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히 깨진 그릇이 바로, 만약 나의 마음이라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지금 내 곁에는 마음이 깨진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요? 깨진 그릇처럼 자신을 내동댕이쳐 파괴하는 사람들, 깨진 조각을 들고 타인을 해치려는 사람들, 깨진 의식 속에 자신을 가두어 버리고 울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깨진 그릇은 좌절, 분노, 절망 등 부정적인 감정을 의미합니다.
--- p.18-19
우리의 일상은 강과 아주 흡사합니다. 조용히 흘러가지만, 사실 강물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살고 있습니다. 그 물고기를 낚아내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낚시꾼들이 물고기를 낚아내듯이, 글감도 조용한 일상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사실은 이런 기술이 중요합니다. 충격적인 소재는 잠깐 동안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에서 소중한 보물을 건져 올리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이고 예술가들입니다. 어떤 이는 나를 중심으로 반경 3킬로미터 안에 작품의 소재가 있다고 합니다.
--- p.34-35
당장 죽고 싶을 지경이라는 그것이 바로 살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대립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한 문장 안에 아름답게 결합하면 좋은 시가 됩니다. 당신처럼, 제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빛이 없으면 어둠이 없고 어둠이 없으면 빛이 없듯이 우리 모두의 인생에는 행복과 불행, 빛과 어둠이 같은 시간, 함께 뒤섞여 있습니다. 시는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인생이 없는 시는 공허한 구호일 뿐입니다.
--- p.59
마음을 어떻게 보느냐고들 이야기하지만, 마음을 보는 방법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는 내 마음을 읽고, 나의 마음을 보고, 쓰다듬고, 외치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간절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도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전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간절한 마음에는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 p.74
‘도대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좌절하기보다는 ‘내가 이건 할 수 있잖아’라는 용기와 힘이 필요하지요. 아마도 당신에게는 이런 용기가 이미 충만하겠지요. 그걸 시로 풀어보세요. 시는 또 다른 현실입니다. 시가 미래나 과거를 다루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도 결국 시적 현실입니다. 이 순간에 드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화자가 되어 이 거칠고 건방진 세상에 나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시에서 화자가 된 나 자신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 p.95
나무들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잘 자랍니다. 나무와 나무가 너무 가까이에 있거나 너무 멀리 있다면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없습니다. 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대상이나 생각을 쓰고 싶다면, 나무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듯이 적당한 거리 조정이 필요합니다. 거리감이 지나치게 멀거나 가깝다면, 좋은 문장이 나올 수 없겠지요. 문장에서 너무 가까운 거리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상에 접근할 때 나타납니다. 심리적으로 감정의 과잉 상태가 되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대상에 접근하게 됩니다.
--- p.109
일주일에 서너 번, 혹은 한 달에 한두 번이어도 좋습니다. 일단 선택한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다음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겁니다. 주위에서 상투적으로 쓰는 단어들일수록 좋습니다. 행복, 별, 사랑, 돈, 연인, 봄과 같은 단어들을 우리는 자주 만납니다. 오래된 단어일수록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니까, 공부하기도 좋고 창의적인 생각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신조어 같은 새로운 단어도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말을 사랑한다면 어휘력이 늘고, 세상을 보는 안목도 조금은 넓어질 것 같아요.
--- p.118
고독은 자신을 가장 솔직하고 담백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타인이 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가 찾고 발견해야 하는 섬과도 같은 장소입니다. 일상적으로 중요한 일정을 처리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듯이, 이 시간을 잘 정리해놓고 시간을 내서 직접 찾아가 만나야 합니다. 이런 습관이 든다면 그는 남다른 사람이 될 겁니다. 좋은 연장을 하나 손에 쥐는 겁니다. 이것을 ‘선택적 고독’이라고 부르도록 하지요.
--- p.135
시는 짧지만 단단한 시작법에 근거해서 구성해야 합니다. 시적 기법으로 문장을 만드는 겁니다. 초고를 쓰고 나서 쓰고 싶은 것을 제대로 썼는지 잘 짚어내야 합니다. 글쓰기는 의심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완성된 원고가 나오기까지 작가는 끊임없이 의심의 눈동자로 원고 보기를 반복합니다. 이것이 작품을 완성하는 단계인 퇴고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잘되면 작가의 의도는 더욱 도드라지게 되고, 그 마음이 독자에게 전달되면 성공입니다. 이 과정이 정말 어렵습니다.
--- p.141
세상은 내 마음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커다란 유리구슬입니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다양성입니다. 다양한 안목으로 다가서면 세상은 무한대로 펼쳐집니다. 유리구슬에 빛이 통과하면서 생기는 프리즘처럼 삶의 다양성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맹목적 행위나 믿음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종교나 정치적으로 연결되면 폭력적인 아수라장이 됩니다. 맹목은 더럽고 위험한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 p.150
동굴에 생긴 표식을 보듯이 주변에 있는 사람과 사물들을 잘 보고 이해하면 갈 길이 선명해집니다. 삶이란 홀로 가는 길 같아도 결국 사람과 함께하는 길이기도 하지요. 내가 만난 사람이 바로 내가 갈 길의 표식이 됩니다. 이들을 어찌 소홀히 하겠습니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이것이 마지막 방법입니다.
--- p.205
용서는 운동입니다. 운동은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사람들의 동작이 반복되는 것을 말하지요. 역기를 든다는지, 걷기를 하는 동작은 반복하는 동작으로 신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동작들입니다. 용서는 매우 일상적인 행위에서 비롯됩니다. 사소한 행동이라 생각해 저것도 용서인가 싶을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가 툭 부딪쳤을 경우 가볍게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것도 작은 용서의 시작입니다. 이런 행위가 마치 운동행위처럼 반복되면서 감당하기 힘든 경우에도 그 ‘용서 근력’으로 버티게 해줍니다.
--- p.237
사랑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늙거나 병들지 않았습니다. 동식물과는 달리 일정한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유기적 존재입니다. 보편타당한 사랑의 정의를 설정한다는 것은 무모하며,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일입니다. 결국 사랑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을 다룰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랑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신화적 상상력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신화는 우리의 무의식과 일상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 p.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