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 비평가들을 위한 응급조치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George Bernard Shaw
조지 버나드 쇼의 다른 상품
임성균의 다른 상품
|
백만장자인 언더샤프트를 통해 나는 우리 모두가 끔찍해하고 부정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자연적 진실에 대해 지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한 인물을 그렸다. 그 진실이란 바로 가난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고 가장 나쁜 범죄이기에, 우리의 최우선 과제, 즉 이를 위해 다른 모든 고려 사항이 희생되어야 하는 과제는 가난해지지 않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정직하다”거나 “존경스런 가난뱅이” 또는 이와 비슷한 말들은 “주정뱅이지만 귀엽다”거나 “사기꾼이지만 저녁 식사 후에 즐거운 대화 상대”라거나 “멋진 범죄자” 같은 표현처럼 비도덕적이고 견딜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가난의 위협이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거나, 소위 폭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 주는 것이 오로지 경찰이 우연히 주변에 있다는 사실 뿐이라면, 문명의 가장 큰 허상인 안전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 p.18, 「서문」 중에서 바바라 : 멈추세요. (언더샤프트는 쓰기를 멈춘다. 모두가 놀라서 그녀를 돌아본다.) 베인스 부인, 정말 이 돈을 받으실 건가요? 베인스 부인 : (깜짝 놀라며) 왜 안 받아요? 바바라 : 왜 안 받냐니요! 제 아버지가 뭐 하는 분인지 아세요? 색스먼담 경이 위스키 만드는 봇저라는 걸 잊으셨어요? 그가 봇저 위스키라고 쓴 불꽃 글자를 하늘에 쓰는 걸 막아 달라고, 그래서 강둑에 있는 불쌍한 술주정뱅이들이 하늘에 쓰인 사악한 신호 때문에 죽음의 갈증을 느끼지 않고 잠에서 깰 수 있게 해 달라고 우리가 시의회에 얼마나 간절히 탄원했는지 기억하세요? 아시나요, 제가 여기서 싸워야 했던 최악의 상대는 악마가 아니라, 바로 그 봇저, 봇저, 봇저, 그의 위스키와 그의 양조장과 그의 직영 술집이었다는 걸? 우리 숙소를 그의 또 다른 직영 술집으로 만들고 저보고 지키라고 하실 건가요? 빌 : 그건 골 때리는 썩은 위스키이기도 하지. 베인스 부인 : 사랑하는 바바라. 색스먼담 경도 우리 중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 있어요. 하나님이 그의 돈을 선하게 쓸 방법을 찾았다면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반대하고 나서야만 할까요? --- p.208~209 |
|
<참령 바바라>는 백만장자의 딸이자 백작의 손녀로 사회적 부와 지위를 모두 타고났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구세군 일원이 되어 빈민 구제에 앞장 서는 여성 바바라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녀의 이상은 죄지은 이웃들을 회개의 길로 인도해 영혼을 구제하는 데 있다. 하지만 절도와 폭력, 음주와 도박의 죄악이 ‘빈곤’ 가운데서 더욱 만연한 현실 앞에 바바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웃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선 이들을 먼저 가난에서 구제해야 하고,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선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며, 막대한 자본은 ‘전쟁’이라는 크나큰 죄악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경도되어 직접 좌파 단체인 페이비언 협회를 설립하기도 했던 버나드 쇼는 극 중 언더샤프트에 자신의 사회, 정치적 관점을 투영하며 참령 바바라의 이상주의를 거세게 뒤흔든다. 언더샤프트의 말대로라면 “가난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다. 죄에 빠진 영혼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건 기도가 아니라 풍족하게 먹을 음식과 안전한 집이다. 그리고 군수업자 언더샤프트에겐 모두에게 음식과 잘 곳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재산이 있다. 끔찍한 전쟁으로 벌어들인 돈이다. 언더샤프트가 깨우쳐 준 무자비한 현실 앞에 바바라의 신념은 속수무책 무너지기 시작한다. <참령 바바라>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을 흔들고 종교와 낡은 도덕 관념에 교묘히 가려져 있던 현대사회의 속성을 보여 준다. 비록 현실과 타협해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영혼의 고귀함과 인간 존엄을 믿고 바라는 우리 모두에게 <참령 바바라>에 비친 쇼의 냉소주의는 더욱 차갑게 와닿는다. 이 책에는 작품 전체 분량에 맞먹는 길고 긴 서문이 실려 있다. <참령 바바라>를 향한, 나아가 쇼를 향한 세간의 비판과 오해를 잠재우기 위한 글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아일랜드 극작가로서 쇼의 뿌리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쇼는 자신을 굳이 유럽의 사상가, 작가와 연결지으려는 비평가들의 시도를 열거한 뒤 자신의 뿌리가 유럽 대륙이 아닌 아일랜드에 있음을 밝힌다. 자신에게 붙는 ‘입센주의’라는 수식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이어 후반부엔 <참령 바바라>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유물론 관점을 직접 강설한다. 작품에 대한 작가 자신의 해설인 셈이다. 쇼와 그 작품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텍스트다. 비평가, 정치적 활동가, 논객으로서 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극작가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확고하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깨부수고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의미에서 영문학사상 그의 서열은 셰익스피어 다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