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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글쓰기는 《동물성 루프》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나는 전시 이전과 이후를 다시 엮으려 한다. 그리고 전시와 퍼포먼스 담론의 영역을 넘어서는 데로부터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여기서 굳이 선별된 ‘퍼포먼스’라는 장르, 시간-기반 예술의 매체 특정적 정황은 주변적으로만 다뤄질 뿐 이 글의 논점에 해당하지 않는다. 앞서 서술된 모든 문장에서 ‘퍼포먼스’를 지우고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워도 질문은 유효하다.
그러니까 과거의, 이미 존재했던(혹은 이미 끝난), 지금은 ‘살아 있지 않은’ 이미지를 보는 경험에 대해 말해보자. 이 글은 어떤 전시의 사후적(posthumous) 작업이자, 동시에 어떤 종류의 사후성(after-life)과 관계하는 이미지의 발생을 다룬다. 이를 위해 이미지가 기록과 언어를 선회하여 발생하는 지점을 파편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이미지’ 경험, 그 시각적(visual) 경험이 ‘무엇의 효과’로 서술되기보다 그 자체의 힘을 마련하는 지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어지는 글은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시도한다. 과거 · 죽음 · 역사에 귀속하는 것은 어떻게 현재의 이미지로서 발생하고 감각되는가? --- p.8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작가 자신의 이전 퍼포먼스 및 다른 역사적 퍼포먼스를 재연한 〈Seven Easy Pieces〉(2005)에서,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은 과거의 ‘그’ 퍼포먼스의 유일한 힌트가 됨으로써 실황 공연의 보충물이 아닌 다른 위상을 점한다. 도큐멘테이션은 실제 ‘그’ 퍼포먼스가 어떤 물리적 조건 안에서 행해졌는지 알려주는 여타의 정보가 극히 제한된 경우─이를 테면, 남은 ‘정보’는 사진 한 장이 전부인 발리 엑스포트의 〈Action Pants: Genital Panic〉(1969)─에 오로지 이미지로써 다른 정황을 상상하고 독해하며 재설정하도록 만든다. 결국, 아브라모비치가 ‘재연’과 ‘재현’의 문법으로 과거의 퍼포먼스를 수행한 〈Seven Easy Pieces〉는 실황 공연의 유동적인 상태와, 과거 작품을 재맥락화하면서 그 나름의 고정된 구조를 갖추게 된다. 이에 대해 유동적인 것과 구조적인 것의 이중적─양립 불가능한(incompatible)─상황을 지적할 수 있다. 여기서 도큐멘테이션은 과연 퍼포먼스가 특정한 시점에만 존재하는, 휘발되고 한시적인, 유동적인(mobilized) 특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묻는다. --- p.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