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한겨레〉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경찰서는 13일 오후 7시 30분께 성남시 중동 한 켄터키치킨점에서 집시법 위반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됐던 ○○대 총학생회장 아무개씨를 붙잡아 구속했다.” 서슬 퍼렇던 노태우 정부 시절 이야기다. 그런데 기사를 접한 지인은 엉뚱한 것을 궁금해했다. “잡혀가기 전에 치킨을 먹었을까, 못 먹었을까?” 솔직히 나 역시 궁금하다(기사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수배 중이던 스물두 살 젊은이는 치킨이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그의 욕망에 쉽게 공감하는 까닭은 우리 역시 치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p.17
그런데 이듬해 7월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도올 논어》는 인문 분야 1위를 고수하다, 저자인 김용옥이 텔레비전 출연을 중단한 5월 이후, 급격히 판매가 줄었다.” 김용옥은 오래전부터 인문교양 분야에서 탄탄한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텔레비전에 출연하기 한참 전부터 그랬다. 그런데도 텔레비전 출연을 중단하자 판매가 줄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2000년 당시 인문 독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인문교양 그 자체보다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
순문학서적을 사던 사람 대부분도 이런저런 문학상의 이름을 보고 책을 샀다. 예나 지금이나 책이 많이 팔리기로는 노벨문학상이 으뜸이다. 「한 달 17권→하루 885권, 노벨문학상 발표의 위력」. 2017년 10월 〈한겨레〉 기사의 제목이다. “지난 5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저서 판매량이 대폭 증가했다. 알라딘에서 이시구로의 저서는 수상 직전 한 달간 총 17권이 판매되었는데, 이후 약 15시간 만에 885권이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 p.95~97
2005년 3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김문수와 이재오 등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했다. 여야가 합의한 법안을 뒤집겠다고 나선 점도 문제지만, 회의장을 점거한 뒤 의자를 쌓고 올라가 카메라부터 청테이프로 둘둘 말아놓은 일 때문에 더 빈축을 샀다. 카메라 렌즈를 가리는 일이 나쁜 짓을 하겠다는 뻔뻔한 신호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되었으니 말이다. 옛날에는 “양심 앞에 떳떳한가” 물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 떳떳한가” 묻는다.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폐회로텔레비전이 늘면 우리는 그만큼 더 착해지는 걸까?
--- p.113
한국전쟁 때 공산주의 군대에 몸담았던 사람들이다. 얼마나 공산당을 싫어하는지 ‘신앙고백’을 해야 했다. 저마다 가슴이며 등이며 팔뚝에 대만 국기나 반공 구호 따위를 문신으로 새겨 넣었다. … “공산당과 러시아에 맞서자(反共抗俄)” “나라 잃은 치욕을 복수하자(復國雪恥)” “공비가 살면 내가 못 산다(有匪無我)”, 마지막 네 글자는 설명이 필요하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무시무시하다. 그때 대만에서 쓰던 반공 표어 가운데 “주더와 마오쩌둥을 죽이자(殺朱拔毛)”라는 문구가 있다. 주더와 마오쩌둥은 공산당 군대의 지도자였다. 발음이 “돼지 잡고 털을 뽑다(殺猪拔毛)”와 같다나. 그런데 사진 속 문신을 보면 주더(朱)와 마오쩌둥(毛)을 나타내는 글자에 특별히 개를 뜻하는 변을 붙여 사전에도 없는 글자를 만들어냈다. “개 같은 주더와 마오쩌둥을 돼지처럼 도살하자”는 어감일까. 이 소름 끼치는 말을 몸에 새기고 살았다.
--- p.255~256
이수만과 에스엠이 대단한 것은 그 스타 시스템을 체계화해 1996년부터 현재까지 사반세기 동안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하나의 기획사가 이렇게 오랫동안 엔터테인먼트를 좌지우지한 적은 없었다. 〈한겨레21〉 2000년 9월 7일치 기사에서는 “70년대 지구레코드, 80년대 동아기획, 90년대 SM 이런 회사들이 나름대로 가수 발굴하고, 관리까지 하는 데는 잘한 케이스인데 SM의 문제는 잘한 게 문제가 된다는 점”이라고 언급했다. 에스엠은 자사의 스타 시스템을 통해 에이치오티, 에스이에스를 시작으로 신화,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엑소, 레드벨벳, 엔시티(NCT)에 이르기까지 매머드급 아이돌 그룹을 꾸준히 배출해 가요 시장을 독점하고 해외로 나가 성공을 거뒀다. 마치 ‘월트디즈니컴퍼니’가 자신들만의 아이피(IP, 지식재산권)를 창조해 거대한 왕국을 건설한 것처럼 말이다.
--- p.363~366
〈한겨레〉 기사에서 찾을 수 있는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피해자의 마지막 흔적은 2001년 5월 29일치에서다. 박민희 기자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제정한 제1회 성폭력추방운동상 수상자로 그가 선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수상 소감을 전했다. “힘겹게 법정 투쟁을 해왔지만 아직도 피해자인 저는 사회적 약자이고, 가해자는 강자입니다. 여성이 성적인 문제에 맞서 싸우는 것이 개인적으론 너무나 힘든 사회입니다. 그러나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문제를 제기했을 것입니다.” 그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하지 않아야 한다. 부디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일하는 여성인 나는 뒤늦은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싸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p.404
고대생 집단폭력 사건 이후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사건이 회자될 거라는 사실을 당시의 가해자들이 알았을까. 사건을 타고 넘어 등장한 여성들은 그간 ‘난동’이라는 이름으로 사건의 함의를 축소해오던 것을 ‘폭력’으로 정정하는 데 성공했다. … 고대가 ‘민족’을 부르며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 이대는 폭력의 장면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렸다. 해방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은 20년 뒤 시간의 극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대와 고대는 모두 이름을 남겼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 p.416~418
1995년 이후 생리대 광고 속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무려 흰 원피스(!)까지 입고 뛰어다니던 그녀들은 차츰 사라지고 있다. 생리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맑고, 깨끗하게’만 그리려고 했던 생리대 회사들의 안일함이 도리어 요즘 세대의 ‘자기 몸 긍정하기’(보디 포지티브) 추세에 역행하는 ‘생리 혐오’로 읽혔던 탓이다. 〈한겨레〉 아카이브의 사진과 광고 이미지를 보면, 현실 속 여성의 생리에 가까운 광고가 나오기까지 여성들의 ‘생리권’과 관련한 고군분투는 긴 역사를 갖고 있었다.
--- p.432
침실에 갇혀 있던 성소수자들이 광장으로 나왔으며, 퀴어축제에 가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즐기는 그들이 보인다. 사회적 집단으로서 성소수자가 부재하던 시절은 지났다. 그들은 몇 년 전부터 ‘엘지비티’의 외연도 넓혀가는 중이다. 기존의 ‘엘지비티’에 A(Asexual: 무성애자), I(Intersex: 중성 또는 간성), Q(Questionary: 성적 지향 혹은 성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를 더해 ‘LGBTAIQ+’로 명명한다. 궁극적으로 이성애 중심 세상이 성소수자를 구분하는 것에 불과한 이 모든 경계가 흐려지길 바라면서.
엘지비티 운동의 역사가 게이 중심으로 흘러온 점, 동성결혼이 전 지구적 이슈임에도 한국에서는 동성혼은커녕 사실혼조차 인정되지 않는 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여전히 불투명한 점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늘 그랬듯, 시간은 진격하고 쟁취하는 자의 편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더 많이 떠들고, 더 많이 나대는 수밖에. ‘침묵은 곧 죽음.’ 퀴어축제의 슬로건이다.
--- p.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