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로 들른 곳은 라오스 국경 검문소. 질서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광경에 넋이 나가 머뭇거리는 바람에 나는 가장 마지막 순서로 출국 도장을 찍게 되었다. 그런데 때마침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탓에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 직원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나와 함께 탔던 사람들의 특이한 복장, 헤어스타일을 기억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라? 어느 순간부터 내가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직원이 막 도착했고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직원에게 도장을 받고는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아뿔싸! 있어야 할 자리에 버스도, 사람도 없었다. 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을 바라봐도 내가 서 있는 곳, 라오스 국경 검문소 말고는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다. 그 순간, 심장이 요동치며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헐, 지금 나만 빼고 출발한 거야.’
--- p.33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땀을 흘리며 춤출 때,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나 춤동작을 공유하고, 그들이 나로 인해 무언가를 얻거나 내가 그들로 하여금 무언가 영감을 받을 때, 서로 하이파이브하며 고맙다고 말할 때,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내가 추는 춤에 자연스러운 변화가 생길 때였다.
맞다. 나는 그때 정말 행복했다. 고마웠던 수많은 순간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고 그런 것들이 모여 우승이란 결과를 만들어냈을 때 나는 행복했다. 그 과정 자체가 행복했던 것인데 왜 나는 우승이란 결과만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을까?
--- p.72
ABC 롯지를 지나자 아주 가까운 곳에 내가 그토록 원하던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열 발자국, 딱 열 발자국만 가면 정상에 도착한다.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수히 맞았던 우박, 가슴을 철렁이게 했던 천둥 번개, 해맑은 미소를 선물로 주었던 산에 사는 어린아이들, 나를 도와주려 애썼던 동료들…. 그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참으며 여덟, 아홉, 그리고 드디어 열!
“나마스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NAMASTE, ANNAPURNA BASE CAMP) 4,130미터.”라고 써진 푯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축하합니다! 우리가 해냈어요!(Congratulation! We achieved!)”라고 써져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조용히 읊조렸다.
“그래, 우리가 해냈어! 난 이제,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다 할 수 있어!” 두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마지막 힘을 다해 크게 외치고 나서 눈밭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체력의 한계로 더는 미친 듯이 기쁨의 탄성을 내지를 수 없기도 했지만, 뭔가 미안하고 행복하고 성취했다는 뿌듯함이 다 뒤섞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은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 p.113~114
나는 허름한 가정집을 개조한 네팔 비보이 연습실에서 어릴 적 내 모습을 발견했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공원에서 과자 봉지를 깔고 연습했던 나. 매일 새벽마다 지하철역에 나가 홀로 춤을 추며 외로운 싸움을 했던 나. 주변의 사람들이, 환경이, 신조차도 안 된다고 할지라도 그 말마저 듣지 않았던 패기와 열정 넘치던 시절의 나. 그때의 내가, 바로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나는 그 어떤 날보다 행복했다. 내가 찾고 싶었던 춤을 출 때의 그 가슴 떨림을, 그들의 열정을 보고 다시금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인도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굳게 결심한 내 인생의 의미, 진정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추고 싶었던 나누는 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방식이라면 앞으로 길을 잃지 않고, 내 인생의 의미를 찾으며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길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 p.127
“우리는 예산이 없어서 선생님을 부를 수 없어요. 그래서 각자 배우고 싶은 힙합의 종류를 선택해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알려주고 연습해요. 그러다가 그중 빨리 성장한 사람이 선생님으로 신청해서 본인이 연구했던 것을 다른 동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죠. 일주일에 2번 수업을 하고 나면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다시 학생이 되고, 그다음 수업을 진행해보고 싶은 다른 학생이 그다음 주에 선생님으로 신청을 합니다. 여기에서는 그 누구도 돈을 내거나 받지 않아요. 그저 우리끼리 만들어가는 거죠.”
너무나도 멋지지 않나. 나는 절로 나오는 물개박수를 치며 깊이 감명했다. 스폰서도, 지원 단체도 없이 누군가의 주머니에 동전 하나 들어가지 않는데 이렇게 멋진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게 너무나도 멋졌기 때문이다. 지금껏 수많은 해외를 돌아다니며 세계 최정상급 비보이들과 단체들을 만나봤지만 이런 모임은 난생처음 봤다. 힙합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세계 최고의 비보이들을 낳은 한국에서도, 문화 선진국인 유럽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조금 전 사이퍼에서 본 비보이들의 수준이 왜 이렇게 높은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이렇게 건강하고 멋있는 힙합 문화가 아프리카 ‘우간다’에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 p.162~163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리니 아이러니하게 눈물이 나려고 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노을이 내 인생 최고의 노을이라는 사실에 눈물이 났고, 스쳐 지나가게 두었던 일상의 작은 행복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힘들게 일을 마치고 퇴근한 아버지와 부딪혔던 술잔 소리, 겨울이 다가오자 어머니가 바꿔 놓은 두껍고 폭신한 이불과 그 이불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 땀을 흘리며 서로에게 존중의 박수를 쳐주던 같은 팀 멤버들, 동네 친구와 밤새 나누었던 미래에 대한 고민들, 무대와 관중 그리고 춤….
지금 바라보고 있는 노을부터 과거에 행복했던 여러 순간까지 그 모든 날이 빠르게 되감기가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인도의 한 화장터에서 앞으로 행복하게 살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간,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행복의 순간들이 쿠바의 하늘이라는 분홍빛 스크린에 상영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걸까?’
--- p.275~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