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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_5
제1부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 12 싱글 맘 · 14 공평무사 · 16 국경을 넘는 여자들 · 18 누에 · 22 더 컨덕터 · 23 조(JOE) · 26 굴다리 여자 · 30 후남 언니 · 32 머리를 감는 동안 · 34 구멍들 · 36 바캉스 베이비 · 38 어미 거미 · 42 구체관절인형 · 44 증언의 시작 · 46 제2부 자몽 · 52 회전목마 · 53 수족관 · 56 트렁크의 노래 · 58 계수나무 남자 · 60 그녀가 사는 법 · 62 벽 장미 · 64 짧은 머리의 자화상 · 66 자전거를 타는 여자 · 68 여신 쿠마리 · 71 모피를 입은 남자 · 74 이토록 추운 2월의 밤에 그토록 추웠던 2월의 밤을 기억한다 · 76 동행 · 78 진성여왕을 위한 변명 · 80 떨어진 곳에서도 들리는 말 · 82 제3부 폐업 신고 하던 날 · 88 적요 · 91 복면을 만드는 밤 · 92 어떤 밤길 · 94 백남기 우리밀 · 96 반도체 소녀 · 98 공정거래 · 100 건강원 앞 쪽화단 · 101 터진목 해안에 와서 · 102 겨울 아침 · 104 허공에 매달린 사내 · 106 나는 다 봤습니다 · 109 솔롱고스 · 112 블랙 슈트 · 114 제4부 반려 · 120 선인장 · 121 곰보 삼촌 · 122 서둔동인지 탑동인지 · 124 나와 조랑말과 마부는 · 126 마호바 역에서 · 128 사라진 연못 · 130 귀 · 132 여름 숲 · 134 목걸이 · 136 로드무비 · 138 첫눈 · 140 세족 릴레이 · 141 바위무화과나무 · 142 해설 ‘F’라는 고유한 시의 성좌 | 최 진석 · 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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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투성이 열 개의 손가락을
부챗살처럼 펼칠 때 그녀는 여름꽃 갈퀴 같다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털털하게 말할 때 그녀는 오히려 빛나지 가녀리고 나긋나긋한 고객들의 손을 슬쩍, 곁눈질도 해보지만 이내 가위를 들고 몰입하지 샴푸를 하고 염색약을 바르지 마디 굵고 거친 손에 어린 딸 셋과 그녀의 전부가 걸려 있지 아이들을 차례로 씻기고 밥을 안치고 돈을 세는 만능 손이 자신의 몸을 더듬을 때 그녀는 겨울나무 ---「싱글 맘」중에서 새벽 변두리 공중목욕탕 어스름 한가운데 플라스틱 바가지를 베고 바닥에 모로 드러누운 누에 한 마리 굽은 마디들 듬성한 백발 노역에 닳은 몸은 자루 같은 가죽만 남아 마지막 뽕잎을 갉아 먹고 영원히 잠들었네 환기통으로 날아오르는 새하얀 나방 ---「누에」중에서 오늘 밤 안으로 국경을 넘어야 한다 퍼붓는 비는 야속하고 어린 아들은 칭얼댄다 얘야, 조금만 참자 달래기도 전에 등에 업힌 아이가 조용하다 잠든 거겠지? 그냥 잠이 든 거다 나쁜 생각은 하지 말자 나쁜 생각 따위 하지 말아야 한다 새도 꽃도 빵도 아무것도 없는 국경 근처 신발은 자꾸 진흙 속으로 빠져든다 오늘 밤이 고비다 하루만 더 버티게 해달라며 어금니를 깨무는 밤 아침은 언제 밝아오는 걸까 오늘 밤 안으로 국경을 넘어야 산다 ---「어떤 밤길」중에서 흑염소 달이는 냄새가 종일 진동하더니 저녁에 흰 작약이 피었다 밤새 소쩍새가 울었다 ---「건강원 앞 쪽화단」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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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의 눈!
김선향 시인의 두 번째 시집 『F등급 영화』는 여성 해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감각적으로, 하지만 역사의 무게까지 감당하면서 천착하고 있다. 첫 시집에서 가부장제라는 ‘새장’을 박차고 나왔지만,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또 다른 곤경에 처한다는 진실을 육화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면, 이번 시집은 보다 더 경쾌하게 때로는 비통하게 여성과 여성의 ‘역사’를 노래한다. 한편으로는 현실에 대한 직접적 목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진전된 인식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최진석은 “신체와 감각을 관류하는 경험의 순간이 즐거움의 장 속으로 삼투되고” 있다고 했지만, 시인이 여성의 ‘역사’를 다룰 때는 조금 다른 면모도 아울러 보여준다. 자전거야말로 여성해방의 도구입니다 페달을 밟자, 쌩쌩 페달을 밟자, 더 멀리, 더 빨리 모험을 감행하자, 자유를 얻을 때까지 바람을 일으키며 질주하자, 세상 끝까지 ―「자전거를 타는 여자」 부분 일본 군인들이 자신의 몸을 짓밟든 말든 자신의 영혼을 갈가리 찢든 말든 말문이 닫힌, 병든 검은 새는 아편만 찾았다지 쓸모가 없어진 그녀를 일본 군인들은 만주 벌판에 내다 버렸다지 낮밤으로 들리던 그녀의 울음은 까마귀 울음과 닮았다지 ―「후남 언니」 부분 「자전거를 타는 여자」는 명랑하게 여성해방을 말하고 있지만, 「후남 언니」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성의 ‘역사’를 비통하게 담고 있다. 물론 「후남 언니」가 일본군 ‘위안부’ 여성을 노래하고 있기에 그 비극성이 더 도드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작품에서도 ‘위안부’ 여성의 아픔에 김선향 시인은 적극 동참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남성의 ‘역사’에 짓밟히고 있는 여성의 ‘역사’에 그만큼 예민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실 「자전거를 타는 여자」 앞부분에는 19세기에 만연했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분노를 억눌러가며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의 뒷부분에서 보여주는 명랑성도 사실은 울음을 머금은 웃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김선향 시인은 “집에나 처박혀 있어,/이 나쁜 년들”이라는 남성의 언어가 일본군 ‘위안부’ 여성이라는 남성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 김선향 시인은 현재의 사안을 모두 젠더적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여성의 ‘살아 있는’ 눈으로 현실을 재해석하는데, 그것은 젠더 문제와는 조금 떨어진 것 같지만, 그것은 젠더 문제마저 규정하는 현실적 조건이기도 하다. 건강하게 다른 존재와 연대하기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가게가/ 문을 닫고 개업을 하고/ 다시 망해 나가떨어지는” 현실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끌어들여 자신의 현실과 겹쳐놓는다. 그런다고 해서 이주노동자들을 감상적으로 연민하거나, 그들의 처지를 통해 자신을 위로하지도 않는다. 뜻밖에도 시인이 발견한 것은 그들의 “토란잎 같은 미소”의 ‘생생함’이다.(「폐업 신고 하던 날」) 만일 김선향 시인에게 ‘다른 페미니즘’이 있다면 이 부분이고 또 명랑성이 있다면 다른 존재에게서 발견하는 삶의 건강이다. 사실 명랑은 건강하지 못하면 갖지 못하는 것이다. 「적요」라는 짧은 시에서도 시인이 삶을 얼마나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드러난다. 독산동 우시장 28호 소 머리통을 매만지는 여인의 골똘한 눈동자 능수능란한 손놀림 ―「적요」 전문 정육점에서 “소 머리통을 매만지는 여인”에게서 ‘골똘함’과 ‘능수능란함’을 발견하는 대목은 시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며, 그만큼 시인의 눈이 건강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실 김선향 시인의 건강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도발적인 작품들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너는 비단옷을 버리고 탐스러운 머릴 자른다 여왕이 아닌 여자가 되어 홀연히 순례를 떠난 너는 그해 겨울 영원히 세상을 버린다 너는 그제서야 본래의 너로 돌아간다 ―「진성여왕을 위한 변명」 부분 난 세상의 금기와 위선에 꿋꿋이 맞설 거예요 언덕 위의 굽은 나무처럼 난 나의 색정증色情症마저 사랑해요 ―「조(JOE)―F등급 영화 2」 부분 하지만 남성에게는 여성의 쾌락에 참여할 역량이 없다. 단지 그 쾌락을 한편으로 멸시하면서 한편으로 폭력을 통해 빼앗으려 한다. 이에 대해 김선향 시인은 “엿 먹어라”(「구멍들」)고 맞받아치지만, 아직 여성에게는 사회적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그에 대한 실존적인 자각이 이 시집 전체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 힘을 회복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김선향 시인은 남성들에 대한 맞장 보다는 여성들과 같이 차별받고 억압받는 존재들과 연대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게 김선향의 시를 다른 페미니스트 시인들과 달리 읽히게 한다. 이것은 시적 전략이면서도 시인 자신의 실천적 전략 같기도 하다. 그것을 찾아내고 느끼는 것은 독자의 몫인 것 같다. 시인의 말 첫 시집 『여자의 정면』 이후 4년이 흘렀다. 뒤집어엎지도 다시 새로워지지도 못했다. 그러니 길을 따라 벼랑까지 걸을 수밖에. 뚜벅뚜벅 소걸음으로 가자. 저녁 어스름엔 울면서도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