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전집 시리즈 중에서 올해는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을 내놓는다. 그동안 『박인환 번역 전집』과 『박인환 시 전집』을 간행했고, 내년에는 박인환의 산문들을 엮어 간행할 예정이다. 박인환의 작품들을 발굴하고 간행하는 작업은 수월하지 않지만, 박인환 연구에 필요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기에 보람을 느낀다.
지금까지 발굴한 박인환의 영화평론은 총 59편으로 동시대의 영화평론가들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질적으로도 수준이 높다. 앞으로 박인환은 모더니즘 시 운동을 주도한 시인일 뿐만 아니라 영화평론가로서의 지위도 확고하게 갖게 될 것이다. 마땅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중략)
박인환 시인은 한국 영화를 매우 사랑했다. 그 깊은 애정이 있었기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땅에서도 한국 영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 영화평론가 박인환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그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인다.
--- 「책머리에」 중에서
박인환이 영화평론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휴전된 뒤부터, 특히 1954년 1월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결성한 뒤부터였다. 영화평론이라는 장르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박인환이 주도한 조직 활동은 한국 영화평론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박인환은 이 단체의 상임 간사를 맡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뒤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구의 문화 중에서 영화는 단연 앞장선 것이었으므로 박인환의 영화평론 활동은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박인환은 그 이전에도 영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메리카 영화에 대하여」(『신천지』, 1948. 1), 「전후(戰後) 미·영의 인기 배우」(『민성』, 1949. 11), 「미·영·불에 있어 영화화된 문예 작품」(『민성』, 1950. 2), 「로렌 바콜에게」(『신천지』, 1950. 6), 「그들은 왜 밀항하였나」(『재계』, 1952.8) 등이 그 예이다. (중략)
1956년 3월 20일, 박인환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그 누구보다도 왕성한 영화평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의 급작스러운 비보는 큰 아쉬움을 남겼다. 박인환이 타계한 이후 발표한 영화평론은 「〈격노한 바다〉」, 「이태리 영화와 여배우」, 「J.L. 맨키위츠의 예술― 〈맨발의 백작 부인〉을 주제로」, 「회상의 명화― 〈백설 공주〉 〈정부(情婦) 마농〉」, 「절박한 인간의 매력」 등이다.
박인환은 영화 잡지들을 비롯해 다양한 언론 매체에 영화평론을 발표함으로써 외국 영화와 영화배우를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은 물론 한국 영화의 상황을 진단하고 전망했다. 제작자, 감독, 시나리오, 배우 등 영화 제작과 관계된 문제뿐만 아니라 영화 정책에도 관심을 갖고 그 나름대로 발전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 「작품 해설」 중에서
한국적이라고 자랑하던 것…… 말하자면 다 쓰러져 가는 농촌에서 지주에게 딸을 빼앗기는 농부의 서러움이나 강가에 배가 있고 수양버들 밑에서 울고 있는 처녀의 이야기…… 이러한 일련의 개념성을 버리고 새 시대가 욕구하는 현실과 미래에 걸친 참다운 인간 사회를 우리 영화인은 필름에 기록하고 표현하여야 할 것이다.
--- p.107~108, 「한국 영화의 전환기」 중에서
심위가 민간단체의 성격을 띠는 데 반해서 이러한 협의적인 기관은 많은 반관성(半官性)을 지니게 하여야 하며 재언(再言)한다면 ‘영화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만의 모임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중략)
이러한 순수한 단체가 다방면으로 노력한다면 법적으로 하등의 근거가 없는 ‘영화 검열제’ 같은 것도 자연 폐지될 것이며 자유로운 영화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즐겁고 좋은 분위기가 양성될 것이라고 믿는다.
--- p.160, 「외화(外畵) 본수(本數)를 제한」 중에서
앞으로 제법 규모가 완비된 스튜디오라도 하나 있으면 전 영화인은 열정을 더욱 기울여 내용과 질에 있어서 그리 손색없는 작품을 많이 만들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그리고 상기한 영화들은 지금의 제작 진행의 성과로 보아 앞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까지도 진출될 충분한 가능이 엿보이고 있다.
--- p.211, 「산고 중의 한국 영화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