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일기 예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실용서입니다. 제 본업은 뇌신경외과 전문의입니다. 동시에 기상예보사이기도 합니다. 의사가 기상예보사가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납득이 될 것입니다.
의학과 기상학이라는 두 가지 전문 지식을 토대로 ‘날씨에 관련된 질병의 구체적인 예방법’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는 것이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취지입니다.
--- p. 4-6
기상병은 다양한 건강 정보 매체를 통해 소개되어 왔다. 사실 기상병은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는데 ‘날씨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병 증상’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특정한 계절에 특히 많이 발생하는 식중독이나 감기 등의 질병을 ‘계절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계절마다 기상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춘곤증도 기상병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기상병의 구체적인 예로는 기관지 천식, 심장병(심근경색, 협심증 등), 뇌졸중(뇌경색, 뇌출혈, 지주막하 출혈 등 갑자기 병증이 나타나는 뇌혈관 장애의 총칭), 요로결석, 요통, 관절통, 류머티즘, 꽃가루 알레르기, 인플루엔자, 열사병, 식중독, 한랭성 알레르기 비염, 편두통, 충수염 등 다양한 질병이 있다. 오존층 변화에 영향을 받는 백내장이나 피부암 역시 지구상에 기상 변화를 일으키는 대기층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기상병(유사 병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p. 18
이렇게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일기 예보지만, 질병 예방 차원에서는 맑음이나 비 같은 정보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일기 예보의 상세 정보를 들여다보면 오늘의 최고기온과 최저기온, 일주일간 최고기온과 최저기온의 변화, 따듯한 공기와 찬 공기 유입, 한랭전선의 이동, 태풍의 중심 기압 변화 등 다양한 기상 정보를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기온 변화나 전선 통과, 기압의 급격한 변화 등이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건강 관리 차원에서는 오늘의 날씨 외에 각종 기상 정보를 유심히 봐야 한다
--- p. 27
천식이 발병하기 쉬운 기상 조건이 있다. 다만, 아토피형 천식인지, 비아토피형 천식인지에 따라 발생 시기가 조금 다르다. 우선 아토피형은 진드기 사체나 집먼지 등의 알레르겐이 원인이다. 그래서 진드기 사체가 만연하는 가을에서 겨울까지 혹은 대기가 건조하여 집먼지가 흩날리기 쉬운 시기에 발병률이 높아진다. 비아토피형은 차가운 공기를 흡입하여 기관지가 자극을 받았을 때 발작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일교차가 큰 환절기나 기온이 낮은 겨울에 발병이 증가한다. 이러한 기상 특징을 바탕으로 중요한 예방책 중 하나가 마스크 착용이다. 마스크를 하면 알레르겐의 흡입을 억제할 수 있으며, 기관지에 흡입되는 공기를 따뜻하게 하고 가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는 사람은 증상에 따라 내복약, 흡입약 등 처방이 다양하므로 반드시 전문의 진료를 받도록 하자. 일상에서도 천식 발작이 일어나기 쉬운 가을과 겨울, 추운 날, 건조한 날에는 특히 실내 환경을 청결히 유지하고 규칙적인 생활과 식단관리, 충분한 수면을 취함으로써 면역 체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자.
--- p. 50-51
흔히 맹장염으로 잘못 알고 있는 ‘충수염’은 오른쪽 하복부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과 발열을 동반하며, 구토를 유발하기도 한다. 계속 참으면 충수가 파열(천공이라고 한다)되어 급성 복막염이라는 위험한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 충수염은 장마 기간 중 갑자기 비가 개고 해가 뜨는 맑은 날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충수염도 기상병의 일종이라고 이야기되어 왔다. 이는 환자를 관찰해 온 의사들의 경험으로도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기압 변화와 관련이 있다. 기압의 급격한 변화는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며 면역 기능의 균형을 바꾼다. 장마 기간에는 전반적으로 기압이 낮은 날이 계속되기 때문에 부교감신경이 우위인 상태가 유지된다. 하지만 갑자기 비가 개고 날씨가 맑아지면 교감신경이 우위가 되고 부교감신경은 급격히 약화된다. 이러한 격렬한 변화의 영향으로 림프구 수가 과도하게 감소하고 감염에 취약한 몸 상태가 된다. 즉, 충수염이 발병하기 쉬운 조건이 된다.
--- p. 76-77
뇌졸중과 마찬가지로 뇌출혈 역시 기상 조건이 발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뇌출혈 환자(당시, 60대) 사례로 살펴보자. 추운 겨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옷 차림으로 현관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왼쪽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더니 무너지듯 쓰러졌다. 두통도 없고 의식도 맑았지만, 몸에 힘이 쑥 빠져 움직일 수 없었다. 바로 구급차로 옮겨져 뇌신경외과 병원에 도착했다. 두뇌 전산화단층촬영(CT) 결과, 우뇌출혈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다행히 출혈량이 적어 수술을 받진 않았지만, 몸 왼편에 가벼운 마비 증상이 남았다. 고혈압 진단을 받아 약을 먹고, 염분을 적게 섭취하는 등 건강에 신경 쓰고 있었음에도 뇌출혈이 발병했다. 시간대를 보았을 때, ‘아침 혈압상승’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게다가 추운 겨울날이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혈압이 상승하여 뇌 속 미세혈관이 파열되면서 뇌출혈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뇌출혈에 주의해야 할 기상 조건은 ‘기온이 낮고, 쌀쌀해지는 날’이다. ‘일교차가 큰 날’이나 12~2월 중 ‘아침 기온(≒최저기온)이 낮은 날’에 뇌출혈 발생률이 높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등의 기저질환이 있는 남성은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 p. 112-113
30대 초반의 젊은 남성 환자 사례도 있다. 이 환자는 추운 겨울날 주방에서 찬물로 설거지를 하던 중에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잠시 후 의식은 회복했지만, 후두부에서 정수리까지 심한 두통 증상이 있어 외래로 방문했다. 진찰 시에는 운동마비 증상이 없고, 안색도 비교적 좋았지만, 뇌졸중이 의심되어 CT 촬영을 진행했다. 역시 지주막하 출혈이었다. 젊은 나이였지만 건강 검진에서 혈압이 다소 높다는 진단이 나왔었다고 한다. 세차하다 쓰러진 50대 환자와 마찬가지로 찬물에 손을 담근 상태로 힘을 주어 그릇을 닦았기 때문에 혈압이 상승했고, 뇌동맥류가 파열되어 지주막하 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두 환자 사례의 공통점은 한랭자극에 의한 혈압상승으로 지주막하 출혈이 일어난 것이라 추정된다. 특히 찬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4℃의 냉수에 왼손을 1분간 담그고 있기만 해도 수축기 혈압(이른바 위의 혈압)이 무려 50mmHg 내외로 상승한다39. 즉, 평소 혈압이 120mmHg 정도인 사람은 찬물에 손을 담그기만 해도 170mmHg까지 상승할 수 있는 것이다.
--- p. 12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