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게 좋은 여행 경험을 만들어드리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여행길에 오르니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였을까. 항상 비행기만 타면 곯아떨어지던 나인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자야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에 여행지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갖가지 안 좋은 상황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소매치기를 당하면 어떻게 하지? 할머니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시면? 혹시 다치거나 편찮아지시기라도 하면?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45년이라는 세월의 차이였다. 94년생인 나와 내가 살아온 햇수의 두 배 이상을 살아온 49년생 할머니. 한 피가 흐르고 있는 만큼 우리에게는 닮은 점이 많았지만, 다른 점도 그만큼 많이 있었다. 서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긴 했지만 여행길에 오르자 평소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할머니, 근데 왜 안방에 있는 침대 두고 거실에서 자요?”
“할머니는 원래 저녁 먹은 다음에 항상 거실에 불 끄고 누워서 TV 보다가 자.”
그러곤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천천히 입을 떼셨다.
“가끔 다음 날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생각할 때가 있어. 자식들은 다 서울 올라가서 각자 자기 새끼들이랑 함께 있지,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지. 이렇게 저녁에 혼자 있다 보면 너무 외로워서 TV를 켜두고 자는 거여.”
부모로서 차마 자식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했던 외로움이 담긴 말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벌써 10년째 할머니는 외로움을 혼자서 묵묵히 버티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 또한 조금씩 나이 들어가면서 할머니와 멀어지는 걸 너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온 것은 아닐까.
‘엄마 아빠한테는 나랑 동생이 있는데, 지금 할머니 곁에는 누가 있지.’
--- 「밤 8시에서 10시 사이, 엄마의 엄마가 외로워」 중에서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20대 중후반이 돼서야 돌아본 할머니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아무리 나에게 언제까지나 강한 여인으로 남아 있을 것만 같다 해도 할머니는 언젠가 돌아가실 텐데. 도대체 왜 난 할머니가 어릴 적 내 기억 속 강인한 모습 그대로 평생 살아 계실 것처럼 생각했을까.
--- 「할머니 무릎 아래, 나의 어린 시절」 중에서
나중에 들어보니 할머니는 일주일 동안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셨다고 했다. 내 팔자에 유럽여행을 가본다고, 손자가 이번에 취업해서 단둘이서 간다고. 어린 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여행은 모든 사람에게 설레는 일인가 보다.
--- 「할머니, 저랑 여행 갈래요?」 중에서
결국 한국 음식이 캐리어의 절반 넘는 공간을 차지했다. 남원 노치마을에서 한평생 살아오신 할머니에게 낯선 음식은 분명히 도전이었고, 말은 안 해도 긴장하고 계셨을 것이다. 하나둘 챙기다 보니 이렇게 많아진 것이리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건 너무 많았다.
한숨을 쉬며 캐리어 반대쪽 칸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반듯하게 개어 넣은 긴팔 원피스 네 벌. 그 위에는 빨강, 파랑, 노랑 화사한 색 꽃무늬가 피어 있었다. 생전 처음 떠나는 유럽여행에 대한 긴장과 불안 뒤에 예쁜 옷 입고 꿈꾸던 곳을 누비며 사진도 찍을 생각에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 「할머니 캐리어 속에 들어 있던 것」
의자에 누워 자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한가득이었다. 환승하지 않고 바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가는 비행기를 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돈 아끼려다가 이게 무슨 고생인지. 다음에 여행 가게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직항으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3시간의 비행이 남았다. 3시간만 지나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도착한다. 한국을 떠나 정말 먼 길을 왔다. 할머니는 베네치아행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숨을 쌕쌕거리며 잠에 드셨다. 나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할머니가 남은 3시간만이라도 주무시며 가는 것이었다.
--- 「할머니 허리뼈 두 마디가 붙어버렸대」 중에서
“뭐 해? 퍼뜩 안 오고. 다리 아파.”
어떻게 온 베로나인데.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이것저것 다 보고 가야 하지 않나? 아쉬움에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얼굴에 서운한 표정이 드러났는지, 한발 앞서 나아가던 할머니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꼭 다 봐야 할 필요가 있니? 같이 있는 것이 여행이지.”
순간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에게 관광은 그저 여행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보내는 모든 시간이 여행이었던 것이다.
--- 「그냥 가지 뭐」 중에서
“제육볶음은 다 먹었고, 저녁은 어제 사 온 소고기에 버섯이랑 고추장 넣고 찌개 끓여 먹자.”
할머니가 저녁을 해주신다는 말 한마디에 갑작스레 허기가 졌다.
“네, 할머니. 좋지요.”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스스로에게 웃음이 났다. 아무래도 이제는 내가 할머니를 더 의지하는 것 같다.
--- 「밤하늘 아래 테라스에서 펼쳐진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 중에서
‘내가 할머니랑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에 오다니.’
사방이 온통 눈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이 풍경도 믿기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할머니랑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라고도 할 수 있는 융프라우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동안의 고생이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해냈다는 성취감도 물씬 밀려 들어왔다. --- 「죽기 전에 와서 다행이야」 중에서
“할머니 뭐 보고 있어요?”
“응? 멍 때렸어. 하하.”
할머니는 멍 때릴 때 무슨 생각을 하실까. 여행이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하실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실까.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계시는 걸지도.
막상 깊게 물어보지는 못하고 장난을 쳤다.
“할머니 별명은 이제 오멍례 할멍니예요.”
그 말을 듣자 할머니는 깔깔 웃으며 좋아하신다.
--- 「아쉬움과 함께 마지막 도시 루체른으로」 중에서
사람들은 항상 “다음에 밥 한 번 먹자” “다음에 같이 어디 놀러 가자” 말하곤 한다. 그 ‘다음에’는 영영 오지 않을 때가 많다. 이번 여행은 출발 단 일주일 전에 결정된 만큼 다소 충동적이었다. 이번에 미루면 다음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가 말하는 ‘다음에’가 도대체 언제인지, 지킬 수는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때로는 여행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지금 당장이 아니면 안 되는 일들이 분명히 있다. 할머니에게 “할머니, 우리 다음에 같이 여행 가요” 말한다 해도 지키지 않는다면 그만큼 무의미하고 무책임한 말이 또 있을까. 그렇게 계속 ‘다음에, 다음에’를 외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정말 많이 슬플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유난히도 급하게 계획되었다. 나는 혹여나 또 ‘다음에’라는 말이 튀어나올까 봐 “할머니! 다음 주에 바로 가요”라고 외쳤다.
--- 「‘다음에’는 이제 그만하기로 해요」 중에서
이렇게 글 쓰니 참 좋네. 다시 여행 간 기분. 여기저기 새록새록 떠올라 행복해지는 이 마음.
나를 이렇게 좋은 기억 속에 살게 한 내 손자 고맙다.
내 손자 흥규야, 고맙고, 안쓰럽고, 대견스럽고, 할머니가 많이 사랑해.
--- 「할머니의 일기」 중에서
어떻게 보면 고생을 사서 했던 우리의 여행. 우리의 다음 여행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또 다투고, 화해하겠지.
다음 여행 때는 더 오래 걷지 못할 수도 있고, 하루 종일 숙소에만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음 여행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할머니를 생각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