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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서문 자서(自序) 서론 제1장 베이징 대학 문과의 국고정리운동의 형성 제1절 동성파의 몰락과 장타이옌 문생들의 굴기 제2절 문화계몽과 고증학풍 제3절 '국고'와 '국고정리' 제2장 베이징 대학 국학문의 창립과 발전 제1절 국학문의 창립 배경 제2절 국학문의 조직 구조 제3절 국학문의 학회 창립과 활동 제4절 프랑스 동방학과 일본 동양학이 민국 초기 학술계에 끼친 충격 제3장 베이징 대학 국학문의 국고정리의 방향 제1절 「국학 계간ㆍ발간 선언」: '신국학'의 연구 강령 제2절 『국학 계간』, 『국학문 주간』, 『국학문 월간』 제3절 새로운 학술영역의 개척 제4장 베이징 대학 국학문이 현대 학술발전에 끼친 영향 제1절 새로운 학술연구기지의 구축 제2절 국고정리운동의 확대 결론 참고문헌 후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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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 최초의 체계적 학술운동, 베이징 대학 연구소 국학문
중국 근대학술의 발전은 중국 근대민족운동으로 인한 현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 근대의 현대화 과정은 아편전쟁 이후 서양의 강한 군대를 배우는 것에서부터 갑오전쟁 이후의 정치개혁과 정치혁명을 거쳐 마지막으로 '5ㆍ4운동'에 따른 이데올로기 영역의 거대한 변동에 이르기까지, 유형(有形)의 것들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그 사이에 제도적 전환을 겪고 마지막으로 무형의 사상적 변화를 겪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 전후 맥락이 파악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세기 초반은 중국학술사에서 백가쟁명의 시기였다. 학술사상의 자유와 학술유파의 다양성, 학술정기간행물의 범람 등이 이 시기의 두드러진 특색이다. 또한 이 시기에 유입된 서방 학문은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지식과 학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요구했고, 이러한 변화는 학술연구기구의 성립과 학술문화운동으로 나타났다. 이는 곧 이 책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 1922년 중국 최초로 대학에 설립된 국학연구기구인 베이징 대학 연구소 국학문(國學門, 1922~27)과 국학문 동인들에 의한 '국고정리운동'(國故整理運動)으로 구현되었다. 이 책은 바로 베이징 대학 연구소 국학문을 중심으로 민국 이후 중국의 학술연구기구가 제도화되는 과정과 이와 관련된 일련의 학술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하고 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서방 학문의 세례 속에서 어떻게 '중국 학문'을 세울 것인가: '학술 독립' 학술연구기구가 학술발전을 추동하듯이 국학연구와 정리를 목적으로 성립된 '국학문' 역시 국학연구와 학술발전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이를테면 서학의 유입과 함께 청대 이래 경학(經學)이 주도했던 전통 학술구조가 와해되면서 국학문 동인들은 전통 학문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새로운 학문 연구의 방법과 태도, 학문영역의 확대, 학술 독립과 평등 및 학문분류체계 등에 대한 새로운 학술적 관념을 형성해 나갔다. 이처럼 20세기 이후 서학이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민족주의가 날로 팽배해지자 지식계는 '대응'(對應)과 '자생'(自生)의 차원에서 서학에 필적할 만한 자생력을 갖춘 학술적 독립을 추구하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과 구미 학술계에서 한학(漢學)을 연구해 얻은 성과가 국학과 관련한 연구소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 그러므로 당시 중국의 '학술 독립'은 차이위안페이(蔡元培)와 국학문의 입장에서 보면 실로 절박한 것이었고, 국고정리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에 구미 제도를 모방한 연구소를 건립하는 일이 하루 빨리 '학술 독립'에 이르는 길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결국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서방 학술의 흥성과 특징을 잘 알았던 차이위안페이를 비롯해 중국에서 학문을 추구한 구제강(顧?剛)과 같은 젊은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국학연구와 학술발전을 추동할 전문연구기구를 건립해야 한다는 공동의 인식은 국학연구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으며, 국학문이 탄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베이징 대학 연구소 국학문은 구미식의 연구기관을 모방해 설립한 것이지만, 최초의 이상과 목표는 '국고정리'에 있었다. '국고정리'는 바로 자신의 가업을 정리한 뒤 세계 학술계에서 하나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는 결국 국학문 동인들의 국고정리 활동이 자각적 인식에서 비롯되었든 대응적 자세에서 출발했든, 그들은 당시 거세게 다가오는 서방의 물결 앞에서 어떤 식으로든 변화에 대처해야만 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 바로 국학문 동인이 있었던 것이다. 방대한 사료 분석을 기반으로 중국 학술운동사의 태생기를 복원 저자는 이 책에서 베이징 대학 연구소 국학문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학자'(국학문 동인, 외국 한학자)와 '학술조직'(출판물, 학회), '학술운동'(국고정리, 신국학)이라는 세 가지 점에 초점을 두고 20세기 초의 현대 중국의 학술운동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한편 '국고정리'라는 구호는 어떤 상황 속에서 제기되었고, 이 구호가 많은 학자들을 응집시킨 흡인력은 무엇이며, 현대 학술연구의 진지로서 국학문 동인들의 국고정리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당시 중국 학술계가 처한 상황을 또한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베이징 대학 자료실에 소장된 국학문의 자료에서부터 베이징 대학과 국학문이 출판한 각종 간행물과 총서, 선전 책자, 잡지 등을 대량으로 참조했고, 개인적인 면에서는 국학문 동인들의 학술 논저와 회고 문장, 일기, 자서전, 서신 등의 방대한 자료를 망라하여 현대적 의미에서의 초기 중국 학술운동사의 진면목을 총체적으로 조망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