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비대면 시대의 종교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Part 1 팬데믹에 심판당한 종교코로나19에 멈춰버린 설국열차비대면 접촉은 신앙의 진화 과정한국교회의 추락하는 날개, 전광훈신천지 이만희 씨의 박근혜 시계는 가짜? 교회가 현장 예배를 고집하는 이유 코로나19로 자꾸 소환되는 예수부활절, 바이러스와 숙주의 관계침몰하는 종교계의 생존방식?개신교⊂기독교≠개독교?기독교이러다 교회가 차별금지법의 수혜자 된다?상대주의와 종교의 운명선택적 정의와 내로남불의 관계영화 〈부산행〉과 예수의 죽음 민주주의가 역겨운 보수와 힘겨운 중도박창진, 좀비들의 먹잇감 그 상징성 대통령의 7시간, 종교와 정치의 관계Part 2 제도종교를 버려라새 하늘 새 땅이 세렝게티의 무저갱에서 열리다! 종교 탈출 쉽지 않아성직자를 타락시키는 신자들십일조 보장성 보험교회가 가난해야 하는 이유정의, 그 위험한 포장술혐오의 난장판, 공포의 시뮬라시옹 아브라함의 종교,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영지주의는 이단?이단의 매력, 선택지 적은 유혹무속신앙은 미신?사대주의는 우리의 운명?종교와 경전의 관계 사탄의 탄생과 진화갑질, 계급질? 문제는 민주주의! 여적여, 혐오의 본질 바벨탑의 설계 원리, 강제전도바벨탑의 전설, 불통 지옥우리 사회와 종교의 미래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펭수, 스타, 아이돌 그리고 우상화 Part 3 종교, 섹스, 그리고 신앙 ‘아가’는 감미로운 사랑 노래가 아니다가나안 종교와 여신, 우상숭배 구약성서가 말하는 모성고대 유다 여성의 지위와 순결 문제 성폭행 목사 vs 다윗금욕과 신앙의 관계동성애 박해의 교회법 역사동성애 관련 구약성서 구절동성애 관련 신약성서 구절동성애 반대가 신앙 영역?기 베슈텔, 신의 네 여자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마녀사냥의 새 버전, 미투에서 펜스룰로신본주의 vs 휴머니즘 vs 페미니즘IS 여성들과 82년생 김지영과 극우교회 여인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Part 4 잠깐, 신앙은 버리지 말아봐신학과 종교학의 차이경전 통합이 필요해?성서해석의 자유로움 성서를 읽는 방법유일신의 꼬이는 계획들예수, 진보, 가난, 억울함이스라엘의 예언자들고통과 연대오늘날 신학의 역할귀 있는 자는 들어라반시대적 고찰, 니체와 검은 사제들은하철도 999의 종교성죽음은 마지막 통과의례모르는 게 약? 무지는 죄!그나마 종교가 있어서신, 당신은 누구인가?신성모독과 우상숭배의 경계신의 딜레마, 악과 고통의 실재종교와 신앙의 관계
|
|
차별과 혐오의 발신지인 교회가 ‘차별금지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혹은 블랙코미디기독교는 한국 사회의 반공주의 확산에 복무했다. 이북에 기반을 두었다가 월남한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교회가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정권과 결탁해 사회의 진보세력과 상식세력에 빨간 덧칠하기 여념이 없었다. 점차 레드 콤플렉스가 퇴색하면서, 혐오의 표적은 동성애와 이슬람교인 등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소수자를 향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퀴어 축제가 열릴 때면, 한쪽 편에서 난리굿을 펼친다. 한국 사회의 일반 시민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감에도 개신교는 한참 더딜 뿐만 아니라 심지어 변화의 흐름을 가로막으려 든다. 시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짜뉴스까지 퍼트려가며 막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차별금지법’ 반대는 특히 동성애자를 향하고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성서를 문자 그대로 읽는 ‘축자영감설’과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성경무오설’에 근거해 동성애 반대의 근거를 제시하지만, 해석학적 맥락에서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근거는 다소 빈약하다. 저자는 일단 동성애 문제를 성서에 기반을 두고 신학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매우 어렵다고 한다. 성문화가 구약시대 다르고 신약시대 달라서 같이 놓고 정리도 잘 안 될뿐더러, 그 구절들이 모호해 해석상 합의를 보기가 거의 불가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한때 문명과 문화를 이끄는 최첨단이었으나,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서 처지고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형국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그런 점을 여지없이 노출시켜, 혐오와 차별의 발신지였던 기독교는 ‘기독교인 출입금지’라는 문구의 등장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이 그토록 제정을 반대했던 ‘차별금지법’의 수혜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약간 조롱 섞인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비판의 소리를 듣고 있다.어쩌다 우리는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가?종교 없는 신앙은 가능할 것인가?저자는 한국 사회의 종교에 대해 뼈아픈 성찰을 전개하지만, 아이를 목욕시킨 후 물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버리는 태도를 경계한다. 종교의 여러 폐단 못지않게 종교가 인간사회에서 이어온 긍정적 측면과 문화의 총체라는 사실마저 부정하지는 말자고 한다. 그러면서 21세기의 종교와 신앙의 양상을 제시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제도종교에 구속받지 않는 신앙의 양상은 사실 기독교가 융성했던 서구사회에서 등장했다. ‘선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다. 일요일에만 경건한 마음으로 종교예식에 참여하는 신자를 조롱하는 말이지만, 한편 어찌 되었든 주일을 거르지 않아야 한다는 제도종교의 불문율을 반영한 말이기도 하다. 저자는 코로나19가 함께 종교 예식을 치르는 데 치중한 제도종교의 관행에 타격을 가했음을 지적한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처음으로 종교 예식이 중단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됨으로써 ‘대면’의 신앙생활에서 ‘비대면’의 신앙생활이 함께하게 되었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는 처음엔 종교계에 극심한 타격을 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신앙생활의 폭을 넓혀주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저자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제기했던 제도종교에 매이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자는 논지와 맥을 같이한다. 바이러스가 밝혀준 종교의 미래,길 잃은 기독교를 향해 이처럼 예리하게 파고든 책은 없었다!중세 말기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 사람들은 성당 안에 들어가면 그 혹독한 감염병을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임으로써 병은 더욱 확산되었고, 그들이 믿었던 피난처는 병의 전파지가 되고 말았다. 최근 코로나19를 둘러싼 종교계의 모습은 중세기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지 모른다. 코로나19를 통해 스스로 온전히 돌아볼 수 있다면, 본연의 역할이라는 차원에서 두고 본다면 이 사태에서 최대의 수혜자는 역설적으로 종교일 수 있다. 저자는 무지몽매한 종교를 극복해야 온전한 신앙인으로 살 수 있다고 재차 주장한다. 시대는 변하고 종교가 관할했던 많은 영역은 일반 사회로 옮겨졌다. 이를 다른 말로 ‘세속화’라고 하는데, 건강한 종교는 사회와 조화해야 한다. 세상의 상식과 어울리며, 시민적 감성과 수준을 외면하지 말아야 종교는 건강해지고 그 본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현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된 종교의 속살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심도 있게 분석했다. 저자의 심도 깊은 비평은 더는 외면받지 않는, 더는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에서 활기차고 건강한 종교와 신앙생활의 첫걸음을 떼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