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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홍산옥기에 대한 분석을 통해 홍산문화가 한민족의 기원임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들을 처음으로 찾았다. 첫째, 홍산문화에서 한민족의 고유부호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홍산옥기의 유일한 무늬인 사격자무늬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거쳐, 고조선, 신라, 가야, 고구려, 백제,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나타난다. 광개토대왕을 기리는 호우총 청동그릇(보물 1878호), 가야의 기마인물형토기(국보 275호)에도 이 무늬가 나온다. 저자는 이 무늬를 ‘곰’ 또는 ‘곰족’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고대 한민족의 부호라고 보았다. 이로써 최인호가 『왕도의 비밀』에서 찾아나섰던 ‘#’ 무늬의 유래와 실체를 밝혔다.
둘째, 동아시아에서 용은 고대 한국의 토템의 대상이었던 곰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아시아에서 용과 봉황은 홍산문화를 비롯한 요하문명에서 시작되었다. ① 홍산옥기 C형용의 기본 형태는 C형곰의 몸의 형체와 동일하다. ② C형용과 C형곰의 중간 형태인 옥기들이 발견되어 두 조각 사이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 ③ 용옥패에서 양쪽 측면의 굽은 갈고리, 이빨, 둥근 눈, 가까이 있는 코도 곰과 닮았다. 곰토템을 가진 홍산문화 사람들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신령한 동물’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곰을 모델로 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곰은 고대 한국의 토템의 대상이었고 이는 단군신화에도 나온다. 셋째, 동아시아에서 봉황은 한국 토종의 긴꼬리닭을 보고 만들었다. 긴꼬리닭은 상고시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고유 특산품이다. 긴꼬리닭은 머리 위로 돌출한 벼슬, 나누어진 꼬리, 부리 밑의 고기수염, 10개의 주 날개[主翼] 등이 특징이다. 홍산옥기 봉황은 이런 특징을 그대로 닮았다. 닭은 태양의 새로서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리는 존재이다. 태양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 봉황을 만들 때 태양의 새인 닭을 보고 만든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면 한민족의 기원인 홍산문화는 어떤 사회였을까? 저자의 결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홍산문화는 인간 중심의 사회였다. ① 홍산문화 유물에는 다른 시대에 비해 인물상이 눈에 띄게 많이 등장한다. 그 재료로 당시 최고로 귀한 물질인 옥을 사용했는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모티프를 선택했을 수밖에 없다. ② 지금까지 확인된 홍산문화 옥기 중에서 가장 무겁고 큰 것은 신상이 아닌 인물상이다. ③ 사람의 얼굴을 가진 신상을 만들었다. 둘째, 홍산문화는 여성 우위의 사회였다. ① 여성상들은 눈, 코, 귀, 눈썹이 모두 크고 입은 굳게 다물어서 위풍당당하다. 매우 큰 조각들도 있다. ② 우하량유적 여신묘에서 눈에 청록색 보석이 박힌 소조 여신상, 사람 3배 크기의 소조 여신상 등이 나왔다. ③ 인물상 한 쌍 중에서 여성상이 남성상보다 높이, 너비, 두께가 모두 크다. ④ 남성상과 여성상을 한 쌍으로 조각하면서 여성상의 머리만 사격자무늬로 장식했다. 사격자무늬는 당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소중한 옥기에만 새겼다. 따라서 여성상에만 사격자무늬를 새긴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저자는 검사 출신의 변호사로서 20대부터 돌도끼, 돌칼, 토기 등 고대 유물을 수집했다. 독립운동가 친필 전문 컬렉터로서 수집 과정에서 신채호, 박은식 등이 심혈을 기울였던 한국 고대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글씨 분석을 통해 한민족의 기원과 특성을 추적한 『어린아이 한국인 : 글씨에서 찾은 한국인의 DNA』(2015년, 김영사)을 쓰면서 홍산문화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홍산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요하문명연구소를 설립했고 이를 소개하는 유튜브 K-Relic을 운영하고 있다. 한민족의 기원과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미술, 고대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권할만하다. 이 책을 읽으면 한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한국의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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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의미
―중국에서 발견된 홍산문화가 한민족의 기원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최초로 제시 ‘요하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홍산문화는 기원전 4500년경부터 기원전 3000년경까지 현재 내몽고 동남부와 요녕성 서부에 분포했던 신석기시대 문화이다. 1906년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처음 발견하였지만 1980년대부터 우하량과 동산취 등에서 본격적으로 발굴되었다. 인류 4대 문명보다 그 시기가 앞서고 매우 발달한 문화로서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홍산문화가 발견되자 중국학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 동안 중국학자들은, 중국 문명의 시초는 황하문명으로서 섬서성(陝西省)과 하남성(河南省)을 중심으로 한 중원지역에서 발전해서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만리장성 외곽에서 발견된 홍산문화를 비롯한 요하문명은 황하문명과는 전혀 이질적인데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는데다가 문화적으로도 더 발전된 형태를 띠고 있다. 홍산문화에 놀란 중국은 소병기(蘇秉琦)가 1994년 ?서요하지역의 고문화를 논함(論西遼河古文化)?에서 홍산문화를 중국문화 기원을 구성하는 한 계통으로 제시한 이래 ‘통일적 중화민족’이라는 관점이 꾸준히 이어져 왔고 최근 중국에서는 정부 지원 아래 중국문화 기원에 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동안 홍산문화와 한민족과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주로 홍산문화가 고조선의 영역과 지역적으로 같은 점, 한반도의 다양한 석관묘, 계단식 적석총, 토광적석묘 등과 홍산문화의 돌무지무덤의 형태가 유사하다는 점, 단군신화에서 등장하는 곰이 홍산문화 당시 토템의 대상이었다는 점, 홍산문화의 결상이식과 형태, 재질, 조각 기법이 유사한 유물이 한반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굴된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결정적인 증거는 찾지 못했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결정적인 증거들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