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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왕

: 2000년 제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문학동네소설상-05이동
리뷰 총점6.3 리뷰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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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0년 02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03쪽 | 153*224*30mm
ISBN13 9788982812668
ISBN10 898281266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장점은 우리 문단에서는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상상력, 묘사력, 분석력의 직관적 통합에 있다. 숲의 형제단이라 일컫는 소설속의 인물들은 다양한 이력만큼이나 특이하고 흥미롭다. 또한 신화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복원하고 있는 이 소설의 강점중의 하나는 자연의 생명력과 삶의 깊이를 묘사하는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에피쿠로스의 정원
2. 숲의 형제단
3. 숲의 왕
4. 신성한 숲
* 심사평 - 김화영, 오정희, 윤흥길
* 인터뷰 - 김수이(문학평론가)
* 수상소감

저자 소개 (1명)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 김영래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나 중동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997년《동서문학》신인상에『소금쟁이』외 4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약 7년간의 창작과정을 거쳐 완성한 작품『숲의 왕』으로 제5회 문학동에소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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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제물을 움켜잡아 사지를 노끈처럼 휘늘어뜨리고 목을 부러뜨리고, 등골을 꺾고, 통뼈를 이루는 목질의 미세한 결 속까지 파고들어 그 층을 낱낱이 칼질해 화염의 절구통 속에서 가루로 바수어버리는 폭군 같은 신, 그는 눈곱만큼의 부끄러움도, 잠깐의 망설임도 없었다.
--- p. 158
숲에서 가장 나쁜 것은 두려움이에요. 공포심, 바로 그것이 가장 무서운 적인 것이죠. 짐승들은 숲속에서 공포를 느끼는 자들을 가장 두려워해요. 역설적인 의미에서 겁쟁이는 가장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이죠. 나무 작대기로 뱀을 후려쳐 죽이는 자들은 그러한 행위로 자신이 겁쟁이이고, 세상에서 지극히 두려운 존재, 나쁜 자식임을 입증할 뿐이죠. 공포는 무기와 그에 비례하는 무분별한 용기를 동반하니까요. 인간 중심의 불결, 불쾌, 불안의 이미지들을 버릴 때, 바로 그 순간 숲은 모든 생명체들의 코스모폴리스, 지구 연합으로 거듭날 수가 있어요.
--- p.183
망각이나 절망 따윈 없이 절정에서 곧바로 죽음 쪽으로 내리막길을 찾는 불의 저 수직성. 때문에 모든 불꽃은 이렇게 소리치는 듯이 여겨졌다. '한 번뿐, 오직 한 번뿐!'이라고. 그런데 왜 그 외침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한번, 다시 한번!'이라고 메아리로 공명하는 것일까?
--- p.160
노인은 잠시 더 머물며 검은색의 굳은 덩어리들이 청색 물감으로 풀어지는 것을, 그리고 띠처럼 가늘어진 안개가 서서히 젖빛을 띠는 것을 지켜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 p.259
권 소장에 관한 기억에서 지금도 선연하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사통팔달한 그의 박식과 남도 사람 특유의 입심이다. 그는 명실공히 잡학의 대가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 점은 소장실에 나뒹구는 삼십여 권의 책을 통해서도 익히 알 수가 있었다. 연금술이나 점성술과 같은 다분히 밀의적인 책에서부터 사진, 새, 민물고기, 고고학, 민중신학, 풍수, 신화, 고대 이집트, 성격은 물론이고 코란과 동의보감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갈래를 잡을 수 없는 서적들이 문어발식의 지적 편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에 그의 전공인 토목을 덧붙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인데, 그도 자기 직업에 대한 응분의 예우를 갖추기 위해 서가의 지정된 자리에 일어와 영어로 된 관련 서적을 신주처럼 모셔두는 것이었다.
--- p.76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제1회 『새의 선물』의 은희경, 제2회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의 전경린, 제3회 『예언의 도시』의 윤애순으로 이어지면서 ‘대형신인’의 산실로 자리잡아온 ‘문학동네소설상’이 제5회 당선작으로 김영래 장편소설 『숲의 왕』을 선보인다.(1999년 제4회 때에는 아쉽게도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본심 심사는 김화영, 오정희, 윤흥길 세 분이 맡았다.

김영래(金榮來, 37세) 씨는 1997년 『동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지만 거의 무명에 가깝다. 소설은 이번 수상작 『숲의 왕』이 처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숲의 왕』은 그런 이력을 가볍게 뒷전으로 돌려버린다. 그만큼 익어 있고 묵직하다. 결처에 대한 지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심사위원들은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작품의 장점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상상력, 묘사력, 분석력의 직관적 통합에 있다. 내가 처음부터 이 작품의 매혹에서 끝내 놓여나지 못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작품의 심장부에서 세 페이지에 걸쳐 선보이는 ‘불’의 묘사에서 느낀 충격적 아름다움 때문이다. --- 김화영

‘숲의 형제단’이라 일컫는 소설 속 인물들은 다양한 이력만큼이나 특이하고 흥미롭다. 묘사와 비유 능력도 탁월하다. 작가의 깊고 진지하고 때로 천진한 시선 속에서 나무와 불, 물, 안개들은 소설 전편을 부드럽게 싸안으며 타오르고 녹아들어 하나가 된다. --- 오정희

메시지의 중량감과 그 메시지를 시종일관 어기차게 밀고 나가는 뚝심, 정확하고 힘있는 문체, 긴장미 넘치는 선연한 묘사력은 작가의 저력을 십분 신뢰하게 만든다. 가볍고 약한 주제, 개인의 사사로운 신변 이야기로 무성히 채워졌던 지난 세기의 맨 뒤끝에서 무거운 주제, 공동체 일반의 이야기를 끌어안은 채 새 천년의 험한 길을 가고자 하는 자세가 여간 미덥고 반가운 게 아니다. --- 윤흥길

작품 속에도 암시되어 있지만(215∼219쪽) ‘숲의 왕’이란 제목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첫번째 장(章)에서 가져온 것이다. 자연이 늘 보여왔으며, 인간의 오랜 신화적·종교적 상상력이 거듭 밝혀온 ‘죽음을 통한 재생’의 화두를 작가가 부여잡은 시대적 맥락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이 필요없을 줄 안다. 우리 시대 최대 현안인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이미 그 절박성에서 발등의 불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그칠 줄 모르는 자본과 인간의 욕망이며, 그 대안들조차 환경정치나 환경산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영래씨는 그러나 무슨 대안의 메시지로 이 소설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최근 그 어느 작품에서도 유례를 볼 수 없었던 풍성한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오늘의 인간’, 바로 우리 자신들의 삶의 존립을 근원에서 묻는다. 그 물음은 우리 시대 전체에 대한 거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시적이기까지 한 비범한 묘사력과 생생한 삶의 이야기에 실려 실존의 비통한 목소리에 이르고 있다. 그리하여 “과연 이 세계는 살 만한가” “우리는 과연 행복하게 숨쉬고 있는가” 하는 도저한 질문을 독자의 내면에서 천천히, 그러나 선연하게 길어올린다.

그 질문과 만나는 과정이 우리를 힘들고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길을 안내하는 작가의 문체는 시적이고 아름답다. 그 문체는 마치 이제는 사라져가고 있는 숲의 맑은 공기를 마지막으로 사는 듯하다.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수상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해놓고 있다.

신화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복원하고 있는 이 소설의 강점 중 하나는 자연의 생명력과 삶의 깊이를 묘사하는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다. 자연과의 교감을 묘사하는 부분은 시적인 황홀경을 느끼게 하며, 인간과 삶에 관한 통찰력은 잠언과 경구의 깊이로 다가온다. 신성한 자연의 음성을 듣는 듯한 그것은, 우리 소설의 새로운 영토를 만나는 기쁨이기도 하다.

바로 위의 인터뷰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작가가 이 작품에 들인 시간은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약 7년간이다. 그중에서 6년간은 자료 수집과 현장 답사를 병행했다고 한다.(『문학동네』 2000년 봄호에는 그때의 모습이 화보로 실려 있다.) 1997년부터 환경운동연합에 몸담았고 작가가 살고 있는 지역인 경기도와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의 〈창립선언문〉을 직접 썼다는 사실을 여기서 부연하는 것은 사족일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선언문의 글은 읽어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작가의 생각이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본문 287쪽 참고)

그렇다면 ‘숲의 왕’은 누구인가?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삶에 묵은 사연 하나씩을 품고,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라 이름붙인 숲속의 공간에 새로운 삶의 장을 설정한다. ‘숲의 형제단’.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들의 지향은 그 숲 입구의 편액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누구나 들어와도 되나 아무도 들어와선 안 되나니
이것은 침묵과 가난과 겸양과 기도의 자리.
한 잔의 물 한 움큼의 낟알로 하루를 나나
사랑은 한 두레박 감사는 한 가마니인 곳.
모두의 것이자 누구의 것도 아닌 정원.

--- REX NEMORENSIS(숲의 왕)

자연의 풍요와 평화를 주관하는 신화 속의 ‘숲의 왕’은 죽음과 재생의 상징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숲의 왕’은 어디에 있는가. 이 소설은 그 ‘숲의 왕’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숲의 형제단’의 정신적 지주인 닥터 그린인가. 작가는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살인사건들을 추리적 기법으로 따라간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이 있는 숲은 큰 불로 재만 남는다. 그리고 ‘숲의 형제단’은 해체된다. 그렇다면 ‘숲의 왕’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없는 것일까.

그 숲 주변에서 대대로 살아온 산지기 임 노인이 그 질문을 떠맡는다. 노인은 화재로 폐허가 된 숲 한켠, 아들 성치가 목매달아 죽은 나무 아래에서 사나운 불길을 이겨낸 도토리 한 알이 견과 속의 속살을 열어 잿더미 사이로 연둣빛 새싹을 뽀조록이 밀어올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죽음을 통한 재생의 드라마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는 산지기 임 노인이 느리고도 당당하게 “나, 나는 숲의 왕이다”라고 소리를 내어보는 소설의 결말은 아주 더디게 찾아온 묵직한 감동이 된다.

덧붙이는 말 : 심사위원 김화영 교수가 “만약 바슐라르가 살아서 이 대목을 읽었더라면 그는 분명 『불의 정신분석』이나 『촛불의 불꽃』 어디쯤에 감동적인 한 챕터를 추가했을 것”이라고까지 평한 불의 묘사 장면(158∼160쪽)은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회원리뷰 (10건) 리뷰 총점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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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래 - 숲의 왕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YES마니아 : 골드 동**가 | 2011.11.0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떤 인디언 추장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도 사냥을 하지만 재미로 사냥하지 않는다. 우리는 짐승을 잡고 나면 털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그게 우리에게 소중한 음식을 제공한 짐승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제목만 봐도 딱 견적이 나온다. 숲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왕도 나온다.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분히;
리뷰제목

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떤 인디언 추장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도 사냥을 하지만 재미로 사냥하지 않는다. 우리는 짐승을 잡고 나면 털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그게 우리에게 소중한 음식을 제공한 짐승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제목만 봐도 딱 견적이 나온다. 숲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왕도 나온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분히 현학적인 내용과 긴장감 없는 사건의 진행이 아쉽다. 중간 부분부터는 소설을 읽고 있는지 인문 서적을 읽고 있는지 분간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인용 된 문구가 많았다. 작가는 어떤 텍스트를 읽고 새롭게 다른 텍스트를 창조해내는 직업이다. 그런 점에서 김 영래 작가는 작가로서 실격이다. 어디에서 인용되었던, 어디에서 보았던 간에 작가는 자기 것인 척해야 한다. 세상을 보고 그것을 작가 내면에서 발효시켜 쏟아 내야한다. 계속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숲의 고결함을 해치는 적들에 대해 숲을 지켜가는 사건의 전개가 너무 약했다. 오히려 숲에 관한 신화와 전설을 너무 많이 인용해 긴장감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우화식 이름은 어색하기까지 했다. 너무 직접적으로 숲의 소중함을 말하지 않았나 싶다. 조금 더 숨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치밀한 묘사력은 가히 천부적이다. 중간에 나오는 불에대한 묘사는 정말 아름다웠다. 소설가보다는 오히려 시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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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왕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자**맛 | 2009.02.1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우와아앙. 제목이 간지나서 사놓고 보지를 않던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라 어느정도 퀄리티는 이미 보장되었다고 보는게 옳다. 달의 바다가 그랬고, 캐비닛도 그랬다. 재밌었다. 돈이 아깝지 않은 것. 적어도 영화 두편 보는 맛은 있었다. 아, 영화를 깎아 내리는게 아니다. 책은 혼자 보는 것이고, 거기에 온전히 내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두편의 값어치가;
리뷰제목

우와아앙. 제목이 간지나서 사놓고 보지를 않던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라 어느정도 퀄리티는 이미 보장되었다고 보는게 옳다. 달의 바다가 그랬고, 캐비닛도 그랬다. 재밌었다. 돈이 아깝지 않은 것. 적어도 영화 두편 보는 맛은 있었다. 아, 영화를 깎아 내리는게 아니다. 책은 혼자 보는 것이고, 거기에 온전히 내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두편의 값어치가 있었다.

 

사실 제목만 보고는 당연히 뭐더라, 호랑이 이야기인 줄 알았다. 숲에서 왕이면 그게 호랑이지 뭐. 그런데 이건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아니었다. 환경 저널이었다. 그는 환경에 대해 논했고, 이 따위로 사람들이 살아가다간 망해버릴 거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공감이 되기도 한다. 갈수록 석유는 줄어들고 석탄까지 뽑아쓰고, 오존층은 뚫리고 대기권은 얇아지는데 빙하도 녹아내리고 여전히 투발루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라의 경제를 위해 눈을 가리고, 입을 다물로 귀를 막았다. 환경따위 알게 뭐냐, 뒈져버릴. 지속 가능한 개발은 역시나 탁상공론에 눈 가리고 아웅식의 헛소리다. 주가가 3자리를 달리고 환률이 1500으로 치솟는 이 마당에 환경을 위해서 경제를 천천히 발전시켜야 합니다, 라고 했다간 당장에 내 뺨을 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말해야 한다.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고.

 

REX NEMORENSIS. 이 한 줄로 모든 것은 설명 된다. 이제 비폭력 무저항의 순수는 없다. 그리고 합리적 대화도 없다. 개발과 환경은 이제 양립할 수 없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결국 환경은 제의를 올릴 수 밖에 없다. 꿈꾸는 이상을 위해 그들의 제사장은 한 없이 빌고, 빌고, 또 빈다. 이 세상을 버리고 갈 수 있게. 더 이상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원하지 않는다. 환경에 기대어 이 빌어먹을 난개발의 세상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어머니 대지는 이미 범해지고, 아버지 하늘은 죽었다. 내 부모가 죽었는데 대체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책은 강하게 외치고 있다. 생명은 위대하다. 자연은 존엄하다. 하지만 대체 왜 빌어먹을 현대인이라는 종자들은 그런 것을 도저히 모르냐는 것이다. 자연을 살려야 한다고 주둥이를 나불대지만 그래놓고 자기 집이 그린벨트로 묶이면 씨발씨발 한다. 그래, 나도 우리 집 보호지역으로 묶이면 씨발거릴 것이다. 나도 속물에 현대인이니까.

 

모든 자연은 결국 지켜오던 자에게로 돌아간다. 이 세상 석유가 다 떨어지고 더 이상 수억 와트의 전기가 뿜어지지 않을 때, 우린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연은 자신을 모르는 자에게는 냉혹하다. 냉엄한 자연의 솎아내기 속에서 결국 지켜오던 자들만이 그 분노를 피하게 되고, 인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럴 때를 대비해서 자연을 사랑하자는 것은 아닌 것같 같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다 죽던지. 전부 자연에 패하던지.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진실이고 그럴 때를 대비한다면 우린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안락함과 쾌락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쾌락주의의 에피쿠로스는 깨달음의 큰 쾌락을 위해 먹고 사는 작은 쾌락들을 희생했다. 우리도 생존이라는 쾌락을 위해 약간의 불필요한 쾌락을 자제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언젠가 숲의 왕이 나타나 우리를 인도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전에 이 빌어먹을 인류가 다 망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 때 우린 당당히

 

'살려주세요.'

 

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난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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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사랑하자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아*작 | 2008.12.0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제목이 숲의 왕이다. 제목에 걸맞게 내용도 환경보호에 관한 글이다.       리뷰 끝.       이러고 싶다.         전쟁터에 오래 머물면 뜻하지 않는 위기 상황에 많이 봉착하게 된다. 그런 삶이 지속되다 보면 습관처럼 생기게 되는 능력이 하나있다. 바로 판독능;
리뷰제목
     제목이 숲의 왕이다. 제목에 걸맞게 내용도 환경보호에 관한 글이다.

      리뷰 끝.

      이러고 싶다.

 

      전쟁터에 오래 머물면 뜻하지 않는 위기 상황에 많이 봉착하게 된다. 그런 삶이 지속되다 보면 습관처럼 생기게 되는 능력이 하나있다. 바로 판독능력이다. 그 판독 능력은 문장이나 문서, 암호의 범주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지형지물을 비롯한 인간에게 까지도 영역이 확장된다. 다시 말해 전쟁터에서 어느 누구에게 의지할 데  없는 한 명의 병사가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 자생적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 할수 있다.

      이런 습관은 한 번 생기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맹수가 자신의 새끼를 지키기 위해 항상 민감하게 주변을 경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옳으리라.

      인간에게 위기는 촉수를 민감하게 발달시키는 하나의 도구이다. 불운속에 만들어진 재능이라 할수도 있겠다.

 

      사람은 역시 사람이다 보니 그 사람의 추구하는 바나 성향이 무엇을 통해서든 나타나게 되어있다.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일 경우는 그게 더욱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나 음악, 문학 모든 장르가 그렇다. 작가의 색채를 배제할 수 없으며 그러다 보면 그 속에서 작가 내면의 인성도 발견할 수 있다.

      실제 인간관계에서 사람을 대면하면 실제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약점을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포장된 채 드러나게 되므로 감추어진 속내를 밝혀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사람은 위기 상황 즉, 자신의 방어가 느슨해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그의 진가를 알 수 있다고 종종 말하기도 한다.

      술주정, 도박의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러면 반드시 그런 상황에서만 속내를 뚫어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포장지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훈련되어진 사람들이 있다. 기업으로 치면 인사를 담당하거나 채용을 담당하는 사람이 그런 훈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그런 자들보다 더 냉혹하게 깊은 곳까지 뚫어볼 수 있는 자들도 존재한다. 바로 앞서 말한 전쟁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장수들이 그렇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두고 상황을 판독하는 것에 길들여진 사람은 빠르고 정확하다.

      물론 무언가를 꽤뚫어 본다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니다. 당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리 없겠지만 가하는 사람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가려내고 솎아내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뛰어난 사교술을 지니고 있음에도 가깝게 두려는 자는 극히 그 수가 드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발견할 능력이 되지 않아 사람을 곁에 두지 못하는 것 보다 발견할 수 없어 곁에 두지 못하는 자의 심정이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남자에게 한 번 속은 여자는 남자를 믿지 않는다. 두 번 속은 여자는 남자의 꼼수를 읽어내게 되며, 세 번 속은 여자는 남자를 갖고 놀 수 있다. 갖고 노는 것이 즐거울 일 같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영원히 사랑할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비슷한 이치들이다. 전장이 아니라면 계발되지 않을수록 좋은 재능이다.

     용병이 제대후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화려한 문장력을 지닌 작가이다. 특히 그 묘사면에서는 발군의 실력이란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책의 주제는 쉽게 보아 버릴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환경이라 함이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무엇인가.

      작가의 책속에 등장하는 문구 하나를 인용해 본다.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것을 현학적인 수사로 치장함으로써 초점을 흐려놓았다." 131쪽.

      자신의 작품이 그렇다.

      260쪽 정도에 해당하는 비교적 짧은 장편임에도 시종 또아리를 틀며 보게된 것은 비단 이런 이유뿐이 아니다. 그 화려한 묘사에 절제가 없다. 그러므로 중반부에 이르면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일 뿐 아니라 이전의 그 화려함도 퇴색해 버리고 만다. 소설은 반드시 완급이란 게 존재 해야 한다. 독자에 대한 배려가 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혼자 즐기려면 작품 발표를 왜 하는 가. 또는 전문가끼리 모여 최고라고 추켜 세우려면 문단 계간지에나 실어놓고 또래집단끼리 감상하고 말 일이다.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하여 나같은 독자까지 꼬여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래, 속아 넘어간 내가 등신이다.

      동급 소설 [캐비닛]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맥도날드가 자신들의 고기를 공급받기 위해 아마존 정글을 밀어내고 있다, 그것은 지구 온난화를 비롯해 각종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너 이 새끼, 지금 햄버거 먹고 있어? 쪽팔리지!라고 비스무레하게 말하고 있다.-생각이 잘 안나서 각색했다.- 숲의 왕 260쪽 보다 캐비닛의 두 줄 문장이 훨씬 가슴에 와 닫는다.

      

      무엇보다 나의 인내심을 극한으로 끌고 갔던 이유는 나의 개인적인 성향으로 말미암아 그렇다. 나는 자신의 주장을 본인의 체험을 바탕으로한 간곡함이 없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의해 온갖 전문가들의 지식을 암기하여 떠벌여대며, 그러므로 나의 말이 옳다, 라고 주장하는 부류를 한심하기 그지없는 눈길로 바라본다. 물론 내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나는 그런 인간들을 상종하지 않는다.  그런 자를 어느 조직의 장으로 앉혀 놓아 순식간에 그 조직이 와해되는 것을 한 두 번 본게 아니다. 그런 자들은 당연히 고집도 드럽게 쎄다. 논쟁에서 지는 걸 굉장히 쪽팔려 한다. 참 실속없는 군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잭의 80%가 남의 얘기를 짜깁기 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용해서 주장하는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간만에 책보다가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이 나마도 작가의 뛰어난 묘사력을 존중하여 이만큼이나 리뷰를 끄적여 준다.-사실, 분노의 용트림이구나!- 개인적으로 만날 일도 없는 작가이지만 만나더라도 알고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작가 인터뷰를 보고 그렇게 느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자는 제의를 거절하고 읽은 책이건만 결과가 이 모양이라 분노가 더욱 극에 달한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이 얼마나 공격성이 드러나는 리뷰란 말인가!

 

      (님하 진정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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