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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짜던 시절에 중공업을 꿈꾸다
운곡 정인영 탄생 100주년 기념 평전
정몽원
학고재 202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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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내 가슴속 열정의 파이어니어 I. Y. Chung!

I 창업회장 정인영이 걸어온 길
지식에 대한 열정과 목마름으로 삶을 개척하다 민병일

II 명예회장과 가까웠던 이들의 이야기
미군 철수론을 단숨에 막아내다 오원철
못다 한 이야기 오원철
내일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야 김명준
미래의 발전 수요를 한눈에 예측하다 이봉서
천하의 GM에서 부품 120만 개를 요청받다 박윤수
하나님께 잘 부탁드려주세요 천병숙
나라의 위급을 지킨 애국 기업인 김광모
국적을 넘어선 우정, 내 친구 정인영 레이먼드 말리
로봇과 AI 시대를 40년 전에 예견하다 민병일
음식 갖고 장난질 하는 거 아냐! 조금순

III 나의 스승 나의 멘토 정몽원
어렵기만 하던 아버지,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IV 정인영이 돌보던 가족 이야기 정몽원
실패로부터 기업가의 정신을 배우다
아버지 정인영과 그 형제들
아내와 딸, 나의 가족 이야기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다
못다 한 이야기

부록 업적 평가 중화학 공업 시대를 개척한 정인영
1. 중화학·기계 공업과 건설 중장비 산업의 장을 열다
2. 국내 최초·최고·최대라는 수식어를 독차지하다
3. 공업 소외 지역 개발로 국가 균형 발전을 도모하다
4. 기술 교육에 앞장서 한국 최고 기술진을 양성하다
5. MD-95 사업으로 항공 산업의 기초를 개척하다
6. 오뚝이 같은 한라의 기업 문화를 만들어내다
종합 평가 현대양행의 굴곡은 정부의 책임이다
결론 정인영이 앞장선 중화학 공업화 정책의 성과

저자 소개 1

정몽원 HL그룹 회장은 불굴의 도전 정신과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중공업, 자동차 산업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선친(HL그룹 창업자 故 정인영 회장)의 뒤를 이어 HL그룹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HL그룹은 1997년 IMF 외환위기로 해체 직전의 극한 상황까지 몰렸지만 정몽원 회장의 뚝심에 힘입어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재기에 성공했다. 정 회장에게 있어 기업 경영의 원동력이 되어준 특별한 매개가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아이스하키다. 아이스하키는 그를 지탱하는 삶의 한 축이자 생활 철학이고, 기업 경영과도 일맥상통한다. ‘외환 위기 쓰나미’가 한
정몽원 HL그룹 회장은 불굴의 도전 정신과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중공업, 자동차 산업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선친(HL그룹 창업자 故 정인영 회장)의 뒤를 이어 HL그룹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HL그룹은 1997년 IMF 외환위기로 해체 직전의 극한 상황까지 몰렸지만 정몽원 회장의 뚝심에 힘입어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재기에 성공했다. 정 회장에게 있어 기업 경영의 원동력이 되어준 특별한 매개가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아이스하키다. 아이스하키는 그를 지탱하는 삶의 한 축이자 생활 철학이고, 기업 경영과도 일맥상통한다. ‘외환 위기 쓰나미’가 한국 스포츠를 덮쳤을 때도 꿋꿋하게 아이스하키 팀 HL 안양을 지켜냈고, 그의 열정과 헌신을 통해 한국 아이스하키는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뤘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으로서 남녀 국가대표팀의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본선 출전을 성사시켰고, 남자 대표팀은 2018년 월드챔피언십(세계선수권 톱 디비전)이라는 ‘꿈의 무대’에 올랐다.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정 회장은 2020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 아이스하키연맹(IIH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는 명실공히 ‘한국 아이스하키의 아버지’이자 ‘히스토리 메이커’라고 할 수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170*210*30mm
ISBN13
9788956253985

책 속으로

“남에게 신세 지지 말고 사업은 스스로 해야 한다. 사업을 결심했으면 땅 사고 공장 짓고 사람 뽑고 해야 보람이 있는 것이지, 남이 만들어놓은 회사를 인수하는 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어 우리 스스로 해야 보람도 우리 것이 되는 거다. 사업은 그렇게 해야 한다.”
--- p.205, 「제3부 나의 스승 나의 멘토」 중에서

공무원이나 관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그 양반이 만나자고 해서 골방에 들어가면 30분이면 다 넘어가 버려요. 설득력이 말도 못 해요. 30분 만나기로 했으면 우리도 10분 정도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분은 혼자 25분을 이야기해요. 그렇게 듣다 보면 다 넘어가죠.” 그러면서 사람을 몹시 아끼는 다정한 면도 있었다. 납품 물류 수송에 회사 차량이 2할, 외부 차량이 8할을 사용할 때였다. 어느 날 제보가 들어오기를, 누군가 회사 차량에서 기름을 빼돌린다는 것이었다. 화가 난 나는 먼저 나서서 “절대 용서하면 안 된다”며 “당장 사직시키고 고발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명예회장은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잘 타일러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하고 밥줄은 빼앗지 말아.”
--- p.208, 「제3부 나의 스승 나의 멘토」 중에서

경영 스타일은 첫째도 현장, 둘째도 현장 중심이었다. 철저하게 현장에서 확인하는 스타일을 고집하셨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분이었다. “보고서만 믿고 앉아 있지 말고 직접 가서 확인하라.” 늘 이렇게 가르치셨다. 한번씩 지방 출장에 나설 때는 새벽 3시에 집에서 떠나셨다. 차편은 기차가 아니라 반드시 자동차를 이용했다. 이것도 시간을 아끼는 방편이었다.
--- p.232, 「제4부 정인영이 돌보던 가족 이야기」 중에서

현대양행은 1972년 군포에 중기 공장을 준공, 미국 아메리칸 호이스트 앤드 데릭American Hoist&Derrick과 기술 제휴를 맺고 국내 최초로 트럭과 크레인을 생산했다. 1974년에는 프랑스 포클랭Poclain과 제휴해 굴삭기를, 이어서 불도저, 모터 그레이더, 휠로더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국내 기술이 빈약하던 상황에서 현대양행은 적극적으로 해외 업체와 기술 제휴 협정을 맺고 군포 공장에서 중장비를 생산하면서 자체 기술력을 빠르게 다져나갔다. 군포 공장에서 생산한 중장비에 처음으로 ‘HALLA’ 상표를 붙이면서 훗날 한라그룹으로 상호를 변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 p.279, 「 업적 평가: 중화학 기계 공업과 건설 중장비 산업의 장을 열다」 중에서

운곡은 또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도 앞장섰다. 지금은 일반화된 조선소의 플로팅 도크도 운곡의 머리에서 나왔다. 인천조선에서 부지의 한계로 정상적 도크 시설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자 운곡은 ‘야드에 레일을 깔고 배를 옆으로 밀어서 바다에 진수시키는’ 플로팅 도크 방식을 제안했다. 당시 국내 조선 전문가들까지 모두 불가능하다고 반대했지만 지금은 일반화됐다.

--- p.319, 「 결론: 정인영이 앞장선 중화학 공업화 정책의 성과」 중에서

출판사 리뷰

반세기 전 개발도상국이 자타공인 첨단 산업국으로 도약하기까지

현대양행(한라그룹의 전신)을 설립한 정인영 탄생 100년을 맞아 한라그룹 정몽원 회장이 ‘산업인 정인영’의 삶을 돌아본다. 1960년대 개발도상국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래 정인영이 활약한 대한민국의 반세기는 정치·사회와 경제를 따로 떼어 해석할 수 없는 격동기였다. 정인영은 수지타산과 돈벌이보다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당당하게 깃발을 꽂아 보인 모험가였고, 학구파 언론인 출신으로 국가 발전의 관점에서 시장의 흐름을 꿰뚫어본 인문학적 경영자였다.

경제학계에서는 정인영을 ‘1960년대 중공업 불모지 한국에서 자동차 부품 산업과 건설 중장비로 기계 공업의 씨앗을 뿌리고, 낙후된 환경에서 국가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중공업을 성장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최초로 국산 중장비를 생산하고 조선·건설·자동차 분야를 아우르며 우리나라 중공업과 플랜트 산업의 토대를 구축한 주인공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엄격했으며 그 기준을 확장해 기업 경영 철학을 실천한 리더였다.

학계와 언론의 객관적 지표로 대한민국 산업사에 새겨진 정인영의 궤적을 살피다

『베 짜던 시절에 중공업을 꿈꾸다』 1·2부는 창업 이전부터 재계 은퇴까지 정인영의 굵직한 행보를 주로 다룬다. 출생과 성장기, 언론사 기자에서 경영자로 전향한 과정, 비즈니스 철학과 태도, 선구적인 기업가로서의 행적을 기록했다. 민병일(전 코리아헤럴드 주필)과 오원철(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이봉서(전 상공부 장관) 등이 한국 산업사의 맥락 안에서 중화학 공업의 기틀을 마련한 정인영의 활약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경공업이 주를 이루던 산업 구조를 중화학 공업으로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밑그림을 그린 사령탑의 관점이 긴밀하게 교차하며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그려 보인다. 정인영이 현대양행을 신군부에 강탈당하고도 입밖으로 내지 않았던 내막과 이후 재기 과정의 사실 관계도 밝히고 있다.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한 박정희의 강력한 드라이브, 그럼에도 정부 내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일관성 없던 정책, 불분명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기업의 입장과 도전적인 행보가 곳곳에 담겨 있다. 대규모 시설 투자로 중장기 계획에 따라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중화학 공업의 특성, 그럼에도 초기 단계에는 가동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한계 등을 정인영은 분명하게 인지했으며, 복잡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명민한 기업가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구축한 사업체를 지극히 불공정한 압력으로 빼앗긴 뒤에도 보란듯이 재기했다.

쉬지 않고 달린 45년, 365일 중 217일을 해외 출장지에서 보낸 현장 중심 경영자

3·4부에서는 한라그룹 정몽원 회장이 ‘아버지 정인영’을 회고한다. 한 집안의 가장이기보다는 전국 각지와 세계를 누비며 기업을, 지역 경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기간산업을 발전시킨 기업가 정인영을 안팎으로 지켜본 후계자로서 남다른 의미와 해석을 더한다.

사업가 정인영은 충실히 이익을 창출하되 뇌물, 향응을 완전히 차단했고, 공정 경쟁과 윤리적 경영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비자금, 정치 자금이나 배임 횡령 등으로 그룹 총수와 임원이 수없이 검찰청을 오갈 때도 정인영은 입길에 오른 적이 없다. 납세 의무도 확실히 지켰다. 1981년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연행되었다가 14일 만에 무혐의로 석방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포기를 모르는 오뚝이’, ‘불굴의 도전 정신’ 등 세간의 평가도 의미가 크지만 아들 정몽원이 바라보는 아버지 정인영은 또 달랐다. 때로 정인영은 남보다 반 걸음, 한 걸음이 아니라 열 보씩 앞질러가는 예측 불허의 몽상가였고, 또 때로는 자금 여건도 고려하지 않고 조선 해운과 우주 항공 산업에 뛰어든 무데뽀였다. 그럴 때마다 후계자 정몽원은 책임자로서 정인영과 정면으로 맞서야만 했다. 집에선들 평범한 아버지였던 적이 없는 정인영은 가장 곤혹스럽고 가혹한 코치이자 선배이고 스승이었다. 따라서 정몽원이 회고하는 운곡 정인영은 새삼 이채롭다.

전 세계가 새로운 경제, 새로운 도약의 출발선상에 선 지금, 다시 내일을 생각하다

『베 짜던 시절에 중공업을 꿈꾸다』는 기업가의 일대기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산업사의 흐름을 짚는다. 학회와 대외 기관의 평가로 객관성을 확보하면서 1970~1980년대 우리나라 중화학·기계 공업과 건설 중장비 산업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어떤 과정을 거치며 진행됐는지를 간결하게 정리한 점이 돋보인다. 정인영이 스스로 대규모 공업 시대를 열고 연이어 달성해낸 ‘국내 최초·최고·최대’ 기록들, 소외 지역에 공업 시설을 배치해 국가 균형 발전에 기여한 점, 시설 투자로 내수 시장을 두텁게 하고 자동차와 발전 설비 등 기계 공업으로 수출을 지향한 것, 인적 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업 차원에서 직접 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명실공히 최고의 기술진을 양성한 점 등 이미 한국 산업사의 갈피에는 정인영의 굵직한 발자국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시장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노동 환경과 기업 환경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전 세계가 ‘새로운 경제 체제 구축’이라는 과제에 직면해 새로운 도약의 출발선상에 선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철학과 원칙이 분명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인영은 역사의 거센 물살을 방패 없이 타고 넘으며 ‘균형’과 ‘비전’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에게 간절한 덕목이다. 정몽원 회장이 『베 짜던 시절에 중공업을 꿈꾸다』를 엮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공황에 비견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기업가로서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가장 깊이 고민하는 입장인 만큼 그의 고민은 절실하다. 이 책을 계기로 새롭게 발굴한 사실들도 유익하다.

정인영의 업적은 과소평가되거나 왜곡된 면이 적지 않다. 경제경영사학회와 관련 학회가 중화학 공업 투자 조정 조치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정인영의 명예가 다소 회복되는 논문이 연이어 나오는 가운데,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기여도를 재평가하면서 우리의 할 일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 이 책의 취지다.

學如逆水行舟 不進則退학여역수행주 부진즉퇴, ‘배움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하는 것과 같다’는 글귀에서 ‘學’ 대신 ‘業’을 넣어 가슴에 새기게 했다는 정인영의 의지를 돌아볼 때다. 불확실한 내일,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앞서간 이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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