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YWCA 회관 봉헌식 및 개관』에 따르면 대한YWCA연합회는 1966년 6월 10일 제1회 건축기성회를 소집했고, 건축가 차경순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차경순은 1967년 4월 7일 설계를 완료했고, 대한YWCA연합회는 6월 5일 삼양공무사를 시공자로 정해 계약을 체결했다. 대한YWCA연합회는 건축 기금을 모금하고자 후원을 요청하는 홍보물을 만들어 국내외 단체에 배포하거나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등에게 대외서신을 보내 회관 건립의 취지와 뜻을 전달하며 후원을 도모하기도 했다.
--- p.9
우연히 「건축사」에서 차경순의 부고 기사와 함께 그의 작품 목록을 대거 발견했다. 이 목록을 보며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차경순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멋진 옥탑을 갖고 있으면서 벽돌과 조화롭고 디테일이 섬세하게 다듬어진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발견하면 혹시 차경순의 작품이 아닐지 의심할 것 같다.
--- p.36
한국YWCA연합회에서도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건물의 쓰임에 대해 고민하던 차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계속 고민하던 숙제가 있었는데, 저희가 그때 마침 제안을 드렸던 것이죠. (웃음) 저희가 그동안 마실에서 행사하던 모습을 봐 오셨던 터라 같은 방향을 볼 수 있겠다고 믿어주신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이전까지 공익변호사와 비영리단체와의 관계였다면 그때부터 혁신적인 공간사업을 하는 기업가로 관계를 맺기 시작했어요.
--- p.65
한국YWCA연합회관은 시민운동의 거점으로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를 지나서는 오랫동안 일반 임대용 건물로 사용되었다. 저층부에는 금융기관이나 판매시설 등이 입점했고, 2020년 리모델링 공사 전까지 카페와 문고, 여러 은행 지점과 교역 사무실 등이 입주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이 건물의 정체성과 YWCA라는 태생을 온전히 보여주었던 것이 바로 건물 정면 현관 옆에 위치한 조각가 김정숙의 부조 작품 ‘여신상’이었다.
1968년 화강암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재료와 컬러의 명확한 대비를 보여준다. 가운데 날개 달린 천사를 중심으로 좌우에 두 여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인데, 세 여인은 한국YWCA연합회 창설자인 김활란, 유각경, 김필례를 상징하고, 이들이 들고 있는 횃불은 영, 비파는 지, 향유는 체로서 YWCA 이념을 상징한다.
--- p.77
상업지역이라면 대규모 실내 쇼핑몰부터 만들고 보는 대한민국에서, 명동은 보기 드문 세장형·소규모 필지 중심의 상업가로 지역이다. 지가가 높아짐에 따라 오히려 필지를 분할해 세장한 필지를 만드는 방식이 성행했고 이 때문에 조밀한 다양성을 담는 도시조직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그래서 합필에 의한 대규모 계획처럼 기존 도시조직을 손상하며 진행된 서울 대부분의 진부한 도시 재개발사의 어휘와는 판이한 구조를 띤다. 그래서 귀하다.
--- p.93
‘페이지’는 모든 것을 담을 만한 단어였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종이의 앞뒤 면을 가리키는 ‘장’을 의미하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시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타동사로는 사람을 찾거나 말을 전하는 안내방송, 연락, 호출의 의미도 있다. 또한 숙어로 ‘on the same page’라고 하면 여러 사람이 같은 마음을 가진다는 뜻이었고, ‘turn the page’에는 고비를 넘기고 새로운 장을 넘긴다는 의미였다. 이처럼 이름 자체에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하는 페이지 명동(PAGE MYEONGDONG)을 이 공간의 브랜드명으로 정하게 됐다.
--- p.106
페이지 명동이 산책감각을 내세운 또 다른 인문적 배경은 발터 벤야민이 근대적 지식인의 상징으로 제시한 산책자의 개념에 기대고 있다. 이 공간을 운영하는 더함은 이곳을 시민사회의 역량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적 혁신가들이 모이는 플랫폼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도시의 심장부에서 지금의 문화와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산책자들이 이곳에 모이고, 영역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사유할 수 있는 공간. 이것이 페이지 명동의 산책감각이다.
--- p.113
3층을 거쳐 페이지 명동 7층에 도착하면 명동성당과 남산이 보이는 탁 트인 전망과 독특한 패턴의 옥탑을 만날 수 있다. 루프탑은 기존에 외부인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공간이고, 옥탑 역시 물탱크를 보관하던 숨겨진 공간이었다. 3층 루프탑이 명동과 나란히 서 있는 듯한 느낌이라면, 7층은 명동을 품에 안은 듯한 느낌을 준다. 처음 이 공간을 발견했을 때가 떠오른다. ‘명동에서도 이런 뷰를 볼 수 있구나’ 하며 감탄했고, 7, 8층 옥탑을 만났을 때 ‘명동에서도 힙지로 감성을 느낄 수 있구나’ 하며 감동했다.
--- 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