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국이 한반도 신탁통치를 공식적으로 거론한 1943년부터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된 1954년 11월까지의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관한 것이다. 시카고대학의 저명 한반도 전문가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교수는 “1943년부터 10년 동안 한반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날의 한반도 정치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이 같은 커밍스 교수의 관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입장이다.
이 책을 포함하여 추후 발간할 또 다른 책에서 필자는 1943년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주요 사건의 이면에 미국이 있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 38선 분단, 남한 단독정부 수립, 대구 101사건, 여수/순천 1019사건과 제주도 43사건 진압, 625전쟁,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 노태우의 629선언, 1997년의 IMF 사태, 북한 핵무기 개발 등 한반도에서 벌어진 주요 사건의 이면에 미국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이 같은 필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난 7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벌어진 주요 사건을 올바로 이해하고자 하는 경우 미국이 이들 사건을 초래한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국의 한반도정책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 책을 통해 필자는 한국인들이 이 같은 필자의 주장의 사실 여부와 미국이 이들 사건을 초래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필자의 이 같은 주장은 미국이 지구상 유일 패권 국가이었다는 사실, 또 다른 패권국가 부상 방지를 자국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생각했다는 사실, 그러한 방지 차원에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사실,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 1945년 9월 8일 이후 한반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이었으며, 과도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결국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주요 사건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며 강화하기 위한 성격을 띤다. 한반도를 미국과 또 다른 강대국 간의 패권경쟁에 동원하기 위한 성격이었다. 미국의 이 같은 행태는 동맹이론 측면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2차 세계대전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1943년부터 미국은 전후 소련의 세력팽창 저지를 위해 지구상 주요 지역 국가들과 동맹을 체결한 후, 이들 국가에 미군을 주둔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미국이 이처럼 생각한 지역에 한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은 한반도가 소련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는 경우 일본이 중립국을 추구하게 되면서 미군 주둔을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이 한반도를 일본의 영향권으로 인정해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던 카츠라(桂)-테프트 밀약이 체결된 1905년 이후 관심을 접었다가 또다시 한반도에 관심을 표명한 것은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 있던 1941년 12월 8일 직후였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은 주중 미국대사를 통해 얻은 정보에 입각하여 해외 조선인들의 독립운동 현황, 해외 조선인과 한반도 조선인들의 관계, 한반도에 대한 주변국들의 이익 등을 심층 연구했다. 이 같은 연구에 입각하여 1943년 11월 카이로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대통령이 한반도 신탁통치를 거론했다.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미국의 한반도정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한반도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란 주변 4강 입장에서 ‘전략적 이익(Strategic Interests)’에 해당하는 지역이란 사실과 한반도가 미국 입장에서 중국 및 러시아와 같은 적성국을 겨냥하여 전력을 투사할 수 있는 지역이란 사실에 기인했다. ‘전략적 이익’이란 그것 자체로는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해당 지역이 자국 입장에서 적성국으로 모두 넘어가는 경우 적성국과의 경쟁에서 매우 불리해지는 그러한 지역을 의미한다. 냉전 당시를 보면,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이 소련으로 넘어가는 경우 미소(美蘇) 경쟁에서 자국이 절대적으로 불리해지는 반면 자국으로 넘어오는 경우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고 생각했다. 냉전 종식 이후 여기서 소련이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국의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은 한반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자국 입장에서 적성국, 다시 말해 소련에 넘겨주면 안 된다는 이 같은 인식에 근거하고 있었다. 이미 1943년 미 국무성은 이 같은 인식을 표명했다. 당시 미 국무성은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여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영향력 확보 및 행사 차원에서 미군의 한반도 주둔 필요성을 암시했다. 미 국무성은 한반도 전체가 소련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면 미국에 우호적인 장제스(蔣介石)가 통치하게 될 중국대륙 안보는 물론이고 일본 안보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과 일본을 자국의 영향권으로 흡수한 소련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을 통해 전후 미국이 한반도에 미군을 주둔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오늘날 주변국 모두 한반도 남북통일을 원치 않는데 이것 또한 동일한 이유 때문이다. 미국은 통일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면서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강제 철수당할 가능성을 자국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생각하는 반면 중국은 통일 이후에도 한미동맹이 지속 유지되면서 미군이 압록강 부근으로 올라올 가능성을 심각히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남북통일이 아니고 현상 유지를 염원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미국은 한반도를 아태지역 우방국들을 적성국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및 소련과 같은 적성국의 영토로 전력을 투사하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했다. 결국 지난 70년 동안의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미국의 이 같은 인식에 입각하고 있다.
루즈벨트가 한반도 신탁통치를 거론한 1943년 11월부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으며, 한국군에 대한 미국의 작전통제권 행사를 가능하게 해준 한미합의의사록을 체결한 1954년까지의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한반도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 확보와 더불어 이 같은 영향력을 패권경쟁에 쉽게 동원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1954년부터 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완벽히 종식된 1991년 12월까지의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한반도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지속 유지하면서 한미동맹을 소련의 세력팽창 저지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성격이었다. 그러면 냉전 종식 이후의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이는 냉전 종식과 한중수교 및 한러수교로 약화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재차 강화한 후 이 같은 영향력을 미중 패권경쟁에 동원하기 위한 성격을 가진다.
예를 들면, 한반도 신탁통치 운운하던 미국이 1945년 8월 15일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소련과 분할 점령한 이유, 38선 이남 지역으로 진주한 존 하지(John Reed Hodge)를 포함한 미국의 주요 인사들이 곧바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한 이유, 소련과 중국을 포함한 유라시아대륙 주변부를 봉쇄해야 한다는 내용의 NSC-68이란 문서에서 가정하고 있던 미군 재무장 차원에서 625전쟁을 방조 및 조장한 이유, 전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해 미군을 한반도에 주둔할 수 있게 한 이유는 한반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소련에 넘겨주면 안 된다는 1943년 당시의 미 국무성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만으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보장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한국인들이 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한미동맹이 아태지역의 미국의 동맹체제에서 함정의 닻에 해당할 정도로 중요한 성격이란 사실을 고려하여 미국은 한국인들이 한미동맹 해체를 쉽게 요구할 수 없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조건으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행사를 요구했으며, 한국군을 독자적인 전쟁 수행이 불가능한 지상군 중심, 현행 작전 중심으로 편성했던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이 같은 미국의 심모원려(深謀遠慮)로 미군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한 지 7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미군이 없는 한반도를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무튼 당시 이후 미국은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미군의 한반도 주둔 측면에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행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미국이 1960년의 419혁명으로 등장한, 국정 수행을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과 상의하며 할 정도로 친미적이던 장면(張勉) 정부를 매우 싫어했던 것은 지속적인 학생 데모와 이들 학생의 남북통일 노력을 보며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장면 정부를 붕괴시킨 박정희의 쿠데타를 내심 반겼으면서도 김종필과 주한미국 대리대사 마샬 그린(Marshall Green)이 군사 쿠데타에 동원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문제와 관련하여 합의를 한 이후에나 지지를 표명했던 것은, 미군의 한반도 주둔 보장 측면에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행사의 중요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북한체제 붕괴를 위해 노력한 듯 보였던 김영삼 대통령을 매우 싫어했던 주요 이유는 북한이 붕괴되는 경우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의미를 상실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북한체제 유지 차원에서 한국 정부에 대북 포용정책을 요구했던 미국이 2001년 3월 이후 대북 압박정책으로 돌변했던 것은 2000년 6월 15일의 615 남북공동성명 이후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했다고 생각한 한국인들이 주한미군 철수를 외쳤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북한정권 생존 보장을 통한 주한미군 입지 강화를 위해 대북 포용정책을 펼친 것인데, 대북 포용정책의 결과 주한미군 입지가 약화된 것이다. 1990년대와 달리 2001년 3월 이후 미국이 이처럼 대북 압박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1997년 이후 중국이 매년 상당 규모의 식량과 유류를 북한에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오늘날 미국이 전작권 전환과 한반도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주요 이유 또한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 보장과 관련이 있었다. 예를 들면, 종전선언 이후 주한미군 입지가 대거 약화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북한 핵이 오늘날처럼 악화된 주요 이유 또한 주한미군 입지와 관련이 있었다. 북한 핵이 없는 경우 북한군 재래식 전력이 한국군과 비교하여 매우 열악한 수준이란 점에서 한국인들이 곧바로 주한미군 철수를 외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중국의 대륙간탄도탄으로부터 미 본토를 보호하기 위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 사드미사일의 한반도 배치를 위해 노력했는데 이는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을 미중 패권경쟁에 연루시키기 위한 성격이었다.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 요구 또한 동일한 성격일 것이다.
진정 지난 7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있었던 주요 사건들이 미국의 한반도정책과 관련이 있다면, 지난 7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벌어진 주요 사건들 또한 이 같은 한반도정책 측면에서 보다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향후 한반도에서 벌어질 주요 사건들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미국의 한반도정책 이해를 통해 사전 예견해 보거나, 주요 상황에 대한 한국의 대응 방안을 강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본 연구가 해방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패권경쟁의 와중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신탁통치, 미군정, 남한 단독정부 수립, 제주도 43사건, 여수/순천 1019사건 진압, 1949년의 주한미군 철수, 625전쟁, 정전협정, 1954년의 제네바회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란 이들 주제 가운데 특정 주제에 관해서 또한 많은 연구가들이 오랜 기간 연구한 바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말하지만 이 책에서의 필자의 연구는 이미 무수히 많은 훌륭한 연구가들이 관련 분야에 관해 진지하게 연구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한편 개인과 마찬가지로 지구상 모든 국가는 자국의 국익을 위해 일한다. 1945년 9월 8일 이후 미국이 한반도에서 취한 모든 조치는 한국의 국익이 아니고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미국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한국 내부의 주요 사건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미국의 국익 추구 행위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과 관련하여 혹자는 반미감정 조성을 우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아닌 또 다른 주변국이 지난 70여 년 동안 미국을 대신하여 한반도에 들어와 있었다고 가정하는 경우에도 이들 국가가 미국보다 훌륭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이 책을 통해 필자는 한미관계에 결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의향이 없다. 필자가 이 책을 저술하며 의도하는 바는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본인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 국가를 자국처럼 아껴주는 국가가 지구상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한국인들이 국가안보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진정 기원하는 바이다.
- 권 영 근
--- 저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