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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찬시(藝人讚詩) 출간을 심축하며
소서(小序) 일러두기 1. 딴청일쑤 명창 고수관(高壽寬) 2. 자연의 솜씨를 빼앗은 송흥록(宋興祿) 3. 덜미소리의 모흥갑(牟興甲) 4. 경드름을 개발한 염계달(廉季達) 5. 자존심의 명창 박만순(朴萬順) 6. 광대 가르친 사부(師傅) 신재효(申在孝) 7. 춘향가의 독보 김세종(金世宗) 8. 서편제의 비조(鼻祖) 박유전(朴裕全) 9. 개천의 용 이날치(李捺致) 10. ‘도리화가’의 주인공 진채선(陳彩仙) 11. 하늘이 시험한 정창업(丁昌業) 12. 외눈에 오수경 쓴 박기홍(朴基洪) 13.비갑이 명창 권삼득(權三得)?정춘풍(鄭春風) 14. 판소리사의 중조산(中祖山) 감창환(金昌煥) 15. 근대 판소리계의 지존 송만갑(宋萬甲) 16. 새타령의 대명사 이동백(李東伯) 17. 고제 판소리 3대 김창룡(金昌龍) 18. 떡목을 타고난 대명창 정정렬(丁貞烈) 19. 수궁가의 지존 유성준(劉成俊) 20. 나물 뿌리 향내 같은 소리 이선유(李善有) 21. 북과 춤의 일인자 한성준(韓成俊) 22. 동편 소리 서슬 퍼런 장판개(張判盖) 23. 꽃 가운데 신선 이화중선(李花中仙) 24. 가야금병창의 아버지 오태석(吳太石) 25. 가야금의 선인(仙人) 심상건(沈相健) 26. 판소리 새 장을 연 가선(歌仙) 정응민(鄭應珉) 27. 20세기 판소리의 신화 임방울(林芳蔚) 28. 연잎의 푸른 구슬 같은 박녹주(朴綠珠) 29. 동초제의 시조 김연수(金演洙) 30. 저녁 물가의 백학 같은 김소희(金素姬) 31. 아미산의 초승달 같은 박초월(朴初月) 32. 고수가 천직인 이정업(李正業) 33. 온 바탕의 본을 보인 박동진(朴東鎭) 34. 가야금병창의 대모 박귀희(朴貴姬) 35. 고법의 최고봉 김명환(金命煥) 36. 불운을 극복한 비운의 명창 박봉술(朴奉述) 37. ‘박(樸)’과 ‘실(實)’의 명창 정권진(鄭權鎭) 38. 명창에서 고수로 전업한 김동준(金東俊) 39. 풍류춤의 거인 김수악(金壽岳) 40. 현대 동편제의 거목 박송희(朴松熙) 41. 음악의 신 한일섭(韓一燮) 42. 동초제의 중흥조 오정숙(吳貞淑) 43. 보성소리의 거장 조상현(趙相賢) 44. 봄밭 유채꽃 같은 성우향(成又香) 45. 보성소리에 일생을 건 성창순(成昌順) 46. 연향을 못다 피운 안향련(安香蓮) 47. ‘구전성공’의 동편제 명창 송순섭(宋順燮) 48. 아쟁에 소리가 가린 김일구(金一球) 49. 박동진 명창의 30년 짝 주봉신(朱鳳信) 50. 장단 하나로 통하는 김청만(金淸滿) 51. ‘미친산조’의 명인 백인영(白寅榮) 52. 보비위 북의 명인 이낙훈(李洛薰) 53. 국악계의 프리마돈나 안숙선(安淑善) 54. 늘 푸른 명창 김영자(金榮子) 55. 일찍 꺾인 대들보 은희진(殷熙珍) 56. 곰삭은 수리성의 진수 김수연(金秀姸) 57. 아미산 달 그림자 같은 전정민(全貞敏) 58. 춤의 근원을 찾는 차명희(車明姬) 59. 송계(松溪)의 손자 정회석(鄭會石) 60. 송계의 가을달 같은 윤진철(尹珍哲) 61. 왕씨 삼형제의 막내 왕기석(王基錫) 62. 판소리계의 오채봉추 염경애(廉敬愛) 63. 하늘이 낸 소리꾼 장문희(張文熹) 64. 법고창신의 소리꾼 백현호(白現瑚) 부록 1. 관극시를 되살린 이영민(李榮珉) 2. 광대열전을 선보인 정노식(鄭魯湜) 관극시 명단 삼가 백사 선생의 관극시집 출판을 축하하며 저자 소개 |
崔英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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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극시란
관극시는 판소리를 감상한 뒤 지은 한시를 말한다. 조선 순조 때의 유명한 시인 자하(紫霞) 신위(申緯)가 처음으로 붙인 말이다. 관극시의 전통은 오래 되었다. 판소리가 나오기 이전에도 전통 연희(演?)를 보고 느낌을 시로 옮긴 경우가 있었다. 신라 말기의 학자 최치원(崔致遠)은 당시의 가면극 오기(五伎)를 보고 그 모습을 다섯 수의 시로 남겼다. ‘향악잡영(鄕樂雜詠)’이 그것이다. 고려 시대의 학자 목은 이색(李穡)은 당시 세모(歲暮)에 대궐에서 역귀와 악귀를 쫓기 위해 행하던 ‘구나희(驅儺?)’를 보고 ‘구나행(驅儺行)’이라는 제목의 장편시를 남겼다. 이런 것들도 관극시의 전통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신위의 관극시는 12수이다. 관극시의 전범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높다. 이후 신위의 후배 세대인 송만재(宋晩載)가 ‘관우희(觀優戱)’라는 제목의 절구 50수를 지어 관극시의 전통을 계승하였고, 1930년대 국악애호가인 이영민(李榮珉) 역시 판소리 명창 등 54명의 예인을 기리는 관극시를 발표하여 다시 그 뒤를 이었다. 하나의 장르로 확고한 위상을 정립한 것은 아니지만 최치원으로부터 이영민에 이르기까지 단절되지 않고 내려 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전통연희, 판소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사료로서도 그 기능이 적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