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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

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

시인동네 시인선-168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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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78g | 125*204*8mm
ISBN13 9791158965419
ISBN10 115896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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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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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이 이동화장실인 마눌님이
뒤가 너무 급해서
주위에 있는 남산 중앙도서관으로 들어간다
덩달아 딸도
엉덩이를 붙잡고
따라 들어간다
아들 녀석도 꼭 누가 핏줄이 아니랄까봐
불고기버거에 감자튀김 콜라
3종 세트로 따라 들어간다

이윽고 줄줄이 엄마를
따라서 나오는데
남산 중앙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다 읽고 나오는 표정들이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맞는가 보다
장하다,
엉덩이로 책 읽는 우리 가족
--- 「엉덩이로 책 읽는 우리 가족」 중에서


소래를 지나가는 버스는
아직도 불심검문을 한다
무슨 사상을 숨기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죄다 검은 비닐봉지에다
꽃게나 새우를 숨기고 탄다
문제는 꽃게나 새우가
집게다리나 수염을 이용해서 슬그머니
승객들에게 냄새 테러를 가한다는 데 있다
지독하다
그러니까 검은 비닐봉지는
사상을 가린다
소래 어물전 상인들도
무슨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데
하루 종일 일한 작업복과
작업복을 따라온 비린내를
검은 비닐봉지에다 숨기고 타는지
검문하면 화부터 낸다
소래 사람도 못 믿냐고
그래 검은 비닐봉지가 당신들을
못 믿게 만든다고
시인들도 못 믿냐고
그래 당신들이 쓴 시가
검은 비닐봉지처럼 모두다 가려서
그런다고
--- 「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 중에서


세상 모든 나무들은
열매를 네모나 세모처럼 각이 지게 내지 않는다는 것을
내 머리에 떨어져
저만치 굴러가는 은행 알을 보고 새삼 깨닫는다

열매가 무기가 되지 않게
동그랗게 궁굴릴 줄 아는 마음이
사뭇 고맙다

사람의 열매인 자식도
동그랗게 말아서 세상에 내보내야 하지 않겠나
누구에게 떨어져도
무기가 되지 않게
--- 「사람의 열매」 중에서


빗소리만큼 두꺼운 책도 없다
책 읽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예 빗소리를 펼쳐보지도 않을 것이다
라면이나 끓여서
그 위에 올려놓을 것이 분명하다
파리나 잡는 데나 간혹 사용할 것이다
빗소리 첫 장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책 첫 장을 열 힘도 없는 자는
먹지도 말라
그런데 책 첫 장을 열 힘은
평생에 한번 찾아올 것이다
역도 선수도 들지 못한
빗소리의 첫 장은
자동적으로 내려오는
내 눈꺼풀과 너무도 닮아 있다
어떤 때는 빗소리를 들고 서 있으면
경로석에서조차
자리를 양보할 때도 있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빗소리라는 철학서
--- 「빗소리라는 철학서」 중에서


나는 아래층 치킨 집 매상을
계단을 밟고 안 내려가 봐도 다 안다
영업이 끝나고
셔터 내리는 소리에
그날 매상의 이력이 다 적혀 있다
나는 장부를 들여다보듯 읽는다
매상의 오른 날의 셔터 소리는 거침이 없이 부드럽게
촤르르 촤르르 내려간다
셔터를 내리는 손길이 부르는 노래가
내 달팽이관에 즐겁게 모인다
매상이 저조한 날에는
셔터가 마지못해 내려오느라
끼걱 끼걱 찌그러진 소리를 낸다
내 귀는 얼른 가서
안 내려오려는 셔터를
억지로라도 도와서 내려주고 온다
어쩌자고 치킨 집 주인은
내 귀에다
가게의 비밀을
속속들이 다 적는 걸까
--- 「귀가 슬픈 사람」 중에서


짠 음식을 먹을 때
누구나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헝가리에서는
여자가 사랑에 빠졌을 때
요리를 하면 소금이 많이 들어간다 한다
연인만 생각하다가
소금이란 생각을 잊는다고 한다
음식이 너무 심심하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한다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미워져서
과하게 짠 음식을 내오더라도
미간을 찌푸리기보다는
이제 나를 너무도 사랑하는구나 하고
헝가리 연인이 되기로 했다
--- 「헝가리 연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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