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EPUB
eBook 안중근의 말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나의 삶 나의 나라 EPUB
가격
10,150
9,140 10,150 쿠폰혜택가
YES포인트?
5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 분야의 이벤트

카드뉴스로 보는 책

카드뉴스0
카드뉴스1
카드뉴스2
카드뉴스3
카드뉴스4
카드뉴스5
카드뉴스6
카드뉴스7
카드뉴스8
카드뉴스9
카드뉴스10
카드뉴스11
카드뉴스12
카드뉴스13
카드뉴스14
카드뉴스15

상세 이미지

소개

목차

01장__나의 어린 시절
중근이라는 이름을 얻다 / 수양산에서 청계동으로 / 죽음을 면한 첫 번째 고비

02장__갑오년의 소용돌이
동학당의 횡포에 맞서다 / 동학당의 진지 속으로 / 빼앗긴 자, 빼앗은 자 / 즐기지만 부끄러운 일

03장__천주교에 입교하다
형제들에게 할말이 있소이다 / 거룩한 주재자를 위하여 / 다만 그 몸을 기댈 뿐 / 주관하는 이가 없다면 /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

04장__의협 청년
무엇을 두렵다 하는가 / 출표식장의 소란 / 그곳에서 만난 동지

05장__힘 있다고 모두 옳은가
이 억울함을 풀어 주소서 / 그것이 죄가 아니면 무엇을 벌하겠소 / 증인으로 법정에 서다 / 어찌 사사로이 법을 쓰겠는가

06장__혼란스러운 날들
나라가 이처럼 어지러우니 / 시대는 어디로 가는가 / 아버지의 치욕 / 집에서 다시 경성으로

07장__독립하는 그날까지
을사년의 울분 / 역사 뒤에 숨은 자들 / 신부에게서 길을 찾다

08장__사람이 희망이다
어찌 이대로 죽기를 바라는가 / 국채보상회 / 나라를 잃은 처지 /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도울까 / 여러 곳을 돌며 뜻을 모으다

09장__북간도의 독립군 의병장
북간도에 모인 의병들 / 일본군을 사로잡아 풀어 주다 / 아무리 뜻을 한데 모은들

10장__모진 세상을 만나
동지를 모아 몸을 추스르다 / 풍찬노숙과 기아 / 산속의 세례 / 연해주로 돌아오다

11장__피로 결의한 대한 독립
일진회 잔당에게 사로잡히다 / 피로 결의한 대한 독립 / 이토 히로부미의 행방

12장__하얼빈에 울린 총성
하얼빈으로 가는 길 / 불안한 밤 /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다 / 그를 저격한 이유 / 고마운 사람들 / 갑자기 달라진 재판 / 재판관 뜻대로 하라 / 1910년 3월

13장__한국인 안중근
어질고 약한 죄 / 감옥에서 쓴 《동양평화론》 / 성체성사를 받다

14장__대한 동포에게 고함
인심결합론 / 나, 한국인 안응칠 / 일본 법정에 서서 / 대한 동포에게 고함 / 마지막 유언

15장__동양평화론
세계 역사를 돌아보면 / 동양의 평화를 말한다 / 청일전쟁에서 러일전쟁으로 / 어찌 혼자 이겼다 하는가 / 일본의 만행을 규탄한다

저자 소개 2

安重根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안응칠로 불렸고 해외생활 중에도 이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 6세 때 가족이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사했으며, 학문보다 사냥에 뜻이 있어 명사수로 성장했다. 16세 때인 1896년 김아려와 결혼해 이후 2남1녀를 두었고, 이듬해에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를 받고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27세 때인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들을 모아 국권회복을 도모했다. 이때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평양에서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 진흥운동에도 매진했다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안응칠로 불렸고 해외생활 중에도 이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 6세 때 가족이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사했으며, 학문보다 사냥에 뜻이 있어 명사수로 성장했다. 16세 때인 1896년 김아려와 결혼해 이후 2남1녀를 두었고, 이듬해에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를 받고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27세 때인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들을 모아 국권회복을 도모했다. 이때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평양에서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 진흥운동에도 매진했다. 이후 연해주로 가서 의병대열에 참가해 대한의군을 조직하고 무장 항일투쟁에 나셨다. 1909년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동의단지회’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했는데, 이때 이들은 왼손 네 번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 태극기에 붉은 피로 ‘大韓獨立’(대한독립)을 새겼다. 그해 10월 26일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조선통감부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1910년 2월 14일 공판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그해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이때 그의 나이 31세였다.

옥중에서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으며, 이 중 『동양평화론』은 형이 집행되면서 미완으로 남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안중근의 다른 상품

(사)안중근의사숭모회/기념관

관심작가 알림신청
 
안중근의사숭모회는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평화사상을 기리기 위해 하얼빈 의거를 후원했던 이강 선생과 위당 정인보 선생 등이 광복 이후 주축이 되어 만든 안중근의사기념사업협회를 이어받아 1963년 설립되었다. 정부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안중근 의사 관련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숭모회는 1970년 남산 조선신궁 터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했고, 2010년 이후부터는 새로이 지어진 기념관을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숭모회와 기념관은 안중근 의사 기념 및 추모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옥중유필과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며 전시하는 일에 힘쓰고
안중근의사숭모회는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평화사상을 기리기 위해 하얼빈 의거를 후원했던 이강 선생과 위당 정인보 선생 등이 광복 이후 주축이 되어 만든 안중근의사기념사업협회를 이어받아 1963년 설립되었다. 정부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안중근 의사 관련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숭모회는 1970년 남산 조선신궁 터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했고, 2010년 이후부터는 새로이 지어진 기념관을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숭모회와 기념관은 안중근 의사 기념 및 추모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옥중유필과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며 전시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또한 유족 및 국내외 학자, 유묵 및 자료 소장자, 종교단체, 법인 회원 등을 아우르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 그 밖에 안중근장학회 운영, 국제친선교류 행사, 학술·전시·교육·선양 사업 등을 전개하여 시민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사상을 널리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사)안중근의사숭모회/기념관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25일
이용안내
  •  배송 없이 구매 후 바로 읽기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21.53MB ?
ISBN13
9791186827727

출판사 리뷰

옥중 자서전에서 동양평화론까지
안중근 의사가 말하는
‘나의 삶, 나의 나라’

《안중근의 말》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을 앞두고 자신의 길지 않았던 삶을 기록한 옥중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사형 당하기 전까지 쓴 《동양평화론》을 비롯해 그가 남긴 글들을 한글로 옮겼다. 그의 글들에서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시대 상황은 물론 그 안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과 고뇌, 그리고 그의 남다른 민족애와 평화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시대가 지난 지금도 큰 감동으로 이어진다.
아울러 이 책에 실린, 사형 집행 전 그가 두 동생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은 대한 독립을 향한 그의 정신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대는 다르지만, 그가 힘써 나아가고자 했던 길, 그리고 불의에 맞선 삶은 지금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자 나라를 위해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해,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모아 공을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만주 하얼빈역에서 울린 총성
그 안에 담긴
그의 뜨거운 삶과 간절한 마음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총성이 울렸고, 그곳을 방문한 조선통감부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의 울분과 독립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 자리에 청년이 서 있었다.
그는 나라의 운명이 스러져갈 때 혈혈단신으로 이역만리 만주 하얼빈역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해, 대한남아의 기개와 한국인의 민족혼이 살아 있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의 삶과 마지막은 옥중 자서전과 그가 남긴 글들에 그대로 남아 있고, 그의 삶과 그가 꿈꾼 나라는 우리 가슴에 여전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그의 글들은 잘못 전해졌거나 오류인 채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이에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는 안중근 의사가 한문으로 쓴 원문을 한글로 옮기고 엮은 한편, 그간 무분별하게 출간되어 오류가 빈번했던 안중근 자서전 내용을 충실하게 정리했다.

시대의 민족적 과제 앞에 온몸을 던졌고
마주할수록 가슴 벅찬 사람
안중근

“죽음이 두렵지 않다.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너희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32년의 짧은 생애 동안 불의에 당당하게 맞서고, 조국애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 구현을 위해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독실한 신앙인이자 교육자이고, 사상가이며 의병장으로서 시대가 요구한 민족적 과제 앞에 온몸을 던졌다. 그가 옥중에서 남긴 《동양평화론》과 200여 점의 유필은 지금도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특히 옥중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음력 9월 13일) 상오 9시 반, 하얼빈역에서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동안, 그해 12월 13일에 집필하기 시작해 이듬해 1910년 순국하기 10일 전인 3월 15일에 탈고한 것으로, 93일 동안 집필한 것이다. 이 안에는 그의 삶은 물론 그가 마주한 현실, 그 안에서 그가 이루려 한 꿈이 그대로 담겨 있다.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자서전과 그의 글들을 엮은 《안중근의 말》. 이 책으로 우리가 잊고 있던 그의 삶과 그가 꿈꾼 나라를 읽을 수 있으며, 우리 삶의 자세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리뷰/한줄평8

리뷰

9.2 리뷰 총점

한줄평

10.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