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지 않으면 세상의 반응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다. - 칼 구스타프 융
내 얼굴을 그려본다는 건, 생략되고 누락된 과정을 재생시키는 것과 같다. 그 과정에서 시간도 걸리고 부정하고픈 흉터도 발견하겠지만 그런 나를 찬찬히 대면하면서 무언가 밝아짐을 느낀다.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그간 희미하게 보이지 않던 나만의 진짜 얼굴도 발견할 수 있다.
--- p.20~21, 「PART 1 시작, 자화상_내 얼굴을 그린다는 것」 중에서
‘나다움’이란 ‘내 감정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아닐까. ‘내 편’은 나다움을 편안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며 함께한 세월이나 몸담은 장소와 상관없이 저 멀리 있을 수도 있고 이미 내 주변에서 낯선 누군가로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다.
--- p.34, 「PART 1 시작, 자화상_내 편을 만나러 가는 길」 중에서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는 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는데도 한 계절만 겪는 것과 같은 걸까? 다양한 온도와 색을 경험할 수 없어서 여름이 있는 줄도 겨울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거나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일지도. 그럴 땐 내 과거를 회상하며 나를 설레게 했던 무언가를 찾아보는 것 또한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 p.72, 「PART 2 내가 남을 볼 때_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 중에서
창의적인 드로잉이란 평범한 내가 독특한 세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독특한 우주가 바라본 평범한 세상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요.
--- p.116, 「PART 2 내가 남을 볼 때_내 진짜 얼굴 찾기」 중에서
그림 속 내 눈엔 수많은 감정이 있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나는 그녀와 협력하고 싶었다.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너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데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니?’ 상쾌하고 개운했다. 다시는 나를 자책하고 지하세계로 끌고 들어가지 말자고 다독였다.
--- p.129, 「PART 3 내가 나를 볼 때_객관적으로 나를 보다」 중에서
내가 나를 키운다는 건 자화상을 그릴 때, 있는 그대로 리얼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내가 원하는 색감이나 원하는 표정으로 나를 그려보는 것과 같다. 삶 속에 무슨 색을 집어넣을까 상상하며 앞으로의 자화상을 그려보고 싶다.
--- p.163, 「PART 3 내가 나를 볼 때_내가 나를 키운다」 중에서
나도 잠시 멈춘다. 이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연히 걸음걸이는 전보다 더 느려지겠지만 한 발짝 디딜 때마다 짙은 꽃향기를 맡고 맑은 하늘을 쳐다보고 눈을 감은 채 바람도 느껴보고 싶다. 그래서 남들보다 한참 뒤쪽에서 생을 마감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좀 더 내 감각의 밀도를 높이고 싶다.
--- p.178, 「PART 3 내가 나를 볼 때_인생이라는 숲길」 중에서
거의 수평 각도로 그 속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잔잔함 속에서 지속력도 생긴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성공과 실패의 굴곡도 나중엔 평평함이라는 평균치를 이룬다. 그러니 잔잔하게 유지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도 어려운 것인가.
--- p.193, 「PART 4 다시, 자화상_잔잔함이 더 어렵다」 중에서
내가 노인이 되면 연식이 오래된 스포츠카가 되겠지만 관리만 잘해준다면야, 고급 엔진도 쓸 만하고 성능 좋은 브레이크도 여전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스포츠카가 돼보려 한다. 잠시 상상한다. 훗날 내가 고급 엔진이 달려 있고 성능 좋은 브레이크를 갖춘 할아버지 스포츠카나 할머니 스포츠카가 되어 있는 것. 꽤 멋지지 않은가.
--- p.211, 「PART 4 다시, 자화상_할머니 스포츠카」 중에서
나는 인물 그 자체를 그리기 위해선 그 사람을 더 많이 알아야 하고, 인물의 영혼을 담으려면 그 자신도 잘 모르는 것을 그리는 사람이 찾아내야 한다고 보았다.
--- p.252, 「PART 5 본격 인물화 그리기」 중에서
잠시 눈을 감고, 누군가를 떠올려보자. 그 사람을 알고는 있는데 막상 그릴 수가 없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다. 관찰은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고 떠올려 그릴 수 있는 건 그 사람에 대한 내 생각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 p.266, 「PART 5 본격 인물화 그리기」 중에서
인물화 기법은 기술의 일부일 뿐, 어떤 인물화를 그리느냐는 삶의 태도에 달려 있다. 단순한 선 몇 개로도 그 사람의 시선, 마음,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건 손끝의 연마가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삶의 밀도 때문일 것이다.
--- p.357, 「마치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