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서류-비누, 이 비누-서류, 20년 아니 25년 전부터 이 비누 때문에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몇 분 뒤면 저는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운도 좋지요!).
--- p.15 중에서
여러분은 아마 놀랄 겁니다. 왜냐하면 이 텍스트에는 지루한 반복이 자주 나오는데 이런 것이 문학에서 아주 일반적이지는 않으니까요.
여러분은 아주 자주 이렇게 지적하실 겁니다. "근데 반복되고 있어! 이건 겨우 몇 분 전에 이미 들었는데!"
그럼 제가 그것에 대해 변명해야 할까요? 아니지요. 그다지 변명하고 싶지는 않군요. 그런데, 이런 기법, 여러분이 음악 분야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러한 방식(그렇지 않나요?), 말하자면 되풀이, 다 카포라는 반복, 같은 주제의 변주, 여러분이 음악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푸가 형태의 작곡, 이런 것들이 문학에서는 왜 금지되어야 하나요?
--- p.17 중에서
비누는 할 말이 많다. 그가 수다스럽게 열정적으로 할 말을 다 했으면 좋겠다. 그가 할 말을 다 했을 때,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p.25, 「1942년 4월, 로안」 중에서
비누는 우리에게 얼마나 멋진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가! 그의 이마는 햇빛에 마르고, 어두워지고, 굳어지고, 주름지고, 갈라진다. 근심 때문에 금이 간다. 비누는 이렇게 비활성 상태로 잊혀져 있을 때 가장 잘 보존된다.
--- p.39, 「1943년 6월 3일, 콜리니」 중에서
자연에는 비누와 견줄 만한 것이 없다. 그렇게 소박하면서도 멋진 돌은 없다. / 비누의
인격에는 진실로 매력적인 뭔가가 있다. 그의 태도는 흉내낼 수 없다. / 그것은 완벽한 조심성으로 시작된다. / 비누는 다소 은밀한 향을 풍기면서도 완벽한 자제를 보여준다. 그러다가 우리가 자기에게 관심을 두자마자, 물론 불같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대단한 격정을 보이는지! 얼마나 헌신적이고 미친듯한 열정인지! 얼마나 관대한지! 거의 고갈되지 않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다인지!
--- p.47-49, 「1943년 6월 9일, 콜리니」 중에서
그가 망설이지 말고 항상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 좋겠다. 같은 방식으로 항상 같은 것을 말하면 좋겠다. 누구에게든 같은 방식으로, 물론 환희에 차서 같은 것을 말하면 좋겠다. 하지만 가장 멋진 것은 우리가 깨끗한 손으로 이 연습을 마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장 큰 교훈이다.
--- p.65, 「1943년 7월 8일, 콜리니」 중에서
더구나 물은 비누 때문에 매우 놀라 괴로워하며 톡톡히 대가를 치른다. 물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 흔적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양에 의존함으로써만, 말하자면 상당한 양의 증원군이 유입되어야만 물은 그것을 떨쳐 버릴 수 있다.
이제 비누를 물에서 꺼내보자. 그리고 이 두 적수를 각각 살펴보자. 한쪽은 양이 상당히 감소하여 얇아졌다. 하지만 성질은 변하지 않았다. 괴로워하는 상당한 양의 물은 체면을 구겼다. 승자는 누구일까?
--- p.105, 「비누 주제」 중에서
여러분은 내가 예전의 글들 덕분에 획득한 신용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또 여러분은 이러한 예비 산책이 재미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이처럼 시를 시작할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말할 것이다.?
"왜 당신은 생생한 주제로 들어가서 진솔하고 구체적인 형태를 예기치 않게 등장시켜 독자를 사로잡지 않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던가요?
친애하는 친구여, 당신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 p.135, 「1946년 8월 2일, 콜리니」 중에서
나부끼는, 빙빙 도는, 소용돌이치는, 부푸는, 다시 떨어지는, 둘러싸는, 증식하는 너울의 발레, 스카프의 발레. 이것이 우리가 젊었을 때 로이 풀러의 발레에 붙였던 이름이다.
망사 천의 발레, 거품의 발레, 기포의 발레, 분노와 황홀의 발레. 노여움의 발레, 환희의 발레, 눈꽃송이의 발레, 달변의 발레.
--- p.227, 「1964년 12월 29일, 파리」 중에서
우리가 별생각 없이 평소에 사용하는 것들 중에는 ― 빵, 비누, 전기도 마찬가지이지만 ― 단어들과 언어의 수사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물건들의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진정한 제작자는 작가며 시인이라는 점이 명백해질 것이다.
--- p.247, 「부록 4, 일반적으로 인간이 만든 사물들, 특히 어떤 열쇠들과 암호 해독판들」 중에서
비비는 행위 그 자체를 보자면, 그것은 단순한 잡기의 반복과 배가가 아닐까? 예를 들어 애무가 완전한 효과를 내서 마침내 특정한 신경의 변화에 이르게 하기 위해 반복되고 지속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약간의 경련 혹은 오르가슴이다.
--- p.251, 「부록 5, 손 비비기. - 뭔가로. - 쓰기와 읽기. - 대상기쁨의 도덕 입문. - 책의 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