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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
들어가며 A. 삶의 주인되는 자리 1. 당신 안의 부처의 열망 2. 법칙으로 주도하는 삶 3. 죽음이 주는 깨달음, 참나 4. 되찾은 본전本錢 5. 상생의 묘妙, 다함께 잘사는 세상 6. 상생의 길道 7. 1+1=3, 지속적 성장의 비밀 8. 변화가 주는 기회 9. 속도보다는 방향과 방법 10. 성공채널, 경험자의 조언 성공에서 성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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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겨우 관크기만해서 자신의 몸뚱이도 겨우 담을만 하면 자기 사지육신도 움직일 여유조차 없어서 사는 게 고통스럽고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가슴이 세상크기 만하면 천하가 내집이라 무엇이든 마음먹은대로 할 수 있고 언제나 자유롭습니다.
열망은 마치 사막에 매장된 엄청난 양의 석유와도 같습니다. 석유는 아무리 많더라도 꺼내어 불을 붙이고 사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열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이 붙어 에너지가 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고자 하는 열의도, 그것을 하게 하는 열정도 나오지 않습니다. 열의와 열정이 바로 마음이 가진 창조적 힘이 원하는 현실을 이루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그런데 열망에 불이 붙어 열의와 열정이 나오지 않으면 창조적 힘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상황과 환경에 이끌려 다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마음이 가진 창조적 힘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그런 힘은 본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상황과 환경을 원망하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며 시간을 낭비합니다. 제 아무리 나와 나 아닌 것으로 나누어도 결국 나와 나 아닌 것은 하나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 자기가 자기에게 한 일일 뿐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한 그것이 그대로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이것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메아리 법칙’이라고 합니다. 모든 변화에 대해 일단 긍정하십시오. 인간의 의식은 기록된 정보에 의존하여 판단할 뿐, 기록된 정보가 실제와 같은지는 전혀 따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신 위주의 관점으로 보고 하는 판단이라 결과를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현실의 변화에 대한 판단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의식이 현재의 변화를 좋다거나 나쁘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도 사실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분별에 의존하지 말고 법칙에 의존하십시오.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에 대한 답은 간단한 질문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항상 스스로에게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잘해줄까?’하고 지금 여기 자기인연을 이롭게 하는 질문을 하면 됩니다. 이 질문에 대해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을 새로운 세상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변화시키게 됩니다. 이것이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는 창조적인 질문이며 변화에 대한 가장 훌륭한 협상기술인 동시에 창조적 변화를 위한 기도입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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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잘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덕분에 이루어집니다.
눈뜨고도 보지 못한 하나의 진실, ‘덕분입니다.’ 알고나면 ‘하는 것’이 곧, ‘되는 것’이 되는 확인하는 성공습관 5%만 잘하십시요. 나머지는 덕분에 이루어집니다.‘하는 것’이 곧 ‘되는 것’이 되게 하는 법法 우리의 모든 생각은 ‘나’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치관과 행동을 결정한다. 그러나 행동에 따른 결과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결정되며 이에 따라 움직이는 우주의 생각은 ‘전체’로 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의 생각과 우주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이렇게 다르니 사람의 생각과 나타난 결과는 일치하기 어렵다. 결국 우리는 선천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사고구조를 가지고 태어난 셈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공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을 갈구하면서 하는 판단과 행동이 전혀 엉뚱한 것이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물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있다. 첫째,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는 사람이 하는 것을 따라 해보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하면 된다. 법칙이 몸이 되면 그것이 곧 깨달음이다. 둘째, 당신이 자연의 법칙을 깨달으면 된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나’와 ‘나 아닌 것’을 나누지만 실제로 그 둘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이것을 깨닫고 자신을 바라보면 자신이 어떤 결과를 얻을 때 자신이 기여하는 것은 불과 5%도 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우주이고 자연이다. 이렇게 깨달아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면 ‘하는 것이 곧 이루는 것’이 된다. 이 때에 하는 것은 이전에 불안과 의문 혹은 낙관적 기대 속에서 하는 과는 전혀 다르다. 결국, ‘하는 것’이 ‘되는 것’, 그 자체이므로 ‘하는 것’은 ‘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일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