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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광장(square)에 선 그녀들―2000년대 여성소설의 존재론적 지평 빠져나가는 것 환상은 정치를 어떻게 사유하는가―2000년대 발표된 소설들을 중심으로 느낌의 서사학·정용준, 손보미, 김성중의 소설 정념의 수용기(受容器), 공감의 문학·한강, 김애란, 황정은의 소설 포즈와 프러포즈―편혜영론 ‘미스터리’ 방법서설―김태용 외 7인의 『망상 해수욕장 유실물 보관소』 서울, 정념의 지도―정이현, 김애란, 황정은의 소설 2부 사랑의 기하학―권여선의 『비자나무 숲』 죽음은 죽지 않는다―박범신의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지향성 발생기계 소설―박솔뫼론 표면(surface)으로, 혹은 심연(abyss)으로―이홍과 정이현의 소설 여자라는 아토포스(atopos)―박범신의 『은교』 인생도처유상하수(人生到處有上下手)―천명관의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조남주의 『귀를 기울이면』 욕망의 자본론―백영옥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스파이스 로드―명지현의 『교군의 맛』 미스터 노바디(nobody)가 그대를 사랑할 때―조해진의 『아무도 보지 못한 숲』 3부 탄원행―이기호와 김애란의 소설 죽음과 인간―이응준, 김숨, 한창훈의 소설 시간에 대한 세 가지 명상―윤성희, 조현, 백가흠의 소설 밤의 독순술(讀脣術)―김유진의 『숨은 밤』 실재의 역습(Attack of the Real)―구병모의 『고의는 아니지만』 언어(言魚)의 교차로에서―김엄지의 「기도와 식도」 세상의 거의 모든 이야기, 요람(crib)에서 납골당(crypt)까지―윤성희의 『웃는 동안』 ‘ㄱ’을 기록하는 세 가지 방법―김정환의 『ㄱ자 수놓는 이야기』 (스)캔들 인 더 윈드(scandal/candle in the wind)―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심여사를 캐스팅하겠습니다―강지영의 『심여사는 킬러』 레인보우 패밀리―강지영의 『프랑켄슈타인 가족』 튜브(tube)를 통과한 모스 부호―김연수의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그때 마침 끝이 있었다―편혜영의 「밤의 마침」 반대쪽 지구에서의 삶―최윤의 「동행」 뒤집힌 음모론―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와 박민규의 소설 |
양윤의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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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텍스트는 단독자이다. 텍스트는 단독 세대주처럼 각자 살아가거나 별처럼 저마다 빛날 뿐. 거기에 주소를 부여하고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비평의 몫이다. 비평은 없는 선을 이어 텍스트들의 별자리를 만든다. 비평은 그렇게 정식화함으로써 텍스트들을 움켜쥐려고 한다. 그러나 텍스트에는 원래 이름이 없다. 비평이 명명하는 바로 그 순간 텍스트들은 명명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때문에 빠져나가는 것을 움켜쥐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실패는 비평의 운명이지만, 비평은 실패함으로써만 한 발짝 전진할 수 있다. 비평은 실패하기 위해서 명명하며 작품은 (그 명명을) 부정하기 위해서 명명된다. 따라서 ‘문학적 사건’이란 어떤 실체에 대한 이름 짓기(명명하기)가 아니라, 그 명명이 열어놓은 공백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때 명명은 공백을 냄으로써 텍스트들이 빠져나가게 만들어준다. 다르게 말해서 명명은 텍스트들을 좌표화하는 ‘실패한 준거’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것이 비평의 존재론적 운명이다. 문학은 명명 가능한 것의 바깥에서, 명명할 수 없음의 명명이라는 역설로 존재한다.--- p.36
형이상학의 스승들에게 묻는다면, 느낌은 이성이 마음의 구석구석까지 완전히 다 비추지 못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잔여물이거나, 감각이 다 수용하지 못한 외계의 소음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성과 감각이 만나 통일된 감각(통각)을 잘 구성해낸다면 잔여물이나 소음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느낌이 이성이나 감각과는 다른 곳에서 나온다면? 그래서 이성과 감각이 자기 영역을 주장하고 확장하고 점령한 후에도 남는 어떤 영역이 있다면? 감각의 잔여이자 이성의 배후에, 무엇인가가 있다. 이것은 지각과 의식이 동일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어긋남이다. 나는 내가 지각하는 것을 다 의식하지 못하고 내가 의식하는 것을 다 지각하지 못한다. 이 영속적인 어긋남 때문에 나에게서 무엇인가가 빠져나온다. 느낌은 이 빠져나옴에 대한 나의 대처방식이다. 감각이 신체의 언어이고 이성이 정신의 언어라면 느낌은 욕망의 언어다. 욕망이 저 빠져나옴의 형식 속에서만 산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 속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불쾌 속에서도 쾌감이 생겨난다. 내 지각이나 의식과 일치하지 않는 행, 불행, 쾌, 불쾌의 또다른 원천이 있는 것이다. --- p.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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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나와 당신, 나와 타인,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
사이의 최소공배수라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동시대 소설의 숲 탐험가 양윤의의 첫 평론집 비평이란 몸짓(pose)에 자신을 던짐(pro)으로써,삶과 문학에 구애(propose)하는 일 아닐까 문학평론가 양윤의는 「얼굴 없는 사제의 숭고한 문장들―김훈의 『칼의 노래』 『강산무진』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평론으로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언어와 문장 자체의 물질성에 주목하면서 서사구조의 특성과 그 이데올로기를 읽어내는 태도가 매우 진지하며 논리적이다.” “서사적 담론의 분석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자기 주제에 대한 확신을 심화시키는 풍부한 논의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7년 전 심사위원들의 평가와 기대에 보답하듯 활발하게 현장비평을 해온 양윤의가 그간 쓴 글들을 간추리고 묶어 문학동네에서 첫 평론집 『포즈와 프러포즈』를 펴냈다. 비평은 그녀에게 ‘포즈’이고 또 ‘프러포즈’인 까닭에 이 두 키워드를 첫 평론집의 제목으로 삼았다. 비평은 부자연스럽고 무의미하고 미심쩍은 몸짓(pose)에 지나지 않지만 그 몸짓이야말로 비평이 자신을 삶과 문학에 기투하는 방식일 것이다. 몸짓에 자신을 던짐(pro)으로써, 삶과 문학에 구애(propose)하는 것. 포즈는 과장하거나 과시하는 태도와는 무관하다. 거기에는 ‘진술하다’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여 쩔쩔매게 하다’는 뜻도 있다. 어려운 문제가 바로 세계의 미스터리일 터. 비평은 그처럼 스스로 미스터리를 출제하고 그것을 풀지 못해 쩔쩔매는 난감한 학생을 닮았다. 그러나 그런 난감 속에서만 비평은 구애를 완성하는 게 아닐까.(4쪽) ‘포즈와 프러포즈’라는 말은 ‘몸짓과 구애’ ‘무심한 몸짓과 적극적인 몸짓’으로 번역될 수 있다. ‘몸짓의 비평’은 ‘구애의 비평’으로 나아가며 완성되는데, 그렇다면 양윤의는 ‘구애하는 평론가’인 셈이다. 비평은 스스로 미스터리를 출제해놓고 쩔쩔매는 학생의 운명을 닮아서, 비평의 손아귀로부터 언제나 도망쳐나가는 텍스트를 허망하게 움켜쥘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평은 언제나 ‘실패는 내 운명!’ 하고 외치지만, 그 실패는 역설적으로 비평의 에너지원이 된다(“비평은 실패함으로써만 한 발짝 전진할 수 있다”, 「빠져나가는 것」, 36쪽). “사고의 고공비행을 피하는” 평론가답게 양윤의는 시종일관 이 같은 비평의 자세를 견지한 채 ‘지상에서’ 소설의 숲을 탐험한다. 소설의 숲속에 무엇이 있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녀는 소상하게 안다 『포즈와 프러포즈』는 실린 글들은 성격에 따라 3부로 나뉜다. 총론 형식의 평론을 모은 1부에서 양윤의는 콘텍스트 안에서 텍스트 읽기, 즉 이 시대의(2000년대) 소설읽기를 주요 과제로 삼는다. 첫번째 글 제목(「광장(square)에 선 그녀들」)의 ‘광장’은 영어 단어 square의 두 가지 의미(넓은 빈터/정사각형)를 품은 까닭에 ‘넓은 정사각형의 공간’을 지칭한다. 양윤의는 정사각형의 각 꼭짓점을 물질·육체·정신·관념의 네 층위로 설정하고 각 꼭짓점에 동시대 여성작가 편혜영·천운영·김애란·정이현을 배치한 후 ‘2000년대 여성소설의 존재론적 지평’을 탐구하는 식으로 우리 시대의 ‘작품지도’ ‘작가지도’를 그려낸다. 이어지는 「느낌의 서사학」 「정념의 수용기, 공감의 문학」 「서울, 정념의 지도」 등의 글에서 저자는 ‘맥락과 함께 작품읽기’를 이어나간다. 1부에서 저자가 광각렌즈의 시각으로 소설을 살폈다면 2부에서는 현미경(또는 망원렌즈)의 시각으로 읽고 쓴, 주로 소설론에 해당하는 글들을 묶었다. 권여선의 『비자나무 숲』, 박범신의 『은교』 『나의 손을 말굽으로 변하고』, 천명관의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조남주의 『귀를 기울이면』, 백영옥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명지현의 『교군의 맛』, 조해진의 『아무도 보지 못한 숲』 등, 저자는 ‘구애의 렌즈’를 끼고 이 소설들을 꼼꼼하게 살핀다. 3부는 5페이지 안팎의 비교적 짧은 비평들을 묶은 것으로, 세칭 ‘리뷰’로 분류될 만한 글 15편의 모음이다. 긴 호흡의 비평문에 미상의 거부감을 가진, 그러나 한국문학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이 책 3부에서 독서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최근 발표된 장·단편을 ‘동시대 소설의 숲 탐험가’답게 발 빠르고 날렵하게 읽어낸 글들이니(“2000년대 이후 소설의 숲에 관해서라면 그녀만큼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 생태를 자세히 관찰한 사람은 드물다”, 황종연), 재기발랄한 탐험가의 시선을 빌려 ‘그 숲’을 조망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