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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가는 대로
송라옥액 묵즙일적 앙와만록 기타 잡지 병상육척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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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항아리 속에 금붕어를 열 마리가량 넣어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나는 아픔을 참으면서 병상에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예쁜 것도 예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병상에 누워 홀로 듣고 있으면 울타리 밖에 이웃집 아낙네들이 서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재미있다. “이봐요, 초롱을 빌렸으면 새 양초를 끼워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것을 전에 넣어 두었던 양초까지 가져가 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이런 일이…”라고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있다. 지금의 정치가, 실업가 등은 모두 초롱을 빌려서 양초를 빼앗아 가는 쪽이다. 더욱 뻔뻔스러운 녀석은 초롱마저 가져가 버리고 태연한 얼굴을 하는 녀석도 있다. 손에 든 초롱/ 돌려줘 돌려 다오/ 두견새 우네 提燈を返せ返せと時鳥 (5월 24일) --- 본문 중에서 ·나는 지금까지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것을 오해하고 있었다.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죽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은 틀린 것으로,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 본문 중에서 ·10년 전쯤에 나는 일본화 숭배자로 서양화 배척자였다. 그 무렵 이잔 군과 우리나라 일본화와 서양화의 우열을 가지고 논쟁했으나 나는 좀처럼 질 기세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이잔 군이 일본화의 둥근 파도가 바다의 파도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며 다음으로는 일본화의 옆얼굴과 서양화의 옆얼굴을 나란히 그리고 그 다른 점을 설명해 주었다. 참으로 고집쟁이인 나도 완전히 아마추어였으므로 이 실질적인 이론을 듣고서는 반은 놀라고 반은 감탄했다. 특히 일본화의 옆얼굴에는 정면에서 본 눈이 그려져 있는 것이라고 듣고 매우 놀랐다. 그렇지만 그림의 좋고 나쁨은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이론으로 그 놀라움을 지워 버렸다. 그 후 후세쓰 군과 신문 ≪소일본≫에서 함께 일하게 되어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그 예의 그림에 대해 논쟁하곤 했다. 이때도 나는 일본화 숭배자였으므로 말하는 것마다 충돌했다. 내가 후지산은 좋은 산이라고 말하면 후세쓰 군은 속된 산이라고 말했다. 소나무는 좋은 나무라고 하면 후세쓰는 속된 나무라고 했다. 달마는 고상하다고 하면 달마는 비속하다고 했다. 일본 갑옷과 투구는 미술적이라고 하면 서양 갑옷과 투구 쪽이 미술적이라고 했다. 하나하나 충돌하므로 같은 인간의 감정이 이토록 다른 것일까 하고 너무나도 신기하게 여겨져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불쑥 하이쿠와 비교해 보고 나서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하이쿠에 후지산을 넣어서 지으면 비속한 구가 되기 쉽고 하이쿠에 소나무를 넣어 지은 구도 있지만 대개는 비속한 것이 많고 오히려 ‘겨울나무 숲’이라는 계절어를 넣어 지은 구에 우아한 것이 많다. ‘달마’를 시어로 해서 하이쿠에 넣으면 훨씬 운치가 없다. 이 정도의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그림에 적용해 보지 않은 것이다. 하이쿠를 모르는 사람이 후지를 넣어 지은 구를 보면 매우 기뻐하는 것과 우리가 후지산을 넣은 그림을 보고 왠지 모르게 좋아하는 것이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눈이 밝아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본화 숭배는 변함이 없으므로 일본화를 낮추고 서양화를 칭찬하면 뭔가 기분이 거슬려서 견딜 수 없다. 그래서 일본화와 서양화를 비교하는 것은 그만두고 일본화끼리의 비교 평론, 서양화끼리의 비교 평론 등으로 따로따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하니 하루하루 조금씩 알아 가는 기분이 들다가 10개월 정도 후에는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때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니, 비로소 일본화의 단점과 서양화의 장점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이잔 군과 후세쓰 군에게 항복했다. 그 후는 서양화를 배척하는 사람을 만나면 신경질이 나서 크게 토론을 벌인다. 끝내는 그 옛날 이잔 군에게서 배운 대로 일본화의 옆얼굴과 서양화의 옆얼굴을 그려 놓고 “이것 보시게, 일본화의 옆얼굴에는 이런 눈이 그려져 있어. 자네 실제로 이런 눈이 있는 게 아니잖아?”라는 등 대단히 자랑스럽게 지껄인다. 그 의기양양함에는 나 스스로도 놀란다. (1900년 3월 10일, ≪호토토기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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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 운문 문학의 혁신을 가져온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의 수필을 뽑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시키는 회화의 ‘사생(寫生)’ 기법을 문학에도 적용해, 일본 전통 시가의 주제를 관념의 장(場)에서 생활과 풍경의 장으로 옮겨, 근대 시가(近代詩歌)라고도 할 수 있는 하이쿠와 단카를 탄생시킨 사람이다.
22세 때부터 폐를 앓아 객혈을 시작한 시키는 30세에 지은 한시(漢詩)에서 “무사 집에 태어나 가문도 일으키지 못했고, 장가도 못 가 가계(家系)도 잇지 못했다. 어찌 조상을 볼 수 있을까? 다만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일본 문학사에 마사오카(正岡)라는 성(姓)씨가 기록되어 오래 남도록 하는 일”이라고 쓰고 있다. 시키는 그 자신의 다짐처럼, 생전에 하이쿠 혁신과 단카 활성화에 큰 공을 세웠다. 일본의 전통 시가인 와카(和歌)와 하이카이(俳諧) 및 그 작가들에 대해 면밀하게 연구하고 비평하는 학자인 동시에 그림을 그리고 시가를 짓는 시인이기도 했던 시키는 또한 수필을 남겨 우리에게 삶에 대한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마쓰야마(松山)에서 태어난 시키는 16세에 도쿄로 유학을 와서 그 이듬해인 1884년 2월 13일부터 수필 <붓 가는 대로>를 쓰기 시작한다. <붓 가는 대로>는 1892년까지 계속했으며, 그 후 1896년 4월 21일부터 12월 31일까지는 4대 수필 중 하나인 <송라옥액(松蘿玉液)>을 신문 ≪일본(日本)≫에 연재한다. 그 내용은 문명론부터 친구에 대한 평론, 회상이나 일상의 견문, 자녀 교육, 야구 해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척추 카리에스로 이승을 떠나기 2년 전, 더욱 병세가 악화해 가는 고통 속에서도 1901년 1월부터 7월에 걸쳐 수필 <묵즙일적(墨汁一滴)>을 ≪일본≫에 연재하며 9월부터는 병상일지나 다름없는 <앙와만록(仰臥漫錄)>을 쓰기 시작하고, 1902년 마지막 해에도 5월부터 9월까지 <병상육척(病牀六尺)>을 연재한다. 만년의 작품인 이 3대 수필에는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가 자신의 죽음마저 객관화해 보여 주는 갖가지 내용들이 표출되어 있다. 바깥세상과 본의 아니게 떨어져 지내게 된 시키가 “1년 내내, 그것도 6년 동안 세상 돌아가는 일도 모르고 누워 지낸 병자”인 자신을 자각하면서 쓴 이 수필들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생생한 삶의 기록이다. “병상 6척, 이것이 나의 세계다. 그럼에도 이 여섯 자의 병상이 나에게는 너무 넓다…”고 기술하는 시키의 <병상육척>의 세계를 함께 읽어 가는 것은 젊은이는 물론, 누구에게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그 작은 공간이 매우 밝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독한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의 객관적 사고방식은 흐트러짐 없이 미(美)적 세계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인간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유리 항아리에 담긴 금붕어를 보며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예쁜 것도 예쁜 것이다”라고 즐기며 기뻐하는 모습이라든가,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잘못으로,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사는 것이었다”는 단상, 또는 태연히 산다 해도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하면 살아 있는 가치가 없다”는 등의 어록(語錄)은 성자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 특히 1901년부터 1902년에 걸쳐 쓴 세 수필에는 병고에서 해방되고 싶은 소박한 소망에서부터 하이쿠, 단카, 문학과 미술에 관한 비평, 물감으로 그린 정물화, 위문품의 일람표, 식사 메뉴, 조선 옷 입은 소녀의 그림, 세계의 문명론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것들이 실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병상육척>은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열려 있는 소우주나 다름없다. 늘 죽음을 느껴야 하는 인간이 갖는 분노, 절망, 자기 연민에서부터 죽기 닷새 전에도 낫토 파는 장사꾼까지 배려한 따뜻한 마음이 함께 녹아 있는 살아 있는 문학이다. 여기서는 시키가 남긴 수필집과 또 때때로 잡지에 실은 수필 중에서 시키의 생활이나 정신적인 내면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문장을 골라 주로 연대순으로 엮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