편히 눈 감겠소. 입에는 불린 쌀 대신 커피콩을 넣어주시오. 당신이 내게 안겨주는 것이 당신의 낡은 팬티이건 구멍 난 양말이건 나는 상관없소. 그대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p.124 내 부모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늙으면 고급 실버타운에 갈 거다. 너희에게 폐 끼칠 일 없다. 고 급 실버타운과 요양원의 차이란 무엇인가. 청담동 자이와 평택 주공 아파트는 둘 다 아파트일 뿐이다. 부모 는 나를 낳아 평생을 고생하며 키우고도 왜 나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할까? 부모의 지나친 겸손이 부담스럽다. 효심이 아니라 연민이 느껴지는 나는 불효녀다. ---p.153 이별은 언제나 힘겹다.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는 말은 누가 만들어 낸 걸까? 나는 계속 만나고 싶다. 오늘도 내일도. 물론,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상이 되기까지, 그 기분 나쁜 두근거림을 얼마나 참고 견뎌야 익숙해질지는 나도 모른다. ---p.158 책 구매의 새로운 기준을 떠올려본다. 표지 디자인? 제목? 작가의 인지도? 서점의 추천 도서? 평대에 누워있는 책들? 아니다. 다 아니다. 나는 서점을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사는 책을 따라 사기로 마음먹는다. 그 남자가 같은 책을 집어 드는 여자에게 “당신 같이 섹시한 여자도 라캉을 좋아하나요?”하며 맨해튼스타일로 작업 걸 리 없지만, 행여 그런 남자가 있다 해도 내가 캐리처럼 “섹시함의 원천은 보그예요.”라고 받아치지도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p.222 한때 우리는 뜨거웠다. 똑같이 뜨거웠기에 서로를 안아도 뜨거운 줄 몰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가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뜨거움에 화끈했고, 나는 그의 차가움에 선뜩했다. 우리의 온도 차이는 점점 심해졌다. 내 뜨거운 마음과 그의 차가운 마음이 만나 부연 구름이 생겨났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그는 저만치 멀리 도망가 있었다. 나는 그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p.225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며 생활한다는 자취의 뜻이 무색할 만큼 나는 요리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 공포증’이 있다. 밥을 해서 먹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설거지를 하기 위해 그릇을 개수대에 집어넣는 순간, 밥그릇에 남아 있는 몇 톨의 밥알과 김치 조각이 쓰레기로 돌변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나는 깊은 혼돈에 빠지고야 만다. 조금 전까지 맛있게 먹었던 것은 음식인가 쓰레기인가.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곧이어 헛구역질이 난다. ---p.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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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발랑기 어때?
주윤: 요조숙녀 발랑기, 정숙녀 발랑기, 숙녀 발랑기. 언니: ‘발랑’은 여러 가지 뜻을 지닌 신조어야. 발음이 ‘발랄’ 같기도 하고, ‘반란’ 같기도 하고, ‘방랑’ 같기도 하잖아. 주윤: 맞아. 정처 없이 떠돌며 사람을 관찰한 후에 솔직한 마음을 발칙하게 쓴 글. 언니: 대부분의 우리나라 여자들이 그렇지 않을까? 겉으로는 교과서적인 삶을 살지만 속으로는 음흉하고, 까지고… 솔직하지 못하게 살지. 나도 그렇고. 주윤: 그런가? 아, 몰라몰라. 제목은 출판사에서 알아서 하겠지 뭐. 근데 설마 ‘발랑기’라는 말을 제목으로 쓰겠어? 이십대 사춘기 숙녀의 발라당 까진 이야기, 혹은 발랄한 방랑기 커피는 종로 스타벅스, 배달음식은 순두부찌개, 아이돌은 샤이니의 민호. 변함없는 법칙이다. 익숙함에서 이상한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걷던 길에서 한 남자를 발견한다. 훤칠한 키, 훈훈한 외모, 깔끔한 옷차림.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의 뒤를 쫓는다. 결국 그는 놓쳤지만, 처음 가보는 카페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한다. 낯선 남자가 늘 제자리만 맴돌던 저자를 새로운 장소로 옮겨다준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우연한 미행에서 시작된다. 잘생긴 남자는 물론, 폐지 줍는 할머니, 유흥가를 서성이는 꼬마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뒤를 쫓고 그들의 일상을 관찰한다. 저자는 낯선 이들의 일상을 통해 발견하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감각적인 문장으로 발산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돈을 버는 것, 혼자 지내는 편안함과 견딜 수 없는 외로움, 부모에 대한 미안함과 철없는 원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십대 막바지의 방황, 깜짝 놀랄 만큼 솔직하고 발칙한 연애담 등이 현실 그대로 담겨 있다. 종로와 홍대, 부암동의 낯익은 골목을 배경으로 한 저자의 일상은 우리를 웃기기도 하고 마음 한 곳을 쓸쓸하게도 한다. 그 모습은 차마 얘기하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과도 너무나도 닮아 있다. 아직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한 스물여덟, 날것 그대로의 일상 에피소드 작가가 되고 싶은 백수. 배운 게 도둑질이라 간간이 간호사 생활을 하며 돈을 번다. 혼자라서 외롭지만 연애는 늘 버거웠고, 훌쩍 떠나고도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기’나 ‘모두 버리고 떠나기’는 통장잔고와 부모님의 잔소리 앞에서 남들의 무용담일 뿐이다. 그저 종로 골목을 지칠 때까지 걷다가 카라멜 시럽 듬뿍 넣은 프라푸치노를 마시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잘생긴 남자를 쫓아갔다가 전혀 새로운 장소에 도착한다. ‘처음 듣는 노래, 처음 맡는 냄새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미행을 했구나.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도 제자리에 서 있던 나를, 낯선 남자가 옮겨다 놓았구나.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이때부터 미행은 시작되었다. 꼬마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뒤를 쫓고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관찰했다. 어떤 날은 길에서 헤어지는 커플을 엿보기도 했다. 현실 속에 영화처럼 멋진 편집기술은 없었다. ‘너 하나도 안 예쁘거든? 그거나 알아둬라!’라는 어이없는 대사를 내뱉은 남자는 여자를 버려두고 택시를 잡아타지만, 신호등에 걸린 택시는 곧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그들의 이별에 머쓱한 장면을 연출한다. 어떤 날은 서점에서 멋진 남자를 발견하고는, ‘나하고 결혼하자!’라고 속으로 외치며 쫓아갔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서로를 이유 없이 ‘씨발놈’이라고 부르는 우악스러운 고등학생 무리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 책은 이처럼 우연히 미행을 시작하게 된 저자의 감쪽같은 일탈기이다. 낯선 사람들의 뒷모습을 쫓으며 발견한 도시 속 다양한 삶의 모습들, 거기에서 비롯된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이 책은 이십대 사춘기를 겪으며 쓴 솔직하고 발칙한 방랑기이기도 하다. 가고 싶은 길과 현실이 이끄는 길 사이에서 방황하며, 결혼은 하기 싫지만 가끔은 남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고, 착한 딸이고 싶지만 잔소리가 듣기 싫어 엄마의 전화를 피한다. 저자가 내놓은 솔직한 속마음은 읽는 내내 독자들을 키득거리게도 하지만, 때때로 한없는 외로움과 우울함을 느끼게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저자의 모습이 누구에게든 낯설지는 않다. 다름 아닌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