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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도서 그 오후의 거리
박지영 저
청어람 201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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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나른한 오후
2. 버스정류장
3. 재회
4. 그 사건
5. 밀어내기
6. 고백
7. 한여름 밤의 꿈
8. 가혹한 선택
9. 돌이킬 수 없는
10. 소주 한 잔
11. 산책
12. 해주고 싶던
13. 소나기
14. 그 오후의 거리
번외 숨겨진 이야기 ― 은성
에필로그 그래서 그들은
작가 후기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1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534g | 145*200*30mm
ISBN13
9788925136677

책 속으로

편안한 오후다.
난 깨달았다. 벚꽃나무 아래여서가 아니라, 달콤한 꽃 향 때문이 아니라, 시원한 음료 때문이 아니라, 은성과 같이라 편안한 것임을…….
머리 위에서 속삭이던 꽃잎 하나가 무리에서 이탈하면서 허공을 떠돌았다. 음료수 캔을 들고 있는 내 손바닥으로 꽃잎이 수줍은 듯 얌전히 착지했다. 손안으로 들어온 꽃잎을 난 소중히 내려다보았다.
사랑은 강제적으로 잡는다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눈치챌 새도 없이 어느 순간 곁에 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염원을 담아도 안 되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거부하려 해도 붙들려 버리는 사랑이 있는 것이다. 이뤄질 수 있는 사랑은 소란스럽게 다가오지 않으며 자연스레 품속에 파고드는 것이다. 사랑의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난 오른편 벚꽃나무로 시선을 돌렸다.
좋다, 은성아.
이 시간이 말이야.
마음이 소리 없이 말했다.
네, 좋네요.
오래전 그였다면 그렇게 소리 없는 대답을 했을 것이다. 지금의 그는 어떤 대답을 할지 모르겠다. 부드럽게는 보이지만 다정하게는 보이지 않는 그의 알 수 없는 표정에 조금은 자신 없고, 조금은 설렌다.
담담히 다물어져 있던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띄워져 있을까…….
서로를 보지 않고 정면을 보면서도, 우린 곁의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서로를 의식하고 있음은 확실했다.
오로라를 치듯 그와 내 주위를 감싼 꽃잎의 뺨이 부드럽게 선홍색으로 물들었다.
캠퍼스에서 걸어 나오기 전까지 내가 그에게 한 말은 갈래? 가 전부였다. 그도 네, 라고 대답만 했을 뿐이었다. 그도 나도, 먼저 말을 꺼내거나 침묵에 대해 질책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어 그대로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들어가요.”
식당 앞에 와서 그가 말했다. 가벼운 미소였으나 눈은 웃지 않았다. 그가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7년 전 그는 눈빛으로 모든 것을 말했는데. 서글서글하게 웃어주던 그 눈매가 그리웠다.
“그래.”
그를 따라 미소로 답례했다. 은성은 천천히 발을 움직여 귀퉁이에 세워놓은 차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이 차분했다. 식당 안에서 아줌마가 손님에게 음식을 나르면서 곁눈질로 우리를 힐끔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난 아줌마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운전석에 올라타는 은성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빨리 가. 내 속이 재촉했다.
그가 나에게서 빨리 떨어지길 바랐다. 지금의 감정이라면 그를 붙잡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뜨겁게 달구어진 불 판 위에 오른 듯 흥분해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갈망을 언제까지 무시할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나의 바람과 달리 그의 자동차는 움직일 기색이 없었다. 거뭇한 차창이 가로막혀 있지만,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는 창 안에서 나를 볼까? 속이 두근거렸다.
은성아, 밥 먹고 갈래? 내 다른 속이 물었다.
“갈게요.”
차가 움직여 내 곁에 섰다. 열린 운전석 창 너머로 간명하게 그가 말했다. 나는 묻지 못했다.
그리고 주저 없이 그가 내 앞을 떠났다.
그를 멀거니 보다 등을 돌렸다. 심장의 끄트머리가 살며시 아렸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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