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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1부 우리 시대의 제국주의, 에너지 불평등 정의는 에너지 앞에서, 기후변화 앞에서 멈춘다 | 이정필 자원의 저주, 불 꺼진 제3세계 | 이진우 2부 슬픈 에너지 기행 [필리핀] 에너지 갈등의 도가니 자동차를 위한 잔혹 동화 | 유예지 땅과 바람을 일구는 사람들, 시밧 | 유예지 파야타스 사람들에게 ‘약속의 땅’은 보장될 것인가 | 손은숙 멈춰 선 핵 발전소, 원자로 안을 보다 | 손은숙 [태국] 관광 대국 태국의 헐벗은 그늘 방콕, 신이 만들고 인간이 버린 도시 | 이진우 소박하지만 강인한 공동체의 초대 | 조보영 미래를 위해 사람을 빌려드립니다 | 이진우 [캄보디아] 캄보디아의 슬픈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쫓겨난 빈민의 땅, 우동 | 이진우 소수 민족의 눈물로 댐을 만들다 | 손형진 [라오스] 메콩의 심장, 라오스의 선택 초소수력 발전기를 만나러 가다 | 이영란 태양광 발전기, 안녕하신가 | 이영란 메콩에 세워지는 최초의 댐, 싸이냐부리 댐 현장 탐사 | 이영란 ‘아시아의 배터리’ 정책 그리고 5퍼센트의 희망 | 이영란 3부 평등한 에너지, 정의로운 기후를 위해 [멕시코] 기후에도 정의가 필요하다 익스첼도 유엔을 구원할 수 없었다 | 이정필 코차밤바가 희망이다 | 이정필 볼리비아여, 눈물 흘리지 마오! | 이정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을 점령하라 카타르에 밀린 한국 | 이정필 오염자의 총회를 향한 아만다! | 이정필 제2의 아파르트헤이트, 더반 플랫폼 | 이정필 [독일] 독일은 어떻게 탈핵을 준비하고 있을까 선술집의 반핵 포스터, 일요 마을 시장에서 만난 반핵 캠페인 | 한재각 거대한 전환이 시작되다 | 한재각 [일본] 후쿠시마의 눈물, 일본의 선택 29년 동안 반핵 투쟁 벌여온 사람들 | 김현우 핵폭탄과 핵 발전, 모두 안 된다 | 김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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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 두께의 벽과 육중한 이중문을 넘어 원자로 안으로 들어서자 습하고 더운 공기가 가득했다. 세 단계의 철제 계단을 올라서니 발 아래로 텔레비전에서 보던 제어봉 용기 다발이 보였다. 손톱만한 우라늄이 장착돼 가동되면 방사능을 내뿜으며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파괴하는 위험천만한 물건이지만, 바타안의 제어봉 용기 다발은 비닐에 얌전히 싸여 있었다. 쉽게 찢어지는 비닐에 싸여 있다는 것, 바타안 핵 발전소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일까?--- p.83
길고 긴 회의는 3시간가량 계속됐지만 사람들은 하나하나 적어가며 우리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주민들의 마을 회의는 큰 감동이었다. 회의가 끝난 뒤 맨 앞줄에 있는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점심을 먹은 국숫집의 주인 할머니였다. 우리가 반갑게 알아보자 할머니는 어린애 같은 웃음과 함께 한마디를 건넸다. 그러자 위툰이 따라 웃기 시작했다. “저분이 한국에 돌아가면 제발 한국에 있는 핵은 한국에서나 잘 쓰고 여기로는 가져오지 말라고 정부에 부탁하래요.” 우리도 웃음이 나왔다. 누구보다 강인하지만 따뜻함을 간직한 이 공동체들과 함께한 소중한 경험을 내 생에 다시 할 날이 올 수 있을까.--- p.106 우리가 가려는 곳은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국경 근처에 있는 파도르 마을로, 제라이족 원주민 103가구가 살고 있다. 파도르 마을은 아이와 여성을 빼면 대부분 어부들이다. 세산 강 바로 옆 자락에 터를 잡아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소수 민족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댐’이라는 존재가 큰 재앙이다. 최초의 재앙은 얄리 댐에서 시작됐다. 얄리 댐은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큰 720메가와트 규모의 대형 댐으로, 캄보디아와 베트남 국경에서 베트남 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1996년 댐을 건설하다가 댐 일부가 무너지면서 엄청난 물이 댐 하류 지역을 덮쳤다. 이 사고로 주민 32명이 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그때 사고로 마을 지표면에서 2미터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강 주변 마을을 전부 휩쓸어 갔다고 한다. 사고 뒤 주민들은 집을 받치는 기둥을 2미터 이상 높였다. 그때 사고의 영향인지 곳곳에 아직도 기울어진 집들이 보였다. 그 사고가 일어난 뒤에도 시시때때로 댐이 범람해 마을이 침수됐고, 건기에는 댐에 물을 저장하느라 강이 말라버렸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댐이 언제 방류를 하는지, 왜 하는지 원주민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p.131 더반 전체가 한눈에 들어와 사진 찍기 좋은 곳에 내려 주변을 보니 상반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야트막한 산을 사이에 두고 화력 발전소와 석유 화학 공장들이 밀집한 회색 풍경과 더반 해안의 녹색 풍경이 나란히 펼쳐져 있다. 지옥문 옆에 천국의 계단이 있는 것 같다. 아니, 이것은 공존이 아니다. 엄청난 양의 물을 쓸 수 있는 입지를 선택해 생태계와 생활 공간을 잠식해 들어가는 거대 공룡의 지배가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다. 발전소가 내뿜는 독성 물질로 숨쉬기 힘들다는 설명하고 다르지 않은가. 그러면 그렇지, 여행 안내자가 쓴웃음이 나오는 얘기를 들려준다. 평소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민원이 발생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지만 총회를 앞두고 더반의 공해가 심각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발전소를 겨냥할 해외 단체들을 의식해서 잠깐 가동을 중지한 상태라고 한다.--- pp.255-256 “핵 발전소? 됐거든!” 어느 맥줏집의 창문에 붙어 있는 포스터는 집에서 편집하고 출력했을 것만 같은 단출한 것이었지만, ‘후쿠시마는 어디에나 있다. 지금 당장 핵 발전소를 폐쇄하라!’는 구호만큼은 묵직했다. ……포스터는 매주 월요일 오후 6시부터 6시 30분까지 광장에서 탈핵 시위가 열린다고 알리고 있었다. 또한 5월 28일에는 본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릴 것이라는 안내도 있었다. 저녁 해가 넘어가면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맥줏집은 저녁 장사를 위해서 분주해졌다. 가게 밖 공터에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테이블보를 깔아놓는 손길이 바빴다. 할 일 없이 나선 산책 길, 한쪽에 서서 그 풍경을 무심히 지켜봤다. 아마 조금 있으면 이 맥줏집은 동네 사람들로 북적거릴 것이고, 그 포스터는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잊지 않으셨죠? 월요일 저녁에 만나요!’라고 이야기해줄 것 같았다. --- pp.273-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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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등한 에너지를 원한다!”
자원이 많아 슬픈 동남아시아의 나쁜 에너지 마을, 기후 깡패 국가들의 말잔치 속에서 울려퍼진 기후정의, 의회부터 동네 시장까지 뿌리내린 탈핵의 희망, 평등한 에너지를 찾아 떠나는 더 착한 에너지 기행! “밀양이 문제다!” ― 1퍼센트를 위한 착한 에너지, 99퍼센트의 삶을 파괴하는 나쁜 에너지 가난한 25퍼센트의 사람들은 3퍼센트도 쓰지 못하고, 부유한 20퍼센트는 70퍼센트 이상을 소비한다. 한국인 1명은 차드인 386명이나 아프가니스탄인 373명이 쓰는 에너지를 혼자 쓴다. 전력 수급이 비상이라는 오늘도 전세계의 16억 명은 전기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나쁜 에너지 기행 ― 기후정의 원정대, 탈핵을 넘어 에너지 평등을 찾아』는 나쁜 에너지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빈 기록이다. 에너지·기후 분야의 진보적 민간 싱크탱크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김현우, 손은숙, 손형진, 유예지, 이영란, 이정필, 이진우, 한재각이 꾸린 ‘기후정의 원정대’는 2010년 『착한 에너지 기행』에 이어 또다시 에너지 기행을 떠났다. 원정대는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 일본을 누비며 에너지 평등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만났다. 에너지 불평등의 시대, 착한 에너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에너지는 무엇일까? “스탑 더 댐!” ― 에너지 빈곤층의 현실, 기후 부정의의 현장, 탈핵의 희망을 찾아 1부 ‘우리 시대의 제국주의, 에너지 불평등’에서는 국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에너지 빈곤 실태를 살펴본다.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후변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받고 있다. 내가 쓰지도 않는 에너지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고, 나를 위해 쓰이지도 않는 에너지가 만들어지려고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불 꺼진 제3세계에 희망의 불빛이 될 수 있는 에너지는 무엇일까? 2부에서부터 ‘슬픈 에너지 기행’이 시작된다. 필리핀 이사벨라 주에는 지구 온난화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핑계로 바이오 에탄올을 만들려고 조성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때문에 고통받는 원주민들이 있다. 또한 수도 마닐라 근방의 쓰레기 매립장인 파야타스에는 쓰레기 산을 뒤져 의식주를 해결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핵 발전의 위험성 때문에 23억 달러나 들여 1984년에 완공된 핵 발전소를 한 번도 가동하지 못하게 만든 승리의 기억도 생생하다. 바타안 핵 발전소는 입장료 4000원만 내면 누구든 원자로 안까지 볼 수 있는 훌륭한 탈핵 관광지다. 관광 대국 태국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에너지 불평등이 심화된 곳이다. 그렇지만 대기업의 철강 단지 조성과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 등을 막아낸 강인한 주민들이 있고, 축산 폐기물을 이용한 바이오가스 시스템을 개발해 지역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주민과 활동가들도 있다. 캄보디아는 1960년대 한국처럼 빠르게 산업화되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그 편익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서민들은 에너지가 필요한 도시 때문에 판자촌으로 쫓겨나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전기도 없이 생활한다. 메콩 강에 짓는 대규모 수력 발전 댐은 소수 민족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소수 민족인 세 두인 아저씨는 해마다 쉴 새 없이 범람 피해를 당하면서 1년의 반 이상을 떠돌며 생활하고 있다. 아저씨의 소원은 보상이 아니라 댐 건설 중단이다. 세계 최빈국 라오스도 개발의 바람은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메콩 강에 세워질 예정인 대규모 수력 발전 댐은 지역 주민의 삶과 환경을 파괴하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전기는 대부분 ‘수출용’이다. 중앙 집중식 대전력 중심의 발전 방식이 아니어도 에너지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시골 마을 냇가에 설치된 초소수력 발전기와 산골 학교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에서 희망의 빛을 찾고 돌아왔다. 3부에서는 ‘평등한 에너지’와 ‘정의로운 기후를 위해’ 노력하는 현장을 찾았다.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는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처할 방법을 찾기 위해 해마다 열리지만, 이런 자리의 주인공은 몇몇 기후 깡패 국가일 뿐이다. 민중에게 권력을 달라는 기후정의의 외침은 총회 장소 밖에서만 울려퍼지고, 2010년 멕시코,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기후변화 총회는 인류가 지구를 포기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인류의 노력은 계속된다. 독일은 2024년까지 핵 발전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뒤 시민들부터 정치권까지 차근차근 탈핵 절차를 밟고 있다. 소도시의 일요 시장과 광장의 맥줏집에서, 녹색당의 환경정책부장과 연방 의원,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환경정책연구센터 교수에게서 굳건한 탈핵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사회에서는 후쿠시마 사태 뒤 탈핵에 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와이시마라는 작은 섬의 주민들은 29년 동안 반핵 투쟁을 벌이며 핵 발전소 건설을 막고 있고, 반핵의 성지 히로시마에서 열린 평화대회에는 평화와 탈핵을 기원하는 촛불이 가득했다. “핵 발전소, 됐거든!” ― 에너지에 정의가 필요한 이유를 찾아 블랙 아웃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우리는 왜 전력 수급에 문제가 있는지 관심 없고 그저 한여름에 우리 집이 정전될까 귀찮기만 하고, 밀양 송전탑 문제는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세계 4~5위에 해당할 정도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나라다. 그런데 이런 한국에도 130만 가구 이상이 에너지 빈곤에 놓여 있다. 대체로 잘사는 나라가 많은 유럽도 에너지 빈곤층을 5000만 명에서 1억 25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제3세계 사람들은 대부분 에너지 빈곤층이나 마찬가지다. 에너지 빈곤층은 에너지가 없어서 일상이 고단하고, 쓰지도 않은 에너지, 쓰지도 못할 에너지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는다. 에너지는 공기, 물, 음식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간의 기본 권리다.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정의와 평등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후정의 원정대와 함께 ‘기후변화 시대, 평등한 에너지란 무엇인가’ 묻는 『나쁜 에너지 기행』을 떠나보자. 오늘 내가 무심코 쓰는 에너지가 누군가에게는 ‘나쁜 에너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