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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 9옮긴이의 말 ·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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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 Dun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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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 생을 놓쳐버린, 죽은 자의 소리 없는 절규 그럼에도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산 자의 비애사람들은 그런 재앙에 대해 흔히 말하곤 했다. “적어도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랐을 거야.” 알렉 주위에서 지옥 같은 폭발이 일어나던 순간, 아마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그는 무언가 느끼기도 전에 소멸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그 사건은 그들 누구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불은 재가 되고 흙이 되고 풀이 되고 꼬리풀과 주홍별꽃이 되어 사라졌다. 다 끝났다. _본문 230쪽알렉은 올 때마다 점점 더 오래 머물렀다. 이저벨은 알렉이 그녀의 집에서 보낸 시간의 조각들을 곱씹어보았다. 그 조각들을 모두 합치는 게 가능하다면, 그래서 어떤 모양이 되는지 볼 수 있다면 그녀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누군가의 기억도 정체를 밝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있다보면 알 수 없는 기억들이 머릿속에 밀려왔다. 처음에는 영화를 보는 것 같았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그녀 안에 들어와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알렉과 함께 일몰을 바라보던 자신의 모습, 평온한 시골의 농장주택에서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는 여인, 그녀였던 여자…… 어느 날 알렉은 이런 말을 했다. “시간이 아예 없다면 어떨까? 시간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언제나 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나는 항상 당신에게 갈 거야.” 또다른 어느 날, 알렉은 유난히 불안하고 두려워 보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킨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밤 작전이 끝나면 곧장 당신에게 갈게. 창문을 두드릴게. 잠들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알렉은 그 말을 남긴 채 떠났고, 이저벨은 집 전체가 그녀를 짓누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그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알렉이 자신을 보러 올 것이고 자신은 또다시 다른 삶으로 미끄러져들어갈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들로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지고 다른 삶의 리듬에 맞춰 몸이 움직일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가 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일단 그가 오면 그녀 자신이 다른 여자가 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그 말이 몇 주 동안 이저벨의 머릿속에 머물렀다. 대신할 사람들. 그러나 죽은 자들 없이도 세상이 잘만 굴러간다는 건 오싹한 일이었다. 죽은 자들은 사라졌다. 그들은 너무 많은 세월, 인생을 놓쳤다…… 그러니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흘러간 세월은 그들이 놓친 바로 그 세월이었다. 그들은 되찾고 싶을 것이다…… _본문 211쪽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 사이에 그것이 있었다. 이제 거의 표면에 떠올라 있었다. 그녀가 안고 있는 생명, 그는 다시 가질 수 없는 생명. 다른 수많은 사람들, 세상은 그들 없이도 채워졌고 계속되었다. _본문 226쪽알렉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저벨의 머릿속을 깊이 파고드는 기억은 누구의 것일까? 그녀가 세들어 살게 된 집과 벽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군복 외투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영국 왕립문학회 회원이자 영국 문학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기도 한 시인이자 소설가 헬렌 던모어의 『외투』는 우아하면서도 섬세한 긴장감이 감미롭게 물결치는 고스트 스토리이자, 열정적이면서도 가슴 아픈 로맨스가 있는 역사소설이다. 던모어는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전쟁의 상흔으로 신음하던 영국의 시대상과 이제 막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던 젊은 부부의 모습을 통해 신혼의 단꿈이 지나간 뒤의 허망한 현실, 평온한 일상의 보이지 않는 균열 위로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 산 자와 죽은 자의 시간, 안타깝게 생을 놓쳐버린 인간의 애절한 절규, 그럼에도 꿋꿋하게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남은 자의 비애를 다채롭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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