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1부 더 나은 죽음 아빠가 죽어도 상주 못 서는 딸 화장터에서 조는 사람 애도, 잠들지 않는 비정상적인 장례식 정확한 죽음을 상상하기 2부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모르고 산초 된장찌개를 끓이며 금산으로 가는 징검다리 죽은 자의 짐 정리먹고 사는 일에 관하여 직장에서 죽지 않는 법 100만 원의 슬픔 가부장제에서 탈퇴하는 법 아홉수 우리 전화를 걸지 않는 사람 3부 세 여자의 애도법 향초가 꺼지지 않도록 부고의 장점 결혼식과 장례식 사이 돌아온 나의 산 사연에는 후배가 없다 글루텐 프리 가족 세 모녀, 등산을 시작하다 묫자리는 왜 보러 가요 4부 나의 죽음은 나의 생을 깨운다 미래의 추모공원 사후 가난 내 비밀이 죽고 나서 밝혀진다면 나의 사이버 장례식 죽는 것도 웃길 수 있으니까 빨리 노인이 되고 싶다 비혼의 할머니가 될 것이다 치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삶이라는 이름의 권리 죽음에 대한 사적인 가이드라인 에필로그: 여전한 애도에 관하여 |
사과집의 다른 상품
|
엄마와 나, 여동생은 검은 한복을, 삼촌과 사촌 오빠는 양복을 입었다. 상주 완장은 사촌 오빠가 찼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사촌 오빠가 나 대신 내 아빠의 상주가 된 것이다. 온갖 결정은 내가 내렸지만, 아빠를 보내는 예식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장례식장에서는 평생 같이 산 직계존속보다도 남자를 선호한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게 됐다.
--- p.21, 「아빠가 죽어도 상주 못 서는 딸」 중에서 아빠의 장례 후 나는 일종의 부채감과 죄책감을 반복해 겪었다.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 쌓여갔지만, 쉽사리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어쩌면 문제는 내가 아니라 상업화된 장례 문화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p.32, 「애도, 잠들지 않는」 중에서 아빠가 발견되기까진 30분 정도의 공백이 있었다. 때문에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지병을 생각하면 완전히 급작스러운 사망은 아니었다. 나는 아빠의 심장이 멎는 마지막 순간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멎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장면은 영영 모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빠가 극심한 고통을 겪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 것뿐이었다. --- p.43, 「정확한 죽음을 상상하기」 중에서 출입국 도장이 한 번도 찍히지 못한 여권도 있었다. 몇십 년 전에 만들어진 여권이었다. 한 번도 한국을 떠난 적 없던 아빠는 어쩌다 이 여권을 만들었을까. 아빠가 가고 싶어 하는 나라가 있었을까. 여태껏 궁금해한 적도 없던 질문이 아빠가 떠나고서야 치솟는다. 죽은 사람의 방을 정리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사용기한이 만료된 질문과 수없이 마주하는 일. --- p.62~63, 「죽은 자의 짐 정리」 중에서 아픈 일도 별거 아닌 것처럼 의연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 가족은 일어서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다. 하루빨리 아빠의 죽음을 잊겠다거나, 강철 체력이 되겠다는 허황된 기대나 목표 없이 그저 오늘을 걷기로 한다. 가끔은 수다를 떨면서, 가끔은 서로의 보폭을 존중한 채로 그저 조용히 축축한 오솔길을 걷는다. 우리는 멀리 볼 거니까. 그리고 우리는 함께 멀리 갈 테니까. --- p.145, 「세 모녀, 등산을 시작하다」 중에서 존재에 대한 자존심은 나를 높은 곳으로 데려가게 도울 자양강장제가 아닌, 내가 갈림길에 설 때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도와줄 삶의 방부제가 되어 줄 것이다. 잘 죽는다는 것은 죽기 직전 삶을 돌이켰을 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육체가 부패하더라도 영혼은 부패하지 않는다. --- p.209, 「죽음에 대한 사적인 가이드라인」 중에서 |
|
때론 타인의 죽음이 나의 죽음을 깨운다
어쩌면 삶까지도 1부 ‘더 나은 죽음’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그 당시의 기록이다. 부친의 죽음을 받아들일 새도 없이 절차화된 장례를 치르며 그 속에서 느낀 불합리함이 작가 사과집만의 언어로 담겨 있다. 끌려가듯 장례를 치르는 동안 ‘세 모녀’만 남았다는 이유로 “집에 남자가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애도의 과정에서마저 철저히 소외된 것이다. 2부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모르고’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룬다. 고립된 무인도 같던 아버지의 방과 삶을 정리하며 작가는 단숨에 그의 삶과 가까워진다. 한 번도 한국을 떠나본 적 없던 아버지는 어쩌다 여권을 만들었을까? 남겨진 사람의 숙제는 그런 것이었다. 사용기한이 만료된 질문과 수없이 마주하는 일. 3부 ‘세 여자의 애도법’은 남겨진 세 모녀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다룬다. 죽음은 많은 것을 알게 해주고 삶을 재고하게 한다. 부정적으로만 여겼던 제도적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더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4부 ‘나의 죽음은 나의 생을 깨운다’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이후, 작가가 그려보게 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청사진을 이야기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나아가 구체적으로 죽음을 상상하며 자신의 노년을 꿈꾼다. 잘 죽기 위한 준비는 잘 살기 위한 준비와도 같다. 이렇듯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는 총 4장으로 나뉘며, 죽음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더불어 애도에 관한 고찰, 나아가 자신의 죽음과 삶을 탐구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에세이다. 왜 우리는 애도의 과정에 집착하는가 사람들은 삶의 경계를 매 순간 분리한다. 가까운 죽음을 경험한 이들에겐 으레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 문장을 불편히 여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와 맞닿아 있는, 내게 영향력을 가진, 나의 소중한 당신이 이젠 죽고 없는데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함께 하지 못한 식사 한 끼와 커피 한잔, 대화 한 마디가 내내 가슴에 남는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내 삶에서 처절한 고립감을 경험하게 한다. 망자를 향한 그리움이 죄책감과 미련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과정마저 애도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작가를 혼란에 빠트렸던 것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에 처절하게 실패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추억이 없는데, 홀로 남아 아버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화목하고 친근한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가정들이 많지만, 어딘가 단절되어 있고 단순히 애정만으로는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을 가족과 공유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죽음의 복잡성에 관계의 복합성이 더해질 때 오는 혼란이 오로지 사과집 작가의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는 죽음을 겪은 사람들에겐 공감 섞인 위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예방 주사를 놓아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끝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금기시하고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죽음을 떠올림으로써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애도의 자격을 묻고, 제대로 된 애도에 대한 압박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 처음부터 명확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사과집 작가가 말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