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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3

: 독립과 냉전의 시대

신일용 | 밥북 | 2022년 01월 2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2건 | 판매지수 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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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610g | 172*245*30mm
ISBN13 9791158588489
ISBN10 115858848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머리말/일러두기

제10장 호치민의 투쟁
제11장 킬링 필드
제12장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의 탄생
제13장 수카르노와 수하르토
제14장 싱가폴이 사는 법

참고 연표

저자 소개 (1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동남아를 넓고 깊게 품으며 그들의 오늘을 만나다

이 책에는 수많은 역사적 에피소드와 인물이 등장하지만 결국은 동남아의 오늘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귀결된다. 미얀마에선 어떻게 오늘날까지 군부가 지배하고 있는지, 베트남의 하노이와 사이공의 분위기는 왜 그리 이질적인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폴 3국의 묘한 관계는 어떤 역사적 뿌리가 있는지, 필리핀의 계급구조와 빈부 격차는 왜 그리도 만성적인지, 라오스인들은 어째서 일상적으로 태국의 방송을 듣고 있는지 등등, 그들의 오늘을 만든 역사적 사연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각각의 사건들이 오늘에 이르는 맥락 안에서 정리되고 이해되면서 독자들은 동남아시아를 넓고 깊게 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쾌한 건 그 과정이 재미있다는 점이다.

깊은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만나는 흥미와 모험의 세계

작가는 “동남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놀라울 정도로 뿌리 깊고 다양하고 흥미롭다. 이 지역이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심지어 유교까지 포용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건 수천 년 동서양 교류의 길목으로서 세계의 모든 문화를 어느 것도 배척하지 않고 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동남아는 비행기를 타면 3시간에서 6시간 사이에 다다르는 곳, 우리나라로 향하는 에너지 자원의 대부분이 통과하는 해협이 있는 곳, 우리 제품의 주요 고객인 6억5천만 형제들이 사는 해외직접투자의 주요대상국”이라면서 “이 책을 통해 우리들과 비슷한 역사를 거쳐온 그들의 투쟁과 생존에 파트너로서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고 밝힌다.

편집과정에서 네 권의 시리즈를 읽어본 후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여행하는 동남아시아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도시의 골목과 지나치는 산과 강들이 끊임없이 풍성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사항

각 권에 실린 동남아시아 지도와 연표가 독해를 돕는다. 또한, 복잡다단한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로 이루어져 있기에 본문에서 다뤄지는 사건과 인물이 연결된 또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 페이지를 색인처럼 안내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전작 『라 벨르 에뽀끄』 애독자들의 요청에 따른 배려이다.

회원리뷰 (2건) 리뷰 총점9.0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파워문화리뷰 [22-59] 동남아시아의 독재자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w******f | 2022.12.26 | 추천22 | 댓글4 리뷰제목
친미(親美)에서 반미(反美)로, 호치민[胡志明]   베트남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호치민[胡志明, 1890~1969]는 공산주의자다. 하지만 그는 이념보다 민족을 앞세운 독립운동가였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상해 임시정부의 제2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1873~1935)처럼 좌파 민족주의자 혹은 민족적 사회주의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는 서술되;
리뷰제목

친미(親美)에서 반미(反美)로, 호치민[胡志明]

 

베트남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호치민[胡志明, 1890~1969]는 공산주의자다. 하지만 그는 이념보다 민족을 앞세운 독립운동가였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상해 임시정부의 제2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1873~1935)처럼 좌파 민족주의자 혹은 민족적 사회주의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는 서술되지 않았지만, 호치민은 젊은 시절 파리에서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Eugene Choi)의 실제 인물이라는 황기환(黃玘煥, EARL K. WHANG, 1886~1923), 블라디보스토크에 설립된 대한국민의회에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한 윤해(尹海, 1888~?) 등과 만나 교류했으며, 그들을 모범으로 삼아 활동했다고 한다.1) 그래서인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부분의 동남아 지도자2)들은 일본에 협력했지만, 호치민은 이와 반대로 미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심지어 CIA의 전신(前身)인 OSS와 협력관계에 있을 정도였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미국이 베트남의 독립을 용인하고 지원했다면, 호치민의 베트남은 친미(親美)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프랑스의 베트남 재점령에 부정적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F.D.Roosevelt, 1882~1945)가 1945년 4월에 급사한 후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는 반공(反共)으로 흘렀다. 당연히 ‘공산주의자’ 호치민은 미국의 대안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민[越南獨立同盟會]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협상조차 반대하는 매파가 득세했다. 결국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생했고, 1954년 디엔비엔푸[奠邊府]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배하여 프랑스의 식민지라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마무리하는 제네바 합의에는 “2년 내에 국제사회 감시하에 선거를 치뤄 통일정권을 세우도록 해주겠소”[p. 40]라는 조항이 있었다. 이때 중국에 이어 베트남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는 ‘도미노 현상’을 막기 위해 미국이 선택한 것은 저명한 반공(反共) 반(反)프랑스 민족주의자 응오딘디엠[吳廷琰, 1901~1963]이다. 가톨릭을 믿는, 지주 출신의 정통 엘리트였던 그는 대중 앞에 서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비판에 민감했다. 여기에 깐깐한 원칙주의자였던 응오딘디엠은 정권을 잡자마자 반공(反共)을 내걸고 날뛰는 사조직, 즉 메콩델타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가톨릭 교리를 흉내 낸 종교 단체 ‘카오다이[高臺]’와 사이공 인근의 촐론에서 공권력 노릇을 하는 깡패 조직인 ‘빈슈옌[平川]’을 군대를 보내 소탕3)했다. 그 결과 이들의 잔존세력은 우리에게 ‘베트콩’으로 알려진 인민해방전선(NLF)으로 귀순했다.

응오딘디엠 본인은 당시 동남아 지도자 가운데 드물게 부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베트남 공화국은 부패하고 무능했다. 게다가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가지고 그를 따르는 북부 출신의 반공주의자를 우대하면서, 노골적으로 친(親)가톨릭 반(反)불교 정책을 펼쳐 그를 선택한 미국조차 그에 대한 기대를 버리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의 뒤를 이은 정치군인들이 응오딘디엠 만도 못했다는 것이다.

 

 

시하누크의 외줄타기, 킬링필드의 비극을 빚다

 

비시 프랑스 정부가 선택한 캄보디아의 왕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1922~2012, 이하 ‘시하누크’)는 뛰어난 외교능력으로 1949년 프랑스 연합의 반(半)독립국이 되고, 태국으로부터 시엠립과 바탐방도 다시 찾아왔다. 나아가 1953년 프랑스로부터 완전히 독립도 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그는 미국과 소련 양쪽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지원을 받는 등거리 중립외교를 펼쳤다. 문제는 시하누크가 말했듯이 약소국이 중립외교를 할 때는 어느 한 쪽에 기울어지면 안 되는데, 베트남 전쟁(1955~1975)이 진행 중인 1963년에 시하누크는 남베트남과 단교를 선언하고, 1965년에는 미국과도 단교를 선언했다. 이렇게 한쪽으로 기울어지자 시하누크에게 선택권이 사라졌고, 어쩔 수 없이 베트남의 병참수송로[호치민 루트] 역할을 떠 맡아야 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우파 민족주의자였던 총리 론 놀(Lon Nol, 1913~1985)은 쿠데타를 통해 ‘크메르 공화국’이라는 친미 정부를 세우고 베트남인 말살정책을 펼쳤다.  권좌(權座)에서 쫓겨난 시하누크는 극좌파인 폴 포트(Pol Pot, 1925~1998)의 크메르 루즈와 협력, 부패한 론 놀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주 캄푸치아 공화국’을 세웠다. 이 정권의 실질적인 리더는 폴 포트로, 그가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을 벤치마킹한 결과 대학살이 벌어졌다. 그것이 영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1984)로 널리 알려진 그 학살이다. 이 과정에서 침공을 당한 베트남은 반격에 나서 크메르 루즈를 쫓아내고 괴뢰정권인 ‘캄푸치아 인민공화국(PRK)’을 세웠다. 베트남군의 철수 후 시하누크와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수상 출신 훈 센(Hun Sen, 1952~ )이 권력을 나눠가졌다. 하지만 이 기형적인 정치체제는 1997년 훈 센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1인 독재로 다시 회귀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말라야 정권이냐 말레이 정권이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은 연방말레이주(FMS)에 속하는 4개 주와 비연방말레이주(UMS)에 속하는 5개의 주, 해협식민지인 페낭과 믈라카를 합쳐 말라야 연방을 제안했다. 이 제안이 수용되어 독립하는 과정에서 말레이인을 위한 정권인 ‘말레이 정권’이냐 말라야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정권인 ‘말라야 정권’이냐 논의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말레이시아 건국의 아버지로 꼽히는 초대 수상 툰쿠 압돌 라만(Tunku Abdul Rahman, 1903~1990)을 중심으로 하는 UMNO(United Malays National Orgaization)는 영국과 타협, 말라야 정권을 표방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해협 중국인계 MCA(Malayan Chinese Association)와 연립정권, 중국계 및 인도계의 참정권 자격의 거주기간 제한 단축 등의 혜택과 다른 종교도 허용하나 이슬람 교도를 타 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은 금지하고 말레이인에게 경제적 특혜를 부여하는 부미푸트라 정책을 시행했다. 독립 당시 말레이인이 과반수가 아니었고[말레이인 230만, 중국인 200만, 인도인 54만], 중국계가 경제권을 쥐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한 것은 비주류인 인도계 출신의 4대 수상 마하티르 모하맛(Mahathir Mohamad, 1925~ )도 장기간 집권하면서 대형 사업에서 말레이인의 지분을 늘리는 등 부미푸트라 정책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해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배우자는 Look East 정책을 펼쳐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부미푸트라 정책의 지속은 인종차별적인 말레이시아를 만들었고, 차별에 반발한 중국계 우수인력의 해외유출도 이루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특이한 것은 동남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군부 쿠데타가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테러는 군대가 아닌 경찰의 문제라고 본 말레이시아 지도부의 입장이 작용했다. 그래서 중국인 중심으로 조직된 말라야 공산당(MCP)이 친펭[陳平, 1924~2013]의 지도 하에 무장투쟁을 전개했지만, 정부는 범죄자들의 테러라면서 끝까지 경찰로만 대응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렇게군부에게 권력의 지분을 주장할 명분을 주지 않았기에 이후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니 않은 유일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p. 163]고 한다.

 

 

미국의 판단,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 독립을 지원하다.

 

일본에 협조하고 있던 수카르노(Soekarno, 1901~1970)와 모하맛 하타(Mohammad Hatta, 1902~1980, 이하 ‘하타’)는 종전이 가까워지자, 해군소장 및 자카르타 주재무관으로 근무 중이던 마에다 타다시(前田精, 1898~1977, 이하 ‘마에다’)의 지원을 받아 독립선언 준비를 했다는 얘기가 있다. 1945년 8월 17일의 인도네시아 독립선언이 마에다의 관저에서 이루어지고, 1976년에 마에다에게 인도네시아 국가 및 국민에게 주어지는 최고영예인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된 점을 감안하면 그럴 듯하다.

 

어쨌든 수카르노와 하타가 독립선언을 했으나 젊은 과격파가 득세하여 인도스(네덜란드 혼혈)이나 중국계를 대상으로 하는 사적 보복으로 혼란이 지속됐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독립지도자들의 친일부역 전과와 공산주의 의혹을 제기하며 복귀를 서둘렀다 [인도네시아 독립전쟁(1945~1949)]. 이때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이 수카르노가 이끄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에 반기를 들고 마디운(Madiun)에서 정권을 세웠다. 수카르노는 이들과 타협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덕분에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는 패배했으나 무난히 독립할 수 있었다.

 

호치민은 베트남 독립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미국을 도와 일본과 싸웠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민족주의자라기보다 공산주의자로 판단하였다. 반면에 수카르노는 일본에 부역한 전력이 있지만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로 판단하였다. 이 차이로 베트남은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를 몰아내고도 미국과 7년의 가혹한 전쟁을 치뤄야 했고,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에 패하고도 미국이 지지한 덕에 온전한 신생독립국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p. 238]

 

독립은 했지만 다양한 종교를 믿는 수많은 인종과 언어로 갈라진 군도(群島)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에 수카르노는 사실상 독재인 교도(敎導) 민주주의를 제창했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하타는 이에 반발해서 사임했다. 점차 독재자로 변하면서 수카르노는 많은 지지를 받는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을 통해 군부를 견제했다. 이는 반미(反美)정책을 통한 지지자 결집을 가져왔지만, 미국의 불안도 증가시켰다. 여기에 좌우로 쪼개진 군부를 통해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쿠데타를 기도했지만, 하지 모하마드 수하르토(Haji Mohammad Soeharto, 1921~2008)에게 진압됐다.

 

 

싱가폴, 사형제도가 있는 디즈니랜드

 

해협중국인 출신의 리콴유[李光耀, 1923~2015]는 이주중국인 출신의 림친시옹[林淸祥, 1933~1996]등 정적들을 제거하고 말레이시아의 싱가폴주(州)를 만들었다. 하지만 2년 만에 싱가폴은 말레이시아로부터 퇴출되어 강제적으로 독립되었다. 여기서 리콴유는 이슬람 세력에 둘러싸인 조그만 섬인 싱가폴의 위기의식을 자극해서 극단적인 공익우선과 실용주의를 실천하는 싱가폴을 기획, 연출했다.

구체적으로 1969년 노조의 파업권 등을 노조 활동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강성노조를 무력화시키고,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을 통해 상급학교 진학여부 등이 결정되게 만들었다. 또한 공무원 보수를 민간기업보다 높여 충분한 보상을 하되, 부패행위가 적발되면 파멸적 징계[파면, 가혹한 형량 선고, 벌금, 신문1면에 대문짝만 하게 사진을 실어 사회적으로 사망 선고 등]를 하여 싱가폴을 부패 없는 풍요로운 도시로 만들었다.

 

이렇게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이야기 3>에서는 동남아 각국의 독립과정과 베트남[호치민, 응오딘디엠], 캄보디아[시하누크, 론 놀, 폴 포트, 훈 센], 말레이시아[마하티르 모하맛], 인도네시아 [수하르노, 수카르노], 싱가폴[리콴유] 등 각국의 독재자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동남아 각국의 리더와 국민들의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 그들의 오늘을 만든 것이라는 점을 만화를 통해 가볍게 보여주는 셈이다. 하지만 영웅이 될 수도 있던 동남아 리더들이 독재자로 전락(轉落)하는 모습들은 왠지 씁쓸했다.

 

1) 김용래, “호찌민 감시 佛 경찰문건 대거발굴… 한국 임시정부 활약상 생생”, <연합뉴스> 2018.09.30 (https://www.yna.co.kr/view/AKR20180929039500081)

2)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Achmed Sukarno, 1901~1970)는 일본군의 점령에 협력하고 일본군의 묵인을 얻어 독립을 선언했다. 타이의 피분송크람(Luang Phibun Songkhram, 1897~1964)는 일본과 방위동맹을 체결(1942)하고 일본과 협력하여 참전했다. 미얀마의 아웅 산(Aung San, 1915~1947)은 일본의 원조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군과 함께 미얀마로 침입하였다.

3) 빈슈옌과의 전투과정에서 민족주의 독립운동가인 찐민테[程明世, 1920~1955]가 사망했다. 이로 인해 미국이 가지고 있던 ‘응오딘디엠’의 대안이 사라졌다. 또한 응오딘디엠에 협조적이었던, 그가 속해있던 반(反)베트민[越盟] 조직은 유력한 지도자를 잃었고, 그의 부하들은 해산되어 흩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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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포토리뷰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3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충*군 | 2022.11.0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1, 2권도 재미있었지만 3권에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공산화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그려낸것은 정말 이 시리즈의 백미라고 생각된다. 만화라는 전달방식과 분량의 한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세세한 부분까지 다 담아내려고 했고 실제로 담아낸것에 대해 작가님께 경의를 표한다. 3권은 마치 영화와 같은 느낌이다. 너무나 빨리 읽혀졌으며 너무나 재미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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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권도 재미있었지만 3권에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공산화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그려낸것은 정말 이 시리즈의 백미라고 생각된다.

만화라는 전달방식과 분량의 한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세세한 부분까지 다 담아내려고 했고 실제로 담아낸것에 대해 작가님께 경의를 표한다.

3권은 마치 영화와 같은 느낌이다. 너무나 빨리 읽혀졌으며 너무나 재미있게 이해가 되었다.

일단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한번읽고 두번째는 더 깊이알기위해 가끔 인터넷 검색을 해가면서 읽고 세번째는 흐름을 알고 읽으면 어느정도나마 동남아를 이해하고 동남아의 위대함을 알것이고 동남아를 사랑할것이다.

분명 동남아에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절대 때놈이나 왜놈이나 조선놈들이 무시할곳이 아니라는것을... 한세기 뒤에는 한일중이 동남아에게 조아리는 날이 올것이라는것을.

그러한 동남아를 한눈에 이해하는 최고의 도서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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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5건)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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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4점
동남아 각국의 독립 과정과 독재자가 된 리더들에 관련된 에피소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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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w******f | 2022.12.26
구매 평점5점
3권 베트남, 캄보디아 편 진짜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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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충*군 | 2022.11.07
구매 평점5점
우리가 알아야 할 동남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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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b***a |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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