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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내며_ 음식에 담긴 서울의 삶과 기억 91장 서울 설렁탕 오, 소대가리 서울이여! 152장 종로 빈대떡거기 가면 빈대떡 신사를 만날 수 있을까 373장 신림동 순대순대 볶는 소리가 요란해질수록 554장 성북동 칼국수서울이라고 바꿀소냐, 국시는 국시다 715장 마포 돼지갈비대포 한 잔에 뼈에 붙은 살 한 점 896장 신당동 떡볶이이제 며느리도 안다 1077장 용산 부대찌개부글부글 냄비 속에 김치와 햄이 섞이고 1258장 장충동 족발서울 어디에서도 장충동의 이름으로 1399장 청진동 해장국새벽을 여는 속풀이의 맛 15510장 영등포 감자탕감자탕은 ‘쏘주’다 17511장 을지로 평양냉면이것이 백석의 국수 맛일까 19112장 오장동 함흥냉면타향살이 매운맛을 매운 양념으로 달래다 20913장 동대문 닭한마리섬세한 일본인도 반한 터프한 한국음식 22514장 신길동 홍어홍어는 삭혀야 맛인 거라 24115장 홍대 앞 일본음식서울에 울려 퍼지는 ‘이랏샤이마세’ 26116장 을지로 골뱅이한여름밤, 뒷골목의 뜨거운 건배 소리 27917장 왕십리 곱창다른 듯 닮은 왕십리의 곱창 맛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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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이 아닌 삶으로 맛보는 서울음식
“서울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살피면 서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이 있어 서울살이가 견딜 만했다》의 저자 정은숙은 이런 생각을 갖고 1년여에 걸쳐 서울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서울음식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500년 조선왕조의 도읍지였으니 궁중음식이나 반가음식이 먼저 떠오르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음식 중에 궁중음식이나 반가음식은 없다. 서울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저자는 어떤 음식을 통해 어떤 서울을 발견했을까? 서울은 이주민의 도시이다 정은숙이 《음식이 있어 서울살이가 견딜 만했다》에서 소개하는 음식은 17가지이다. 그런데 그 음식 중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서울 명물로 소문난 설렁탕 외에 냉면, 홍어회, 부대찌개 같은 음식이 포함되어 있다. ‘저 음식들이 서울음식이라고?’ 하는 의문을 가질 만한 음식들이다. 냉면은 늘 앞에 평양이나 함흥이라는 지명을 달고 있으며, 홍어는 대표적인 남도음식으로 꼽힌다. 부대찌개 하면 사람들은 으레 의정부를 떠올린다. 저자가 이런 음식들을 서울음식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2004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토박이라고 부를 만한 기준인 3대째 이상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세대는 불과 6.5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90퍼센트가 넘는 서울 사람들이 비교적 근래에 팔도 각지에서 서울로 옮겨 온 이주민인 것이다. 서울음식에는 이런 이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이북 실향민들의 삶이 을지로 평양냉면과 오장동 함흥냉면에 스며 있다. 평양냉면 전문점인 우래옥, 을지면옥 등에 가면 연세 지긋한 실향민들 만나기가 젊은이들을 만나는 것보다 쉽다.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추운 겨울밤 뜨거운 아랫목에서 먹던 어머니의 냉면 맛을 을지로에서 찾는다. 신림동에 가면 순대타운이 있다. 원래 재래시장 노점에서 시작한 순대볶음집들이 두 개의 건물에 입주하여 타운을 이룬 것이다. 이곳 순대타운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간판에 전라도의 지명이 붙어 있다. 이촌향도의 1960~70년대, 신림동 인근에는 전라도 농촌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읍내와 같았던 신림시장에서 값싼 순대볶음에 소주 한잔 하면서 낯선 서울에 적응했다. 음식을 통해 본 서울은 이주민의 도시이다. 음식으로 엿보는 서울의 삶 서울음식에는 서울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해장국으로 유명한 청진옥에는 야간통행금지가 서슬 퍼렇던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다. 밤새 기사 쓰고 나온 광화문 일대 언론사 기자들, 철야한 노동자들, 밤새워 술을 마셔 댄 글쟁이들, 통금에 걸려 잡혀 있던 사람들, 주변 여관에서 자고 나온 사람들 그리고 밤새 클럽에서 춤을 추다 나온 고고족들이 통금이 풀리는 새벽 4시에 청진옥에서 속을 풀었다. 장충동 족발 골목은 장충체육관에 빚을 지고 있다. 이렇다 할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레슬링 시합을 보며 김일의 박치기 한 방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응원에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 체력은 국력이던 시절의 보양을 위해 족발 골목을 찾았다. 지금 신당동 떡볶잇집은 고등학생보다 가족 손님이 더 많이 찾는다. 신당동 떡볶잇집에서 수줍은 미팅도 하고 장발의 디제이를 보며 열광하던 ‘고삐리’들이 이제 아들딸의 손을 잡고 와 젊었던 그 시절을 추억하기 때문이다. 서울은 가난하였다. 서울음식 또한 가난이 만들어 낸 음식이다. 1970년대 좁은 작업장에서는 쉴 새 없이 미싱이 돌아갔다. 작업장으로 들이던 원단이 지게에 실려 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분주히 다니던 곳이 동대문 일대이다. 동대문에서 왕십리 쪽으로 조금 벗어나면 마치코바라고 불리던 조그만 철공소들이 밀집해 있었다. 봉제 공장에서, 철공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저녁시간을 위로하던 음식이 곱창구이다. 살코기는 외국으로 수출해야 했던 가난한 한국의 더욱 가난한 노동자들은 소와 돼지의 부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서울살이를 견뎌 냈다. 서울과 서울의 삶을 기억하다 오랫동안 사대문 안을 지키던 해장국집과 빈대떡집은 이제 그 옛날의 골목을 떠나 어느 듣보잡의 이름을 하고 있는 고층건물의 한 귀퉁이에 겨우 붙어 있다. 재개발의 밀려 이미 사라진 영등포 감자탕 골목처럼, 왕십리 곱창집들도 사라지고 있다. 이 가난한 이주민의 도시에서의 삶을, 서울 사람들의 밭은 식탐을 달래 주던 음식들을 기억하고 기록한 이 책이 소중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