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공부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지금까지도 수학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누구는 영속하는 진리의 추구를 수학의 본질로 이야기하지만, 태양계의 수명이 다하게 되면 수학도 인류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누구는 논리적 완벽함을 말하겠지만,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수학은 현대 논리학의 관점에서 엄밀하지 않았다. 다만 수학은 수학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운 그림으로서 고대로부터 전해져 왔고, 이는 수학자들의 상상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 「서문」 중에서
방의 개수가 알레프 영인 호텔을 생각해 보자. 정확하게 말하자면, 각각의 자연수 1, 2, 3, 4, …에 대응되는 방 1호실, 2호실, 3호실, 4호실, …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어느 날, 이 호텔이 투숙객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어떤 지친 여행자한 명이 도착한다. 딱한 마음에 이 여행자를 돌려보내지 못하는 매니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힐베르트의 사고 실험이었다.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모든 투숙객에게 한 칸씩 옆방으로 옮겨 달라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1호실의 손님은 2호실로, 2호실의 손님은 3호실로 와 같이 옮겨서 1번 방이 비게 된다. 여기에 지친 여행자를 묵게 하면 되지 않겠는가.
--- 「02 무한에도 크기가 있을까」 중에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수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금의 이자나 자동차 할부금, 축구팀의 월드컵 진출을 위한 경우의 수, 경제의 성장률이나 사회의 불평등 지수처럼 수학적 사고를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럴 때 ‘수학적 사실’이라는 말은 절대 틀리지 않는 진리라는 의미로 통용되고는 한다.
심지어 우리는 목숨을 수학에 걸기도 한다. 자동차의 엔진 분사나, 비행기의 자동항법, 약의 성분 배합처럼 잘못된 대처가 심각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수학을 신뢰한다. 수학의 규칙을 통하여 답을 구하였다면, 그 답을 믿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려운 수학 문제는 있을지언정, 수학 자체가 틀리는 경우는 없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수학으로 도출된 사실은 모두 진실일 것이라 예상한다. 정말 그런 걸까? 그건 누가 정한 것일까? 수학은 정말 믿고 써도 안전한 것일까.
--- 「05 수학을 믿어도 될까」 중에서
확률이라는 것은 불확실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보이는 것(데이터, 임신 테스트 결과, 사회자가 열어 준 방, 과거의 역사)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가설, 임신 여부, 숨겨진 자동차의 위치, 그리고 미래)을 추론한다는 것은 인간만의 멋진 능력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확률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하루하루의 의사 결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 확률과 추론이라는 이 멋진 도구를 쓰는 데에 있어서 굳이 우리의 입장을 빈도주의와 베이지주의 둘 중 하나의 관점에만 묶어 놓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 「07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수학자의 자세」 중에서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동시에 보고, 필요 없는 정보는 버려 가면서 친구의 얼굴을 찾는 것. 단 한 번도 정확하게 같은 각도로 그 친구를 바라본 적은 없겠지만, 기억 속에 저장된 친구의 3차원 모습을 적절하게 회전시켜 우리의 망막에 맺힌 상과 비교해 내는 것.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맺힌 미묘한 모습의 차이로 친구와의 거리를 측정해 나가며 다가가는 것. 다리의 여러 관절을 복합적으로 회전시키면서, 근육을 정확하게 움직이면서 완벽하게 균형을 잡는 것. 옆에서 튀어 나오는 사람들을 모두 피하면서 경로를 수정하는 것. 우리의 마음은 이런 기하학적인 연산을 컴퓨터의 어떠한 GPU(그래픽 연산 장치)보다도 더 융통성 있게, 다재다능하게 실시간으로 해 내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 「08 벽지무늬 속에 숨겨진 수학」 중에서
수학자들은 종종 무언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이려고 오랜 시간 고뇌에 빠지곤 한다. 완전한 수학 체계는 있을 수 없다는 결과나 평행선 공리는 증명할 수 없다는 결과 모두 수 세기에 걸친 노력과 시행착오의 결실이다.
3대 작도가 불가능함을 보이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내려온 이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실패와 좌절을 통해 차츰 그 윤곽을 잡아 가기 시작했고 2천여 년이 지난 19세기, ‘수의 구조’라는 혁명적인 관점을 통하여 마침내 해결되었다.
작도 문제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하여 사람들은 수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되었다. 수를 단순한 계산의 대상으로 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수와 수 사이의 구조, 모양을 연구하는 학문이 탄생한 것이다. 이 학문을 추상대수학, 혹은 현대 대수학이라 부른다. 5차방정식 근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벨의 결과도 동시대에 발표되었는데, 이 역시 추상대수학의 탄생에 맞물려 일어난 일이다. 불과 스무 살 안팎의 아벨과 갈루아가 수의 바다 속에서 꿈꾸었던 상상, 추상대수학이 이제는 현대 수학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 「09 불가능을 증명할 수 있을까」 중에서
별은 얼마나 많을까. 그 별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주의 끝이 있을까, 거기에 다가갈 수 있을까. 거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주의 소멸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문학가, 미술가, 음악가, 철학자, 과학자… 모두 나름의 형태로 우주에 대한 이러한 경외감을 표현하고는 한다.
우주를 우주이게 하는 수학적인 특성은 무엇일까. 우주의 모양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수많은 고찰과 연구가 이어졌고, 그 결과 수학자들은 공간이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 탄생시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생각해 보자. 별과 블랙홀과 행성과 시간과 빛 등 모든 물리학적인 대상을 잠시 잊고, 가장 근본적인 공간, 즉 진공 상태만 남겨 둔다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 「11 우주에 끝이 있을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