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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32 지27 경적 1 경(經)역(易)서(書)시(詩)예(禮)악(樂)춘추(春秋)효경(孝經)논어(論語)경위(經緯)소학(小學)권33 지28 경적 2 사(史)정사(正史)고사(古史)잡사(雜史)패사(覇史)기거주(起居注)구사(舊史)직관(職官)의주(儀注)형법(刑法)잡전(雜傳)지리(地理)보계(譜系)부록(簿錄)권34 지29 경적 3 자(子)유(儒)도(道)법(法)명(名)묵(墨)종횡(縱橫)잡(雜)농(農)소설(小說)병(兵)천문(天文)역수(曆數)오행(五行)의방(醫方)권35 지30 경적 4 집(集)·도경(道經)·불경(佛經)초사(楚辭)별집(別集)총집(總集)도경(道經)불경(佛經)부록 : 『수서(隋書)』 전체 구성과 전체 목차해설지은이에 대해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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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徵
令狐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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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적지>의 도서 선정과 분류<경적지>에서 밝힌 도서의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이전 목록에 기록은 있으나 내용이 천박하고 교화에 도움이 안 되는 도서들은 모두 삭제했다. 이전 목록에는 기록이 없으나 내용이 괜찮아 교화에 도움이 될 만한 도서는 모두 덧붙여 기록했다. … 비록 오묘한 도리를 탐구하고 그윽한 모습을 궁구할 수는 없지만 대도를 널리 선양하고 교의를 세우는 도서들은 빠짐없이 기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기준에 맞추어 『수서』 <경적지>는 도서의 선정과 분류에 상당한 공을 기울였다. 『수대업정어서목(隋大業正御書目)』을 기준으로 삼아 수나라의 14,466부(部)의 총 89,666권의 유서들과 대조하고, 여기에 순욱(荀?)의 『중경신부(中經新簿)』·왕검(王儉)의 『칠지(七志)』·완효서(阮孝緖)의 『칠록(七錄)』에 의거해 경(經)·사(史)·자(子)·집(集) 사부(四部)로 도서를 분류했다.사부 분류법한나라 때 경전으로 분류되었던 사서(史書)는 위진(魏晋) 시기 들어 수량이 늘면서 그 범주가 점차 세분화되었다. 이후로 ‘사(史)’를 ‘경(經)’에서 독립시켜 따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중경신부』의 병부에서 사기·구사· 황람부·잡사 네 가지의 소류(小類)로 분류되던 것이 『수서』 <경적지>에서는 정사·고사·잡사·패사·기거주·구사·직관·의주·형법·잡전·지리·보계·부록의 열세 가지 소류로 구분되었을 정도로 사서의 기록이 다양해졌다. 이렇게 되면서 춘추류(春秋類)에 모든 사서를 포함하기 어려워 따로 사부(史部)가 만들어졌다. 사부의 성립으로 춘추류에 실렸던 사서들이 사부에 수록되기 시작했다. 사부가 성립되자, 사부의 배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중경신부』에서 사부에 해당하는 병부는 사부(四部)에서 세 번째 위치에 있었으나 이충의 『진원제사부서목』에서 을부와 병부의 내용이 바뀌면서 사부가 경부 다음의 두 번째 위치로 이동한 것이다. 사부를 경부 다음에 둔 것은 문인들이 역사 기록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자부에 수록된 도서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경·사·자·집의 사부 분류법이 확립되었다. 『수서』 <경적지>의 사부 분류법은 이후 도서를 분류하는 기준이 되어 청나라의 『사고전서(四庫全書)』에까지 줄곧 적용되었다. 중국 정사에서 사부 분류법으로 도서를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수서』 <경적지>에서 비롯되었다.도교와 불교 경전을 아우른 목록정사에 최초로 도경과 불경 도서를 수록했다. 도교와 불교는 남북조 시기를 거쳐 점차 중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당나라 때 크게 성행했다. 이러한 사상적, 학술적 영향으로 남북조 시기부터 목록서에 도교와 불교 관련 서목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도교와 불교는 방외의 종교로 간주되어 남북조 시기에 편찬된 목록서인 『칠지』와 『칠록』, 그리고 『수서』 <경적지>에는 하나의 분류 체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록으로만 실렸다. 그럼에도 도경부와 불경부가 정사에 처음으로 실렸다는 점에서는 목록학사상 한 단계 진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중화서국(中華書局)의 『이십사사(二十四史)』 교점본 중 『수서(隋書)』와 한어대사전출판사본(漢語大詞典出版社本) 『이십사사전역(二十四史全譯)』 중의 『수서(隋書)』를 텍스트로 삼아 번역했습니다.- 이 책은 『수서(隋書)』 권32∼권35에 해당하는 <경적지>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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