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철 행정관은 민정수석실이 담당하는 기관을 ‘ㄱ’자 기관이라고 했다. ‘ㄱ’자 기관들은 권력기관인 국정원, 검찰, 경찰, 기무사, 감사원 등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 제1과제로 삼은 ‘권력기관 개혁’ 대상이 되는 기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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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검찰이 특수수사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고 검찰을 비난했지만, 정착 검찰이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반발한 주된 원인은 특수수사권 축소가 아니었다.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가 핵심이었다. …
나중에 내 사무실로 찾아온 이광철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은 검찰이 중대범죄를 직접수사할 수 있는 특수수사권을 남겨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뜻이라고 말했다. 이광철 행정관은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라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야 할 ‘오프 더 레코드’라며 주의를 덧붙였다.
--- pp.26-27
유시민의 이날 방송은 대중선동술의 모범사례 같았다. 기득권 음모론, 비극적 신화의 차용, 피해자 서사, 악에 대한 증오의 열정, 배신자에 대한 응징, 집단의 결속. 이 노련한 선동가는 노무현 트라우마를 소환하고 지지자들의 감정과 정서를 자극해서 생길 결과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실과 법적 판단이 필요한 이성적 논증 영역인 언론 검증과 검찰 수사를 선과 악이 싸우는 투쟁의 전장으로 바꾼 것이다
--- p.103
이광철 행정관이 내게 전화를 직접 건 목적은 분명했다. 정부와 조국을 비판하는 글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부탁이었을지 모르나 내게는 무거운 압박이었다. 그날 밤 잠결에 가위눌린 듯 숨이 막히고 심장이 아파서 잠이 깼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어떤 선택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 무렵 청와대는 꽤 꼼꼼한 인사검증을 통해 나를 대통령 위촉직인 한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인사수석실에서 연락해 온 담당자에게 물어도 알려주지 않아서 누가 추천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누군가 내 경력을 관리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이광철이 원하는 대로 조용히 침묵한다면, 적어도 안위는 무탈할 것이고, 나아가 침묵의 대가를 기대해볼 수도 있었다.
--- pp.138-139
주말마다 서초역 사거리의 사방으로 인파가 퍼졌다. 조국수호 집회를 드론으로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은 촛불로 만든 십자가 모양이었다. 괴이한 집회였다. 그들은 마치 예수의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나선 십자군 군대와 같은 사명감과 열정에 사로잡힌 듯 보였다. 집회 참석자들에게 검찰은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악惡의 기득권 집단이었다. 자신들은 사악한 검찰을 개혁하려다 핍박받는 조국을 지키고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정의롭고 선善한 투쟁에 떨쳐 일어선 전사였다.
--- p.158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부터 정경심의 제1심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나는 대학 입학 후 맺은 대부분의 인간관계와 매일매일 이별해야 했다. 운동권의 대학 선후배 관계, 청년단체 운동 시절 맺었던 관계, 사법 시험 공부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활동을 통해 맺은 관계에서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기대도 내려놓아야 했다.
--- p.168
조국사태에서 드러난 집권여당과 지지자들의 행태를 로버트 O. 팩스턴이 열거한 위 파시즘의 징표들 대부분이 그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정권을 잡고도 자신의 집단이 기득권의 희생자라는 피해의식. 적으로 상정한 검찰과 언론에 대한 법률적, 도덕적 한계를 벗어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서. 반대자들을 배제하기 위한 사이버 폭력으로 친문의 순혈주의를 유지하겠다는 결속력.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의 본능을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성보다 앞세우는 맹신. 친문친조 성공을 위해서 윤석열과 한동훈 등 ‘검찰과 친검 기레기를 격파하는 폭력을 찬미하는 태도. 김용민, 김남국 의원 등 강성 공격수들의 용맹성을 당권 부여의 기준으로 삼는 태도.
--- pp.171-172
문재인 대통령은 『문재인의 운명』과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권양숙 여사나 형님 노건평 등 가족과 측근의 부패 때문이 아니라 검찰과 언론 때문이라는 프로파간다에 성공했다…노무현의 타살자에 대한 적개심을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라는 긍정적인 정치개혁 프로그램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 pp.199-200
문재인 대통령의 뜻에 따르지 않거나 비판적 의사를 표하는 사람은 좌표가 찍히고 문자 테러와 전화 협박을 당했다. 민주당에서 소신 발언을 굽히지 않았던 금태섭 전 의원은 “욕설 문자 2만 통 받은 적 있다”고 했다. 내부자든 외부자든 예외가 없었다. 양향자 의원도 ‘문재인’ 뒤에 ‘대통령님’ 존칭을 붙이지 않았다고 당원들의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 집권여당 누구도 이들의 사이버 테러를 나서서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정치 행위의 양념이고, 정치적 의사 표현이며, 당심도 민심일 뿐이었다. 대깨문들은 자신의 폭력을 노무현과 문재인에 대한 헌사로 여겼다. ‘다시는 우리의 지도자를 지켜주지 못해 잃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결기, 노무현 트라우마는 파시즘의 질료였다.
--- pp.207-208
김어준은 민주당 의원들 중에서도 개국본 등 극단주의 단체들과 의견을 같이하는 강성 의원들을 출연시켜 자신의 매체가 생산하는 가짜뉴스를 민주당의 공적 의사로 만드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금태섭 전 의원은 이해찬과의 일화를 공개한 적이 있다. “언젠가 이해찬 대표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 나는 눈이 나빠서 책을 못 봐’ 이러시는 거다. 대신 유튜브를 본다. 김어준이 하는 유튜브는 다 봤다면서 김어준이 민주당을 위해 큰일을 한다는 거다.” 이해찬의 김어준에 대한 생각은 민주당의 일반적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 p.217
김학의의 출국금지 조치가 허위공문서와 직권남용이 범벅된 심각한 범죄였다는 사실이 알려져도 집권여당 지지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김학의를 붙잡았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밝혔는데,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김학의는 붙잡았지만, 정작 헌법의 법치주의와 적법절차 원리는 무너졌다.
--- p.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