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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제1장 물질들의 역사 댈러스 타운레이크 / 욕조 속 누드 / ‘질료’의 역사성 / 물이라는 ‘질료’ / 서식처도 아니고 차고도 아닌 곳 제2장 공간 의례로 창조된 공간 / 플라톤의 모성적 공간 / 불도저로 밀어버린 공간 / 안팎이 없는 공간과 악몽 제3장 물 포착하기 힘든 물 / 물의 분할 / 물의 이중성 - 순수함과 청결함 / 레테의 강물로 씻다 / 회상이 모여 있는 므네모시네의 샘 / 수로와 문자가 고갈시킨 므네모시네 제4장 도시 안팎이 없이 흐른 로마의 물 / 하비가 주창한 ‘순환’의 개념 / 오물이 넘쳐나던 도시 / 도시가 풍기는 아우라 / 죽은 사람의 냄새 / 냄새 없는 도시라는 유토피아 제5장 냄새 기체로 판명된 미아스마 / 배변과 사생활 / 인종과 계층의 냄새 / 교육받은 코 - 부끄러움과 당황 / 향수로 지운 아우라 제6장 현대의 물 변기에 물을 사용하다 / 거름이 가득한 파리 / 오염된 런던 하수도 / 미국 가정의 수세식 화장실 / 미국 문화를 통합한 WC / ‘질료’의 회복 참고문헌 옮긴이 해설 |
Ivan Il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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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물이 H2O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데카르트식 좌표 혹은 인구조사 기준에 따라 도시 공간을 일반화하여 정의하는 방식은 따르지 않으려 한다. 시대마다 물과 공간을 대하는 다른 관점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 내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물질의 역사성이다. 캔버스 위에 그 시대가 상상한 것들을 그리고, 고요한 방안에 그 시대 음악을 흐르게 하고, 그 시대가 맛보고 맡을 수 있는 분위기로 공간을 채우는, 그런 시대적 상상력이 가진 의미를 탐구하고 싶다.”
--- p.18 “불도저는 빈민가를 현대의 메트로폴리스로 통합한다. 그것은 또한 내부와 외부 공간 사이의 구분을 지워버린다. 불연속적이며 독특한 일상의 거주 공간들을, 연속적이고 안팎이 구분되지 않는 균질적인 상업 공간으로 편입시킨다. 이 공간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면적 단위로 사람들을 채우도록 할당한 공간이다. 불도저는 이런 사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 사회는 이전에 존재했던 어떤 사회와도 비교하기 어렵다. 산업화 이전 사회들은 균질적인 공간에는 존재할 수 없었다. 몸의 안팎, 도시의 안과 밖, (…) 오른쪽과 왼쪽,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사이의 비대칭적 상보성은 인간의 경험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였다.” --- p.44-45 “레테 강이 죽은 이의 발에서 씻어낸 기억은 물줄기에 실려 강 너머 샘에 이르고, 죽은 이는 그곳에서 희미한 그림자로 변한다. 이런 기억의 샘을 그리스인들은 ‘므네모시네의 샘’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맑은 샘에는 살아남은 삶의 잔류물들이 보글보글 솟아오르는 바닥의 고운 모래처럼 미세한 알갱이로 떠다닌다. 신들의 축복을 받은 사람만이 이 샘에 다가갈 수 있고, 므네모시네의 딸인 뮤즈들이 여러 목소리로 그것들이 무엇이었고 앞으로 무엇이 될지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므네모시네의 가호 아래 그는 이 물을 마시고, 환상의 여정에서 돌아온 후 샘에서 꺼내온 것을 이야기한다.” --- p.63 “냄새는 이제 계층의 특질이 되기 시작했다. 의대생들은 가난한 이들에게서 특정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는 (…) 사실을 발견했다. 식민지 관리들과 외교관들도 야만인들이 유럽인과 다른 냄새를 풍긴다고 보고했다. 사모예드, 니그로, 호텐토트 등은 냄새로 종족을 구별하며, 그 냄새는 먹는 음식이나 몸을 세심하게 씻는 것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 교육 또한 ‘청결한 개인’이라는 이념을 주입하는 도구였다. 새로 등장한 개인들은 자신의 아우라가 타인에게 감지되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배우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냄새를 풍기면 역겨워한다. 냄새를 부끄러워하고, 냄새나는 환경 출신이라는 것에 당혹해하고, 냄새의 습격을 언짢아하면서, 시민들은 다함께 새로운 종류의 공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 p.107~109 “역사를 통틀어 물은 순수함을 내뿜는 질료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H2O가 새로운 질료의 자리에 앉게 되면서 이제는 이 질료의 순수성에 인간의 생존이 좌우되기에 이르렀다. H2O와 물은 서로 적대적인 것이 되었다. H2O는 현대 사회의 발명품이자 기술적 관리가 필요한 희소 자원이다. 그것은 꿈꾸는 물의 능력을 잃어버린 한낱 액체에 불과하다. (…) 개울에서 멱을 감거나 샘물을 마시는 일은 많은 이들에게 어릴 적 스카우트 활동의 기억이나 낭만적 과거를 말해주는 흔적으로나 남게 되었다. 나는 댈러스에 인공호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런 회상이 작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 p.13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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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물질 H2O에 쓸려간 물과 꿈에 관한 보고서
- 물과 공간의 역사를 통해 밝혀낸 ‘근대성’의 기원 H2O는 물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가 만들어낸 화학물질이며, 변기와 호수에 두루 쓰이는 재활용수에 불과하다. 망각의 강으로부터 기억을 실어 나르고 잠든 영혼을 일깨우던 물의 역할은 오늘날 사라졌다. 물이 H2O가 되면서 차이와 우연에서 비롯된 세계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우리는 연속적이고 균일한 환경이 끝없이 펼쳐진 근대의 획일화된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이 책은 오래도록 우리들 인간의 꿈과 상징을 담아내던 ‘역사적 물질들’을 통해 현대라는 시대가 상실한 삶의 본래적 모습을 슬프고도 아름다운 언어로 되살린 회고록이다. 『H2O와 망각의 강』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급진 사상가 이반 일리치의 후기 사유를 여는 책이기도 하다. 필요의 발명과 상품이 독점한 체제 위에 지탱해온 근대 산업사회, 그리고 학교, 병원, 교통 등 인간의 자율을 압살하는 제도들의 폐해를 강도 높게 비판해온 일리치는,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이러한 현대의 문제를 낳은 관념들로 관심을 옮긴다. 현대를 만든 도구 대신 도구의 의미로,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관념 대신 그 관념들의 뿌리로 관심을 돌린 것이다. 이 책에서 일리치는 특히 물, 공간, 냄새와 같은 ‘질료’의 역사를 통해 근대 산업과 경제의 논리가 어떻게 인간의 풍요로웠던 삶과 문화를 평평하게 다지고 획일화된 사막으로 바꾸었는지 고발한다. 이반 일리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저서 『H2O와 망각의 강』은 『ABC: 민중 지성의 알파벳화』(1988)와 『텍스트의 포도밭에서』(1993) 등과 함께 한층 깊고 원숙해진 일리치 후기 사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일리치는 1980년대를 거치며 그가 겨냥한 현대 제도와 끝없는 경제성장의 폐해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심화되는 것을 보면서 꽤나 깊은 절망에 시달린 듯하다. “처음 창조된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 가공된 현실에서 살게 된 우리들의 무력함”을 한탄하며, “이 무력함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사라져버린 것을 애도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 데서도 심경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애도의 마음으로 쓴, 일리치의 책들 가운데 가장 문학적이면서 철학적인 저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복원하려는 것은 인간의 오랜 삶을 형성하고 지탱해준 물질들의 역사다. 그 역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인간 삶에 감춰진 의미가 하나하나 되살아난다. 고대 동서양의 의례와 신화 속의 상징들, 레테의 강물과 므네모시네의 샘,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공간 개념, 고대 로마인의 수로사업, 분뇨와 시신으로 인한 도시의 냄새, 근대의 화장실과 향수의 의미, 근대 의학이 정식화하고 화폐경제가 고안한 ‘순환’의 이념, 그리고 마침내 근대의 희소 자원으로 새로 ‘발명’된 H2O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소개하는 질료의 역사는 큰 흥미와 놀라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탐구 속에는 시종일관 유지되는 문제의식이 있다. 근대 경제가 주장해온 ‘교환’과 ‘획일화’의 논리가 고대의 질료들에 배어있던 인간의 꿈을 훼손하고, 기계적이고 노예화된 삶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댈러스의 인공호수에서 레테의 고대적 강물로 이 책은 저자가 미국 댈러스 시 중심부의 인공호수 건설을 둘러싼 논쟁을 접하고는, 현대의 물과 과거의 물이 가진 의미가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을 회고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댈러스 시가 호수를 채울 물로 재활용하자고 제안한 생활용수가 결국 변기 물이나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서 시작해, 역사적으로 인간의 풍부한 상상력과 꿈을 더 이상 반영하지 못한 물에 대해 이제는 H2O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겠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그 대답을 위해 저자는 고대의 물과 그 물이 흐르던 공간의 탄생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리치가 고대의 물과 공간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두 가지다. 인간이 거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서의 물과 거주 공간 등은 처음부터 나뉘고 구획된 것으로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공간에 대해 안팎의 경계를 정하고 물을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의 것으로 나누면서 인간의 문화도 비로소 형태를 갖추었다. 즉 첫째로 인간의 삶은 애초부터 이원적인 차이의 원리를 기초로 하고 있고, 둘째로 질료는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존재한 게 아니라 인간의 삶에 깊이 엮여 있었다는 얘기다. 죽은 이의 발에서 기억을 씻어주던 레테의 강물, 그 기억을 강물에서 길어내어 시인에게 전해주던 므네모시네(기억)와 뮤즈의 샘은 세탁(청결)과 정화(순수)의 이중적 상징을 가진 물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공간 역시 광활하게 펼쳐진 야생의 땅에 최초의 고랑을 파서 마을과 도시의 안팎을 구획하고 거주를 실현함으로써 인간의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얻게 된다. 물과 공간의 의미는 고대의 의례에 고스란히 표현되었고, 인간의 문화는 이런 ‘차이’와 ‘분할’을 기초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고대 후기와 중세의 변화 춤추고 지저귀던 생명의 물, 신성한 암소가 밭을 갈던 공간 반경 등이 ‘보편적’이고 ‘무제한적’인 질료로 바뀌게 된 것은 고대 후기부터이며, 그런 물질관은 근대 초까지 긴 시간을 거치며 서서히 확립된다. 고대 로마에서 도시 경계를 넘는 수로를 통해 흥청망청 공급되던 물은 안팎이 구분되지 않는 거대 제국을 건설한 로마의 이상과도 연관된다고 한다. 이후 중세를 거쳐 근대 초에 이르면서 물은 삶을 적시고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순환’하는 물질로 바뀐다. 이런 물질 관념은 혈액의 순환을 알아낸 근대 의학 및 과학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도는 재화와 화폐를 통해 경제가 성장한다는 근대 시장경제의 이념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의 이념, 물질의 가치가 사용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교환하는 데서 온다는 근대의 이념은 물과 공간의 특이성들을 무시하고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획일적 대상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우선 물이 그러했다. 물은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당대 도시들이 골치를 앓던 도시 내 분뇨와 냄새의 일차적 해결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특정 공간을 점하고 사는 인간 삶의 건강한 흔적인 분뇨와 냄새는 도시 안에서 추방해야 할 대상이 되었고, 이와 함께 물은 정화의 힘보다는 청소 기능을 가진 물질로 부각된다. 근대적 관리와 조작에 필수적인 물질이 된 것이다. 물을 가정에 끌어와 욕실을 만들고, 냄새를 혐오스러운 것, 부끄러움의 상징으로 치부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죽은 이가 남긴 시신과 그 냄새도 도시 밖의 공동묘지로 추방된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는 빈 그릇으로서의 고대적 공간이 데카르트적 절대 공간이 되면서, 공간 내의 모든 존재는 위치에 의해서만 표시되는 상호 교환 가능한 원자들이 되었고, 친밀함과 낯섦으로 구분되던 나의 내면과 외부의 공간도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탄한다.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불도저이다. 스키피오가 카르타고를 갈아엎음으로써 그 존재를 역사에서 지웠듯이, 현대의 불도저는 빈민가의 삶을 밀어버리고 아파트 주거단지로 획일화한다.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삶의 공간을 스스로 창조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동물처럼 서식하거나 차고처럼 자신의 몸을 주차시킨다. 근대 문명의 획일화 논리와 폭력성에 대한 고발 일리치가 이 책에서 질료들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결국 근대 문명이 지닌 획일화와 균질화의 논리, 그리고 그 속에 숨은 폭력성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사물 안에는 이미 차이와 구분과 특이성이 고유하게 내장되어 있었다. 고대인들은 물과 공간과 같은 기본 질료 속에서 성과 속, 안과 밖, 차안과 피안 등의 근원적 경계를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근대 문명은 이런 근원적 경계를 잃고 이 모든 차이를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그 결과 우리는 변기의 물과 호수물의 차이도, 지저귀며 노래하는 시냇물과 끊임없이 솟는 도시 분수물의 차이도, 자연의 불과 끝없이 타오르는 핵발전의 불 사이도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일리치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근대의 획일화 논리에 숨은 폭력성이다. 그에 따르면 근대 산업사회는 경제성장과 효율의 이념에 따라서, 그리고 모든 것을 등가적 교환의 시장 논리에 합당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모든 차이를 밀어버리고 균질화의 폭력을 행사해왔다. 이 과정에서 물은 희소자원의 하나인 H2O로 전락했다. 그리고 ‘희소성’과 ‘필요’라는 근대 경제학의 논리에 따라, 인간 역시 저마다 가진 유일무이한 특성, 삶의 자립적 능력을 화폐 및 상품의 교환에 맡기고 숫자로 계량되는 노동력 내지 하나의 자원으로 전락했다. 일리치는 말한다. “이제 H2O는 꿈꾸는 물의 능력을 잃어버린 한낱 액체에 불과하며, 물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 상상의 물질이 되어버렸다”고. 그러나 댈러스의 인공호수에서나마 물이 내뿜는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마음들이 남아 있는 한, 이런 회상들을 되살려내야 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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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인 래디컬리즘”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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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타임스 (The Times)] - [더 타임스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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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통찰 위에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사상가” - 피터 버거 (『의심에 대한 옹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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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서든 현대 문명의 심장부를 겨냥한 사상의 저격수”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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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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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기술을 반대한 괴짜이면서 몽상가” -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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