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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번역

미각의 번역

: 요리가 주는 영감에 관하여

[ 양장 ]
리뷰 총점9.7 리뷰 18건 | 판매지수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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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에세이 top20 2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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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3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412g | 120*192*23mm
ISBN13 9788946421875
ISBN10 8946421878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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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지내던 어느 날, 쇼핑을 하려고 슈퍼마켓에 갔던 나는 마르고 눈이 어두운 한 노인이 물건 값을 치르는 걸 도와주었다. 그는 근처에 있는 그의 작은 아파트로 나를 초대했고, 나에게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지 물었다. 내가 머뭇거리며 그렇다고 말하자,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나를 비서로 삼고 피델 카스트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 적게 했다. 편지에서 노인은 쿠바의 오렌지 가격에 관해 논하며 무조건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70년대에 쿠바를 여행하며, 토지개혁을 장려했던 저 유명한 무정부주의자 아우구스틴 소치(Augustin Souchy, 1892.8.28~1984.1.1)였다. 내가 피델 카스트로에게 오렌지와 관련된 편지를 쓰는 동안 그는 물구나무를 섰다. 그는 90세였다. 물구나무를 선 동안 오렌지를 올바로 먹는 법에 관한 스페인 격언을 들려주었다. ‘아침 오렌지는 금, 점심 오렌지는 은, 저녁 오렌지는 죽음.’
--- p.40

우리 모두에게 뇌 요리는 색다르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음식으로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 어렵다.
정말로 네 명의 아이를 위해 송아지의 뇌가 네 개나 있었다고? 우리는 1 곱하기 1은 1도 모르는 송아지 뇌를 냠냠 짭짭 맛있게 먹으면 송아지의 뇌와 비슷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럼 송아지는 그 회색빛의 작은 뇌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젠가 자기 뇌가 접시에 올라 우리 앞에 놓이게 되리라는 것은 확실히 아니었을 거다!
--- p.59

이 무질서와 엉망인 세계의 유일한 출구는 결국, 똘레랑스(관용)임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식사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누군가 그 이야기들을 듣는다면 이 세계는 관대함을 잃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어쩌면 스페인이 유럽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낯선 사람에게 관대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는 감히 말하건대, 그건 파에야 때문일 거다.
--- p.66

우리는 직접 요리를 해 먹기엔 너무 피로하다. 하지만 일단 내 두 손을 움직여 요리하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다시 에너지를 얻게 된다. 나는 내 몸으로 되돌아온다. 몸이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매개체다. 매일 ‘부엌에 도착’하는 일에는 특별할 게 없다. 꿈에 그리던 여행처럼 대단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나의 일상에서 당근과 함께 한다는 건 여행에 준하는 일이다.
--- p.83

브라우니는 일요일에 두 개는커녕 하루에 한 개의 달걀도 제대로 낳지 못했다. 가끔 브라우니는 마치 “자, 널 위한 거야. 너만을 위한 거야”라는 제스처처럼 나에게 달걀을 한 개씩 선물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던 브라우니가 갑자기 선물하기를 멈추었을 때, 나는 사뭇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말실수를 했나? 아님 뭘 잘못했나? 옆집에 살던 농부 아주머니는 이 닭이 ‘복에 겨워’ 더는 알을 낳지 않는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나는 브라우니가 행복하지 않고 우울증에 빠져서 그런 거라고 응수했다. 아주머니는 곧바로 차가운 물이 담긴 양동이에 브라우니를 넣었다 뺐다. 이 방법은 도움이 되었다. 브라우니는 다시 알을 낳았다. 나는 브라우니를 잘 이해한다. 가끔은 나도 ‘복에 겨워’ 게으름을 피울 때가 있으니까. 그것도 상당히. 그러면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찬물에 샤워를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걸.
--- p.110

문어는 지루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지루하게 있느니 어렵사리 돌려 닫은 병뚜껑을 능숙한 솜씨로 열며 노는 걸 더 좋아한다. 그 솜씨가 얼마나 능숙한지 주방 보조원으로 두고 싶을 정도다. 수족관 벽에 빨판을 붙여 좁디좁은 수족관 뚜껑 틈새로 몸을 비집고 빠져나가기도 한다. 사람을 알아보기도 하고, 호불호도 아주 분명하다. 신이 나면 친구의 얼굴에 물을 분사하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문어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녀석은 그저 놀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오징어류는 더는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놀이를 즐길 줄 아는 존재 앞에서 나는 무장해제되고 만다.
--- p.139

복어는 독성이 매우 강하다. 일본에선 매년 복어 독에 사망하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식당에선 복어 살로 만든 요리, 특히 복어 간肝 요리가 별미로 손꼽힌다. 복어 요리는 ‘푸구’라고 하며, 복어 조리사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은 그 전에 복어 전문 식당에서 2년간 요리 수업을 받아야 한다. 복어는 비교적 자기 자신을 잘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인간을 셈에 넣지 못했다. 그사이 품종 개량이 돼서 독성이 없는 복어가 나온 것이다. 불쌍한 복어. 그렇다고 해도 나는 복어를 먹지 않을 것이다. 복어가 그토록 공들여 만들어내는 그 무의미한 아름다움 때문에.
--- p.141

이타미 쥬조 감독은 영화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다음 영화로 그는 잘 알다시피 함께 국수를 먹기엔 어울리지 않는 야쿠자에 관한 영화를 찍고자 했다. 하지만 영화 촬영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 그는 ‘실수로’ 건물 8층에서 추락사하고 말았다. 어쩌면 국수가 그런 비극을 불러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담뽀뽀〉가 성공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더는 영화를 찍지 않았을지 모르니까. 국수를 먹을 때마다 나는 그를 생각한다.
--- p.185

빵을 굽는 일이 우리 일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주문이 된 것 같았다. 마치 살아 있는 이 작은 균류가 우리의 일상을 지켜주기라도 할 것처럼.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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