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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작가의 말
1부 그 작가, 작업실 이 방에는 창이 없다, 구름도 없다 -소설가 김태용의 고시원 백발에 돋보기 쓴 ‘할머니 편집자’로 남는 꿈 -시인 김민정의 편집 사무실 두 개의 책상을 오가며 쓰는 두 편의 소설 -소설가 박민규의 연희동 작업실 목소리로 글의 리듬감을 전하는 것 -시인 김경주의 ‘이리 카페’ 누군가에게 말하듯, 속삭이듯 글을 쓴다 -라디오 PD 정혜윤의 라디오 스튜디오 내 고집대로 시를 쓰는 독자적 시인으로 -시인 안도현의 시골집 그가 지금 꿈꾸는 문학 -소설가 박범신의 논산 집필실 서울에서 나는 모래, 오해로 존재한다 -시인 최승호의 카페 ‘시엘’ 언어를 동원한 수사학과의 싸움 -소설가 김훈의 일산 작업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시인 함민복의 인삼 가게 ‘나도 쓰고 싶다’는 욕구 -소설가 전상국의 김유정문학촌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도서관과 같을 것이다 -소설가 김도연의 진부도서관 2부 그 작가, 집 그대와 나, 두 켤레의 신발 -시인 함성호 김소연 부부의 소소재 문학은 증명할 수 없는 내러티브 -평론가 김윤식의 서재 내 위치는 아직도 움직임 속에 있다 -시인 고은의 안성 집 외로움보다 더 무서운 건 그리움이다 -소설가 김성동의 비사란야 산속의 삶은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이이자 축복 -시인 박남준의 하동 심원재 가난의 세월을 예술로 승화시키다 -소설가 이외수의 감성마을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처음 세상 구경을 한 곳 -소설가 유용주의 장수 고향집 살아 있는 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한 살아 있으리 -소설가 한승원의 해산토굴 설렘과 긴장이 함께 오는 번역의 매력 -번역가 김석희의 제주 집 3부 그 작가, 길 나는 네가 어디서 오는지 몰랐지 ?시인 황인숙의 해방촌 골목 시놉시스를 쓰는 일이 일의 시작 -소설가 정유정의 지리산 암자 이 눈부신 착란의 찬란 -시인 김선우의 강릉 복사꽃밭 원래 자리인 소설로 돌아오는 길 -소설가 이순원의 강릉 바우길 포도밭은 원고지다 -시인 류기봉의 포도밭 섬은 광활한 수평의 세상을 버티고 있는 수직의 장소 -소설가 한창훈의 거문도 나오며: 최재봉의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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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읽으면서 연필을 들고 제목을 궁리할 때, 표지가 원하는 대로 나왔을 때, 막 인쇄돼 뜨거운 상태의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정말 행복해요. 제 시집이 잘되는 것보다 내가 만든 남들의 책이 잘돼서 뒤에서 박수 치는 게 더 좋으니 ‘천생 편집자’ 아닌가요? 호호. 백발에 돋보기안경을 쓴 ‘할머니 편집자’로 남는 게 꿈이에요.” 두 번째 시집 이후 시를 거의 쓰지 못했지만, 세 번째 시집 제목은 벌써 정해두었다. ‘영신사’다. 영신사는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인쇄소로 그가 자주 출입하는 곳이다. -시인 김민정 (p.37∼38)
소설이라면 장편만 있는 줄 알았고 장편으로 등단한 뒤 비로소 단편을 습작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작고한 박완서를 떠오르게도 하지만, 박민규는 선배 작가의 그 일화 역시 듣지 못했노라고 했다. 그랬던 박민규에게, 지금은 소설이 거의 종교에 육박하는 지위를 지니는 듯했다. 가족 이외의 다른 모든 관계와 활동이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소설이 매력적인 것은 왜일까. “소설을 쓰다 보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 결과 삶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요.” -소설가 박민규 (p.49) “저는 문학이 살기 위해서는 소리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이 대형 서점 같은 데서 사인회를 하기보다는 적더라도 독자가 있는 곳을 찾아가서 자신의 목소리로 글의 리듬감을 전하는 게 문학을 살리는 길이에요.” -시인 김경주 (p.55∼56) “당시만 해도 아날로그 시대였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 방송도 그 순간뿐이었죠. 그런 점에서 신문기자를 부러워했어요. 글에 대한 동경, 텍스트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었죠.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가, 그리고 그 사라짐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하는 존재론적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사라짐은 라디오만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 조건이잖아요.” 아날로그 시절의 방송은 모두 릴테이프에 녹음되었다. 당시 정혜윤에게는 비밀 릴테이프가 있었다. -라디오 PD 정혜윤 (p.68) 오전 9시면 이 집으로 출근해 저녁 대여섯 시에 퇴근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 오거나 여기 부엌에서 간단하게 해 먹었다. 책 몇 권과 노트북 컴퓨터가 유일한 작업 도구였다. 텔레비전은 물론 라디오도 없었다. 뒹굴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지치면 마당의 풀을 뽑거나 담 밑에 심은 채소를 들여다보았다. 전화가 오지 않으니 살 것 같았다. 누구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산골짝 오두막에서 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왕”(〈장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전주 아파트와 시골집을 오가면서 여러 권의 산문집도 냈지만, 무엇보다 많은 시를 건진 것이 뿌듯했다. -시인 안도현 (p..81) “나는 문학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오죽하면 신춘문예 당선 때 ‘문학, 목 매달아 죽어도 좋은 나무!’라는 소감을 밝혔을까요.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명분과 오욕칠정 사이를 오가는 변덕과 감정의 편차가 예술가의 창조적 에너지원인 것은 사실이지만, 문학이 끝내 인생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것이고 나도 이제는 나이에 어울리는 ‘노년의 문학’을 하고 싶어요.” 그는 심지어 “내 문학에서 ‘불’이 꺼지기를 바란다”고까지 말했다. “행복하게 쓰고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단순하고 쉽고 환하고 편안한 문학”이 그가 지금 꿈꾸는 문학이다. -소설가 박범신 (p.100) “고비에 가기 전에 고민했던 게 ‘사막의 문체’가 있다면 어떤 걸까, 하는 거였어요. 제가 워낙 시를 건조하게 쓰긴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사막만의 고유한 문체가 있을 것 같았거든요. 고비에 가서도 계속 의문을 놓지 않은 주제가 게 바로 문체였어요. 사막 속에 들어가서 보니, 사막의 문체는 반복의 문체더군요. 풍경이 반복적이니까요. 해, 달, 별, 사막, 모래, 바람, 풀, 양, 낙타…. 눈에 보이는 시적 대상이 몇 안 되는 거예요. 그 몇 안 되는 시어를 음표처럼 쓰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반복을 통한 리듬감이 사막의 문체의 핵심이라고 본 거죠.” -시인 최승호 (p.105∼106) 아침잠이 없는 그는 일산 집에서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난다. 아침을 먹은 뒤엔 두 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는 것이 그의 건강 관리 비법이다. 9시에 출근하면 벌써 졸음이 와서 20분 정도 이른 낮잠부터 잔다. 점심을 전후한 낮 시간은 책과 자료를 보고 메모도 하면서 보낸다. 오후엔 호수공원에 나가 걷는데, 이따금 호수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는 후배 작가 김연수와 마주치기도 한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는 각자 제 갈 길을 가는데, 10여 분쯤 뒤에 김연수의 전화가 온다. “맥주나 한잔 하시죠?”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은 저녁 7시에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작업실로 온다. 그렇게 밤 10시나 11시까지 일을 하다가 귀가해 잠자리에 든다. -소설가 김훈 (p.125) “전처럼 바다와 뻘 얘기를 집중적으로 쓰기는 어렵겠죠.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의 제 삶을 글로 쓰면 되지 않겠어요? 가게 앞의 만국기와 주차장의 휠체어 마크 같은 걸 시로 쓰기도 했습니다. 과일과 양말, 옷 같은 물건을 팔러 오는 트럭 행상 이야기, 인삼으로 술 담그는 이야기, 가게에 오는 손님들 이야기 등 여러 가지를 쓸 수 있겠지요.” 그렇다. 지금 초지인삼센터 제5호 길상이네에서는 함민복 문학의 새로운 씨앗이 움트고 있다. -시인 함민복 (p.138) “제 처부터 ‘왜 김유정의 그늘 속에 들어가 당신을 잃어버리느냐’고 할 정돈데,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소명 같은 걸 느낍니다. 이건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거든요. 후배 작가인 저로서는 김유정을 통해 제 문학의 얼굴이랄까 가치를 되찾는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김유정의 독특한 매력이 제 문학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소설가 전상국 (p. 145) “어느 날 ‘외로움’이란 말의 뜻을 이 사람한테 설명해주다가 밤을 새운 적이 있어요. 그게 재미있기도 해서 그때부터 마음의 결을 가리키는 말들을 수집하고 비슷한 말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다 보니 책 한 권이 되었지요.”(김) “저는 인간의 감정에 관한 말들은 잘 이해가 안 돼요. 이 사람은 외롭다는 게 마음의 역동적인 움직임이라고 하지만 저에게 외롭다는 건 심심하다거나 별 볼 일 없다는 뜻일 뿐이죠. 저는 말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명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함) -시인 함성호, 김소연 (p.180) 그가 작업하는 책상 위에는 역시 계통 없이 쌓인 책과 온갖 프린트물, 수십 권의 메모 수첩과 접은 종이에 직접 기록한 일정표 그리고 원고지가 놓여 있다. 메모 수첩은 언젠가 시와 산문으로 몸을 바꾸게 될 생각의 편린이고, 나날의 약속과 계획을 적은 일정표는 ‘고은의 역사’를 축적해가고 있는 참이다. 시인은 주로 원고지에 볼펜으로 글을 쓰지만, 때로는 신문에 끼어 오는 광고지의 이면 역시 흔쾌히 원고지 대용으로 쓴다. “종이가 아까워서. 그냥 버리면 천벌 받을 것 같아요. 더군다나 나 같은 사람은 나무를 죽여가며 사는 존재 아닙니까? 조금이라도 천벌을 덜 받으려면 종이를 아껴야죠. 백지는 내 종교예요. 보면 절을 안 할 수 없고 달려가서 껴안지 않을 수 없어요.” -시인 고은 (p.200) “그동안 몸을 너무 학대했지. 문학 핑계 대고 술 담배를 너무 했잖여. 먹는 데엔 전혀 신경 안 쓰고 말이여. 아파 보니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데. 문학을 생각하니 더 초조해지고. 이렇게 살아난 건, 이제부터 제대로 된 ‘진짜’ 글을 쓰라는 섭리라 생각혀.” 그는 문학을 처음 시작할 때의 떨림이 다시 왔노라고 했다. 아울러, 자신의 필생의 화두와도 같은 아버지 이야기에 이제는 정면으로 달려들고 싶노라고 밝혔다. -소설가 김성동 (p.209) 동네일에 관여하는 것 말고 심원재에서 그의 삶은 단순하고 평화롭다. 아침에 눈뜨면 찻물부터 올려놓고 밖으로 나간다. 화단과 집 앞뒤 마당을 돌면서 ‘오늘은 어떤 잎이 피었고 무슨 꽃이 올라왔나’ 유심히 들여다본다. 집 안으로 들어와서 음악을 틀어놓은 뒤 직접 만든 발효 차를 마신다. 다시 밖으로 나가 운동 삼아 장작을 패고 땀이 흐르고 목이 마를 때쯤 들어와서 또 차를 마신다. 그렇게 마시는 두 주전자 분량의 차와 담배 몇 개비가 그의 아침인 셈이다. -시인 박남준 (p.228) “우선 세대별 편견이나 거부감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에서 소중한 의미와 메시지를 찾는 일에 부지런해야 하죠. 저에게 트위터는 새로운 정보나 시대의 흐름을 앞서서 간파할 수 있는 공간이자 요긴한 메시지를 농축해서 전달하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트위터와 방송 활동 등으로 그는 수많은 대중 독자를 얻었다. 서울에서 부지런히 달려도 두 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도 한 달이면 400명 이상이 감성마을을 찾는다. 출판사나 서점 등에서 마련한 공식 행사 말고도 크고 작은 단위의 단체 손님과 개인 메일로 ‘면담’을 신청한 독자를 그는 비교적 자유롭게 만나주는 편이다. 게다가 그는 ‘트위터 문학교실’ 연수생 40여 명을 한 달에 한 번씩 감성마을에 불러 1박 2일 일정으로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기도 하다. -소설가 이외수 (p.242) “길에서 일하다가 제 성질 못 이겨서 객사했을 수도 있는데, 어쩌다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 모진 세월 지나서 고향까지 거슬러 올라왔네요. 가족과 친지, 문단 동료 등 여러 분의 도움 덕분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런 판을 벌려준 분들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또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이제는 문학과 정면 승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피할 데가 없는 거죠. 비장하게 말하자면 여기가 바로 제가 죽을 자리입니다. 허락하신다면 앞으로 20년 정도 최선을 다해 쓰고 마무리하고 싶어요.” -소설가 유용주 (p.259) “저는 책 읽기와 글쓰기에 미쳐버렸다고 치부하고 삽니다. 제 안에는 시꺼먼 득량만 도깨비가 살고 있어요. 그 도깨비한테 영혼을 저당 잡힌 대가로 소설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제 또래 작가 거의가 붓을 거두었는데도 제가 지금처럼 부지런히 쓸 수 있는 까닭도 다 그 도깨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한승원 (p.270) “역자 후기는 우선 저자와 책에 대한 예의라 할 수 있어요. 책의 내용을 독자에게 친절하고 정확하게 알리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에요. 다음으로, 역자 후기는 번역자로서 저의 흔적을 의미 있게 남기는 방식이기도 하죠. 역자 후기를 쓰면 절반 정도는 저의 책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는 좋은 번역 책을 고르는 기준으로 ‘공들여 쓴 역자 후기’를 꼽았다. “내 경험상 공들여 번역한 책에는 역자 후기도 그만큼 공을 들여 쓰기 때문”이라고 했다. -번역가 김석희 (p.283∼284) “왜, 주부들이 아이와 살림에만 묶여서 세계가 좁아진다고 하잖아요? 제가 딱 그짝인 것 같아요. 1년 365일 고양이들을 챙기고 고양이 생각만 하다 보니까 사람을 만나서도 하는 얘기가 고양이를 벗어나지 못하네요. 음악도 듣고 소풍도 다니고, 다른 것에도 신경을 나누어야지 하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네요.” 황인숙 시인이 무슨 거창한 이론이나 신념에서 길고양이 먹이 주기에 나선 것은 아니다. 그저 고양이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못 먹으면 굶어 죽고 추우면 얼어 죽는 생명이라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행동에 나서게 했을 터였다. -시인 황인숙 (p.296) 시놉시스를 쓰는 일이 이 작가에게는 일의 시작일 뿐이다. 일종의 작업용 메모라고 해도 좋겠다. 다음 단계는 소설 쓰기에 필요한 공부. 책을 통한 이론 공부부터 전문가를 상대로 한 인터뷰, 현장 취재와 직접 체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가 가장 공을 들이는 대목이다. 소설의 사실성을 높일 뿐 아니라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소설가 정유정 (p.305) “바우길을 만들고 운영 체계를 잡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만큼 저도 저의 원래 자리인 소설로 돌아오려 합니다. 사실 올봄부터 다시 글을 쓰고 있어요. 단편도 다시 쓰고 있고요, 머잖아 장편도 낼 계획입니다. 지금 3분의 1쯤 썼는데, 길을 주제로 한 작품이에요. 다섯 살 때 처음 걸은 길에서 시작해 학창 시절의 소풍, 군대의 행군 그리고 청년기의 밤 도망 등 길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삶 자체에 대해 성찰해보려고요.” 비록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바우길을 만들고 걸으면서 이순원은 작가로서의 길 역시 새롭게 열어나가고 있는 듯했다. -소설가 이순원 (p.337∼338) “저는 포도는 음식이 아니라 문화라고 믿습니다. 밭에 있는 포도는 먹을거리지만, 포도밭에 시가 있고 그림이 있고 음악이 있으면 포도는 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포도밭예술제는 포도를 문화로 승화시키는 자리인 셈이죠.” -시인 류기봉 (p.348) “아직도 섬과 바다에 대해 쓸 얘기가 남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도시에서 살며 도시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에게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잖아요? 작가 전체를 놓고 보면 섬과 바다에 대해 쓰는 이는 아주 드뭅니다. 저라도 쓰지 않으면 그나마 아예 없어질지도 몰라요.” 한창훈은 한국 문학의 전체 지형도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의미를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그가 고독과 소외를 감수하면서까지 고향 거문도로 들어온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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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김민정, 박민규, 김경주, 정혜윤, 안도현, 박범신, 최승호, 김훈, 함민복, 전상국, 김도연, 함성호, 김소연, 김윤식, 고은, 김성동, 박남준, 이외수, 유용주, 한승원, 김석희, 황인숙, 정유정, 김선우, 이순원, 류기봉, 한창훈!
스물여덟 명 작가들의 은밀한 창작 공간과 그들의 숨겨진 문학을 엿보다! 공간은 시간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영향을 받고 심지어 그에 종속되는 것이기도 하다. 똑같은 공간이라도 시간과 여건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내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 작가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을 매개로 독자들이 해당 작가와 작품을 더 친근하고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돕자는 게 기획 의도였다. 그런 의도가 실제로 얼마나 제대로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문학 기자기 전에 한 사람의 독자기도 한 나에게는 많은 공부와 도움이 되었던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들의 내밀한 창작 공간과 그 속에 감춰진 그들의 문학세계를 담아내다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 《언젠가 그대가 머물 시간들》 등의 책으로 그 동안 문학작품과 일반 독자의 거리를 좁히고자 노력했던 한겨레 문학전문 최재봉 기자. 그가 신간 《그 작가, 그 공간》에서 시인, 소설가, 번역가, PD 등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들의 은밀한 공간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공간들과 작가들의 관계, 어떤 공간 속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 등등을 속속들이 그려내는 책을 출간했다. 김태용, 김민정, 박민규, 김경주, 정혜윤, 안도현, 박범신, 최승호, 김훈, 함민복, 전상국, 김도연, 함성호, 김소연, 김윤식, 고은, 김성동, 박남준, 이외수, 유용주, 한승원, 김석희, 황인숙, 정유정, 김선우, 이순원, 류기봉, 한창훈까지 작가들의 작업 공간인 작업실, 카페, 집, 스튜디오, 길 등 다양한 집필 장소들을 소개하며 작가들의 문학세계를 보여준다. 책을 보면서 작가들의 공간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그 작가들과 더 가깝게 느껴지고, 작가들의 문학세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작가들의 공간을 영상으로 찍은 QR코드와 숨겨놓았던 최재봉 기자의 집필 공간 등도 엿볼 수 있다. 가난한 시인 함민복이 늦장가를 간 뒤 부인과 함께 꾸려가고 있는 강화도 인삼 가게에서는 생활과 문학을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시인의 착한 심성을 만날 수 있었다. 교수 작가 김태용이 너른 연구실을 두고 관 속 같은 고시원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장면은 성자와 죄수의 두 얼굴을 한 작가의 본질을 새삼 생각하게 했다. 멀쩡한 종이를 놔두고 굳이 광고 전단지 등의 이면지에 손으로 원고를 쓰는 고은 시인, 책상도 없이 방바닥에 놓인 원고지에 붓글씨를 쓰듯 세로로 글을 쓰는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그리고 남산 아래 해방촌 골목을 순례하며 하루 두 차례씩 길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겨주는 황인숙 시인의 모습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p.6) 고시원, 카페, 스튜디오 등 작업실이라 불리는 작가들의 공간 《포주 이야기》 작가의 말에 ‘방에는 창이 없다. 구름도 없다’고 쓴 작가. 폐쇄된 고시원, 글만 쓸 수 있는 공간을 택한 이는 소설가 김태용이다. 그는 고시원에서도 가장 싼 방(보증금 없이 월 16만 원)을 쓰고 있다. 더 넓거나 창문이 있는 방은 더 돈을 줘야 했지만, 그에게는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면 충분했다. 고시원 방에 붙박이처럼 있는 침대와 냉장고를 빼고, 책상과 선풍기를 받았다. 그에게 고시원은 생활 공간이 아니라 작업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집에서는 퇴고나 할 뿐, 초고를 작성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했다. 학교 연구실 역시 잠깐 책을 읽는 공간이고, 고시원에 들어와야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게 된다고 했다. “제가 공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사실 이곳 고시원에 적응하는 데도 서너 달은 걸렸어요. 처음엔 공간이 낯선 데다 꽉 막혀 있다 보니까 폐소공포증 같은 것도 오고,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지금은 폐쇄된 고시원이 좋습니다. 딱 글만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싶어요. 제가 좀 게으른 편이라 넓고 편한 공간에 가면 늘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힘들게 적응했으니까 고시원이 없어지지 않는 한 평생 여기서 쓰고 싶습니다.” (p.17)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일종의 도서관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평창 고향 집에서 가까운 진부도서관을 13년째 드나들고 있는 소설가가 있다. “그동안 내가 쓴 모든 글들은 이 도서관에서 썼다”며 작가 자신의 도서관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삽화들을 때로 그 무대로 등장시키는 김도연. 세계절 동안 500권 정도를 읽고, 틈틈이 습작도 게을리하지 않아 등단하게 된 경우다. 그의 지정석은 2층 열람실 맞은편의 휴게실을 겸한 작은 열람실이다. 평일에는 도서관 이용객이 적어 방을 독차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하는 그는, 특히 열람실 창밖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풍경을 좋아한다. “차를 타고 갈 때와 걸어갈 때의 풍경이 다르듯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르더라구요. 요즈음은 이틀 거리로 꽃이 달라져요.” 도서관이 쉬는 월요일이면 아예 아침부터 자전거에 올라타 대관령과 오대산 곳곳을 쏘다닌다. “아직도 내가 사는 이 지역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으며, ‘지역’이라는 것에서 어떤 문학적 프리미엄을 얻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지만, 그의 자전거 타기는 그 자신에게 하는 이런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노래해야 한다고. 그것이 내가 살고 넘어가야 할 영이라고.(산문집 《영()》중에서)” (p.164) 연희동 오피스텔 작업실을 쓰는 이는 소설가 박민규. 다른 모든 살림이 최소 지향이다 싶을 정도로 간소하지만, 책상 만은 거리를 두고 두 개를 나란히 놓고 글을 쓴다는 작가. 두 편의 소설을 동시에 쓰는 실험을 하고 있는 박민규는 소설 하나를 너무 오래 쓰면 지루해지고 능률도 안 오르는데, 다른 글을 써보니까 전혀 다른 성격의 글이라 인터벌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다른 작품을 쓰는 게 기분 전환이 되고 쉬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새로운 문화 운동의 온상인 동시에 생계용 글쓰기를 위한 공간인 ‘이리 카페’를 작업실로 이용하는 시인 김경주, 초고는 반드시 백지에 만년필로 쓰고, 시상 역시 노트에 만년필로 적는다는, 낮이든 밤이든 카페 ‘시엘’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창작의 고민도 한결 수월하게 풀리다는 시인 최승호,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오는 전화 때문에 전화가 나를 불러내지 못하는 곳인 시골집으로 내려가 무엇보다 많은 시를 쓰게 된 시인 안도현, 필자들과 씩씩하게 책 이야기를 나누는 편집자이면서 음울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의 시를 쓰는 시인 김민정의 편집 사무실, 라디오처럼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해주듯, 속삭여주듯 쓰는 글을 추구하는 라디오 PD 정혜윤의 스튜디오, ‘행복하게 쓰고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단순하고 쉽고 환하고 편안한 문학’을 꿈꾸는 소설가 박범신의 논산 집필실, 작업실 벽 칠판에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Q?r(필일신)’이라는 글귀가 써 있는 소설가 김훈의 일산 작업실, 바다와 뻘 대신 서로를 읽으며 삶이라는 시를 쓰고 있는 시인 함민복의 인삼 가게, 요절한 청년 김유정을 기리는 일이 자신에게는 문학적 초심을 지켜주는 구실을 한다는 소설가 전상국의 김유정문학관. 다양한 작가들의 색다른 공간 속 비밀과 문학적 이야기들을 최재봉 기자 특유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비사란야’, ‘심원재’, ‘해산토굴’ 등 작가들의 집과 지리산, 복사꽃밭, 바우길 등 작가들의 길 글을 쓰기 위한 아이디어인 색색의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은 메모판을 쓰는 평론가 김윤식은,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메모를 써 붙인다고 한다. 단편은 모두 챙겨 읽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공간인 서재에는 복사물 등 자료를 담은 바구니가 수십 개 쌓여 있다. 그는 고정 칼럼과 월평 말고도 각종 논문과 발표문, 에세이 등을 합해 하루에 원고지 10장꼴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김 교수는 고은 시인이나 소설가 조정래, 김성동처럼 원고지를 고집한다. 출판사를 하는 제자가 제공한 원고지에 수성펜으로 원고를 쓴다. 작품 일부를 인용할 경우에는 책의 해당 부분을 오려서 원고지에 그대로 붙이는 것이 이채로웠다. 그렇게 일부를 오려낸 책은 미련 없이 폐기 처분하고, 필요하면 다시 산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웬만한 교수 연구실에 다 있는 복사기나 팩시밀리도 보이지 않는다. “대학에서 정년을 맞을 무렵, 용산에 가서 컴퓨터를 샀어요. 당시로서는 아주 비싼 값이었지. 나도 컴퓨터로 글을 써보자 싶었던 거지. 나는 타자기도 써본 적이 없어요. 근데 그게 쉽지가 않습디다. 결국 포기했지. 지금 같아서는 힘들더라도 그때 계속 연습해서 익힐 걸 하는 생각도 있지만, 다 지난 일이지.” 컴퓨터를 쓰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는 인터넷 역시 미지의 우주일 따름이다. 휴대전화도 없다. 손으로 쓴 원고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시켜 입력을 하거나, 출판사에 원고 상태로 보내면 출판사 쪽에서 입력을 한다. (p.187) 자신의 호 ‘해산’과 스님의 수행처를 일컫는 토굴을 더해 ‘해산토굴’이라는 이름을 짓고, 득량만과 그 너머 소록도가 내려다보이는, 높지 않는 언덕 위의 집에 사는 소설가 한승원,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이요 축복인 산속의 삶을 살고 있는 심원재라는 박남준 시인 집, 거실과 스튜디오, 안쪽의 작업실로 구분하고, 글을 쓰고 인터넷을 활용하는 감성마을에 사는 트위터 대통령 소설가 이외수, 형제들과 고향 장수의 자연과 사람들 이야기를 쓸 계획을 가진 소설가 유용주의 장수 고향 집, 자기 집을 지어보고 나서야 실패했다고 깨달은 ‘소소재’의 시인 함성호(건축가이기도 하다)와 김소연, 경기도 양평군 가현리에 ‘절 아닌 절’이라는 뜻을 지닌 ‘비사란야’에 살고 있는 소설가 김성동, ‘번역은 항상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는 번역가 김석희의 제주 애월 집을 통해 작가의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에서 작업하는 일상과 습관들을 알게 된다. 복사꽃이 뿜어내는 강렬한 생의 에너지와 고적하고 평화로운 죽음이 세계가 함께 있는 풍경을 그리는 시인 김선우의 강릉 복사꽃밭. 해마다 봄이면 어머니를 보시고 꽃을 보러 다닌다는 그녀는, 2012년에는 연례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한진중공업 김진숙 구하기부터 강정 구럼비바위 살리기와 쌍용자동차 싸움까지 여러 사회적 의제에 시달리다 보니 그만 시기를 놓치고 말았던 것. 그녀는 인간이란 그저 이 별에 잠깐 왔다 가는 존재고,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시간과 가능성을 소중하게, 남김없이 다 쓰고 가자고 한다. 김선우에게는 미학과 실천과 구도행이 대체로 갈등 없이 공존하는 듯하다. “인간이 어떻게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게 문학이고 예술이고 종교”라고 생각하는 그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깨어 있는 자세, 말하자면 ‘일상의 미학적 경영’이 소중하며 또한 지속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 “저는 사실 인류라는 종의 미래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이에요. 지금처럼 살다가는 지구에서 추방되거나 지구 멸망을 앞당기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절망하더라도 살아야 하니까, 있는 힘껏 희망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 건 일종의 생존 전략이라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춤추면서 싸우자!’는 공허한 레토릭이 아니에요. 춤추듯이 즐겁게 싸우다 보면 진짜로 낙관의 힘이 생기고 생을 포기하지 않게 되죠.” (p.324)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시인 자신의 이야기를 쓴 시인 황인숙의 해방촌 골목, 방이 감옥이 아닌 로비가 되어 스스로를 가두고 가라앉히는 게 쉽지 않아 밖에서 작업한다는 소설가 정유정의 지리산 암자, 문학이 아닌 현실적으로 강릉을 위해 한 것이 없어 길의 구간을 나누어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소설가 이순원의 강릉바우길, 포도를 수확하고 난 후 이듬해 1월까지는 농부 류기봉이 아닌 시인 류기봉의 시간으로 쓴다는 공간 포도밭, 섬과 바다에 관해 쓰는 이는 아주 드물다며, 큰 변수가 없으면 계속 거문도에서 살겠다는 소설가 한창훈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문학의 기원과 함께 이후에 나아가야 할 방향들을 조금씩 섬세하게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