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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집으로 가는 길
1. 이름 없는 아이, 마리아 2. 생존: 살아남은 나날 3. 성장: 나의 삶을 찾다 4. 차별에 대하여 5. 더 넓은 세상을 향해서 6. 작별: 이름 모를 거리에서 7. 작은 것들을 위한 목소리 에필로그: 회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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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기억은 전쟁을 알리는 음흉하고 무시무시한 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1950년의 어느 더운 여름밤이었다. 그때 나는 네 살이었다. 잠결에 멀리서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또렷해지며 짙은 산 그림자처럼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부르며 큰 소리로 울고 싶을 만큼 겁이 났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없고 나는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이모엄마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모엄마(당시 나는 이모를 그렇게 불렀다)에게 무섭게 혼나던 날, 이제 아버지를 찾으며 떼를 썼다가는 큰일이 난다는 걸 알았기에 나는 복받치는 울음을 꾹꾹 눌러 삼키며 불길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p.13, 「이름 없는 아이, 마리아」 중에서 6·25전쟁 중에나 휴전 후에도 군복을 구해다가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시커멓게 물을 들여서 검은색으로 만들어 입는 게 유행이었다. 나도 장터에 가면 시커먼 물이 있는 커다란 가마솥을 많이 보았다. 아직도 38선에서는 밀고 당기면서 전쟁을 할 때였으니 아마 내가 네 살이나 다섯 살 때였을 것이다. 나는 빨갱이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빨간색이 아닌 내 손을 자주 바라보곤 했다. --- p.131, 「생존: 살아남은 나날」 중에서 1970년부터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운동과 여권신장운동의 결과가 차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2의 여권운동의 파도가 일었다. 나는 그 물결을 타고 1981년 서른다섯이란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다. 그때 내 주위에는 나같이 혼자 돈 없이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여성을 보호해주고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훌륭한 여성운동가들이 많았다. 그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지 않고도 대학 내에서 카운슬러나 교수로서 소수민족과 약한 여성을 위해 자기 삶을 기꺼이 바쳤다. 바로 캐롤라인과 베브처럼 말이다. --- p.246, 「더 넓은 세상을 향해서」 중에서 그렇게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어머니를 따라 이름 모를 거리에 서서 죄인같이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와 함께 내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고 있었다. 그때 시신 더미를 뒤져서 주검이라도 찾아올 수 없을 만큼 내 아버지는 조선인민공화국 김일성에게 큰 죄를 지은 것인가. 빌어먹을! 그래서 그 길거리에 다른 시신들과 같이 아무렇게나 묻혀야 했던가. 나는 갑자기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어딘가에 누워 있을 내 아버지에게 바락바락 소리치고 욕하고 싶었고 그걸 참느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식은땀이 흘렀다. 당장이라도 뒤돌아서 북한을 떠나고 싶었다. --- p.274, 「작별: 이름 모를 거리에서」 중에서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은 그야말로 ‘바텐더에서 상아탑으로’였다. 엠이란 여자는 특히 그랬다. 나는 그저 소수민족이란 이름으로 굴러들어온 돌이었다. 그들은 그런 내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내게 주어진 상황에 감지덕지하고 기꺼이 그들의 모든 의견에 동의해서 고무도장을 쾅쾅 눌러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처음에 그들이 내게 정말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굴 때부터 이미 그런 속내를 알고 있었다. --- p.300, 「작은 것들을 위한 목소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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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에 쫓겨 가족과 떨어진 4살 여자아이 마리아.
이념과 사상의 대립, 절망과 고통뿐이었던 한반도 땅에서 생존과 자유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눈부시게 빛나는 이야기! 한반도의 비극이자 20세기 가장 참혹했던 전쟁인 한국전쟁. 그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가족과 떨어져 홀로 남겨진 여자아이는 그때 고작 네 살이었다. “쉿! 네가 살 길은 그저 없는 아이처럼 조용히 숨만 쉬는 거야. 이제부터 네 이름은 마리아야!” 전쟁 속에 홀로 남겨져 언젠가 만나게 될 가족을 기다리며 처절하게 살아냈던 삶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름’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딸이었던 그녀는 전쟁이 터진 후 집으로 가는 길이 차단되었고, 자신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빨갱이의 자식으로 몰렸다. 그렇게 그녀의 이름은 사라졌다. 입을 다물고, 없는 존재가 되어, 상처투성이인 삶을 살아낸 이름 없는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70년의 세월 동안 빨갱이 새끼라는 눈총과 멸시, 동양인이라는 인종차별 속에서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던 건, 아버지를 향한 깊은 원망과 증오심이었다. 초로의 나이가 된 오늘에야 그녀는 비로소 마음속 꾹꾹 쌓아놓았던 미움들을 내려놓으며 이제야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1956년 북한의 이름 모를 거리, 그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 수많은 시체와 뒤엉켜 있을 아버지를 목도하고, 일생을 미워하고 그리워했던 마음을 울음으로 터뜨려버리는 광경은 먹먹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녀에게 해방이자 구원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남은 삶은 자신처럼 그리움을 안고 사는 모든 사람과 의미 있는 발걸음을 놓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이름은 ‘김 현’이다. 저자 김 현은 자신이 살아낸 시간을, 그리고 묵묵히 걸어온 삶을 때론 담담하게 때론 격앙될 수밖에 없는 목소리로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전쟁과 사람으로 인해 받은 무수한 생채기와 두려움을 스스로 마주하고 사랑으로 용서하기까지 70년이 걸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생을 고통과 분노에 몸부림쳐 온 한 인간의 상처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 답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는 숨 막히는 두려움과 굶주림 가득한 전쟁터 속에서도 생명은 아름답고, 사랑은 위대하다는 저자의 인생 철학이 녹아 있으며, 자유의 땅 미국에서의 성공한 삶을 이루기까지 그녀의 단단한 용기와 위대한 투쟁이 담겨 있다. 그녀의 삶은 역사다! 절망 끝에서 희망과 용기로 써 내려간, 힘겨운 오늘을 걷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내 어릴 적 기억은 전쟁을 알리는 음흉하고 무시무시한 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1950년의 어느 더운 여름밤이었다. 그때 나는 네 살이었다. 잠결에 멀리서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또렷해지며 짙은 산 그림자처럼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부르며 큰 소리로 울고 싶을 만큼 겁이 났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없고 나는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전쟁과 고아, 낯선 땅의 이방인, 가난과 차별… 그 비극적인 전제에도 불구하고, 삶은 위대하고 사랑은 진리임을 확인하는 책이다. 저자 김 현은 죽음의 공포와 가난이 주는 고통을 감내하며 일평생 ‘집’으로 향한 그리운 마음을 부여잡고 세상에 맞서며 용기 있게 살아왔다. 그 삶의 이야기를, 그때 그 네 살의 아이로 돌아가서 하나하나 흘러온 시간 순서 그대로 꾹꾹 눌러 담아냈다. 한국전쟁사와 전쟁의 참상, 한국 여군 입대, 미군 부대 시절,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 평의원으로서의 활동… 그 모든 날은 저자의 인생에서 단지 지나간 시간, 살아냈던 삶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한국전쟁과 인종차별을 온몸으로 겪어낸 저자가, 같은 아픔과 고통을 여전히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그들의 고통을 함께 기억하고, 나아가 그들에게 자유와 사랑을 주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70년 세월이 넘는 기간 동안 용기 있게 스스로의 행로를 결정하고 책임져온 저자의 의지와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이념과 사상의 희생양으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아버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저자의 손편지를 비롯하여, 한국전쟁의 연대기를 묶은 귀중한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다. “역사 속에서 전쟁은 언제나 인간에게 엄청난 파괴와 비극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전쟁은 늘 인간에 의해 일어난다.” 그녀의 삶은 곧 역사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코 놓을 수 없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뿌리 깊은 상처를 겪은 저자의 삶 자체가 한국의 슬픈 근대사였다. 그러나 저자는 그 슬픈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바꾸었다.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미네소타주립대학 리젠트 이사회 평의원을 역임했고, 미네소타주 태평양아시안계 자문위원 회장, 미네소타 세계무역센터, 인력 투자, 전국여성비즈니스협회 등에서 이사로 활동했던 저자는 미네소타연합교회 이사회 재단이사 및 탈북민 중서부연합회의 회장 등 미국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직책을 수행하며, 현재 85% 이상 유색인종 직원을 고용, 토목 엔지니어링 컨설턴트 MN Best Inc.를 경영하고 있다. 또한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 비즈니스 저널(Minneapolis St. Paul Business Journal)의 ‘Top 25 Women to Watch’로 선정되는 등 이제는 미국 주류 사회의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서 소수민족과 약자를 위해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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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에서 처음 저자를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연출자로서 미국 상하원 인권 운동가들에게 탈북자들의 실상을 알리기 위한 연설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연설이 끝나고 선생님과 내가 마주했을 때, 우리는 서로 긴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탈북자들의 인권운동에 눈물을 흘리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무리 잊으려 발버둥 쳐도 결코 놓을 수 없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뿌리 깊은 상처를 겪은 저자의 삶 자체가 한국의 슬픈 근대사였다. 그러나 저자는 그 슬픈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바꾸었다.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책 속 이야기들을 가슴으로 받아내며 안도했다. 그녀는 드디어 살아내었다고,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크게 외치며 긴 삶 속에서 사랑과 행복을 이루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음에. 그녀의 이야기는 실화다. 그러나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것이 실화가 아니었기를 바랐다. 더 이상 이러한 아픈 이야기가 우리의 역사 속에 쓰이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 이상훈 (PD, 영화감독, 『김의 나라』 『한복입은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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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이야기인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삶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긴 삶을 지내온 저자의 삶은 이 짧은 한 권의 책으로 감히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살아낸 단 한 순간도 나는 결코 살아낼 수 없었으리란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그녀를 존경한다. 그녀가 살아온 삶의 한 순간도 감당할 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그녀가 불굴의 의지로 절망 끝에서 버텨낸 그 용기. 그리고 약자를 위해 고군분투해온 하나의 삶을 본받겠다고 다짐한다. 그것이 오늘을 편안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감히 역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녀를 향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예의니까. - 장희정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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